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의 격투경기에는 이상한 형태의 유도복을 입은 브라질 사람들이 휩쓸고 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생긴 형태는 분명히 유도복이지만 기존의 유도복과 달리 크고 작은 모양의 여러 메이커 패치가 여기 저기 붙어있고 곳곳에 브라질 국기 형태의 패치가 달려있다. 또한 그 도복을 입고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유도장 형태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기도 하지만 프로격투기 무대인 Ring에서 경기를 자주 한다. 그들은 대부분 브라질 사람들이며 유도가(柔道家)라기 보다 자유롭게 싸우는 파이터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들이 그레이시 쥬지수(유술)로 대변되던 브라질리언 쥬지수 파이터(Brazilian Jiu-jutsu Fighter), 즉 브라질 유술가들이다.
크게 나누어 현재 유도복을 입고 경기하는 운동은 세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유도(Judo)이며 또 하나는 삼보(Russian Sambo)이고 나머지 하나는 브라질 유술(Brazilian Jiu-Jutsu)이다. 물론 여기에서 삼보는 그 형태가 변형되어 있다. 삼보는 상의는 유도복이지만 하의는 질긴 옷감으로 된 반바지 형태의 팬츠와 삼보 슈즈 혹은 레슬링 슈즈를 신고 경기를 한다. 또한 삼보의 경기복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삼보가 자켓 매치(도복을 입고 겨루는 경기)가 된 것은 유도 기술의 유입 때문이며 따라서 삼보의 기술 상당수는 유도 혹은 유도 이전의 일본 유술에서 비롯되어 있다.
유도는 이미 전 세계에 많은 수련 인구를 가지고 있고 올림픽이라는 초국가적 체육행사의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된지 오래다. 매우 뛰어난 체계와 교육방식으로 서구사회에서도 유도의 체육적, 교육적, 호신적 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유도는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는 아니었다. 유도의 역사는 오랜 과거에서 비롯되어 있지만 지금의 형태는 사실 근대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유도는 대표적인 무도성 스포츠라고 일컬어진다. 그 유도를 무술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도 본래의 형태가 지금의 경기처럼 단지 상대를 메치기 위해서, 단지 상대를 바닥에 굳혀놓기 위해서 처음부터 룰을 그렇게 만들고 연습해 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쯤은 조금이라도 무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형태는 그보다 훨씬 과격하고 잔혹한 형태였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전쟁터였다면 분명히 상대를 메치고 땅에 꼼짝 못하게 굳힌 다음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무기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고 상대의 관절을 부러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기술들의 정점이 모인 무술을 이르러 일본에서는 ‘유술’ 이라고 했다. 유술을 일본어로 읽으면 쥬지쓰가 되며 이것을 영어로 표기하면 Jiu-jutsu가 된다. 유도는 바로 이 유술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고류 유술에서 탈피해 현재의 체육으로서의 유도를 일으킨 사람은 누구이며 현재의 유도에 가장 영향을 끼친 단체는 어느 쪽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가노 지고로’ 라는 인물의 이름이며 또 하나는 ‘강도관’ 이라는 단체 이름이다. 강도관 유도는 근대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에 의해 1882년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유도라는 말이 없었다. 모두 유술이었다. 대부분의 유술은 무기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매우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작은 체구의 사람이 큰 체격을 가진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기술로 농축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대부분 상대의 관절을 꺾는다거나 목을 조르는 식의 치명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살인기술의 효과적인 쓰임을 위해 유술은 발전되어 왔고 그 기술체계가 완성되어 갔다. 가노 지고로는 모든 유파의 우수한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너무 위험한 기술을 배제하고 심신수양에 목적을 가진 새로운 유술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강도관이었고 그 방식을 ‘유도’ 라 이름 지었다. 가노 지고로는 근대 일본의 엘리트 출신으로서 자신이 오래도록 익혀온 유술이 기존의 서양 체육과 같은 방식으로 교육되길 원했다. 그것은 넓은 시각이었고 획기적인 변화였지만 동시에 유술이 가지고 있던 보다 효과적인 기술들-치명적인 제압기술들-을 배제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가노 지고로의 강도관 유도는 연습에서는 쓰일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을 배제한 체 자유롭게 겨루는 시스템을 지향했으며 그것은 다른 어느 유술 유파보다 확실한 기술습득 체계를 가지게 되어 경시청 무도대회에서 강도관의 이름으로 우승하게 되었다. 이것이 강도관의 유도가 인정을 받게 되는 시작이었으며 이로부터 급속히 유도는 보급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가노 지고로는 현대적인 교육을 중요시한 계층이었으며 이윽고 1909년 국제 올림픽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유도를 세계에 보급하는 일에 힘썼다. 가노 지고로의 노력이 이어져 1964년 올림픽을 시작으로 마침내 유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브라질 유술이라는 것은 어떤 연유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어있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극동의 한 나라에서 수행되던 유술이라는 것이 어떤 이유로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브라질인들이 자신들만의 유도복을 입고 있는 것일까.
근대 유도의 아버지를 가노 지고로라고 한다면 현대에서 가장 실전적이라는 브라질 유술의 아버지는 마에다 미쯔요라고 할 수 있다. 마에다 미쯔요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이다. 마에다는 가노 지고로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마에다 역시 강도관의 사범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단히 실력이 출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에다는 약간은 의문의 인물이다. 마에다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고 가는 곳마다 다른 이름들을 사용한 탓에 의문의 인물로 남아있는데 그는 콘데 코마, 마에다 에사이, 마에다 미쯔요, 혹은 마에다 에이사이 등으로 알려져 있다.
마에다 미쯔요는 1880년 생이며 초창기 강도관 유도의 사범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68kg에 165cm의 작은 체구였다. 그는 매우 뛰어난 유술가 혹은 유도가였으며 1904년경엔 불패의 전적으로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 하지만 외국생활에서 그는 계속해서 시합을 했다. 미국의 대통령인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초청으로 다른 두 명의 유도 사범과 함께 미국에서 유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엘리오 그레이시 가문의 장남인 호리온 그레이시는 마에다가 브라질에 온 이유에 대해서 일본에서 열린 무도 경기의 우승에 대한 대가로서 외국여행을 할 수 있었고 그 때부터 미국으로부터 멕시코로, 다시 독일을 거쳐 이태리, 영국, 벨기에, 스페인을 경유한 끝에 쿠바로 갔으며 거기서 1914년 브라질로 떠나 브라질에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마에다의 브라질에서의 삶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 그레이시 가문과 인연을 맺음으로서 오늘날 저 유명한 그레이시 유술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현대의 유도와 브라질 유술의 색깔이 완전히 갈리게 된 것은 유도는 강도관의 의지대로 확실한 체육으로서 전 세계에 뻗어갔으며 브라질 유술은 마에다 미쯔요라는 지도자가 1910년 대에 가르친 형태를 원형으로 브라질 내부에서 보다 실전적인 것이 점차 가미되고 나름대로 수정해가며 그 안에서 자생해갔다는 점이다. 지금도 브라질에서는 ‘도장깨기’가 있다고 한다. 브라질의 시내에서는 아직도 자신을 이기면 상금을 준다는 피켓을 꽂아놓고 스트리트 파이트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토양 아래에서 한 무술이 확산되고 보급된다면 그 무술은 매우 효과가 있고 확실한 성과가 있다는 말이 된다. 마에다가 전해준 유술, 혹은 실전 유술의 색체가 남아있던 초창기의 강도관 유도는 이렇게 브라질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마에다가 브라질에 왔을 때 접촉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하는 점이다. 그들이 바로 유명한 ‘그레이시’일족이다.
마에다가 브라질에 왔고 그와 교분을 나눈 것은 ‘가스타오 그레이시’라는 사람이었다. 마에다는 가스타오의 아들인 ‘카를로스 그레이시’에게 유술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의 마에다가 카를로스에게 유도를 가르쳤느냐 아니면 실전 유술을 가르쳤냐는 질문을 한다면 ‘유술’을 가르쳤을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적어도 브라질에서는 자신들의 그래플링을 이르러 유도(Judo)라는 말을 쓰지 않고 유술(Jiu-Jutsu)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마에다가 전해준 경로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에다에게 일본 유술을 배운 사람은 카를로스였지만 지금의 그레이시 유술(Gracie Jiu-jutsu), 그리고 브라질 유술의 강함을 전세계에 보여준 이는 카를로스보다 사실 카를로스의 동생인 엘리오 그레이시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오 그레이시는 마에다에게 직접 유술을 배우지는 않았고 마에다에게 지도를 받은 친형 카를로스에게 유술을 배웠다. 그는 몸이 매우 허약했으며 깡마른 체구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의지가 있었으며 유술을 자기의 몸에 맞게 고쳐나갔다. 엘리오가 극동에서 온 한 달인이 구사하는 유술을 자기의 몸에 맞춰나갔다는 것은 깡마르고 체력이 부족한 허약한 자신도 그 유술을 구사할 수 있게끔 기술체계에 변화를 줬다는 말이 된다. 지금은 그레이시 유술 외에도 브라질 유술은 상당히 많은 유파가 있다.
엘리오 그레이시에게는 조카가 되는 카를로스의 아들 중 한 명인 칼슨 그레이시가 일으킨 유파가 있으며 그레이시 가문은 아니지만 결혼으로 인한 인척관계가 성립되며 나름의 발전을 거듭해온 마챠도 가문의 유술도 있다. 물론 이런 유파 밑에서 파생되고 있는 지금의 많은 브라질 유술이 있다. 중요한 것은 브라질 유술의 강함을 전 세계에 알린 이는 바로 엘리오 그레이시의 집안이었으며 그레이시 유술이 다른 브라질 유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엘리오 자신이 터득한 ‘유술의 습득체계’와 ‘유술의 적용기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체력이 강하고 신체가 강건한 사람은 어떤 운동을 해도, 어떤 격투기를 배워도 강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몸을 가진 이는 수련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엘리오의 그레이시 유술이 뛰어난 점은 바로 누구라도 배우면 강해지는, 싸움에 이기는, 거리에서 자신을 지키는 무술이라는 점이다. 설혹 배우는 사람이 허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이러한 그레이시 유술은 브라질에서 여실히 증명되어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라질이라는 토양은 매우 거칠며 삼바로도 나타나는 다혈질의 문화이다. 그들은 지금 전세계에서 개최되고 있는 NHB(No Hold Barred:최소한의 룰로 진행되는 경기, 진검승부의 의미)를 이미 70여년 전부터 행해오고 있었다. 그러한 브라질 격투경기를 밸리 튜도(Vale Tudo:뭐든지 된다는 뜻)라고 한다. 그 밸리 튜도 경기에서 허약한 말라깽이 엘리오는 단 한 번의 패배를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했으며 그의 아들들 역시 지금까지도 싸워오고 있다. 그레이시 일족은 70여년 동안 무패를 유지하며 난공불락의 성을 쌓았지만 1999년을 정점으로 그레이시 유술은 세계의 수많은 격투가들의 표적이 되어 조금씩 패배를 기록해 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레이시 유술은 강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현대의 유도와 브라질 유술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드러난 형태의 차이는 그 형태가 있게 된 근원을 알아야 한다. 그 근원은 승부를 내게 하는 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유도는 메치기든 굳히기든 한 판을 깃점으로 승부를 가른다. 하지만 브라질 유술은 유도에서의 한 판의 의미가 매우 희박하다. 그들은 ‘탭(상대방의 신체 혹은 바닥을 두드리는 것)’으로서 승부를 가르고 있다. 탭의 의미는 기브 업(Give up:항복)이다. 브라질 유술은 현대의 유도와 달리 상대를 완전히 전투불능 상태를 만들던가 아니면 그러한 상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대로 하여금 기브업을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몇 십년 간이나 싸우고 발전시켜 왔다.
유도는 서로가 익혀온 기량을 시합의 형태로 나타내는 체계를 가지면서 기술다운 기술, 보다 무르익은 경기운영과 같은 면이 중시되어 왔다. 그것은 무도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면모이다. 하지만 브라질 유술의 체계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디까지나 거리에서의 싸움을 염두에 둔 룰을 만들어 진행되어왔다. 가장 좋은 예를 든다면 포지션의 확보이다. 유도에서는 포지션의 의미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굳히기에서는 여러 모양의 누르기의 형태로 포지션의 중요함이 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브라질 유술에서는 포지션의 의미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상대의 가슴이나 복부 위에 완전히 올라타 앉는 것을 브라질 유술에서는 ‘마운트 포지션’ 이라고 한다. 마운트 포지션을 확보하면 4포인트를 얻게 된다. 마운트 포지션은 꼴사나운 모양이긴 하지만 1대 1로 벌어지는 거리의 실전에서는 가장 완벽한 일방적인 자세라고도 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몸 위에 완전히 올라타 앉으면 깔린 사람으로서는 방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위의 사람이 주먹을 뻗는 거리와 아래에 깔린 사람이 저항하며 주먹을 뻗는 거리는 서로 다르다. 윗 사람의 펀치는 안면에 닿여도 깔린 사람이 뻗는 것은 어지간하면 닿질 않는다. 또한 윗 사람은 깔린 사람의 팔, 목과 같은 부위에 얼마든지 관절기를 시도할 수 있지만 깔린 사람은 필사적인 저항 외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윗 사람의 체력 소모에 비해 깔린 사람의 체력 소모는 매우 급속히 진행된다. 하지만 현대 유도에서는 마운트 포지션의 의미는 없다.
또한 현대 유도는 메치기에 매우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물론 관절꺾기나 굳히기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고 있지만 유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은 메치기이다. 메치기야 말로 유도의 상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브라질 유술은 그와 다르다. 그들은 거리에서의 싸움이 메치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싸움은 바닥에 엉킨 상태에서 끝맺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 그레이시 유술이다. 그리고 브라질 유술이다. 허약한 엘리오 그레이시는 굳이 상대와 서서 힘겹게 씨름하며 메치기 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서 승부를 낼 수 있는 관절기와 조르기에 중점을 뒀다. 이 영향은 다른 모든 브라질 유술에 영향을 준 듯 하다. 때문에 브라질 유술은 현대 유도에서 금하고 있는 ‘처음부터 누운 기술을 시도하기 위해 상대를 붙잡고 바닥으로 끌고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유도인들이 보기에 매우 흉한 모양새가 될지도 모를 이 패턴은 사실 실제의 싸움을 염두에 두고 만든 브라질 유술 경기규칙에서 비롯된 형태이다.
유도 경기의 룰을 깃점으로 브라질 유술을 살펴보자면 확실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우선 유도에서 한 판이 되는 메치기가 브라질 유술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그 의미가 조금은 상실되고 있다. 유도에서는 한 판이라는 것은 곧 경기 종료를 의미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술은 한 판 메치기, 혹은 한 판 굳히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편이다. 그러나 브라질 유술에서는 유도의 메치기 한 판을 성공시키더라도 그것은 포인트 4점을 획득할 뿐이다. 브라질 유술에서는 그렇다.
극단적인 형태의 방어를 취할 때 유도에서는 지도를 주지만 브라질 유술에서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경기자가 있어도 지도를 주진 않는다. 그 역시 경기의 정상적인 한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한 선수가 두 손으로 상대의 도복의 같은 쪽을 계속해서 잡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유도에서는 주의를 주지만 브라질 유술 경기에서는 상관없다. 유도에서 금하고 있는 상대의 허리나 목 또는 머리를 두 다리로 껴서 조르는 행위, 상대의 소맷부리를 잡고 흔드는 행위, 팔꿈치나 관절 이외의 부분을 꺾는 행위 등은 브라질 유술 경기에서 모두 허용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술은 그런 차이에서 크게 모양이 바뀌어간다.
이러한 룰의 차이에서 비롯된 브라질 유술의 독특한 기술체계, 제압기의 발달은 UFC와 같은 극한 격투경기에서 그 효과를 증명했다. 물어뜯기와 꼬집기, 눈찌르기 정도 만을 제외한 가혹한 룰로 진행되는 격투경기에서 그레이시 가문의 아들들과 브라질 쥬지수 파이터들은 거구의 적을 상대로 그들의 위력적인 공격을 흘리고, 신체를 밀착시키고, 바닥으로 끄집어 당기며, 바닥에서 마운트 포지션과 같은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하여, 일방적인 구타를 한다던가 저항하는 상대의 팔이나 목, 다리에 관절기를 걸어 승리했다. 룰의 차이가 브라질 유술과 유도의 차이를 나타내었다. 하지만 대동소이, 라는 말이 있다. 큰 줄기는 같고 작은 가지만이 다르다. 이것은 브라질 유술과 유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브라질 유술을 익힌 이는 유도에 보다 익숙하게 적응할 수 있으며 유도를 배운 이 역시 브라질 유술에 보다 쉽게 적응 할 수 있다. 때문에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것을 배운다. 둘 다 유도복이라는 것을 입는 자켓 매치 파이터들이기 때문이며 같은 형태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움직이고 균형을 뺏는 것에 익숙하다.
브라질 유술과 유도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과연 마에다가 브라질에 전해준 것과 같은 형태의 유도, 혹은 유술은 없을까? 현대의 유도와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되 바닥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쪽은 없을까? 답은 있다, 이다. 지금은 브라질 유술의 역수입 형태로 일본에서도 유술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어져 오던 형태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고센쥬도(고전유도- 高專柔道) 이다.
고전유도는 1914년 교토 대학에서 열린 전일본고교유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유래되었다. 고전유도는 유도의 한 스타일이지 또 다른 유도라는 의미는 아니다. 고전(高專)이라는 것은 고등학교, 전문학교의 앞 글자를 딴 말이며 고전유도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교토 대학에서 열리던 전일본고교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던 고교 유도 선수들이 발전시킨 굳히기 스타일의 유도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고전, 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유도에 붙게 되었을까. 당시 이 시합에 참가하던 선수들은 메치기 만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효과적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인 바닥기술에 매우 깊이 관심을 가졌고 시합과 연습을 통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확실하고 효과적인 굳히기 기술을 속속 개발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굳히기 유도 스타일에 제동을 걸기 위해 1925년에 새로운 규정이 제정되기까지 고전 출신 선수들은 늘 새로운 형태의 굳히기 기술들을 개발해 시합에 사용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나 하는 것은 오늘날의 파급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오늘날의 유도시합에서 쓰이는 굳히기 기술의 대부분은 고전유도 선수들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라질 유술선수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삼각조르기는 작고 힘이 약한 상대가 자신보다 덩치 큰 선수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과연 고류 유술에서는 없었을까?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전투에서 삼각조르기를 시도한다면 궁지에 몰린 상대에게 고환이나 성기를 물어뜯길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고류유술에서는 강조되지 않고 물어뜯길 위험이 아예 없는 경기에서 보다 활발하게 쓰일 수 있었다. 고전유도는 놀라울 정도로 브라질 유술과 흡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같은 목적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발전해온 시스템의 교합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보다 효과적인 제압, 보다 기능적이며 보다 적용이 정확한 제압기술의 발전을 의미한다.
고전유도의 시합은 브라질의 발리튜도 경기가 가지고 있는 요소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간제한이 없다는 점이 있으며 경기장의 의미가 유도와 달리 매우 희박하다. 쉽게 말하자면 라인 밖으로 선수들이 밀려나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진행한다. 고전유도 선수들은 관절기로 항복을 받아내거나 조르기로 기절시키면서 승리를 얻는다. 물론 유도의 형태도 있어서 누르기로 상대를 30초 이상 누르고 있을 경우와 확실한 메치기는 한판승으로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전유도는 어디까지나 스타일을 말한다. 고전유도 역시 강도관 유도가 맹위를 떨치던 유도시대의 유도이다. 차이가 있다면 강도관이 강조하는 점이 메치기였다면 고전이 강조하는 점은 바닥기술이라는 점이다. 현대 유도가 강도관이 주도하던 서서 메치기의 형식으로 흘러왔다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극한격투경기에서는 고전유도와 브라질 유술이 강조하는 바닥기술이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고전유도는 다른 무도와 마찮가지로 행사와 수련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법으로 금지되었던 스포츠 행사, 형태를 다소 바꾼 무도행사가 여기저기서 다시 개최되었고 예전의 고등학교와 전문학교들은 이젠 고교가 아닌 새로운 명칭을 가진 대학으로 탈바꿈했다. 현재의 고전유도 시합은 일본의 7개 국립대학들 사이의 대항전 형식으로 열리고 있다. 그들은 다소 잊혀진 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브라질에서 역수입되고 있는 유술의 열풍으로 고전유도의 우수한 점이 나타났다. 현재 일본에서는 새롭게 고전유도는 조명을 받고 있으며 지금도 고전유도는 대학대항전의 형태로 열리고 있다.
<정리하며...>
유도와 고전유도, 브라질 유술은 모두 1910년대를 배경으로 재탄생 되었거나 전해졌다. 그것은 한결같이 매우 훌륭한 무도이며 격투기이다. 고류 유술이라는 한 아버지에게서 났지만 장남은 집안에서 훌륭하게 자랐고, 차남은 집안에서 형과 다투며 자랐고, 삼남은 길거리에서 따로 성장했다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어쨌든 그들은 모두 한 줄기를 가지고 있는 유술계 무도이다. 어느 것을 배우고 싶은가 하는 것은 독자들의 자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고전유도와 브라질 유술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만일에 그 두 가지의 운동을 배우고 싶어한다면 주저말고 유도장에 가라는 말을 하고 싶다. 말했듯이 같은 줄기를 가진 무도이기 때문에 한 줄기를 알게 되면 나머지 가지에 대해서는 그 흡수가 빠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