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생산에 ASML 장비 필수… 韓 “네덜란드와 반도체 동맹”
尹, 이재용-최태원과 오늘 ASML 방문
ASML ‘EUV 장비’ 年50대 한정생산
대만 TSMC가 싹쓸이… 韓과 더 격차
韓 ‘2나노’ 미래, 네덜란드 협력에 달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반도체 장비회사 ASML 본사를 찾아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주요 축 역할을 맡고 있는 네덜란드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함께 방문하는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노광(露光)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고성능 칩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한미일 반도체 동맹의 성패가 네덜란드와의 협력 강도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SML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렉트론과 함께 세계 4대 반도체 장비 회사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집계 기준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20%)가 1위, ASML(18%)이 2위였다.
윤 대통령은 앞서 10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 출국을 앞두고 “ASML 방문은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ASML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핵심 협력 대상이란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회장, 최 회장과 함께 12일(현지 시간) 외국 정상 최초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클린룸’과 최신 노광장비 생산 현장을 시찰한다.
반도체는 회로를 새기는 노광, 깎아내는 식각, 씻는 세정, 막을 쌓는 증착 등의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ASML은 노광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에 미세하고 복잡한 회로를 그리는 핵심 장비를 생산한다. 특히 ASML이 전 세계에서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7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급 시스템 반도체 및 10나노 중반급 미만의 D램 등 초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ASML이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EUV 장비는 50대가량으로 한정돼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 간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그동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쓸어가다시피 했다. TSMC와 2나노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는 그에 적합한 최첨단 EUV 장비를 구하기 위해 ASML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장은 앞서 2020년 10월과 지난해 6월 각각 네덜란드를 찾아 ASML을 직접 챙겼다. 올해 들어 일부 매각하긴 했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ASML 지분 0.4%를 갖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ASML과 5년간 4조7000억 원 규모의 EUV 장비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방한 당시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회장)와 차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이 회장과 최 회장도 참석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7∼9월)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7.9%, 삼성전자가 12.4%로 두 기업 간 격차가 45.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미국, 일본 등의 추격도 매섭다. 인텔은 10월부터 EUV를 처음 적용한 ‘인텔4’ 공정으로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4일 AI용 칩으로 출시하는 인텔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울트라 프로세서’도 EUV를 통해 생산된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 EUV 기술을 도입해 첨단 반도체 양산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리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여유를 가질 틈이 없다는 얘기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파운드리 등 초미세공정에 있어 EUV는 없어선 안 될 필수 장비”라며 “앞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한국의 AI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네덜란드 및 ASML과의 협력 강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尹, 대한제국 특사 거부했던 ‘헤이그 리데르잘’ 방문
1907년 만국평화회의 열린 장소
일제의 을사늑약 부당함 호소 불발
“116년 전 국권을 뺏긴 대한제국 특사단이 거부당했던 곳을 이번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 ‘리데르잘’을 13일(현지 시간) 방문하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11일 출국했다.
윤 대통령은 리데르잘 방문을 위해 애초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가기로 한 일정도 취소했다. 국권을 빼앗긴 약소국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리고 순국선열 희생을 기리는 게 그만큼 의미가 크다고 봤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13일 뤼터 총리와 함께 헤이그 비넨호프에 소재한 리데르잘을 방문할 예정이다.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 열사 기념관도 찾는다. ‘기사의 전당(Hall of Knights)’을 뜻하는 리데르잘에선 1907년 6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 당시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회의장까진 도달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끝내 거부당한 이준 열사는 장외 외교투쟁을 벌이다 그해 7월 현지에서 순국했다.
앞서 7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 대통령의 이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은 독립운동과 호국보훈 정신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윤 대통령은 뤼터 총리와 회담 후 함께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으려고 했지만 순방 직전 리데르잘로 행선지를 바꿨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권 회복,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 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길 것”이라며 “강력한 국방력과 글로벌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와 세계평화 수호 의지도 표명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도 구축한다. 13일 뤼터 총리와의 회담에선 양국 간 ‘반도체 대화체’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 하루 앞선 12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외국 정상 최초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클린룸’과 최신 노광장비 생산 현장도 시찰한다.
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