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 본 임신에 담긴 비밀
한의학에선 수태와 임신을 서양의학의 해석처럼 자궁과 성호르몬의 기능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어머니의 오장육부가 모두 관여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마치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은 꽃의 암, 수술뿐만 아니라 영양분을 빨아올리는 뿌리와 지탱하는 가지, 더 나아가 땅의 윤택함과 사계절의 기운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임신 10개월 동안 심장과 소장을 제외한(심장은 한 나라의 임금과 같은 장기로서 어느 특정시기가 아니라 10개월 내내 모체와 태아를 돌보며, 소장은 심장과 배우자와 같은 장기로 기능이 연결되어 있다) 열 가지 장부가 태아를 한 달씩 도맡아 양육한다고 하는'임신시월 분경양태설(姙身時月 分經養胎說)이 나오는데 여기서 주목한 내용은 이 장부의 배열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분경양태설은 1월에 간이 담당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지엽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 때도 생장수장(生, 長, 收, 藏)의 우주적인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임신 1개월: 이 시기를 胚胎라 하는데 족궐음 간이 담당한다. 간은 근육과 혈액순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간의 기능을 해칠 힘든 일은 절대 피하고 편안히 누워 안정하여 놀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잘 익힌 음식과 신맛 나는 과일 그리고 보리를 먹는 것은 좋으나 비린 것과 매운 것은 삼가야 한다.
임신 2개월: 임신 2개월째는 始膏라하며 족소양 담이 관여한다. 대개 이때에는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어도 신물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으니 매운 것과 건조한 음식은 피하고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는 것이 좋다.
임신 3개월: 남녀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태아가 자라기 때문에 始胎라 하는 3개월은 수궐음 심포(심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무형의 장기)가 주관한다.
놀라거나, 성냄, 갑자기 우울해지는 등의 급작스런 감정변화는 심포를 통하여 임신 전 과정을 맡고 있는 심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근신할 필요가 있는데 서양의학과 마찬가지로 가장 낙태하기 쉬우니 주의를 요한다고 하였다.
임신 4개월: 수초양 삼초(우리 몸 순환대사를 주관하는 무형의 장기)가 양육하여 여러 순환체계가 형성되는데 무리할 경우 구역질, 식욕감퇴, 찔끔찔끔 보는 소변, 아랫배가 땡기고 아플 수 있으니 몸을 안정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며 음식을 절도 있게 먹는 것이 좋다.
임신 5개월: 족태음 비가 주관하는 임신 5개월 땐 태아가 근육, 뼈, 사지가 형성되고 살이 오르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다. 차게 할 경우 태가 동하여 갑자기 낙태할 수 있으므로 옷을 두껍게 입어 추위를 막고 피곤하지 않게 하며, 건조한 음식(태를 말려 버린다고 생각)은 피하고 너무 배고프거나 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임신 6개월: 족양명 위경이 양육하니 이때 비로소 태아의 입과 눈이 형체를 갖추고 팔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얼굴과 사지는 양명경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야외로 나가 달리는 개나 말을 구경하고, 야생의 개나 맹수들의 고기를 먹어 태아의 사지와 근육을 강하게 한다.
임신 7개월: 수태음 폐가 주관하는데 폐는 피부와 모발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태아의 모발이 이때 모두 자란다.
임신부는 뒷목, 어깨, 허리부위가 아플 수 있으니,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동작으로 기와 혈의 순환을 도와주는 것이 좋고, 습한 곳이나 찬 음식은 피하며 쌀밥을 자주 먹어 태아의 살과 근육, 뼈 등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큰 소리내서 말하지 말고, 얇은 옷과 찬 음료수 등도 삼가야 한다.
임신 8개월: 수양명 대장이 양육하여 구규(九窺: 신체의 아홉 구멍, 눈, 코, 귀, 입, 소. 대변 보는 곳)의 형체가 모두 갖추어 지는 시기이다.
임신 9개월: 족소음 신경이 주관하니 신체 모든 관절이 구비되어 온전한 사람 형태를 이루고, 태아가 세 번 뒹구는 시기이다.
임신 10개월: 족태양 방광이 관장하여 태아의 오장, 육부, 관절과 정신이 모두 갖추어지니 태아 낳을 때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상에서 각 개월 수에 따른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8-10개월은 주의사항이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몸이 무거워 삼가거나, 이때 삼가할 내용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의학에서 본 임신의 전 과정은 흡사 태교를 하는 마음과도 같다. 온몸이 임신을 유지하는 총체적 역할을 수행해낸다고 보고 하나 하나의 행동과 건강에 유념하도록 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 더욱 중요한 일로 밝혀졌다. 아기를 잘 키워내는 것은 잘 익은 과실을 키워내기 위해 오랜 기간 자라는 과실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