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한양조씨 시조 설단이 들어선 홍성 홍북 대인리 매산 제각골 |
---|
홍성(洪城) 홍북면 노은리와 대인리편 내포 땅의 사랑과 미움(상) 천혜의 땅 '내포'와 가야산 오대산에서부터 뻗어내려온 차령산맥 줄기가 서해바다에 다가오면서 그 맥을 주춤거리다 방향을 아래쪽으로 틀면서 마지막 용틀임을 하듯 북쪽을 향해 치솟은 땅이 가야산(伽倻山: 678m)이다. 이리하여 차령산맥 위쪽 가야산을 둘러싼 예산, 서산, 홍성, 태안, 나아가 당진, 아산에는 비산비야의 넓은 들판이 생겼다. 옛날에는 여기를 '내포(內浦)'라 했고 지금도 이 일대를 내포평야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사는 행정구역이 서로 달라도 마치 옆마을 사람처럼 느끼는 친근한 동향의식을 갖고 있으니 내포사람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성싶다. 내포는 농사와 고일이 잘될 뿐만 아니라 안면도 황도의 고기잡이,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상징하는 바다의 풍요가 있다. 그래서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의 팔도총론에서 이 지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산천은 평평하고 아름답고 서울의 남쪽에 위치하여 서울의 세력있는 집안치고 여기(충청도)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만)l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은 그 지맥이 이어지는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내포는 지세가 한쪽으로 막히어 끊기었고 큰 길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임진, 병자 두 난리의 피해도 이곳에는 미치지 않았다. 토지는 비옥하고 평평하고 넓다. 물고기,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또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다만 바다 가까운 곳은 학질과 부스럼병이 많 다. 이런 내포 땅인지라 기암절벽이 이루는 절경은 없어도 낮은 이 굽어치는 평화로운 전경은 일상과 평범 속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만경평야의 드넓은 벌판을 즐겨 그리는 우리시대의 화가 임옥상도 애정 어린 농촌의 전형을 그리려면 내포 땅이 좋다고 한다. 이 평온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씨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부드럽고, 여유있고, 친근하고...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일까, 내포 땅이 배출한 인재들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라 기골이 강해서 시쳇말로'깡'이 센 사람들이다. 최영 장군부터 시작해서 사육신의 성삼문, 임진왜란의 이순신, 9년 유배객 추사 김정희, 자결한 구한말의 의병장 최익현, 김대건 신부,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의 김옥균, 상록수의 심훈, 남로당의 박헌영, 만해 한용운, 문제의 화가 고암 이응로... 모두 쉽지 않은 쉽지 않은 분들이고, 제명을 못다 할망정 의를 다한 분들이다. 세상에 이런 역설이 있을까 싶다. 이것은 필시 내포 땅의 '논두렁 정기'가 아니라 가야산 정기와 관련 있을 것이다. <兪弘濬 교수의 '나의 문화 유적 답사기' 중에서>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