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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etails | ||
Nationality | German | |
Type | Hilfskreuzer (Raider) | |
Ship Number | 41 | |
HSK Number | VIII | |
British Admiralty Letter | G | |
Builder | Krupp-Germania Werft, Kiel., converted by Deutsche Werft AG | |
Launched | 1938 | |
Previous Owner | Hamburg - Amerika Line | |
Previous Name | Steiermark |
[Kormoran 호의 제원]
[Kormoran호의 화려한 전적]
1. Antonis
독일의 위장 전투함 Kormoran호의 활약은 1940년 12월 3일부터 1941년 11월 까지 거의 1년의 짧은 생애 동안 화려한 전적을 기록하였다. 그녀의 첫번째 제물은 그리스 선적의 "Antonis호" 였다. 당시에 Anonis호는 4,800톤의 석탄을 운반하고 있었는데 대서양 가운데서 Kormoran호에 의해서 1941년 1월 6일 날짜로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때 28명의 선원들은 (맹인 1명 포함) Kormonra호에 강제 승선 조치되었다. 당시에 독일 해군은 포로 처리에 대한 정책(Policy)를 정하여 운용하였고 이것에 따라서 포획된 선박의 선장 또는 여성승객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된 선실을 제공하였으나 Antonis의 선장은 Kormoran호의 선장에게 자신의 선원들과 같이 지낼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포로들을 통제하고 이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2. British Union
이 영국선박은 당시에 Kormoran호와 포격전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무전을 보내서 항복을 하였으나 이미 선박에 피격으로 화재가 발생하였고 28명의 선원들은 원숭이 한마리도 포함하여 Kormoran호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미 British Union호로 부터 구조신호가 발신이 되어 영국군함의 접근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즉시 Kormoran호는 구조하지 못한 구명보트 위의 17명의 선원을 바다 위에 내버려두고 도피(?)를 하였다. 이 중에 8명은 당시에 구조신호를 접수한 호주해군의 HMAS Arawa호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다. 당시에 Arawa호는 원거리에서 교전현장의 Kormoran호의 서치라이트 불빛과 포격 섬광을 목격하였으나 Kormoran호가 야음을 틈타 냅다 도주하였기 때문에 교전을 벌일 수가 없었다.
3. Afric Star
이 선박은 영국의 냉동운반선으로서 아르헨티나산 육류 5,708톤과 634톤의 버터를 운반 중이었는데 당시에 무전기는 Kormoran호의 승무원들에게 의해 파손되었으며 4분간의 포격으로 결국 도주에 실패하고 포획되었다. 불행히도 이 고급 선박은 피격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었으며 72명의 선원들과 2명의 영국국적의 여성을 포함한 4명의 승객들은 당시에 갑판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비키니 대신에 좀 촌스러운..) 수영복 패션 차림으로 Kormoran호에 강제 승선조치 되었다. 그러나 Kormoran호의 배려로 Afric Star호를 침몰시키기 전에 입수한 그녀들의 옷이 지급되어졌으며 1등석 특별선실로 배치되어 특별 예우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때 Afric Star호로 부터 압수한 영국무선신호 Code 책을 입수하여 Kormoran호는 영국의 신호체계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4. Eurylochus
Eurylochus호는 당시에 Blue Funnel liner社의 화물선으로서 16대의 중폭격기와 엔진을 Takoradi항으로...물론 여기서 폭격기들을 조립하고 엔진을 장착하여 이집트로 날려보내 독일의 북아프리카 롬멜군단에게 대항하기 위해 운송 중이었는데 때마침 운수 사납게 Kormoran호에게 붙잡혀 엔진들은 동행하던 다른 선박으로 옮겨졌고 폭격기는 폭파되었다. 피랍 당시에 용감한 Eurylochus호는 Kormoran호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도주하였으며 "RRR"이라는 비상구조신호를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한 Kormoran에게 함포 사격을 받아 이 중 4발이 명중되었다. 그리하여 위장 순양함과 민간화물선과의 일방적인 전투은 결과가 뻔한 것이어서 Eurylochus호는 피격으로 11명의 선원이 사망하고 결국 붙잡혔으며 영국인 3명 중국인 39명이 강제 승선조치되었다.
Kormoran은 당근 Eurylochus호에다 폭발물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으나 몰래 숨어있던 선원들이 살아남아 끝까지 무전으로 구조신호를 날렸으며 이를 파악한 Kormoran호는 다시 포격을 실시해 함교(bridge)를 20mm 대공포로 벌집을 만들어 버렸다. 당근 무전신호는 끊어졌어며 용감한 무명의 선원은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곤 어뢰를 발사에 Eurylochus호를 영원히 수장시켰는데, 이 때 독일의 관측병은 포격때 잃어버린 구명선 한척에 선원들이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Eurylochus호에 접근 중이었으며 긴급히 조명신호를 보내서 어뢰가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리려 하였지만 결국 어뢰는 명중하였으며 Eurylochus호에 접근하였던 구명선의 선원들도 동시에 폭발음과 물기둥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사라졌던 선원들은 결국 다음 날 스페인국적의 화물선에 의하여 구조되었으며 그들은 선장을 포함하여 28명의 선원들이었다. 아... 그들에게는 정말로 삶과 죽음이 교차한 처참한 하루였을 것이다. 어쨌던 Kormoran호는 1941년 2월 7일 주축국의 Nordmark호 그리고 Duquesa호와 조우하였으며 붙잡고 있던 포로들을 넘기고 급유를 받았으며 새로운 작전명령을 하달 받았다.
5.
Agnita
Agnita호는 당시에 유류운반선(Oil tanker)이지만 작은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고 Kormoran호에게 정지명령을 받았을 당시에 무전신호로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전속력으로 도주하려 하였다. 그러나 Kormoran호로부터 몇 차례 일제사격(Salvo)를 받았고 이 때 엔진실에 피해를 입어 더 이상 도주하지 못하고 정지해 버렸다. 그리하여 Kormoran호의 승무원들은 Agnita호를 점령하고 38명의 선원(영국인 13명, 중국인 25명)들은 포로로 강제승선 조치하였고 배에 폭발물을 장착하여 폭발시켰으나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Kormoran의 5인치와 9인치 포를 9차례나 추가로 피격을 받았으나 역시 이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결국 Kormoran호의 어뢰를 맞아 침몰하였다.
6.
Canadolite
결국, Canadolite호는 무사히 Gironde에 도착하여 독일의 유류운반선으로 개장되어 “Sudetenland”호를 변신하였다. 이것을 보면 당시에 Kormoran호가 한 행동은 엘도라도의 황금을 운반하는 스페인함선을 노획하여 해적선으로 사용하던 카리브해의 해적단의 모습과 빼다 박았다. 어쨌던 Kormoran호는 독일함선 Nordmark, 잠수함 U-105, U-106 등과 3월 28일에서 4월 2일 사이에 접선하였고 Rudolf Albrecht호와는 1941년 4월 3일 접선하여 보급품을 지급받고 새로운 명령을 하달 받았다. 참고로 보급품 중에는 감자, 바나나, 오렌지 뿐 아니라 살아있는 돼지와 강아지 그리고 영국제 담배와 잡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7.
British Craftsman
Kormoran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향하던 중에 대잠수함용 그물을 케이프타운 항구 입구에 설치하려고, 영국 선적의 British Craftsman호가 Kormoran호에 접근해왔다. 빠른 속도 때문에 처음에는 이 배가 전투함인 것으로 오인을 하여 잔뜩 긴장하였으나 나중에 이 배가 화물선(freighter)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정지 명령을 보냈다. 그러나 Craftsman호는 도주를 시도하였고 무전신호를 발신하였다. 그리하여 Kormoran호는 포격을 실시하였으며 대략 10분 후, Craftsman호는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선원 5명이 사망하였다. 당시에 선장은 함교(Bridge)에 방어용 모래주머니를 달아두었는데 포탄에 의한 피격 시 모래주머니가 터지면서 날아든 모래에 눈을 다쳐 앞을 볼 수가 없었다. 46명의 생존자는 Kormoran호에 강제 승선조치 되었으며 통상 하던데로 Kormoran호의 승무원들이 배에 폭약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으나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뢰가 발사되어 수장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Craftsman호가 설치하려던 대잠수함용 그물의 부유물이 이로 인해 넓은 바다 위에 널려지게 되었고 이 놈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기뢰처럼 보여서 지나가던 선박들이 초긴장 상태로 빠지는 해프닝이 연출되었으나 결국 이것은 몇 주후에 일반적인 그물에 메다는 부유물로 밝혀지게 된다.
8. Nicolaos
Oregon에서 생산된 소나무 목재를 운반하던 그리스선적의 Nicolaos호는 캐나다 Vancouver 항구를 출발하여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하여 Durban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재수없이 Kormoran호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Kormoran호로 부터 정지명령과 무전발신금지 지시("Heave to! ? No Wireless!")를 받았는데, Nicolaos호는 이를 무시하고 도주하였다. 이로 인해 몇차례 일제포격(Salvo)를 받았고 배를 멈추었다. 비록 Nicolaos호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선체와 고급목재를 운송 중이었으나 이러한 포격으로 인해는 배는 걸레처럼 너덜해졌으며 화물도 손상을 입어서 Kormoran호는 이 배를 역시 침몰시키기로 결정하고 폭약을 장착하여 폭발시켰으나 역시 침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집중포격을 실시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침몰하지 않았다. (이때 150밀리 포가 옆구리에 명중하였다고 전해진다.) 배를 수장시키기 위해서 어뢰를 발사하려 했지만 Nicolaos호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고 38명의 선원들은 강제 승선조치 되었다. 결국 Nicolaos호는 천천히 침몰하였다.
9.
D.L. Velebit
이 유고슬라비아 선적의 화물선은 Kormoran의 몇차례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필사적으로 도주하였으며 위협적인 사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집중포화를 받아서 5인치와 9인치 포탄을 20발 넘게 명중되었고 7분만에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전체 34명의 승무원 중에서 탈출한 9명만이 구조되어 Kormoran호에 붙잡혔으나 나머지 선원들은 불타는 배를 몰아서 필사적으로 도주하였으며 인근의 Andaman 섬에 상륙하였다. 결국 Kormoran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성공한 생존한 선원들은 이 배를 버리고 탈출에 성공하였다.
10.
Mareeba
이 배는 호주선적의 화물선으로서 당시에 5,000톤의 설탕을 싣고 있었는데 Kormoran호로 부터 정지명령을 받고는 곧바로 비상 무전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로 인해 Kormoran호로 부터 포격을 받았는데 불과 몇 발의 명중탄을 맞고는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였으며 선장과 47명의 선원들은 Kormoran호에 강제 승선조치 되었다.
11.
Stamatios G. Embiricos
석탄으로 추진되는 그리스 선적의 화물선 Embiricos호는 Kormoran호에 피랍될 당시에 연료가 거의 바닥 상태였는데, 때로는 이 배가 포로수송선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피랍 당시에 Korman의 공격을 받아 탈출한 구명보트에 선장과 5명의 선원들은 붙잡혀 강제 승선조치 되었고, 나머지 24명의 선원들은 다른 구명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으나 Kormoran호는 다음 날이 되도록 이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12.
HMAS Sydney
호주해군의 경순양함 HMAS Sydney와 Kormoran호가 조우하여 교전을 하여 2차 대전 전투기록에서 사상 최초로 전투함을 격침시켰다...ㄱ-:
호주해군의 경순양함 HMAS Sydney...HK Komoran 에게 수장당한 불쌍한놈......
HMAS Sydney
기준 배수량= 6830t
최대속력= 32. 5knots
무장= 152mm포*연장4기
102mm대공포*단장4기
12.7mm 기관총*3기/53.3cm 어뢰 발사관*4연장 2기
수상 정찰기*1기
1941년 11월 19일, Joseph Burnett 함장이 인솔하는 호주해군 즉, HMAS(His Majesty's Australian Ship) 경순양함 시드니호(Light cruser, Sydney)는 상선 호위의 임무를 끝내고 오스트레일리아의 Fremantle를 향해 항행하고 있었다. Sydney는 1935년에 준공된 Modified Leander급의 경순양함이다. 영국 해군에 의해 "Phaeton" 라는 이름으로서 건조되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미 건조되었던 다른 2척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게 이적되었고 "Sydney"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배는 1940년 7월에는 지중해의 Spada 해전(Battle of Cape Spada)에 참가하여 당시 이탈리아 해군이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던 경순양함 "Bartolomeo colleoni"호를 격침시키는 수훈을 세운 함이었다.
16시경 Sydney는 Carnarvon의 남서 150마일의 지점에서 1척의 상선을 발견한다. Sydney는 즉시 전투 배치를 정돈해 상선의 진로를 차단할 수 있도록 진로를 바꾸었다. 동시에 상대의 상선도 변침 해 Sydney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확인 상선은 정체 불명의 군함에 조우했다는 무선을 발합니다. 연합군 선박의 식별 부호(깃발)를 내걸도록 하는 Sydney의 요구에 대해 이 수상한 상선은 네델란드 국기와 네델란드 상선 ”Straat Malakka”를 나타내는 신호기 ”PKQ”를 내걸었다.
적하(수송화물)와 목적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하는 천, 목적지는 Batavia”이라고 대답하였다. 회답은 늦고 알파벳철자는 잘못 사용하고 있어 그야말로 부주의한 전형적인 네델란드 선원인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Sydney는 다음에 ”비밀부호를 내걸어라”라고 하는 신호를 보내었고 네델란드선이 자신의 비밀부호를 내거는 것을 기다렸다. 이 때 양함의 거리는 1000야드 정도로 줄어있었고 Sydney는 상선과 좌현 측에 보는 형태로 나란히 항해하고 있었다.
네델란드선의 선상에서는 또다시 선원들이 완만한 동작으로 신호기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회답을 기다리는 Sydney의 장교들이 본 것은 끌어 내려지는 네델란드 국기와 교체로 내걸리는 독일해군의 전투깃발 그리고 은폐된 장소로부터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대소구경의 화기들 이었다. 이 상선은 실제 네델란드 선적에는 없는 독일해군의 위장순양함 ”Kormoran”호 였다. 비밀부호를 몰랐던 Kormoran호는 마침내 전투를 결정하고 그의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1941년 11월 19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경순양함 Sydney에 발각된 독일해군의 위장함 Kormoran는 마침내 전투에 돌입하였다. 당시 독일군은 대형으로 고속의 민간 상선을 징용 하여 여러가지 무기 및 함포을 설치하여 연합국 상선단에 대한 통상파괴에 투입되고 있었니다. 이러한 무기는 교묘하게 은폐되어 외부로 부터 관측하여서는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Kormoran호는 이러한 위장 순양함 중에서도 가장 큰 녀석이었으며 침몰 직전까지 12척, 합계 75375톤의 연합국 상선을 바닷속에 가라앉혔다
Kormoran의Theodor Detmers 함장
은폐 셔터를 돌아올 수 있어 모습을 나타낸 어뢰 발사관과 15cm포(위장순양함 Atlantis의 모습)
화물로 위장된 15cm포 ( 위장순양함 Widder)
Kormoran호의 Theodor Detmers 함장은 17시 30분 위장 해제의 명령을 발표해 교전수칙에 따라 전투깃발이 오르는 것을 확인하면, 즉시 사격 개시하도록 명령했다. 1시간 이상 전투 배치를 한 채 기다리고 있던 Kormoran의 포병들은 재빠르게 반응하였다. 최초의 발포는 위장 해제의 명령으로부터 불과 6초 후였다. 정체 불명의 군함과 조우했다고 하는 무선, 굼뱅이처럼 늑장 신호를 주고받은 것도 이것은 모두 정체를 숨기기 위한 기만 행위였다.
이 공격은 Sydney호에게는 완전한 기습공격이 되어 함교와 사격 지휘소에 포탄을 받은 Sydney는 계통적인 사격이 불가능 하였다. Kormoran의 37mm와 20mm 대공기관총도 Sydney의 함교나 상갑판등의 움직이는 것 모두에 탄환을 퍼부었다. 게다가 Kormoran호에서 발사한 어뢰에 의해 Sydney호의 앞부분 2개의 포탑(A, B 포탑)이 불능이 되었으나, 이러한 급작스러운 집중 선제 공격을 받으면서도 Sydney의 후부 포탑(C, D 포탑)은 반격을 실시하였다. C포탑의 2발을 쏘아 맞히고 이것은 Kormoran의 중앙부에 명중 기관실에 화재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Sydney의 반격도 여기까지 였다. 이윽고 불길에 휩싸인 Sydney는 천천히 방향을 선회하여 Kormoran의 뒤를 횡단해 멀어져 갔다.
Detmers 함장은 추격을 기관실에 명령하였으나, 기관실의 화재는 아주 심하였고 Kormoran호 자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18시 25분 Detmers 함장은 사격 중지를 명령하였다. Sydney호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멀어져 가 21시경 먼 곳에서 큰 불길이 내뿜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Kormoran호도 기관실의 화재가 진화되지 않았고 23시 Detmers 함장은 모든 승무원에게 총원 퇴함을 명령하였다. 2차대전사에서 위장순양함으로서 유일하게 정규 군함을 가라앉힌 Kormoran호도 그 모습을 파도속에 지워야 했다.
Detmers 함장은 곧 바로 적군들에게 자신의 위치가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Sydney호가 교전에 대한 무전을 발신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초의 공격으로 Sydney호의 무전실이 파괴되었는지 Sydney호로부터는 어떤 연락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Detmers 함장과 그의 승무원들이 기선 Centaur호에 발견된 것은 26일이었다. Kormoran의 승무원은 60명이 희생이 되었고 320명이 구조되었으나 Sydney호의 645명의 승무원들은 두 번 다시 발견되지 않았다.
구조되는 당시에 Kormoran의 승무원들의 모습
[그 뒷 이야기]
- 제 1 차 참 조-
[위장함 Komoran호에 정보는 여기를 참조] http://www.bismarck-class.dk/hilfskreuzer/kormoran.html
- 제 2 차 참 조 -
첫댓글 존경할 뻔 했습니다 ㄷㄷㄷ2번째 British Union ...원숭이 한 마리... (응?)
위장함이라고 해서 우습게 봤는데, 전적도 대단하지만 스펙도 생각 외네요. 15cm 6문이라니. 수상기 2기까지 달고 다니고.
... 덜덜덜, 이 녀석들 대단하잖아.. ㄱ-;;
대략 6인치 6문이면, 왠만한 구축함보다는 강하군요.....경순이라 보기엔 약간 모자라는 화력이지만...
...1차대전때는 무려 범선도 보조순양함, 즉 위장상선으로 써먹었다죠. 영국은 잠수함 잡는데 위장상선 많이 써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