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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념 쉬고 진성 나타내는 공부 |
우리가 마음을 마음대로 하여 일 있을 때에 일념을 집중하고, 일 없을 때에 고요히 명상하고 무념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인 줄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것은, 각자 쌓아온 업력과 습관에 따라서 개인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다르고 그 업력과 습관의 힘에 이끌려서 번뇌 망상과 온갖 잡념들을 끊임없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 마음의 자유와 육신의 안정을 통해서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잘 지켜나가는 것은 정신수양의 훈련이 아니고는 갑자기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 정신수양의 방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바르고 빠른 훈련 방법이 좌선법이다.
좌선의 원리는 식망현진 수승화강(息妄顯眞 水昇火降)이다. 식망현진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수승화강은 몸에 있어 화기(火氣-불기운)를 내리게 하고 수기(水氣-물기운)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마음과 몸이 하나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어서 마음과 몸의 작용과 상태는 매우 밀접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 잡념이나 망상이 일어나면 몸의 열기 즉 화기가 위로 올라서 상기가 되고 반대로 잡념이나 망상이 가라앉고 맑고 고요한 명상의 상태에 들어가면 몸의 화기가 가라앉고 열기가 식어서 몸도 안정을 유지하면서 정신은 싱그럽고 기운은 상쾌하고 몸은 편안한 상태를 맛볼 수 있다.
또는 몸의 기운을 안정하고 화기를 내려 수기가 오르면 자연히 망념도 쉬게 되어 마음과 몸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망상이 일어난 즉 불기운이 오르고 불기운이 오른 즉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질서가 무너진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마음과 몸을 식망현진 수승화강의 방법으로 길들이고 훈련하는 것이 좌선법이다.
청정한 자신 대면하는 길
원불교대학교 한덕천교무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하나는 인터넷, 그리고 또 하나는 명상이다.
이제 이 말은 서구에서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유효하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를 헤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디지털 도구’라면, 명상은 삭막한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아날로그식 무장’이라고 할 수 있다.
I보보스-디지털시대의 엘리트 J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명상을 하기 위해 몰려가는 엘리트들의 행렬을 ‘소울 러시(soul rush)’라고 표현했다.
요즈음 선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현실에서의 번거로움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명상의 적정주의(寂靜主義)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좌선은 명상이나 단순히 번뇌를 퇴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주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다. 즉 본래 청정하고 온전한 자신을 대면할 수 있도록 번뇌망상에 사로잡혀 주객이 바뀐 사람들로 하여금 본 고향을 찾아 ‘참 나를 찾아가는 길’로써 선(禪)의 강령은 식망현진(息妄顯眞),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새벽 좌선은 깨달음을 향한 새 출발 |
선을 할 때의 표준으로 대산종사께서는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은 옳고(寂寂惺惺是), 적적한 가운데 아무 생각 없는 것은 그르며(寂寂無記非),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옳고(惺惺寂寂是), 성성한 가운데 산란함은 그르다(惺惺散亂非)”고 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의 참된 삶과 가치를 찾아보지도 못한 채 죽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참되고 값진 각자의 절대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좌선의 실천으로 확립해 보자.
새벽녘의 좌선은 깨달음을 향한 새 출발이며, 취침전의 좌선은 하루의 때를 깨끗이 씻는 자기 수행의 생활인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아침 좌선을 하지 않으면 밥을 굶도록 하셨다며 지금도 철저히 수행하시는 선진님을 모신 적이 있다.
또한 대산종사께서는 저녁에 잠자기 전에 꼭 짧게라도 선을 하라고 하셨다. 하루 중 언제 어디서라도 5분 혹은 10분이라도 좋고 30분, 50분이면 더더욱 좋다. 좌선이 생활화된 사람은 일상생활을 전개하는 그 어느 장소에서라도 쉽게 선을 실천할 수 있어 무시선 무처선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일단 앉으십시오
고원국 교무·원광대 대학교당
세상사 무척 바쁩니다. 속눈썹을 휘날리며 뛰어다녀야 겨우 목멍에 풀칠한다며 항상 동동거립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라지만 아침은 굶기 일쑵니다. 정작 밥 먹는 시간도 모자라 길거리에 서서 패스트푸드로 허겁지겁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경우도 흔합니다.
퇴근길 만원버스와 지옥 같은 지하철에서 혹시 빈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이 나에게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눈을 돌려봅니다.
하지만 결국 인파 속에 이리저리 떠밀리다 파김치가 되어 가까스로 집에 돌아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다리는 퉁퉁 부었습니다. 쓰러지듯 드러누우니 꼼짝도 하기가 싫습니다. ‘인생은 괴로움이다’는 말씀이 절실히 와 닿습니다. ‘왜 이러고 사는지…’
흔히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보면 도리어 내 마음이 일에 따라 좌우됩니다.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수시로 열을 받습니다.
촌음을 다투다보니 입이 바싹바싹 마릅니다. 침조차 삼키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져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또 하루가 시작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내키지 않는 걸음을 다시 되풀이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합니다.
머리에는 뜨끈뜨끈 열이 오르고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습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내 맘이 내 맘이 아닙니다. 돌고 도는 인생이라지만 이건 절대 아닙니다.
빈속을 달래기 위해 선채로 그냥저냥 때우지 말고 앉아서 천천히 드십시오. 어깨를 부딪치고 발등을 밟혀가며 시달리지 말고 앉아서 편안히 가십시오.
종일토록 자신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내던지지 말고 시원한 물속에 발 담그고 앉아서 쉬었다 가십시오.
소태산 대종사님은 ‘몸과 마음이 한결 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해지는 공부 방법’을 챙겨보라고 하십니다. 좌선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워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면서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온몸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오직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으면 됩니다.
이와 같은 공부 방법으로 오래오래 계속하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나와 극락이 하나가 됩니다. 일단 앉아보십시오. 그렇게 자꾸 돌아다니지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