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33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7편 양산박의 무력반란 17-2
조개가 공손승의 ‘불타는 배’ 도술과 삼원 형제의 작전으로 5백 명의 관병을 모조리
물속에 장사지낸 일을 얘기하자 그들은 크게 기뻐했다.그들이 금사탄에 배를 타고
언덕에 오르자, 산 위에 있던 수십 명의 졸개들이 내려와 길을 안내했다.
양산박 관문에 도착하자, 두목 왕륜이 그들을 정중히 산채의 본관으로 맞아들이고 말했다.
“일찍부터 조보정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만, 오늘 이처럼 여러 호걸들과 함께 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조개가 대답했다.
“책도 변변히 읽지 못한 한낱 촌부가 일을 저지르고 몸 둘 곳이 없어 이처럼 찾아왔으니
두령께서는 저희를 부하로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마치자 잔치를 크게 벌였다.
소 잡고, 양 잡고, 돼지 잡고, 피리와 북소리와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두령들과
일곱 호걸은 술잔을 기울였다.이윽고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끝나자 그들은 각자 처소로
돌아갔다.그때 조개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큰 죄를 지은 우리를 받아준 왕 두령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그 말에 오용은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형장은 왕륜이 우리를 진실로 환영하는 줄 아시오?
아까 술자리에서 우리가 5백 관병을 무찌른 이야기를 하자 왕륜의 얼굴빛이 달라집디다.
또한 우린 이 산채에서 아무런 지위도 받지 않았잖소.”“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아 좋겠소.”
“내가 오늘 자세히 살펴보니 둘째 두령 두천과 셋째 두령 송만은 보잘것없는 존재였소.
허나 넷째 두령 임충은 인물입디다.본래 동경 팔십만 금군교두를 지낸 자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왕륜의 밑에 몸을 굽히고 있긴 하나 불만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임충과 잘 지내야 할 겁니다.”“그런 줄은 몰랐소. 아무튼 선생이 묘책을
일러주시오.”다음 날 아침 일찍 넷째 두령 임교두가 호걸들을 만나러 왔다.
일곱 호걸들은 그를 맞이했다.이윽고 임충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여러 호걸들께서 모처럼 우리 산채를 찾아 주셨지만 왕 두령이 질투가 심해
이대로 산채에 머물러 계시게 될 지 걱정입니다.”오용이 임충의 말뜻을 알아 차렸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왕륜이 하는 거동을 보아 이치에 합당하지 못할 때는
제게 생각이 따로 있습니다.”“우리 일로 두령들께서 의가 상하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일을 제게 맡기십시오.”임충이 돌아간 지 얼마 후에 산채에서 졸개가 와서
왕 두령이 일곱 호걸을 산의 남쪽 수정자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알려왔다.
“곧 가겠다고 여쭈어라.”졸개를 돌려보낸 다음 조개는 오용을 돌아보고 물었다.
“오늘 잔치가 어떻겠소?”오용이 대답했다.“일이 벌어지겠소. 모두들 옷 속에 무기를
감추고 있다가 내가 수염을 어루만지거든 그것을 신호로 거사를 하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조개의 무리는 곧 남산 수정자로 갔고, 여러 두령들이 모여서 그들을 맞았다.
서로 인사를 마치자 왕륜, 두천, 송만, 임충, 주귀는 좌편에 앉고, 조개, 오용, 공손승,
유당, 원소이, 원소오, 원소칠은 우편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이 얼마쯤 취했을 때 왕륜이 부하에게 말했다.“그걸 내오너라.”
잠시 후 은화가 든 큰 쟁반이 들어왔다.왕륜은 잔을 들고 일어나 조개를 향해 말했다.
“여러 호걸께서 모처럼 찾아오셨으나 이 작은 산채에 어떻게 머물러 있겠습니까?
작은 예물을 준비했으니 받으시고 큰 산채로 가시기 바랍니다.”그때 조개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양산박에서 어진 사람들을 부르고 선비들을 받아들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소만, 우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물러갈 도리밖에 더 있겠습니까,
예물은 거두십시오. 우리도 가진 것이 있습니다.”
- 34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34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7편 양산박의 무력반란 17-3
“우리가 무안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됩니까? 산채에 방이 없고 식량도 넉넉지 않아서
그러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왕륜의 말이 끝나자 잠자코 있던 임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크게 꾸짖었다.“두령은 내가 여기 왔을 때도 그러더니 오늘도 똑같은 수작이구나.”
그때 오용이 황급히 나서며 말한다.“임두령, 고정하시오. 우리가 온 것이 잘못이었소.”
“아닙니다. 오늘은 저놈을 용서 못하겠소.”그러자 왕륜도 크게 화를 냈다.
“네놈이 취했구나. 위아래도 몰라보고 감히 무슨 말버릇이냐?”
임충은 술상을 엎고 가슴에서 날이 시퍼런 칼 한 자루를 빼들었다.
그 순간 오용이 손을 들어 수염을 어루만졌다.그것을 신호 삼아 원소이가 두천의 덜미를
잡아 눌렀다.원소 오는 송만의 멱살을 잡고, 원소칠은 주괴의 어깨를 억눌러 각기 꼼짝도
못 하게 했다.임충은 그대로 왕륜에게 달려들었다.“네 이놈, 남의 위에 서려면 도량이 넓고
재주가 높아야 하느니라. 너같이 어진 사람을 시기하는 놈을 살려 두어 무엇에 쓰겠느냐?”
임충이 단칼에 왕륜의 가슴을 찔러 죽였다.
그러자 조개와 그 일당들이 일제히 품에서 칼을 꺼냈다.
순간 두천, 송만, 주귀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여러 호걸들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오용은 곧 임충을 두령의 의자에 앉히고
소리 높여 호령했다.“지금부터 임교두가 산채의 주인이다. 만약 누구든 복종치
않는 자가 있다면 왕륜처럼 될 것이니 그리 알라.”그러자 임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의 말씀은 옳지 않소. 나는 오늘 여러 호걸들의 의리를 중히 여겨 왕륜을 죽인 것이지
결코 이 자리가 탐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으면
천하의 영웅들이 비웃을 것이오.여기 조형으로 말씀드리면 의리를 중히 여기시고
재물을 우습게 아시며, 지략과 용기를 갖추시어 천하에 그 이름이 떨치신 터이니
나는 오늘 조형을 양산박의 두령으로 모실까 합니다. 여러 형제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조개는 여러 번 그 자리를 사양했으나 임충이 조개의 팔을 끌어 교의에 앉히고
모든 무리들에게 정자 앞에서 세 번 절하게 한 다음 외쳤다.“오늘 여러 호걸들이 모여
대의가 분명하니 순위를 공명정대하게 정하겠소. 제2위는 오학구 선생이 산채의
군사 지휘권을 맡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러자 오용은 겸손하게 사양했다.
“저는 비록 손자병서는 좀 읽었지만 털끝만 한 공도 세운 적이 없는데, 감히 이 자리에
앉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임충은 굳이 오용을 둘째 교의에 앉히고 다음에 공손승을 향하여 말했다.
“공손 선생은 제3위에 앉아 주십시오.”그러자 당사자가 사양하기 전에 조개가 먼저 나선다.
“임교두께서 이러시면 저도 이 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아닙니다. 공손 선생께서는
이미 그 이름이 천하에 떨쳐 있고, 용병술에 능하시고, 또 귀신도 헤아릴 수 없는
지략과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불러오는 술법이 있으시니 제3위는 역시 공손 선생보다
마땅한 자가 없습니다.”그렇게 되어 임충은 제4위가 되고, 제5위는 유당, 제6위는 원소이,
제7위는 원소오, 제8위는 원소칠 그리고 그 이하가 두천, 송만, 주기가 되었다.
그렇게 양산박의 지위가 정해지자 조개는 생일 예물로 얻은 금은보화를 내어 마소를 잡아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낸 다음 크게 잔치를 베풀어 양산박의 면모를 바꾸었다.
어느 날 조개는 오용에게 말했다.“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위태로운 목숨을 구해준 송강 때문이 아니겠소?운성현에 사람을 보내 사례를
해야 하고, 우리와 함께 일을 도모하다 잡힌 백승을 하루 바삐 구해 낼 도리를 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다시 두령들과 상의하여 유당에게 편지 한 장과 황금 1백 냥을 주어 운성현으로
송강을 찾아가게 했다.
- 3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