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취득의 영광을 원장님께 돌립니다. 김순영 광주선광학교/문학박사
원장님 지난 여름 모임 때 뵙고 오랫동안 뵙지 못했군요. 그동안도 평안하셨는지요? 사모님께서도 건강하신지요? 학위논문을 핑게로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늘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뵙고 싶을 때면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려보며 저 혼자만의 그리움과 행복감에 빠져들곤 한답니다. 장성남중학교에서 특수학급을 맡게 되면서 특수교육 담당교사로서 전라남도 교육청 특수교육을 담당하시던 장학사님으로 원장 님을 만나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특수교육에 입문하여 가장 큰 소득과 보상이라면 저는 서슴치 않고 원장님을 만나는 행운이었음을 말합니다. 교장선생님의 간절한 권유를 끝까지 뿌리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특수학급을 맡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특수학급담당교사 연수 회에서 강의라기 보다는 장학사님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특수아들에 대한 강한 절규는 우리들에게 특수교육은 교육에 앞선 사랑 임을 깨닫게 해주셨고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철학을 갖고 어떤 길을 가야할지 알게 해 준 가슴 멍멍한 감동 그 자체였습 니다. 원장님의 열정적인 특수아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 모습을 통해 저희들에게 교육자로서 걸어야 할 길을 몸소 말없이 제시해 주셨 고, 또한 사모님과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은 가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셔서 저는 늘 두 분 삶의 모 습을 마음에 새기며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닮아보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아이들과의 생활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면 장애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변함없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 하시는 원장님의 특수교육에 대 한 지치지 않는 열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큰 위로를 받고 마음을 추스르며 새 힘을 얻습니다. 원장님은 저희들 특수교육교사들의 불평과 어려움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가깝고 편안한 동료이셨고, 교육자로서 오랫 동안 힘든 특수교육의 길만을 갈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 저희들을 지켜주신 부모없는 가정의 큰 오빠이셨으며, 장애인에 대 한 편견과 소외로 가득한 장애사회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어려운 장애아들과 그 부모에게는 삶에 희망과 행복을 주셨던 대부 이셨습니다. 어쩌면 원장님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맡아 애쓰는 특수교육교사들의 기쁨과 희망이셨고 우리들의 자부심이 며 긍지이셨습니다. 너무나 힘에 겨워 일반교육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맡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 아이들이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소중한 일임을 깨닫게 해주셨고, "그래 저 어려운 아이들 내가 아니면 누가 맡겠느냐?"라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시곤 하셨죠.
저에겐 원장님을 잊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몇 가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원장님 기억하실런지요? 1988년 특수교사 자격검정시험이 실시되던 해였어요. 특수교육과 학생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 실시할 수 없었던 어려운 상황에서 마지막 특수교사 검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때문인지 유난히 지원교사가 많아-1500여명- 고사 관리에 고생하시던 때였죠. 1차 필기시험에 합격을 하고 2차 실기고사를 대비하던 저희 수험생들은 실기시험의 출제경향을 전혀 모르고, 너무 광범위하여 불안 하고 안절부절 어려움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특수교육을 담당하시는 장학사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작은 도움이라도 받아보리라 생 각하며 전화를 드리기로 결정하였답니다. 한편 전화드렸다 행여 거절이나 무안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서로 전화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제가 전화를 드리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거절이나 무안을 예상했던 염려를 알기라도 하신듯 "고생이 많죠?" 멋진 목소리의 따뜻한 한마디에 길 잃었던 어린이가 부 모를 만난 듯 저는 어리광 섞인 하소연을 마음놓고 털어놓았죠. 저희들의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시고는 휴일이었는데도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원장님 댁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도와 주시려고 집으로 오라고 하시는 건지 여전히 불안하고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현관을 들어서는 긴장되는 순간 "어서오세요!"라며 마치 정다운 친지가 방문한 것처럼 상냥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모님의 고운 목소리와 태도는 저희 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셨고 그 때의 사모님이 얼마나 예쁘고 고마웠던지 마치 천사 같았답니다. 맛있는 차와 다과까지 내어주셔서 저희들의 황공함은 그야말로 몸둘 바를 모르게 되었죠. 잠시 후 또 다른 선생님들의 방문으로 저희는 10여명이 합석하여 한 팀이 되어 거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장학사님의 말씀을 기다 렸습니다. 교육부에서 평가전문 기관에 의뢰해 출제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어떻게 출제되어 실기고사를 치루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특수교육 현장에서 진단과 평가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간편인물화 지능검사와 사회성숙도 검사 등 정신지체아 진단검사 실시 방법과 요령, 진단과 평가 그리고 실기고사에 도움이 될만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상세하게 일러주셨습니다. 마치 입시를 대비해 행여 실수하여 경쟁에서 떨어질세라 노심초사하시며 지도해 주시던 6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처럼 최선을 다하 여 지도하여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원장님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모두들 나처럼 "이 시대의 진정한 교육자"라고 공감하는 듯 원장님의 친절한 지도에 말없이 감사하며 감격에 젖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팀의 지도가 끝날 때쯤 또 다른 팀들이 방문하였고 그 날 하루 종일 원장님은 댁에서 실기고사를 대비하여 어려움을 호소 하는 수험교사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 친절히 지도해 주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단순히 두 분의 친절함과 지도에만 감사 드렸을 뿐인데 한 사람의 특수교육교사라도 더 배출하여 낙후되어있는 이 지방 의 특수교육을 발전시키고, 사랑하는 특수아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특수교육 혜택을 받게 하고자 하는 원장님의 특수교육 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사랑의 마음임을 나중에야 가슴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대한민국 어떤 장학사님이 교사들의 자격고사에 대비하여 집으로까지 불러 친절하게 지도해 주시는 분이 있겠습니까? 원장님 그리고 사모님! 그 때의 모든 교사들을 대표하여 진정으로 깊은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따뜻한 지도와 격려에 힘입어 그 때 원장님 댁에서 지도받은 선생님 모두 "88년 특수교사 자격 검정에 무사히 통과하여 특 수교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고, 비로소 저희들은 명실공히 자격을 갖춘 특수교육교사로서 새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원장님의 도움을 받았던 풋내기 특수교사들이 지금은 특수교육 현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원장님의 특수아들에 대 한 사랑을 본받으려 노력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 후 원장님의 관심과 격려에 힘입어 저는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특수교육전공)에 지원하여 합격통지를 받고 저는 또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 내가 특수교육을 얼마나 하겠다고 멀리 대구까지 대학원을 진학하여야 하는가? 차라리 일반 교육대학원 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저는 또 다시 원장님께 의논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 다. 원장님께서는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래서 어려운 특수아들을 위하여 꿈과 희망을 주는 훌륭한 특수교육교사가 되어 이 지방 특수교육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세요." 라며 반드시 진학하여 공부하라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원장님도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원장님의 지도와 격려에 힘입어 당시 어려운 여건가운데 진학하였고, 비로소 특수교육에 대한 공부를 바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재학기간 내내 주위 사람들은 "그 먼데 까지 가서 고생하며 공부하느냐" 걱정하 셨지만 저에게 있어서 특수교육에 관련한 모든 공부는 기쁨과 행복 그 자체였고 3년 동안 얼마나 재미있게 행복을 만끽하며 공부 했는지 모른답니다. 지금도 제 짧은 생을 통해 가장 잘했던 일은 교장선생님 말씀에 순종하여 특수학급을 담당하였던 선택과 원장님의 권유에 따라 대 학원을 진학했던 일입니다. 원장님의 친절과 배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대학원 학기가 시작될 때면 대구에 가는 고속버스 표를 미리 손수 예매해 두셨다가 먼저 전화를 주셔서 저희들을 감격시키고 송구 스럽게 하셨죠. "김선생, 대구가야죠? 표를 예매해 두었으니 늦지 않게 나오세요" "녜? 표를 예매해 두셨다구요?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시에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걱정 중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다음 학기에는 "꼭 내가 먼저 준비해야지!" 결심하지만 매번 원장님께서는 바쁜 업무중에도 항상 무엇이든지 저희들에 앞서서 배려 해 주시고, 지도해 주심으로 원장님의 저희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셨고, 원장님의 아낌없는 사랑은 우리 특수교육교 사들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원장님은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교사들을 마치 당신의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아끼고 배려해 주시며 이 지방 특수교육 발 전을 위하여 진실로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뿐입니까. 대학원 강의가 시작되면 대구대학교 주변의 여관은 각종 연수 수강생과 대학원생들의 투숙으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학교와 가까 운 좋은 방을 구할 수가 없었죠. 그러나 저희 신입생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원장님은 저희들의 방까지 예약해 두셨다가 저희들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며 감동을 주셨습니다. 입학 후 첫 학기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식사 때문에 힘들죠? 하시면 서 신입생 환영회, 맛있는 것 먹는 날 등의 식사 자리를 손수 계획하셔서 저희들의 건강까지도 챙겨주셨고, 대학원 수강과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일러주셨죠. 신입생 환영회 날 대구 약전골목에서 사 주신 임금님이 드셨다던 고려삼계탕은 지금까지도 제가 먹은 그 어떤 삼계탕보다 맛이 있 었고 잊을 수 없는 음식이랍니다. 조그만 어려움만 생겨도 원장님에게 찾아가 의논하고 도움을 청하여 해결하곤 했었죠. 원장님의 사랑어린 배려 덕분으로 저희들은 원장님과 함께 수학했던 2년 동안 큰 어려움없이 지낼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원장님은 저희들에게 뿐 아니라 특수교육과 모든 대학원생들의 대부셨습니다. 선배님들도 학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 두 다 원장님을 찾아와 의논하고 해결방법을 찾아 해결하곤 했었죠. 대학원 입시가 가까워 오면 손수 원서를 사다 주시면서 특수교육을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하셨죠. 한 사람의 특수교육 전문가라도 더 배출하기 위하여 애쓰신 원장님의 노력의 결실로 광주·전남 지방의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 특수 교육전공 선생님들의 숫자는 날로 늘었고, 대원회(대구대학교 대학원 원우회) 모임을 결성하여 이 지방 특수교육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원장님! 교육현장에 교사들의 참교육 실천운동과 함께 전교조 조직 등으로 교육계의 어려운 시기를 기억하시죠? 급기야는 전교조 가입 교사들의 해직으로까지 연결되어 많은 교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특수학급 선생님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시며 그들의 입장에 서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진심어린 충고와 배려 덕택에 더 이상의 곤란을 겪지 않고 교단을 떠나지 않게 되었던 일도 있었죠. 당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참교육을 위해서는 기어코 교단을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였던 남편을 진 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원장님의 설득과 배려 덕분으로 교직에서 떠나지 않게 되어 원장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면서 우시던 사모 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됩니다. 순천선혜학교 재직시 특수아들이 단지 장애아라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많은 교육활동 경험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시면 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경험의 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전 교사를 스카우트 지도자로, 전교생을 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애쓰신 교장선생님의 노력 덕택으로 순천선혜학교 개교이래 처음으로 스 카우트 선서식을 거행했던 밤을 저희들은 잊을 수가 없답니다. 순천 지역의 많은 내빈, 걸스카우트 지구위원과 지도자들, 그리고 학부형들을 모시고 치뤄진 야간 선서식과 화톳불을 과연 정신지 체아들이 잘 해낼까? 라는 우려와 염려로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며 지켜 보았었죠. 그러나 정상아들 이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치뤄내는 장한 선혜스카우트 대원들의 선서식을 하는 모습에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남몰래 닦아내었답니다. 멋진 선서식을 치루기 위하여 교사와 제자가 하나가 되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큰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걸스카우트 의 지도자에게는 장애스카우트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여 주었고, 많은 내빈들에게는 특수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 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으니까요. 그날 밤의 선혜학교 스카우트 대원들은 선서식과 화톳불 의식을 통해 정신지체아도 정상아 못지 않게 스카우트 활동을 잘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능력을 염려하여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내빈과 우리들의 잘못된 편견을 나무라듯 너무나 의젓하게 잘 해냈던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의 현명한 판단과 탁월한 선택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지요. 그날 선서식에 참여했던 모든 내빈들은 그 이후로 특수아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교장선생님의 더 많은 후원과 배려 로 순천선혜학교 스카우트 활동은 그 기반을 다져가면서 지금까지 활성화되고 있는 정신지체아들의 사회적 기능을 신장시키기 위 한 좋은 교육적 활동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듯 원장님은 광주·전남이라는 특수교육의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 놓으시는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걷는 걸음마다 특수교육 발전의 소중한 자취를 남기셨고, 특수아들에 대한 남다른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를 주변에 전하셔 많은 사람들이 특수아들을 만남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의 다리가 되어주신 원장님은 분명 Happy Maker이십니다. 원장님 저는 그 후로도 원장님을 더 많이 닮기 위하여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원장님처럼 교 원들을 위한 많은 연수기관에서 활동도 하고 있답니다. 늘 강의에 임할 때마다 처음 만난 연수회에서 원장님이 저에게 주셨던 많은 사랑의 교훈과 감동을 가슴에 새기면서 지식을 전달하 기보다는 원장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셨던 특수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해 주고자 노력합니다. 이제 2월23일이면 영광의 박사학위를 수여 받게 됩니다. 어쩌면 제가 원장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어떻게 박사학위 취득의 큰 영광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모두 다 원장님 덕분이랍니다. 오늘의 저의 박사학위 취득의 영광을 원장님께 돌립니다. 저희들이 특수교육 현장에서 원장님이 보여주셨던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동안 인도하여 주시고 아낌없는 사랑으로 특수아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저희들에게 실천하시며 본이 되어주셨던 원장님의 큰 마음을 이제는 저희들이 또 다른 후배들과 아이들에게 나눔으로 실천하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원장님, 사모님! 두분 늘 건강하셔서 저희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나누어 주시구요, 사랑하는 장애아들을 교육하는 저희 특수교사들의 곁에서 오래 오래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세요. 하나님의 큰 은총가운데 평안과 행복이 넘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 순 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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