2026년 1월 1일 목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4,4-7 형제 여러분,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6-21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하느님의 얼굴빛과 난민들의 얼굴
오늘 전례는 축복과 강생, 그리고 구원 역사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깊이 성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민수기에서 주님께서는 사제들을 통하여 “주님의 얼굴을 너희 위에 비추시고 평화를 주시기를”(6,24-26)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일어난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며 묵상하시고, 목자들은 급히 나아가 아기 예수님을 뵙고 들은 모든 것을 찬양하며 돌아갑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의 축복이 역사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Θεοτόκος)이십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마리아께서 단지 위대한 인간을 낳으신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이신 분을 낳으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리신다고 명확히 가르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연약함과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심으로써 인간 존엄을 끝까지 존중하셨다는 신앙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현실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강생은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의 극치를 드러낸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면, 하느님의 얼굴빛이 가려진 듯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국제기구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억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쟁과 박해, 심각한 인권 침해로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고, 그 가운데 약 4천만 명은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 숫자는 통계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공동체가 해체되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극심한 위험에 노출되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수단과 시리아 등지에서 계속되는 무력 충돌은 이러한 비극을 지금 이 순간에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하느님께서 “때가 차자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다”(4,4)고 선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조건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오셨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영적 신분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엄과 권리를 지닌 존재임을 분명히 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난민과 이주민 역시 하느님의 자녀로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곰곰이 되새기셨다”(루카 2,19)라는 표현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깊은 신앙적 성찰을 뜻합니다. 마리아께서는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으시며, 고통받는 인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마리아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당 안에 머무르지 않고, 집을 잃고 떠도는 이들,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삶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길위의 어머니'가 되어 사랑의 순례를 이어가야 할 우리입니다. 참된 평화는 주님의 얼굴빛이 모든 사람 위에 비출 때 이루어지며, 그 빛은 우리가 난민과 약자들을 향한 환대와 정의의 실천으로 응답할 때 세상 안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