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ARFID)이 주최하는 제4회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ISAAR)’이 16일부터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인류는 과연 세균의 무차별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를 논의하는 자리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거친 항생제 내성균은 시시각각 인류의 목줄을 죄어오고, 이를 막아낼 항생제 개발은 더디기만 하다. 의사들은 “이제 더 이상 버틸 ‘무기’가 없다”고 아우성 친다.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36개국 2000여명의 의학자, 과학자, 보건정책 관계자 등이 참가할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논문들을 미리 소개한다.
◆ 장 클로드 퍼셰(제네바대학) = 세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생물체다. 35억년 전 화석에서도 세균의 존재가 확인됐다. 세균은 아무리 혹독한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항생제를 무기로 인류는 잠깐 동안 세균을 억제해 왔으나, 내성 획득 능력이 뛰어난 세균을 이기기는 어렵다. 인류는 매년 5만t 이상의 항생제를 남용하고 있어 내성균 출현을 가속화하고 있다.
◆ 월트 윌슨(미국 메이오 클리닉) = 항생제 내성 때문에 추가로 지출하는 비용은 미국 300억달러 등 전 세계적으로 1050억달러에 달한다. 최근까지 내성균은 병원 내에서만 전염됐으나 요즘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전염되고 있다. 칸디다균 등 진균, 폐렴구균, 결핵균, 말라리아·AIDS 바이러스 등의 내성 문제가 심각한데, 특히 내성 폐렴구균과 결핵균을 효과적으로 다스리지 못하면 인류는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 송재훈(삼성서울병원) = 항생제 내성균의 위기는 제약회사들에도 책임이 있다. 오랜 기간 천문학적 개발비를 쏟아부어 항생제를 개발해 봤자 판매도 되기 전에 내성균이 출현하는 일이 빈번해 지자 80년대 이후 제약사들은 항생제 개발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몇몇 거대 제약사들은 항생제 자체 개발 포기선언을 하고, 발기부전, 고혈압, 고지혈증 처럼 한번 환자가 되면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의 개발에 더 주력해 오고 있다.
한편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선 항생제 남용뿐 아니라 오용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항생제를 써야 할 때는 세균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일주일 또는 그 이상 충분히 써야 한다. 하루 이틀 항생제를 쓰다 중지하면 죽어가던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게 된다.
◆ 필립 젠킨스(세계보건기구) = 감염질환은 전세계 저소득국가 사망원인의 45%를 차지하며, 그 중 85%는 급성호흡기질환·설사질환·에이즈·결핵·말라리아 등이다. 에이즈를 제외하면 항생제로 쉽게 치료가 되는 병들이지만 내성균의 출현으로 이제 치료가 어려워졌다. 일반적으로 개도국일수록 항생제를 잘못 사용하거나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내성률도 선진국보다 높다. WHO에서는 2001년 총 60개 항목으로 구성된 ‘범세계적 항생제 내성 억제를 위한 지침’을 마련했는데,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이 가장 중요하다.
◆ 젤라렘 테메스겐(미국 메이오 클리닉) = 현재 모두 4종류 19가지 항바이러스 제제가 에이즈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에이즈의 표준 치료법인 ‘칵테일 요법’은 이중 3가지를 섞어 쓰는 것이나, 치료제 사이의 ‘교차 내성’이 많아 실제로 쓸 수 있는 치료제는 제한돼 있다. ‘20세기의 천형’ AIDS는 칵테일 요법이 개발된 뒤 효과적으로 억제돼 왔으나, 이젠 한계에 다다랐고, 새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 우건조(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 = 돼지, 닭 등 가축의 사육과 광어, 송어 등 어류의 양식에 엄청난 양의 항생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 밖의 식품에도 항생제 성분이 다량 축적돼 있어, 식품을 통한 항생제 내성균 증가가 큰 문제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한국 국가 항생제 관리계획’에 따라 가축·어류 양식의 항생제 내성 관리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며, 식품 내 항생제 잔류량 조사 기준도 제시할 방침이다.
아시아태평양 감염 연구재단(이사장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교수)은 한국 의사가 주도하는 첫 국제 연구재단. 산하에 아시아·중동지역 14개국 29개 연구센터가 참여하는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연합(ANSORP)’과 ‘아시아 균주(菌株)은행’, ‘아태 감염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감염 질환, 항생제 내성 문제를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재단이 주최하는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ISAAR)은 1997년 이후 격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세계 36개국 2000여명의 의학자와 보건정책 관계자가 참석하는 매머드 학회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