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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재에서 버리미기재까지(19.45km)
대야산 50미터 직벽에 매달리다!
산을 타다보면 기운이 생생하게 넘쳐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 감싸 쥐고 갈 때도 있고 아무 것도 생각주머니에 담지 않은 채 그냥 나설 때도 있다. 이번 구간은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위험한 구간이어서 미리 온갖 정보를 섭렵했음에도 막상 출발할 때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 고생 아닌 고생을 한 탓일까?
어쨌든 위험한 암릉들을 넘어야 하고, 그 때문에 뛰어난 경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특히 대야산 직벽이 대간 종주의 새로운 묘미를 가져다 줄 것이다. 총 8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까다로운 직벽구간이 50미터라 하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철이어서 로프가 얼어붙었거나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있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가 된다. 대야산 용추계곡 근처의 민박집으로 전화를 하여 보조자일을 가져갈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쨌든 무사히 구간 종주를 마치면 성취감 또한 클 것이다.
한밤중 대원들이 모두 모여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한 달에 한번 갖는 그리운 술잔과 대화시간이다. 대간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자연에 파묻혀 생각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밤12시를 훨씬 넘겨 2시쯤이 되어서야 늘재(널재)로 출발했다. 친구가 애사를 당하여 강원도로 간 주몽이 할 수 없이 빠지고, 총인원은 불법승, 맥가이버, 센스 그리고 나이다. 눌재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재환과 합류하면 다섯 명이다. 모두 워킹능력이 부족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 다만 암릉지역이 많은 험한 구간이니만큼 부주의나 실수로 인한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새벽녘에 도착해 쌀쌀한 아침기운을 맞이하니 기분이 착잡하다. 추위와의 싸움도 해야 할 것이다. 늘재에서 청화산으로 출발한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버리미기재까지만 가기로 하였기 때문에 지난번과 같이 경치를 즐기면서 걷기로 했다. 첫날은 대야산 아래 밀재까지 가서 용추계곡을 타고 벌바위 민박촌으로 내려와 돌마당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늘재에서 청화산까지의 대간길은 600미터 정도 고도를 높여야 하는 급한 오르막길이다. 청화산이 984m이고 늘재가 380m이니 지도상에 표시된 산행시간 1시간을 고려하면 겨울이라 해도 땀을 흠뻑 흘릴만하다.
오른지 채 30분도 안되어 재킷을 벗어버렸다. 바람이 부는 대도 경사도가 심해 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제 추위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지만 날씨가 흐리지는 않았다. 가파른 봉우리를 치고 올라 봉우리 정상이다 싶은 곳에 이르면 좌측으로 시원스런 전망대가 있고, 靖國祈願檀(정국기원단)이라는 표석이 있다. 무사산행과 나 자신의 발전, 그리고 더하여 국가의 융성함을 기원했다.
청화산은 여기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길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새벽 여명이 참으로 멋졌다. 붉은 빛 하늘 위에 구름이 꼭 산의 형태를 이루어 한동안 머물다 흩어졌다 다시 모여 산을 이루었다 하면서 비경을 연출했다. 자연의 오묘함과 신기함이다.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오르막길을 1시간 남짓 오르면 어느새 청화산 직전 헬기장에 도착하고, 곧이어 청화산에 도착한다. 고개마루 늘재의 잠룡이 동북방에 치솟은 청화산에 이르러 날개를 달고 승천을 했다는 정상에는 표지석과 표지목이 있다. 지도상에는 늘재에서 2시간 거리로 표기되어 있지만 1시간 반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뒤로는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에 임해있다. 앞뒤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고 예찬 할 정도로 산세가 수려하고 깊은 계곡이 많은 곳이 청화산이다. 많은 대간꾼들이 기록에서, 눌재에서 수그러들었던 백두대간의 기세가 다시 크게 떨치며 일어나 이후 조항산, 대야산, 장성봉, 희양산, 백화산을 솟구치게 하고 이어서 그 다음 산군인 조령산, 포암산 등 쟁쟁한 산으로 대간의 힘찬 기운을 이어준다고 칭송한다. 속리산의 온갖 기암괴석의 오밀조밀함이 해발 380m인 늘재에 이르러 잠잠하다 싶다가 바로 청화산에 이르러 다시 힘차게 일어나 육중한 산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청화산에서 대간길은 표지석 뒤로 난 길이다. 북쪽 내리막길이라 눈이 쌓여 있어 아이젠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먼저 지나간 발자국이 없다면 무릎 아래까지 쌓인 눈들이 꽤나 발걸음을 늦추게 만들었을 것이다.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10분쯤 가면 시루봉 분기점 삼거리에 도착고, 거기서부터는 낮은 봉우리 서 너 개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걸어야 한다. 봉우리마다 조망이 시원스럽다.
지나온 청화산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앞으로는 계곡의 깊은 산그리메가 눈길을 잡는다. 전망이 좋은 봉우리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경치를 보니 한없는 행복감이 느껴진다. 비록 겨울의 찬 기운이 옷 사이로 파고들고 바람에 눈 부스러기가 날아와 얼굴에 부딪히지만 바람을 막아주는 플라이 안쪽에는 방금 만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백두대간 종주단 ‘산(山)과나’ 대원들의 따듯한 정감이 있다. 춥다 한들 술 한 잔에 밥 한 술 뜨고 겨울산의 경치를 조망하면서 정감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찌 행복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 시간 그 곳에 대원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좋다.
청화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곳에서 크고 작은 암릉길과 관목길을 지나 한참을 가다 다시 봉우리 몇 개를 더 지나고 전망 좋은 바위를 넘으면 금방 갓바위재이다. 문경시 농암면 관기리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의상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방금 지나온 청화산과 가야할 조항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있다. 도착하니 많은 대간꾼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11시쯤 되었으니 점심식사가 맞을지 모르겠다.
갓바위재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능선위에 서면 저 멀리 조항산(951m)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능선은 가끔 위험스러운 곳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걷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 스릴감을 느끼는 정도라 할까. 긴장만 늦추지 않는다면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사고는 항상 예고가 없다.
앞서 갔던 산행객들 중 한명이 발목을 다친 모양이다. 어정쩡하게 서있고 다른 한명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그들을 지나쳐 가면서 잠시 다쳤나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가다 보니 손에 의약품을 든 다른 산행객이 앞에서 오고 있기에 다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걱정스럽다. 앞쪽으로 두 명의 산행객이 서 있길래 누가 다쳤냐고 물으니 발목을 접 찔렸다고 한다. 하산하는 길이 고통의 길이 될 것이다. 무사히 하산하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달리 도와줄 것이 없다.
갓바위재에서 조항산에 오르는 암릉구간은 조항산이 가까워질수록 험하다. 두 손을 다 사용하면서 조심조심 내려서야 하는 곳이 서너 군데 나온다. 그 대신 암봉에 오를 때마다 지나 온 대간길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뒤에 따라오는 대간꾼들도 점점이 보여 눈을 찡그리게 된다. 이 역시 대간의 재미이다. 까마득히 보이는 종주 능선을 따라 앞서 가는 사람은 뒷사람들을, 뒤에 가는 사람은 앞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걷는 재미를 대간 종주는 느끼게 해준다.
조항산에 거의 도착하면 조망이 시원스러운 암봉에 도착하고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조항산 정상에 도착한다. 갓바위재에서 1시간 거리이며 정상에 서면 조망이 좋다. 남쪽으로 속리산과 청화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둔덕산과 희양산, 대야산이 보이며, 희양산쪽으로 마귀할미통시바위가 있는 능선이 보인다. 우측의 문경 고모치 채석장과 왼쪽의 괴산군 청천면 채석장으로 인해 후벼 파 내진 대간 자락의 상처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대간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정상 표지목을 뒤로 하고 내려가다 보면 급경사 내리막에 이르고 왼쪽 의상저수지로 빠지는 길을 조심하여 고모치(고모령)까지 내려서야 한다. 작은 동네들을 잇는 고개 느낌이 나는 곳이 고모치이다. 조항산 정상에서 40분 거리에 있으며 돌무더기 흔적이 있고 고모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 있다.
조항산에서 고모치까지 내려선 마루금은 889봉까지 다시 오름길로 이어진다. 889봉 삼거리에는 마귀할미통시바위가 있고, 오른쪽 길은 손녀마귀통시바위와 둔덕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름들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의아스럽다. 왼쪽길은 대간길이다.
889봉에서 1시간여 진행하다 집채만 한 바위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면 밀재에 도착한다. 경사가 심해 아이젠을 찼음에도 조심스럽다. 특히 청빙이 있는 곳은 아이젠 못도 잘 박히지 않아 더 위험스럽다. 불법승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밀재에 도착하니 대야산에서 내려오는 산행객들로 북적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대원들이 모두 오기를 기다려 용추골 아래 벌바위 민박촌으로 향했다. 1시간 거리이다. 센스가 가장 늦었다. 중간에 미끄럼을 탄다고 돗자리가 들은 비닐봉투를 꺼내 타고 오니 꼴찌이다.
계곡을 따라 벌바위 민박촌으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하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서인지 길도 아주 편했다. 산죽밭 사이로 난 소로길을 따라 편안 마음으로 걷다보니 긴장도 풀어지고 느긋하다. 그래서인지 눈의 초점이 잘 안맞는 느낌이 들었다. 교감신경의 집중 시간이 너무 많았나보다. 뭐든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다른 대원들은 산행을 하면서 배고픔을 많이 느끼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배고픔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어느 한 순간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낄 때까지 잘 먹지 않는다. 고작 사탕 너 댓개나 쵸콜렛 한 두 개 정도이다. 대간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계속 먹으면서 걸었을 정도인데 점점 산행실력이 붙으면서 먹는 스타일도 변했다.
돌마당 민박집까지는 1시간 20여분 정도 걸렸다. 우리 팀을 맞이하는 주인장의 얼굴이 남다르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고 얼굴에 편안함과 자애심이 가득하다. 방을 안내받아 배낭을 풀고 따듯한 방에 누우니 노곤하다. 센스는 바로 다운되었다. 차를 가지러 간 맥가이버와 재환이 오면 저녁만찬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돌마당 민박집의 음식은 최고였다. 오리백숙과 닭도리탕을 감식초를 탄 소주와 곁들여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바람과 추위 속에서 10시간을 넘게 산행한 피로감이 싹 가셨다. 내일은 대야산을 올라 직벽을 내려서서 촛대봉과 곰넘이봉을 넘기만 하면 된다. 직벽을 제외하고는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이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늦은 시간에 다시 밀재를 향해 올랐다. 9시 30분경에 출발했으니 꽤 늦은 시간이다. 아침 계곡을 따라 오르는 시원함이 꽤 좋다. 잠도 푹 자 피로도 말끔히 가셔내어서 심신이 모두 쾌적하다. 어제 내려올 때는 미처 꼼꼼히 보지 못했는데 올라가면서 보니 계곡의 경치가 멋지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꽉 들어찰 계곡이다. 하긴 용추계곡은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태조 왕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앞서 오르다 피아골 갈림길이 있는 곳에 이르러 불법승, 맥가이버, 재환이 앞서고 나와 센스가 뒤로 쳐졌다. 자꾸 센스의 걸음이 늦어진다. 10여 미터 앞에서 보조를 맞추며 오르다 뒤돌아보니 센스가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한참을 가다 보이지 않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는다. 젊은 친구 세 사람이 올라오기에 물었더니 중간에서 대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의아스러웠다. 어제 간 길이어서 길을 잘못들을 이유가 없었다.
재빠르게 뛰어 내려가 갈림길에 도착하여 소려 높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다시 배낭이 있는 곳으로 올라와 잠시 기다리는데 젊은 부부가 올라왔다. 또 다시 물었더니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먼저 올라간 대원들에게 기다리지 말고 대야산으로 오르라고 전해달라고 하고는 센스가 간 갈림길로 다시 내려와 뒤좇아 올랐다. 발자국과 스틱 하나를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니 이 길로 올랐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의 40여분 정도를 올랐을 때 밀재에서 올라오는 대간길과 만날 수 있었다. 밀재까지 35분 거리라고 씌어져 있는 이정표가 서 있고, 밀재방향으로는 암릉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나와 센스에게는 언제든 다시 와야 할 놓쳐버린 35분의 길이다.
35분의 거리 안에는 코끼리바위와 대문바위가 있을 터였고, 전망이 시원한 전망대 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넘쳐나 대간 산행의 묘미를 듬뿍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다시 내려갔다 올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30분 정도의 거리라면 대원들이 이미 이곳을 지나쳐 대야산 정상 쪽으로 갔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기다리지 말라는 부탁을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기다리다 센스의 전화를 받고 늦게 출발하여 모두 뒤에 있었다.
갈림길에서 몇 개 바위를 돌기도 하고 또는 넘기도 하고 대야산 정상으로 서둘렀다. 커다란 바위 위에 매어진 로프를 잡고 올라서 암릉들 사이를 지나 키만 한 높이의 바위 위로 올라섰을까 집채 만 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았다. 엄청나게 큰 바위 아래에는 바위를 떠받치기라도 하는 듯이 나뭇가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위풍당당함이 어찌나 놀랍던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읍조리게 만들었다. 그 위풍당당함과 산꾼들이 정성들여 세워놓은 나뭇가지들, 그리고 그 앞에 멈추어 선 나! 그 모든 것들과 상황이 순식간에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바로 그곳부터는 대야산의 비경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로프를 움켜쥐고 암릉 하나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어찌나 시원한지 보고 또 보게 된다. 바위 너머에 또 다른 바위가 있고, 때론 오르기도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면서 대간꾼들을 무척이나 바쁘게 만든다.
커다란 바위 봉우리를 넘어 한번 내려섰다 로프를 잡고 또 다른 봉우리로 힘들게 올라서니 왼쪽으로 그렇게 높게만 보였던 중대봉이 허리춤 정도로 보이고, 대야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그곳에 하늘색 짚티를 입은 센스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원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내 뒤에 있는 것 같다. 거기서 다시 능선을 따라 봉우리로 올라서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암릉 위로 힘들게 올라서야 대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한눈에 보인다. 봉우리마다 조망이 너무 시원스럽고 깨알같이 보이는 산행객들의 모습들도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대야산 정상으로 오르기 전 내리막 암릉길은 깎아지른 절벽과도 같다 할까. 오르는 사람들이든 내려가는 사람들이든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하는 길이다. 눈이 쌓여 있고 미끄럽다. 나뭇가지들을 잡아 조심스럽게 내려가 다시 정상을 향해 로프를 잡고 봉우리에 올라서니 센스가 반긴다. 대야산 정상이다.
얼굴에 미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너무 힘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길을 잘못 들었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본 길로 다시 내려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차피 대야산 정상에서 만날 것이므로 그리 했다고 한다. 중간에 선두에 섰던 맥가이버와 통화가 되어 그대로 올라왔다고 한다.
대야산 직벽을 앞두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이번 구간의 가장 힘든 곳인 직벽구간을 내려가야 한다. 어쨌거나 정상에 올랐으니 할 말이 있어도 내려가서 해야 했다. 결국은 말하지 못했지만, 그런 실수는 다시는 해서는 안된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깨닫는 순간 바로 되돌아 와야 한다. 제2구간에서 경험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판단실수로 2시간을 헤매어야 했다.
센스는 힘든 상황에서 대원들의 능력을 믿고 그리 행동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중대한 실수를 했다. 대간 11개 구간을 왔는데 아직까지 그런 실수를 하다니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본인은 다른 대원들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 그리 했다고 하지만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행동이다.
대야산(930.7m)! 정말 멋진 곳이다. 1,000고지가 넘지 않는 산 중에 이렇게 멋진 곳이 또 있을까! 국립공원만 보아도 지리산으로부터 시작해 덕유산과 속리산을 지나왔다. 지리산의 장엄함과 덕유산의 사색적인 감동을 거쳐 속리산의 오밀조밀함과 기묘함을 지나 대간꾼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곳이 아닐 수 없다.
기암괴석이 온 산을 가득 메우고 있고, 깊은 계곡과 험한 암릉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석구석 산행객들을 놀라게 하는 기묘함의 극치가 있다. 오르막인들 싶었더니 어느새 내리막이고, 능선길인 듯싶었는데 어느새 깎아지른 절벽이다. 도대체 왜 대야산이라 이름 붙여졌을까! 월악산과 속리산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 주흘산, 운달산, 도락산, 희양산, 조항산 등 아름다운 산들을 다 담아서인가!
철종조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 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라고 적혀있다 하니 대야산 정상이 비로봉(毘盧峯)으로 불렸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비로(毘盧)! 친구 중에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있어 그 의미를 뒤늦게 알았으니 그 고마움에 대한 답으로 그대로 적는다.
"비로자나불은 진리의 빛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으로 법신불(法身佛)이라 하고, 석가모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현세에 태어난 부처라 해서 응신불(應身佛), 아미타불은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합니다." - 봉우리(Daum 닉네임)
대간길은 대야산 정상에서 왼쪽 깎아지른 절벽길이다. 대원들이 모두 오기를 기다려 사진을 찍고 직벽 구간으로 들어섰다. 대야산 정상에 있던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밀재로 피아골 계곡으로 하산한다. 대간을 타는 대간꾼들만이 직벽을 탄다. 왼쪽으로 두 개의 암봉을 넘으면 바로 직벽이고, 오른쪽 피아골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왼쪽으로 올라 암봉을 넘어서도 된다.
미리 자료를 많이 취합하여 분석한지라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직벽을 직접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빠져드는 최면효과가 단번에 깨져버렸다. 걱정이 되든 관심이 가든 많은 정보들을 취합하고 분석하면 할수록 최면효과에 빠져든다. 목표를 먼저 정해 두었기에 정보를 취합하면 할수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앞이 까마득한 느낌이랄까. 내려다 본 직벽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50미터라 하였으니 외줄을 타고 내려가면 그 뿐이지만, 그것이 참 결행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우회하거나 되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간길이기 때문이다.
먼저 맥가이버가 앞섰다. 발을 내려놓는 곳곳마다 얼었으면 일일이 아이젠으로 찍어 디딜 곳을 마련해야 했고 가장 힘이 센 맥가이버가 적임자였다. 물론 먼저 내려간 산꾼들이 있지만 팀산행이다. 모두가 무사하게 내려가야 한다.
맥가이버 뒤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불법승이 따랐고, 그 다음은 센스와 나이다. 가장 가벼운 재환은 사진을 찍는다고 맨 뒤에 섰다. 매번 3미터에서 5미터 정도 내려가면 쉴 곳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조차 없다면 맨 줄을 잡고 50미터를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려가는 방법은 번갈아 잡아 내려가는 식이다. 앞에 선 사람이 힘들게 내려가 다음 로프를 잡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도와줄 수도 없고 오로지 혼자 해결해야 한다.
맥가이버와 불법승이 그렇게 앞서 내려가고 센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두 번 정도 잘 내려가다 센스가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그만 줄에 매달리고 말았다. 미끄러운 줄을 잡고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디딜 곳을 찾아야 한다. 온몸을 바위벽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간신히 내려갈 수 있었다. 무릎을 부딪쳐 걱정했는데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바위를 보면서 다리 사이로 줄을 잡고 양쪽으로 발을 디뎌가며 내려갔지만 금방 팔 힘이 빠지고 바로 눈앞에서 손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꽉 잡아도 미끄러져 내리는 황당한 순간의 느낌이란 정말 끔찍하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아마 매듭이 없었다면 그대로 거꾸로 바위에 머리를 쳐 박았을 것이다. 어찌나 힘을 주었던지 양 팔 근육이 타박상을 입어 열흘간을 통증을 느껴야 했다.
어쨌거나 모두 무사히 직벽을 내려올 수 있었고, 각자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려오고 나서 올려다보니 엄청나게 가파르게 올려다 보여 어떻게 그곳을 내려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곰넝이봉에 도착할 때까지 능선이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직벽을 바라보곤 했다. 어쨌든 이 직벽구간은 겨울에는 다시는 타지 않을 것이다.
직벽구간에서 촛대재까지는 급한 내리막이다. 한동안 내려가 촛대재에 이르러 대간길은 촛대봉을 앞두고 오르막으로 변한다. 암릉이 계속 이어지고, 힘들게 촛대봉(668)에 오르면 우뚝 속은 대야산이 보인다. 직벽을 내려왔으니 거칠 것이 없다.
촛대봉을 지나 불란치재, 곰넘이봉(733m)까지의 대간길도 오르내림이 심하고, 로프가 매어진 암릉구간이 많다. 미륵바위를 지나면 곰너미봉이 나타나고, 곰너미봉에 오르면 정상석이 놓여져 있고 전망이 시원스럽다. 날렵한 재환만이 올라 느낌을 전해 주었다. 갈수록 재환의 산행실력이 는다. 이번 암릉구간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듯하다.
곰너미봉을 넘으면 대간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대간길과 지름길이다. 앞서 간 대간꾼들이 바위 위 로프를 오를 때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 버리미기재까지 지름길을 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대간 본길은 봉우리를 넘어 오른쪽이다. 촛대봉에서 두 시간 여의 거리이다.
이번 구간 산행은 에피소드가 많았다. 보조자일을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한 것부터 코스 수정, 센스의 의도적인 듯한 길 잃음과 지름길 선택, 대야산의 기묘한 암릉들, 그리고 직벽구간! 기억에 많이 남을 에피소드들이다.
대부분의 대간꾼들이 이 구간을 앞두고 대간종주의 꿈을 접는다고 한다. 워킹만 하던 산행이 속리산 암릉에서 눈을 크게 뜨게 되고 대야산에서 휘둥그레지기 때문이다. 직벽을 다음으로 제쳐두고 진행하다 그 굴레를 결국 벗어버리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멈춘다. 아니면 아예 이 구간을 다음으로 미룬다. 그래서 “구간을 나누어 탄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순서대로 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자유롭게 말이다.
우리는 그 첫 번째 위기를 가까스로 넘었다. 이제 소백과 태백을 지나 동해로 빠져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설악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갈 것이다. 중간에 두타, 청옥의 시련을 한 번 더 겪어야 하겠지만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 내부의 적을 제외하고 말이다.
백두대간 종주단, 산(山)과나
첫댓글 가장 무서운 적 바로 나 자신이 겠지요, 아직 마니 부족하니 열씸히 배우리다 많이 도와주이소행님 누나
누나 스키장에서 아직 안왔나부다...
윽 나쁘은 누나 동생은 안델꼬 가고 딱보자
의도적인 실수에 나도 실망스러웠으..ㅋㅋㅋㅋ 아우 민망스럽게... 담에 잘하믄되지... 스키장....여기 계신분들은 스키장 시러하신다...왜냐면....거기도 가볍게 야산 타는거거든.....냐하하하~
이천 지산스키장으로 놀러오삼.......가볍게 야산???
지산이믄 가깝네... 난 스키 안탄다. 보드타지...
형이 보드를 타여??????? 되까????
오호~ 스키장 계획 함 잡아보세여.....오라시면 가지용~~ 시공간님 보드 타는거 보구싶다구리....ㅋㅋㅋㅋㅋ
야 그까이꺼 머 있어 판대기 위에서 안떨어지믄 되는거 아이가....
잉 다들 위에서만 담합하시네.. 양산은 안보이시나 쩝 내만 왕따네...힝
엥 그 아래두 눈와 눈이 먼지 알어...
후기 잼나게 잘 읽어 씀다.......... 센스 호되게 혼나네 담부터는 잘혀
예~~~~~~~~~엡!!
늦게 들어와 죄송합니다. 후기읽으니 웃기도하고 지난시간에 그립기도 하네요 2월을 기약하며.....
형 이번주 꼬옥 봅시더
노력해 보자구.....
그르자...^^ 누나는 독감걸려서 못온다고 나댈지 몰라...
3월 12일에 발권되어 2주정도 후에 도착할 계획입니다. 죄송하지만 참고하면 감사하겠습니다 산과나 여러분 구정연휴 가족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