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9-13)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을 상고하고 읽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 하나님과 성도와 함께 하는 교제,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은 자동차의 네 바퀴에 비유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등한히 하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기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방해할 것입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주님의 일꾼들이 기도를 통해 힘을 얻었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모든 궤계에 승리했습니다. 사탄은 역사를 통해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마음을 열어 놓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놓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의 감추어져 있는 죄와 허물이 드러납니다. 자기가 알지 못했던 교만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에 나타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일상의 일을 살펴보고 허물을 고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를 간청했으며 주님은 그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무의미하게 단순히 이것을 반복해서 암송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외우는 것 이상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할 내용과 제목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단 번에 이 말씀을 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하면 주님이 가르치신 그 기도문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미쳐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행 13:27)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차라리 외우는 것이 더 쉽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은 잘했지만 그 말씀이 증거해 주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주기도문을 외울 때 이와 똑같은 불행한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 생활 속에 적용하지 않고 단순히 암송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기도문을 분석해 보면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님께 관한 기도가 세 가지, 우리의 필요에 대한 기도가 네 가지로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기도의 순서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에 관한 것이 먼저요 사람에 관한 것이 다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순서는 항상 우리 기도 가운데 또는 일상의 모든 일 가운데 우리 마음에 무엇이 먼저인지 우선 순위를 깨닫게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그 다음이 우리의 필요입니다. 자신의 필요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신에게 부르짖는 것은 이교도들도 얼마든지 합니다. 부처 앞에서 3천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백일 불공을 드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는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의 첫 번째는 아버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라는 말은 본성적으로 친밀감을 줍니다. 우리 마음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양자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신 것이고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친히 증거해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거듭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앞에 계셨다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근거는 십자가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축복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주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거기에는 아들로서의 의무도 있다는 것을 마음에 깨달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의 놀라운 지위를 생각하며 우리가 마땅히 자녀된 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될지 마음에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십계명의 세번째 계명도 `너희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아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잘못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많이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겔 36:20) 바울사도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라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행위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습니다. 지금도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우리의 행동들이 구별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생활가운데서 더럽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입으로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각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기도에는 우리의 마음을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될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외적으로는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 얻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며, 내적으로는 구원받은 사람 마음속에 주님께서 계셔서 다스리시게 될 때, 그것이 곧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롬 14:17) 현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불신자와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어 적용해 볼 수 있는데 먼저 불신자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머지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 4:2) 거듭난 이후에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머리의 뜻이 몸을 통해 실천되고 이루어지듯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작정하신 뜻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몸된 교회 곧 거듭난 성도들의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속한 기도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이 바로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와 문제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 첫번째로 일용할 양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은 꼭 음식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건강과 환경적인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요건들이 공급되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몇 달 치 양식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매일매일 먹는 그 양식이 누구에게서부터 왔는가를 깨닫도록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달 치 양식을 쌓아 놓았더라도 그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를 할 때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호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언젠가는 빼앗길 때가 올 거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 건강을 잃어버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또한 일용할 양식은 육신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도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예수님은 영적인 양식을 늘 구하면서 사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영적인 힘의 공급원을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음식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영적인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서 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거두어 먹은 것같이 우리는 매일 신령한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양식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는 우리의 생활 중에 짓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법적인 용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용서를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해서 그 죄가 법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그 사람과의 멀어진 관계가 회복되듯이,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모든 죄는 이미 사해졌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육신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당연히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자책만 하고 있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가 되지 않으며 자기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그 은혜를 감사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원수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가 용서가 잘 안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그 사건을 마음에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어떠한 처지에서 구원하셨는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다시 한 번 일깨워 보십시오, 내게 주신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고 내가 받은 용서를 기억해 낼 수 있다면 내게 죄 지은 자를 쉽게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죄와 가깝습니다. 그러한 우리는 시험을 자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유혹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기도는 더욱 필요합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이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하며 우리의 결단력과 의지력은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그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곧 시험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지금까지 신앙을 간직하고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다면, 우리를 지켜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이라는 것은 사단과 사단에게서 파생된 모든 죄와 유혹들입니다. 악에서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때에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죄의 세력들을 발견하게 되고 사단의 유혹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악에서부터 구해달라는 그 기도는 우리의 양심을 밝게 해주고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방금 전에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기도한 후 기도가 끝나자마자 악으로 달려간다면 아주 합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자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요 12:28)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의 마지막은 ‘아멘’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소망의 뜻과 ‘그렇게 반드시 될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주기도에서 우리는 아멘하고 끝을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도의 내용은 소망이 되어야 됩니다. 내 일생 소원이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소망으로 채워져야 됩니다. 이 주기도는 언젠가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입니다. 잠시 잠깐 후에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기도는 지금은 소망과 믿음으로 기도 하지만 아멘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우리 마음에 일깨워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주기도에 간구했던 내용대로만 삶의 모습이 되어진다면 정말 빛의 자녀로서 흠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고 이어져야 됩니다. `당신의 생활로서 아멘하라`라는 어느 격언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아멘은 입에서 뿐 아니라 실제적인 우리의 삶으로 아멘되어서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기도문은 주님 오실 때에 완성되며 우리는 그 영광에 참여하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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