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의 기쁨(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1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8)"(합3:17-18)
하박국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 말씀은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구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 구절을 암송하거나,
곡조를 붙여 즐겨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많은 성도들이 의외로
이 본문 말씀을 사랑하는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일지도 -
왜곡되어진 상태로 이해하여 암송하거나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구절을 사랑하는 상당수의 성도들은
그 내용을 개인화, 심리화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
나는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의 식물,
그리고 우리에 양,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어.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나는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이야."
물론 이러한 마음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본문의 내용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개인적인 심리상태,
또는 무소유 가운데서의 만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본문을 해석한 후에 확대하여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 전체 내용의 결론입니다.
하박국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남 유다 왕국의 사악함에 대하여
이제 얼마 후면 바벨론의 군대를 들어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러한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오직 여호와만 따르고 의지하는 신앙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1장은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의 항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합1:2-4).
율법과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여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압제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들어
하박국은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바로 그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바벨론 군대를 들어
이 악한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합1:5-11).
그러자 하박국의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합1:12-17).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군대를 들어서 심판하신다 해도
의인들이 받는 압제는 여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바벨론 군대 역시
사악한 자들임에 틀림없는데,
그들의 침공으로 유다 왕국이 멸망하게 된다면
결국 의인들 역시 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하여
악인들과 함께 멸절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사악한 이방인들의 손을 빌어서
유다 왕국을 심판하신다 하더라도
의인들의 고난은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악한 이방인들만
잘되게 해주는 꼴이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눈에 보기에 이는
마치 하나님의 방관과도 같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도
매우 분명한 답을 주고 계십니다.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3번 인용(롬1:17; 갈3:11; 히10:38)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러한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과 공의를 붙잡고 순종하는 자에 대한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생명을 얻으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순종"을 대조시키는
편견이 가득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과
그분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로 분류할 뿐입니다.
이는 물론 믿는 자들이
때때로 연약하여 범죄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박국과의 이 질문과 답변은
저 멀리 오래 전,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심판을 놓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대화하신 내용(창18:22-33)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박국은 이제 하나님의 이 무서운 심판 가운데 들어 있는
매우 중요한 구원의 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악인들에 대한 멸망의 도구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압제 받는 의인들에 대한
구원의 관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심판의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3:2)
이는 하박국의 기도인 동시에 찬송이 되었습니다(합3:1).
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찬송으로 불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날(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예배 속에
심판의 찬송, 심판의 기도가 매우 적어진 현상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자, 기도인
이 찬송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짓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1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8)"(합3:17-18)
우리는 여기서 3종류의 나무가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목들입니다
(신8:8; 암4:9; 학2:19; 민13:23; 왕상4:25; 미4:4; 슥3:10; 마7:16).
또한 감람나무는 기름을,
무화과나무는 실과를,
포도나무는 술을 제공합니다(삿9:7-15).
이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에게
그들 위에 세우신 직분자들(왕, 제사장, 선지자)을 통해
성례적 은혜를 마음껏 베푸시는 것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들입니다.
이러한 성례적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특권을 부여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자신의 밭의 소출로는 소제를,
자신의 양과 소로는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상에 참여하는 무한한 연합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의 침공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모든 언약적 특권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외양간에 소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소유가 사라지는 정도의 심판이 아니라
참 고백을 잃어버린 거짓 교회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언약적 특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28장과 레26장에 예고된 언약의 심판,
즉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릴 때 주어질 언약적 심판이 성취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사업이 망하거나,
집에 우환이 겹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참 고백을 잃어버린 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과 공의라는 이름의 권징으로)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상속받은 모든 언약적 특권,
즉 예배적 특권, 성례적 특권을 상실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이는 하박국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예고된 바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렘8:13)
이제 얼마 후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참 고백을 잃어버린 유다 왕국에 임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약속된 나라, 가나안 땅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적 특권들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무서운 심판의 회오리 가운데서도
큰 기쁨의 찬송이 울려퍼집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8)
하박국은 어떻게 이러한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이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의 군대를
거짓 교회를 향한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시지만,
또한 이 심판의 도구를
참 교회를 보존하는 구원의 방패로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그늘 아래
다니엘과 3친구, 에스겔 등 포로로 잡혀간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는 역사를 보십시오).
하박국의 시대로부터 몇 백 년이 흐른 뒤,
심판의 도구인 십자가를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