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보헤미아의 중세도시로
오스트리아의 북서부 국경도시 <린츠>를 떠나 보헤미아 땅으로 올라오는 길은 지금까지 오가던 여정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길이 아닌 가 생각된다. 나지막하고 올망졸망한 예쁜 목조 가옥들이며, 푸르게 자란 초지에 한가로이 노니는 젖소들, 야트막한 저수지 물가를 따라 서있는 사과나무들이 어우러져 보헤미아 평원의 목가적인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체코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흘러가는 블타바 강 서쪽에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땅을 보헤미아 지방이라 한다. 이곳의 원래 주인은 자유롭고 낭만적인 기질을 가진 「집시」들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이곳에 사는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세기 후반부터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나 방랑자들을 「보헤미안 집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유와 낭만이 넘쳐흐르는 땅 보헤미아, 그중에도 남부 보헤미아 지방에는 산골짜기를 따라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고성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찾아가는 <체스케부데요비체>와 <체스키크룸로프>는 그 대표적인 곳이다.
남부 보헤미아의 산악지대를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블타바 강 물줄기를 따라서 중심도시 <체스케부데요비체>에 도착하였다. <체스케부데요비체(Ceske Budejovice=Budweis)>는 인구 10만 명 정도의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도시이다. 이곳은 독일맥주 <버드와이저(Budweis)>의 원조인 체코의 유명한 맥주 <부드바르(Budvar)>의 원산지여서 값싸고 맛있는 피보(pivo: 체코말로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체스키크룸로프>로 이동하였다. 가로수가 우거진 신작로 길과 길옆으로 지나가는 농가와 숲길의 풍경도 멋스럽다. 내린 곳은 성 근처 <체스키크룸로프 스피칵>으로 여기서부터 도보 투어가 시작되었다.
<보헤미아의 중세도시 체스키크룸로프의 모형도>
성안으로 통하는 <플라슈티교> 밑을 들어서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블타바 강물이 S자형으로 구불구불 휘돌아 나가는 말발굽모양의 공간에 오렌지 색 지붕으로 덥힌 고풍스런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마치 우리나라 안동의 하회전통마을이 연상되는 곳이다. 마을을 흐르는 블타바 강은 강이라기보다는 계곡에 흐르는 여울 같아 정겨움을 준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체코인들이 아닌 게르만 인들이 세운 중세의 성채로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고성이다. <체스키크룸로프>는‘체코의’라는 말인 ‘체스키’와 ‘구불구불 말발굽 모양의 구부러진 강가에 조성된 풀밭’이란 독일어의‘크룸로프’라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이곳에 마을 모습이 갖추어 진 것은 8세기에서 12세기였으며, 이 마을을 처음으로 다스린 것은 <비텍>가문이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13O2년부터는 <로젠베르크>가문이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수공업과 상업이 발전하여 16세기 이후에는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주들이 살던 고성이나 거리의 모습들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인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도 훼손되지 않고 그 모습들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하여 1992년부터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그 문화적 가치 때문에 프라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된다고 한다.
<체스키크룸로프성의 플라슈티교 다리>
블타바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들어서니 중세풍의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어 마치 동화의 세계에 들어 온 느낌이 든다. 구시가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는 체코 음악가 <스메타나>의 음악이 연신 들려나오고, 양 옆에 들어선 카페와 상점들 입구의 간판들은 안목 있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예술작품 같이 매우 아름다웠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이 있는 라트란 지구에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만들어진 성체 성당과 성 요스트 성당, 성 비타 성당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옛 시장 터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거리가 남아 있으며, 1309년에 세운 후기 고딕 양식의 성 비타 성당의 내부에는 그물 모양의 볼트와 바로크 양식의 제단이 있고 좁은 종탑이 높이 솟아 있다. 특히 이곳 광장 한구석에 있는 <고문 박물관>에는 중세 봉건 시대에 사용하였던 각종 고문기구들이 진열 되어 있어 관람하기에도 섬쩍지근하였다. 광장 근처 지하식당 <카로마>에서 현지 전통식 <찌블렛>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체코인을 닮은 <빠케트> 빵에다 쌉싸름한 로컬 맥주 한잔을 마시는 고즈넉한 체험은 두고두고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동화 속의 마을 체스키크룸로프>
마치 「구원의 언덕길」 같은 골목길을 걸어올라 성채 안으로 들었다. 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성채는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그 규모가 크고 거대하였으며, 성채 내부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세 귀족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과 접견실, 마차와 식당, 화랑과 거울의 방 등은 화려한 바로크와 정제된 르네상스 건축의 정수를 보는 듯하였다.
13세기에 세워진 <체스키크룸로프 성> 안에는 영주가 살던 궁전과 교회 조폐소 등이 있다. 궁전은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로코코 식으로 만들어진 <가면의 방>은 아름다운 풍경화로 장식하였다. 건물 양식이 서로 다른 제1에서부터 제5까지의 궁성건물은 아취 식 성문과 작은 광장들로 이어진다.
이 성채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을 어느 곳에서나 올려다 보이는‘성의 탑’이라고 불리는 <흐라데크 전망 탑>에서 크룸로프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이 탑은 이 성에서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 양식의 원통형 건물로 아름다운 벽화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160개의 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 전망대 난간에 서는 순간 뱀처럼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 도시를 한가득 메운 붉고 뾰족한 중세풍의 지붕들, 절벽위에 우뚝 솟은 대저택과 하늘을 떠가는 흰 구름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 고성에서 만이 맛볼 수 있는 환상적인 장면이 아닌가 싶다.
<체스키크룸로프의 환상적인 전망탑 흐라데크 성의탑>
계곡에 걸린 <플라슈트 교>를 건너서니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성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이 가든은 1765년에 베르사유 정원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조각 분수대와 야외 공연장,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이 정원을 아름답게 채워주고 있다. 잠시 한적한 정원에 묻혀 중세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체스키크룸로프 성! 이 성이 만들어진 것은 우리나라로 볼 때 조선시대 세종 무렵부터 정조 무렵까지에 해당된다. 우리에게도 그 시절의 문화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더라면 얼마나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유산이 되었을까? 물론 <수원 화성>과 같은 성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비교가 되어 보였다. 이 성채와 도시 모습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문득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보면서 아쉬움 속에 성채를 떠나야 했다.
<성채속의 아름다운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