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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김순진
1.
“잡아라. 잡아! 저 새끼 저쪽 담뱃가게 골목으로 뛰어갔다.”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는 종환이를 곤봉을 손에 든 전경 몇이서 따라갔다.
“김종환! 나와라! 너는 포위됐다. 순순히 나와라. 잡히면 죽는다!”
강 반장과 전경 몇은 핸드마이크를 들고 담뱃가게의 막다른 골목에 와서 소리쳤다.
“야, 샅샅이 뒤져! 잡히면 먼저 몽둥이찜질부터 하라구.”
최 경장은 전경들을 다그쳤다.
그때였다. 종환이는 지붕을 타고 넘어가고 있었다.
“야……, 이 병신들아. 나 하나도 못 잡는 새끼들을 좆빨라고 밥을 처먹이냐!”
2층 양옥집 기와지붕 끝에 서 있던 김종환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순경들을 향해 한 마디 던지고 지붕을 넘고 넘어 유유히 사라졌다.
“저 새끼 저기 있다. 저 새끼 잡아라! 김종환이 잡아라.”
2.
“이번 주 일요일에 서울 덕수궁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국전 전시회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연수야!”
엎드려서 공부를 하고 있던 한 살 아래인 이종사촌 여동생에게 종환이가 물었다.
“응, 누구랑?”
연수는 알면서 형제들이 들으라는 듯 물었다.
“종환이 오빠, 나두 가면 안 돼?”
중학교 2학년인 이종사촌 동생 연희가 끼어들었다.
“야, 최연희! 그냥 공부나 하시지…….”
연수가 연희를 제지하고 나섰다.
“연희야, 네가 고등학생 되면 그때 데리고 갈게. 알았지?”
종환은 시무룩한 연희를 다독이며 연수에게 눈을 꿈적거렸다.
“우리, 숙제란 말이야. 전시회에 갔다가 와서 소감문 써내는 거!”
연수가 알았다는 듯 종환이와 눈을 마주치며 연희를 윽박질렀다. 그리고는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종환은 연수의 뒤를 따라 나갔다.
“연락은 했어?”
한 살 적은 연수는 같은 고1인 종환이에게 단 한 번도 오빠라 부르지 않았다.
“아니…….”
종환이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에이, 오늘이 목요일인데 언제 연락하고 언제 가려고?”
연수는 종환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신작로 건너 무네미에 사는 문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아는 연수는 속으로 구전이라도 먹고 싶었다.
“그러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지.”
몸을 비비꼬며 종환이가 말했다.
“맨입으로?”
연수가 종환이의 손을 보며 물었다. 순간 종환이는 사랑방으로 들어가더니『베토벤의 사상과 생애』란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왔다.
“자, 이거 내가 무지 아끼는 책이야. 서울에서 유명대학에 다니는 우리 사촌형 대진이 형한테 선물 받은 책인데, 특별히 너한테 주는 거야!”
“좋아. 그럼 어디서 만날까?”
책을 건네받은 연수가 명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는 의정부터미널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문희랑 만나서 터미널로 오전 10시까지 와.”
미리 계획했던 종환이는 서슴없이 말했다.
“응, 알았어. 문희 데리고 의정부터미널로 10시까지 갈게.”
셋은 의정부터미널에서 종로5가까지 가는 12번 버스를 탔다. 전철로 갈아타고 시청역까지 가서 덕수궁을 걸어갈 심사였다. 회수권 한 장이면 종로5가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것이 가장 싸게 먹혔다. 포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동마장터미널에 가서 시청역으로 가려면 찻삯이 두 배는 더 들었다. 평소 봉황대기다 청룡기다 고등학교 야구를 보러 동대문야주장에 자주 다니던 종환이는 버스지리에 빠삭했다. 연수와 문희는 바퀴가 있어 좀 올라간 자석에 함께 앉고 종환이는 맨 뒷자석으로 가서 앉았다. 버스바닥에서는 담배꽁초가 너절하고 지린내도 풍겨왔다. 연수와 문희는 가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종환이는 그런 문희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김밥에 라면 사먹고 갈까?”
종환이의 제안에 따라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 옆 12번 버스종점에 내린 셋은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난, 라면, 너는?”
연수가 속내를 감추고 문희에게 물었다. 오라비 용돈 축내지 말고 각자 해결해자는 뜻이었다.
“난 그냥 김밥 한 줄…….”
문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김밥 세 줄, 라면 세 개요.”
종환이가 큰소리로 주문했다.
“아니야, 그러지 마! 나는 양이 적어 너무 많이 시키면 다 못 먹어…….”
연수가 종환이의 편을 드느라 한 말이었다.
“아줌마, 그냥 주세요.”
반장을 하는 종환이는 용감했다.
“네에.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경쾌함이 묻어났다. 종환이는 단무지를 듬성듬성 집어다 식탁 가운데 올려놨다. 드디어 김밥 한 줄씩과 라면 한 그릇이 각자의 앞에 놓여졌다. 양이 적어 못다 먹는다고 하던 연수는 하얀 교복 카라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해치웠다. 아주 천천히 얌전을 떨며 김밥을 먹던 문희도 마침내 라면 그릇을 들더니 후르륵거렸다. 종환이는 체면치레를 하며 보조를 맞추느라 가장 늦게 국물을 마시고 남은 단무지까지 모두 입으로 구겨 넣었고 먼저 일어섰다. 속에서 트림이 올라왔다.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모두들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으니 시장할 만도 할 것 같다.
“여기 얼마에요.”
배를 채워서 그런지, 돈을 낸다고 자랑삼아 그런지 종환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아냐, 오빠! 우리 각자 내자.”
오라비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연수가 막아섰다. 문희도 그러자는 눈치로 오백원짜리 지전을 손에 쥐고 있었다.
“어허? 여기 있어요. 아줌마!”
종환이가 헛기침을 하며 계산을 했다.
“그 학생 생긴 것도 매너도 참 남자답네!”
계산대 아줌마가 공중에 매달린 플라스틱 빠께스를 잡아당기며 거스름돈을 주워 건네주었다.
분식집을 나온 셋은 종로 쪽으로 좀 걸어 내려가 전철을 갈아타고 덕수궁 석조전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운데 분수대에서 치솟는 물길에 햇빛이 비쳐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시계 앙부일구는 1시 30분을 가르치고 있다.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란 현수막이 크게 나붙어 있는 건물 돌계단을 올라 매표를 했다. 관람료는 360원, 버스학생토큰 값의 세 배였다. 약 50페이지 분량의 200원짜리 도록을 세 권 샀다. 그림들은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다. 연수와 문희는 둘이 손을 잡고 거닐거나 함께 다녔고 종환이는 혼자 뒤따라 다녔다. 약 세 시간에 걸쳐 전시회를 구경하고 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종환이는 문희한테 짤막한 편지를 쓰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사랑하는 문희씨.’ 아니지 이게 아니지. ‘문희씨 보세요.’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그럼 어떻게 쓴다……. ‘문희야 안녕?’ 아, 이것도 아닌데…….”
제목만 쓰다가 벌써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문희야 안녕!’ 그렇게 써야지. 같은 학년인데 뭐.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그렇게 해서 별 쓸 말도 없는 종환이는 문희에게 그 예쁜 편지지를 10여 장 찢어버린 끝에 봉투에 넣고 풀을 발랐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연수야, 이것 좀 문희 가져다줄래?”
종환이가 연수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연수는 어제 종환이가 돈을 많이 쓴 걸 알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게 연수를 오작교로 몇 번의 편지가 오갔다. 다만 둘이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중3때 엄마가 돌아가신 종환이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이모네인 연수네 집에 들어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종환이는 재수생이었다. 그러다가 용돈이 궁한 종환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달라’며 지리 선생님을 졸랐다. 그리하여 초등학생 가외공부를 가르치게 되어 포천 시내로 방을 얻어나가게 되었다.
연수와 떨어져서 학교에 다니게 된 종환이는 연수에게 편지심부름을 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환이는 직접 편지를 써 우체통에 넣었다. 답장이 오가기를 1년여…….
하루는 이모부인 연수의 아버지가 종환이를 불렀다.
종환이는 학교가 파하고 이모네집으로 갔다.
“너, 이리로 앉아라.”
이모부는 작정한 듯 보였다.
“네, 이모부님!”
종환이는 자신도 모르게 꿇어앉았다.
“아니, 꿇어앉지는 말고 책상다리하고 똑바로 앉으렴.”
평소 종환이를 무척이나 아끼시는 이모부가 입을 열었다.
“넌, 공장에 다니다가 공부를 하고 있지?”
이모부는 인자하고도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모부님!”
종환이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왜 공장에 다니다 말고 공부를 하려고 했니?”
이모부가 종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요.”
종환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너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니?”
순간 종환은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
대답을 하지 않는 종환이를 보며 이모부가 말문을 열었다.
“왜 대답하지 않니? 며칠 전에 개울 건너 무네미에 사는 문희 아버지가 오셨다 가셨다. 그런데 네가 문희랑 편지질을 한다고 하더구나? 맞니?”
묻고 있는 이모부의 눈길은 매서웠다.
“네…….”
종환이가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바보로구나. 종환아. 공부는 때가 있단다. 연애는 대학교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야. 너, 그 아이와 편지질 그만하고 공부해라. 안 그럴려면 우리 집에 오지 마라. 그럴 수 있지?”
이모부의 말은 단호했다.
“네, 이모부…….”
3.
포천시청에 벽보에 경기도 지방공무원 합격자 발표가 나붙었다. 1035번 김종환 합격! 종환이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종환이의 홀아버지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곧 포천읍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종환이는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도 바라던 공무원이 된 것이다. 그런데 종환이는 공무원생활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퇴비 독려다, 밭갈이 독려다 하여 날마다 출근만하면 출근부에 출장을 달아놓고 담당 마을로 내려가 막걸리 타령을 하는 일상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희에게서 편지가 왔다. 수원의 오빠네 집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서점에 다닌다는 소식이며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종환이는 지체 없이 수원으로 달려갔다. 어른들의 만류로 계속되지 못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속에서 사랑의 욕구가 불같이 올라왔다. 서점 점원으로 있던 그녀는 종환이에게 토론을 제안했다. 소설책을 읽고 만나서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그 책 이야기만 하자는 거였다.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지오웰의 『1984』등이 그녀가 내미는 책의 이름들이었다. 둘은 토론을 빌미로 자주 만났다. 토론은 논쟁으로 이어졌고 둘은 서로를 공격하다가 화가 나 자주 싸웠다. 잦은 싸움은 둘에게 단비와 같았다. 논쟁 끝에는 화해가 이어지고 자주 술을 마시거나 맞담배를 피우며 가까워졌다.
S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문희의 오빠는 공부보다 민주화운동이 더 중요하고 바쁜 과제라 생각했다. 하루는 종환이 문희를 만나려고 수원의 그 서점엘 들렀는데 그의 오빠가 철희가 와있었다. 철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신군부의 청와대 점령 등에 관하여 피를 토하듯 설명했다. 박종철의 죽음과 이한열의 죽음을 말할 때는 울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뭉쳐 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며 힘을 합치자고 했다. 종환이는 공감했다. 그래서 며칠 후 철희를 따라 여의도 5.16광장이며 시청 앞 광장의 시위에 참여했다.
“독재 타도!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숨죽여 흐느끼며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종환이는 시위대열에서 열심히 구호를 따라 부르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철희 형의 진두지휘 아래 십만여 명의 시위대는 마포대교를 넘어 청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종환이는 철희의 지시를 따르고 심부름하는 참모였다. 자신의 본문인 지방공무원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시골집을 나온 지 벌써 3개월째다. 지난 1월 종환이 형의 같은 학교 후배인 박종철 형을 고문으로 죽인데 대하여 시위대는 분노하고 있었다.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경찰의 발표에 대하여 학생들의 눈은 뒤집혔다. 심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으로 죽은 박종철의 죽음에 대하여 종환이도 마치 자기 형제가 죽은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1천 여 명의 학생이 대 정부 시위를 벌이던 중 이 학교의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것에 대하여 전국의 대학생들과 재야세력들은 연일 시위에 참가하여 10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최루탄이 날아들었고 시위대들은 보도블록을 깨 전경들에게 투석했다. 전국의 각 관공서엔 최철희를 비롯하여 김종환까지 20여명의 긴급수배자명단이 나붙었다. 대학생들이 기숙하고 있는 집 모든 전화는 도청되었다.
종환이가 기거하고 있던 답십리동의 작은아버지댁에 들어가려고 할 때 여러 명의 경찰이 종환이를 찾아온 것을 보았다. 시골집에 전화를 거니 경찰들이 찾아왔다며 아버지가 걱정했다. 망우동 큰댁 형수님께 전화를 거니 나를 찾는 이상한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종환은 그때부터 여인숙과 노숙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희 형이 잡혀 들어갔다. 철희 형은 20년 형을 언도받았다. 도피자금을 보내주던 종환이에게 끈이 떨어졌다. 대학생들은 재야세력들이 도피자금을 대주었지만 고졸에 갑자기 나타나 시위에 참여한 종환이를 돌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중학교 동창인 명규가 가끔 용돈을 줄 뿐이었다. 명규 역시 성균관대생으로 민주화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 중이었다.
그날도 명규의 제안에 따라 청량리 굴다리시장에서 소주를 마시기로 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돼지껍데기를 시켜놓고 막 한 잔 마시고 난 참이었다. 저만치 경찰이 보였다.
“야, 종환아 튀자. 짭새다!”
명규의 말에 둘은 서로 갈라져서 뒤도 안 보고 도망을 쳤다. 그러다 담뱃가게 골목의 막다른 골목에 마주치게 된 것이다. 종환이는 담장을 넘었다. 그리고 또 한 담장을 넘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김종환! 나와라! 너는 포위됐다. 순순히 나와라. 잡히면 죽는다!”
핸드마이크 소리가 골목을 점령하고 사람들이 우수수 나왔다.
“하하하. 야이 병신들아. 그래가지고 닭이나 한 마리 잡겠냐?”
종환이는 2층 양옥집 지붕에 서서 경찰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몇 집을 뛰어넘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경찰들이 매복하고 있던 방향이었다.
종환은 청량리경찰서로 잡혀갔다.
“야 이 개새끼야! 감히 경찰을 놀려?”
차석쯤으로 보이는 경찰이 곤봉으로 종환의 어깨를 후드려갈겼다.
“윽!”
종환이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엄살떨지마 새끼야!”
또 한 순경이 발길로 허벅지를 걷어찼다. 그리고 또 한 순경이 종환이를 일으켜 세웠다.
“너 뭐야 새끼야, 이 고삐리새끼가 데모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배운 새끼들이나 하는 거지 너같은 새끼에게 데모가 가당키나 한 줄 알아! 이런 좆만한 새끼가. 에이 퉤!”
순경이 종환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경찰들은 자신을 고생시킨 종환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종환은 두 손이 묶어 중앙정보부로 호송되었다. 그곳에서도 종환이는 무차별로 매를 맞고 고문을 당했다.
“너, 누가 데모하라고 시켰어!”
“그냥 혼자 했는데요.”
“이 새끼야 최철희가 시켰잖아. 최철희 말고 또 누구냔 말이야? 이 새끼 큰아버지랑 할아버지가 6.25때 행방불명되었다고 나와 있는 걸 보니 순 빨갱이새끼 아니야!”
“아닌데요. 우리 할아버지는 화천군수로 가셨다가 인민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못 찾은 것이고, 큰아버지는 철원민주당 청년부장으로 원산에 갔다가 못 나오신 건데요.”
“거짓말 말아 새끼야. 그거 봐! 북한으로 들어간 건 맞잖아 빨갱이 새끼야! 너 말해봐 간첩을 시켜줄게 따스한 밥 먹고 우리 말 들을래? 아니면 좆나게 맞고 전방으로 군대갈래? 야, 이새끼 간첩으로 좀 만들어봐!”
“제가 무슨 간첩입니까? 전 죽으면 죽었지 빨갱이는 아닌데요.”
종환이는 절규했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민주주의를 하던 큰아버지가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빨갱이로 모는 새끼들에게 치가 떨렸다.
“야이 씹새끼들아! 내가 빨갱이면 너는 김일성이다. 개새끼들아!”
종환이는 매를 죽지 않을 만큼 실컷 맞았지만 그래도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어이, 이 과장! 이 새끼 아직 입이 살아있는 거 보니까 매를 덜 맞았군. 좀 더 조저 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 과장, 박 대리, 넵 사장님 등 회사처럼 불렀다.
“어이 이 과장, 이 새끼 전방으로 보내서 목봉체조 좀 시켜!”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큰소리로 말을 하더니 나가버렸다. 종환이를 실컷 두들겨 팬 그들은 마치 더러운 물에 손을 담근 듯 빈 손을 씻었다.
종환이는 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실신을 했다. 얼마를 잤는지 알 수가 없다. 눈을 떠 보니 하얀 시트 위에 누워있었는데 병원은 아닌 것 같았다.
“물…….”
종환이는 자신도 모르게 물을 찾았다.
“정신이 좀 드나!”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와서 물었다.
“네, 어떻게 된 거죠?”
종환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이쿠, 아구구구구…….”
몸을 일으키려던 종환이가 도로 쓰려졌다. 삭신이 너무 아파서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다.
“좀 더 누워있어. 자 물…….”
그 남자가 빨대를 종환의 입가에 대주었다. 물을 한 모금 빨아 넘기는 데도 목젖이 아팠다.
“왜, 더 마시지 않고…….”
그 남자가 안타까운 눈초리로 물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여기가 어디지요?”
“그런 건 알 거 없고 어서 몸이나 추스르게.”
종환을 애처로이 바다로던 그가 나가버렸다.
꼬박꼬박 밥이 나왔다. 식판에 담긴 밥은 국 하나에 반찬이 세 가지였는데 맛이 있었다. 며칠 밥을 잘 먹자 기운이 돌았다.
“이제 몸 좀 괜찮아? 아픈 데 없어?”
그 남자가 물었다.
“네, 이젠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출발한다.”
그와 다른 한 사람이 검정색 지프에 종환을 태운 채 어디론가 달렸다. 차창은 검게 썬텐을 해 어디로 가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디 가는 겁니까?”
종환이 물었다.
“몰라도 돼 인마! 너 같은 놈이 데모하지 못하도록 다른 데다 좀 데려다 놓으려고 하는 거야!”
“…….”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나 보다.
여기 저기 구령과 군가 소리가 들렸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아 멋진 사나이…….”
종환이가 지프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니 정문에는 ‘2973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아치형 간판이 보였다.
“아, 여기가 그 무서운 삼청교육대란 곳이로구나!”
그는 직감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 삼청교육대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종환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가 박박 깎여졌다. 그리고 연병장에 모였다.
“우리 6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신병 여러분 환영합니다.”
신병교육대장이라고 하는 소령이 올라와 훈시를 했다.
종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삼청교육대로 잡혀온 줄 알았는데 군부대로 바로 입대를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고향 이동과 가까운 철원으로 말이다.
어차피 군대는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끝나고 저녁이면 내무반에서는 편지가 허용되었다.
그는 아버지보다 먼저 문희에게 편지를 썼다. 그렇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열다섯 번……. 훈련을 마치고 최전방 철책근무로 자대를 배치를 받은 종환이는 계속해서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드디어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는 수원으로 문희를 찾아갔다. 그 서점에는 문희가 그만둔 지 오래라고 했다. 만날 길이 없다. 낙담을 한 종환은 하루하루를 비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희의 이름으로 된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문희의 필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희가 백혈병으로 죽었으니 찾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아악! 엉엉엉!”
종환은 절규했다. 같은 내무반 동료들이 달려와 편지를 빼앗아 읽어보고 종환이를 감싸 안아주었다.
4.
33개월을 만기로 전역을 한 종환이는 공무원에 복직하지 못했다. 시위에 참가한 이유로 복직은 반려되었다. 그는 세일을 전전하다가 염색 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 자취를 했다. 그 방에서 종환이는 장문의 이별시 편지를 썼다. 문희가 죽은 걸 알면서도 믿을 수 없다며 살아있는 듯 이별을 하는 시였다.
離別을 告하는 詩
여린 가슴이, 그래서 싱그러운 가슴이
순수했던 가슴이 당신을 동경했던 시절
수원산에 먼동이 트면
돌돌돌 계곡물에 눈꼽을 씻고
아카시아 숲 사이로 보던 무네미 논가
개구리소리도 정겹던 소녀의 집
하냥 그립고 그래서 사랑하녜라 고백했던
거친 세파의 격정의 세월
이젠 반월산 모퉁이를 돌아설 때 보던
공동묘지의 새 식구가 늘던 날처럼
당신의 가슴 속에서 터무니없이 그리워서 미울
까까머리 검정 교복의 소년만을
어느 날 아침 길가에서 보았던
무당굿의 제웅처럼 버려두고
아니 저 노스텔자의 손수건처럼
여름날 종로통에서 주운 철 이른 낙엽처럼
책갈피 속에 끼워두고
우연히 책 정리하다 발견했을
훗날의 미소처럼 남기우고 이제
지난날 단지하여 혈서쓰던 나와
무전 여행하던 날 너무도 당신을 그리워했던 나와
그리고 지금의 살아야 한다는 치졸스런 나를 불러
이 조그맣고 발코린내 나는
학창 시절의 자취방과 별다를 바 없는 이 하숙방에서
예전의 그리움보다는
고독으로 점철된 나로 살겠습니다.
뒷동산 참나무 숲 사이로 빛살처럼 쪼개진
내 가슴과 바위의 꿈과
팔월 여름밤 메기 낚시를 하던
카바이트불로 모여들던 불나비들도
싹둑 베어 넘어가는 무네미 논의 벼이삭들도
눈 내린 아침 뭉쳐보던 눈 뭉치의 추억도
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던
노천명 여사의 사슴처럼 눈가에 이슬이 고이며
차마 할 수 없으리라던 해서는 않되리라던
이별을 고합니다.
누구의 잘 잘못을 가리지 말고
서로가 좀 더 참고
좀 더 기다리는 이해가 있어야 했건만
우리에겐 진실된 가슴은 있으면서
이해의 가슴, 용서의 가슴, 기다리는 가슴이
없었던 것이 남들이 아파서 부르는 노래
이별의 시
뭉클해 흐르는 눈물이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좀 더 기다리지 않으셨나요.
원망도 해 봅니다. 하지만
당신을 책망함보다 내 자신에 갈려지는
채찍이 더욱 피맺히고 아픔니다.
아…,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모호처럼 밀려오는데
깡소주 한 병을 단숨에 들이키며
와인 한 잔 권하지 못함을 탄합니다.
겨울밤이 후회로 쏟아집니다.
불안과 번민이 살과 뼛속에 파고들어
아, 머리가 터질듯 괴로운데
어제처럼 침묵으로 밤이 다가옵니다.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살리라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란 시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이름은 없더라도 행복한 여인이 되소서.
내 가슴에 박힌 못은
예수의 팔다리에 박힌 그것보다
더 굵고 긴 줄 아소서.
그 축복 받은 얼굴에
그 사랑스런 목소리에
그 보드레한 손길에
키스도 한번 않고 사랑의 막이 내립니다.
아, 이 순간을 거절하고 싶다.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괴로운
그러기에 신께 간구하니
우리에게 자비를 내리시고
스스로를 잊어가기를 비나이다.
상심한 마음이 쏟아진 피처럼 경직되고
국화 향기마저 이 가을을 지키지 못하고
저 망망한 공간 속에서
시든 바랭이 풀의 영혼과도 같이
목쉰 밤고양이 울음과도 같이
겨울 고독으로 파고듭니다.
아이 추워라.
포천 천주교회 밑 움막집의 겨울도
이렇듯 춥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이 겨울은 껍데기만 살아남을 뿐
뜨거운 가슴도 사랑의 정열도 모조리
얼어 죽고 말게다.
당신으로 인하여 내게는
너무 많은 것들이 떠났습니다.
사랑이 떠났고 그리움이 떠났고 기다림이 떠나
빈 가슴에 고독의 씨앗이 자랍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냥 스쳐가 버린 것은 아닙니다.
벌 나비 노닐다 간 한 떨기 야생화가 섭섭함을 말합니까?
며칠 몇 달 몇 년을 내 곁에서
웃어주던 그대의 형상
퇴색된 노우트 속의 낯익은 그대 이름 이름들…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낙엽은 외로워 뒹구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돕기 위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진 대사입니다
내년 봄에도 또 다시 잎새는 돋아납니다.
봄을 기다립시다.
저 황량한 도시의 골목 바람을 이기고
바짓가랑이 치마 밑으로 파고드는
바람을 재우려 단추를 잠그고 지퍼를 올려
새로운 사랑이 돋아날 봄을 기다립시다.
하지만, 옛날의 나물 캐던 봄이 좋았듯이
삘기 뽑아 먹고 버들피리 불던 봄이 좋았듯이
내년의 봄이 돌아올 봄이
지난해의 봄 지나간 봄들만은 못하리라.
그래도 하냥 봄을 기다립시다.
주단 같은 철쭉과 유치원 버스 같은 개나리가
냉이 꽃다지를 노래하며
쑥이랑 메를 캐던 냇가와 논두렁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네 아픈 가슴엔 사랑이 또다시 피어나리다.
피어나야만 한다.
싫다, 싫어!
내가 왜 이런 시를 써야만 하는가?
자학이다. 자책이야!
네가 김소월이쯤 되는줄 아니?
그래서 말없이 고이 보내는 거냐?
주단이라도 깔아주지 그랬냐?
난 간다고 그러지 않았는데 네가 보냈다.
넌 간다고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보냈듯이.
심장질환도 없는데 가슴이 저려옵니다.
별 슬픔도 아니라고 믿으려 했는데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이별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잘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그냥 돌아서면 이별인가요?
그러긴 싫은데…
당신이 내게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진정 사랑했다 하였듯이
나도 또한 그러하녜라 외치며
이 밤 당신의 사진과 이 시를 편지봉투에 넣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주소를 적습니다.
부디 안녕히…
그 편지를 끝으로 문희에 대한 생각은 단념했다. 공장에 다니던 일도 부질없는 것 같아서 다니고 때려치우기를 반복했다. 문희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사는 게 부질없는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공장을 해서 망하고, 구멍가게를 해서 망하고 식당해서 망하고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그는 결국 노동판을 전전했다. 그러다 노점 리어카를 끌고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맘대로 안 돼서 어묵에 튀김을 만들어 팔았다. 딸린 식구들이 있으니 입에 거미줄은 쓸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손님이 있을 땐 튀김을 만들어 팔고 밤이면 글을 썼다.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세상이 보이고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되기로 맘먹었다.
쫄딱 망해 길거리로 나앉았던 종환이 가족이 아이들이 성장해가니 살림형편이 좋아졌다. 그리고 종환이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러던 중 문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문희의 오빠 철희가 자살해서 죽고 문희이 아버지는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하느냐?’며 자살을 했고, 그 이듬해에 문희의 엄마도 홧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문희는 서대문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종환이는 깜짝 놀랐다. 죽은 줄만 알았던 문희가 살아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이별을 고하는 시를 써 문희에게 부칠 때 종환은 문희가 죽었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었다. 결국 문희는 오빠가 죽었을 때 자신이 죽었다고 대필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종환이는 요즘 문희의 소식을 가끔 듣지만 문희는 ‘옛 기억들을 모두 지우고 싶어 종환이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단념했다. 그녀가 지근거리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다. 그녀가 잘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