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좋은문학」
 
 
 
카페 게시글
소설 부문 스크랩 [중편연재소설] [연재소설] 갈 구 29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28 07.06.05 01:0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갈 구 29회


-최석영-



‘춘서야 꼭 그렇게 되길 빌게. 그리고 엄마를 찾아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춘서가 지금당장 떠나는 것처럼 외로워진다. 내가 갈 수 없고 춘서가 올 수 없을 기약 없는 이별이 지금 인 것처럼 미어진다......... 외줄타기를 하듯 범죄조직과 타락한 경찰 그리고 또 경찰과 사선을 넘나드는 외줄타기를 하는 춘서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부질 없는 욕심. 그 욕심 저 밑바닥에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 할딱거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든 이 남자와 살고 싶다는 욕심이 파닥이는 심장처럼 들숨과 날숨처럼 가슴 저 밑바닥에서 할딱인다.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는 말 할 수 없다. 혀는 굳었고 문자를 쓸 핸드폰도 뺏겨 버렸다. 하지만,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할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현듯 떠오르는 자각. 고개를 떨군다. 아니, 눈길을 떨어뜨렸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산송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산송장이기 때문이다.

경찰 내부는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갈까?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술수와 묘기가 짜여 질까? 이쯤 되면 서장의 판단이나 경찰 총장의 판단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무 장관 혹은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하겠지.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또 여론일 테고........ 여론의 풍향계는 어떨까?

“내가......... 이곳에 인터넷을 연결 안 시킨 이유를 아니? 국민들에게 내가 여론을 조작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야. 표 나지 않는 언론플레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서 내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춘서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혹시 내가 춘서를 사랑하도록 설득 당하는 것은 아닐까? 춘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텐데.......

내가 춘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고 갈 수도 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게 사실이라 해도 나는 춘서를 사랑하니까.


경찰은 춘서의 협상 조건에 응하겠다고 했다. 춘서 엄마는 내일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며 돈은 춘서가 지정한 외국 은행에 입금하면 언론이 이를 확인해 줄 것이라고 했다. 무표정한 춘서. 일이 너무 쉽고 간단하게 결론지어 지는 듯 한 느낌. 그래서일까? 춘서의 얼굴이 점 점 ....... 점 점 굳어지고 있었다.

배가 아프다.

바보 같이 이렇게 중요하고 긴박한 순간에 나는 지금 배가 아프다. 아- 배가 왜 아프지? ! 그래 어제 변비약을 먹었지. 소식이 와도 벌써 왔어야 했는데 하도 긴장하는 순간들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협상이 종결 되었다는 연락에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바보같이, 병신같이, 지금 이 순간에 똥을 싸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부글거리는 아랫배. 똥구멍이 벌어지면서 쏟아 질것 같은 느낌. 이를 악물고 힘을 준다. 참아야 해. 지금, 지금 똥을 쌀 수는 없어. 창자 한 구석에서 부굴, 부굴 한 느낌이 창자 속을 헤집고 기어간다. 말똥구리가 말똥을 굴리듯 창자 속 덩어리가 창자를 헤집고 드그륵,  드그륵 고통을 준다.

참지 못하고 방바닥을 쳤다. 땀이 삐질 거리는 모습에 서둘러 핸드폰을 들려주는 춘서.

-배 아파-

“배 아프다고??”

-똥........., 냄새 날 꺼야. 나를 엄마 방에 데려다 줘-

나를 들쳐 앉은 춘서. ‘고마워 춘서야. 엄마 방에서 그냥 똥 싸고 뭉그적이고 있을 테니 너는 꼭 탈출해. 몇 시간만 버티면 되니까.........’ 

나를 화장실로 데려간 춘서. 굳을 대로 굳어버린 몸을 엉거주춤 변기위에 앉히고 변기 앞에 나를 받치고 선다. 아~ 위태한 자세이면서도 변기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받쳐주는 춘서.

변기에 자세를 잡고 앉자마자 삶의 부패물 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요란한 소리도 나고 역한 냄새도 난다.

후- 살 것 같다는 안도의 숨이 내 몸을 떠받친 춘서의 복금에  뱉어지고 뜨거운 기운이 춘서의 셔츠를 타고 내 얼굴로 온다.

“바보 같이 왜 참고 있었어.”

‘그러게 춘서가 이렇게 해 줄 줄 알았으면 진작 얘기 했을 텐데. 나는 또 엄마처럼 똥을 손으로 치워야 하는 줄 알고.’

“너 가 편하게 방에서 보게 할까 하다가. 너 가 불편해 할 것 같아서...... 힘들지? 조금만 참아.”

춘서가 내 생각을 읽는다.

아니, 춘서와 내가 만드는 상황이 말을 하고 있다. 변기통이 내 삶을 삼키며 끄 억 트림을 하자 상체를 앞으로 젖히고 뒤를 닦아 주는 춘서.

이럴 때는 그저 가만히 있어야지.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이럴 때는 가만히 있어야지. 그게 최선의 방법이지.

“바보같이 땀으로 목욕을 하고 그래? 변비약 먹이면서 내가 말 했잖아.

내가 해 주겠다고. 내가 한 말은 다 준비된 말들이야. 담부터는 내 말을 믿고 말해 알았지?”

‘그래 춘서야. 니가 한 말은 다 준비된 말이고 나는 그 말을 믿을게. 니 말을 다 믿을게. 그러니까 너는 꼭 살아 나가야 해.’

춘서가 등에 손을 넣어 땀에 등을 토닥인다. 손이 토닥이면서 블라우스가 펄럭이고 공기가 들어간 몸이 꼬들꼬들하게 말랐다.

“자, 방으로 갈까?”

춘서가 나를 앉았다. 내 팔은 춘서의 목을 감쌌고 우리는 신방에 들어가는 신혼부부처럼 우리 방으로 갔다.

오늘 밤 경찰은 오지 않는 것일까? 정말 춘서는 이 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춘서가 누군가....... 춘서는 바둑을 두듯 이 난관을 잘 해결하고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누인 춘서가 창문으로 밖을 살피고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내 어리석은 행동으로 춘서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경찰에게 노출되어 밖의 협력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이 상황. 다시 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다.

“너는 살아 있으면서 뭐가 제일 하고 싶었니?”

-생각 안 해 봤어. 죽고 싶다는 것 외에는-

“나는 집을 갖고 싶었어. 내 집, 내 아내, 내 아이, 내 엄마 그리고 내 호적.“

-지금은?-

“너를 데리고 나가는 거. 너는?”

-네 여자가 되는 거.-

춘서가 나를 응시한다.

당돌한 내 말에 피식 웃거나 무시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춘서의 여자가 되는 걸까? 이 상황에서 다른 여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춘서가 블라우스 단추를 끄른다. 내 가슴을 연다. 환히 켜진 형광등이 가늘게 찌푸리며 눈을 떤다. 다 끌러진 블라우스 단추, 목을 받쳐 든 춘서의 손이 힘을 주자 내 몸이 일으켜 지고 옷이 미끄럼 타듯 흘러내렸다. 춘서의 숨결이 귓불에 속삭인다. 섹- 섹- 섹- 쉬어지는 춘서의 숨소리가 귀가 작은 솜털을 불어진다. 가을의 전설인가 그 영화에서 바람이 불자 들판의 잡초가 바람에 흔들렸는데 지금 귓가 솜털이 그렇게 바람에 흔들린다.

-나랑 할 수 있겠어?-

-하고 싶어,-

-나 같은 산송장하고도?-

-사랑하면, 사랑하면 하고 싶어져.-

-정말? 정말?-

-그래 정말-

-그러면 나 좋아 해도 돼?-

-맘껏, 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이..........-

-정말?-

-그래, 너도 나도 살아 있으니까. 모든 게 고프니까.-

아- 나는 자유의 몸, 말도 하고 팔도 뻗고 부끄러워 다리 꼬네. 아- 나는 싱그러운 처녀의 몸. 아침이슬 머금은 들판에 걷 옷을 깔고 누우면 강아지 풀 간지럽힌다.


->계속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