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부터 햄스터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긴 것이 꼭 꼬리 잘린 쥐같이 생겼다고 가족 모두가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특히 어머니나 아버지는 쥐를 어떻게 집에서 키우냐고, 시궁창에서 쥐하나 잡아서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호주 어디에서는 바퀴벌레를 애완용으로 키운다더니 세상이 말세가 아니냐고 하면 나로서도 따로 할 말이 없는 것이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동생이 친구가 사주었다며 태어난지 한 달도 안된 햄스터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가지고 들어왔다. 고작 3000원도 안되는 그 녀석은 손가락 하나 보다도 작았다. 그렇게 작은 것이 눈, 코, 입 모두 달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녀석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러 친구, 형제들과 함께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 같이 주인 아주머니의 손이 자기들의 보금자리 안에 들어오더니 자신을 들어냈겠지. 그렇게 들려진 녀석은 비닐 봉지에 담긴 채 불안정하게 앉아서 내 동생의 손에 들려왔다. 자신의 형제들과 떨어지는 게 두려웠는지 아니면 자신을 어디로 데리고 갈까 불안했는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비닐 봉지 안은 녀석의 오줌으로 꼴이 말이아니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들도 불안하고 긴장하면 자주 오줌을 눈다. 처음 이 녀석과의 대면은 가족들이 우려했던 바로 그 모습, "시궁창에서 갓 튀어나온 쥐" 바로 그 꼴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서 녀석을 기르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녀석의 운명은 불안정했다. 만약 부모님이 계속 반대한다면 하수구에 버려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것을 부모님은 당연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쥐는 쥐들의 세계로 가야 행복하다"는 논리일 것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햄스터가 쥐인지 과연 집쥐, 들쥐들의 세계에서 행복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녀석을 맞은 우리는 햄스터의 운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마치 아담을 만들어낸 여섯째날의 하나님처럼 우리는 햄스터의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 귀동냥한 것을 토대로 "햄스터는 새끼를 낳으면 무조건 어미가 잡아먹는다. 햄스터는 하나만 기르는게 적당하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신성한 '가족 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졸지에 녀석은 원치 않는 독신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성한 가족 회의의 의결로 햄스터는 '에덴 동산'의 아담처럼 자라게 되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아담의 하나님은 1명이었고, 햄스터의 하나님은 4명이었다. 우리는 햄스터를 키우는 다른 집에서 그러하듯 햄스터 집이라고 할 만한 규격화된 집과 쳇바퀴, 사료를 준비했다. 다만 우리가 이웃집 예진네의 햄스터나 삼층 고호네 햄스터 보다도 더 행복하게 자라게 하리라 결심한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햄스터가 우리 집에 온지 1년하고도 4개월여가 지났다. 우리 집에 올 때 약 1달 정도 된 상태였으니 이제 만 1년 5개월 정도가 된 것이었다. 햄스터의 평균 수명은 3~4살이라고 한다. 인간에 비하면 참 하룻 밤 꿈같은 시간이지만 하루살이에 비하면 거짓말 좀 섞어 영생을 얻은 셈이다. 아무튼 지금 햄스터의 나이를 인간의 나이로 바꾸면 30~40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 이 녀석이 심상치 않다. 먹이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쳇바퀴를 매일 같이 돌리던 그 힘찬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밥을 줘도 시큰둥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도무지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인다.
하루는 그런 햄스터를 바라보던 아버지께서 가만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우리는 죄받을 거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지 아니면 엉터리 불교 신자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불교적 성향을 강하게 띄어 온 아버지 다운 말이었다. 늘 햄스터가 전생에 우리와 인연이 있다는 둥, 햄스터보고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둥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말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결론은 이랬다. "평생 혼자서 저렇게 살면서 숫놈도 한 번 못보고 친구도 한 번 못보고 새끼도 못낳고 저렇게 외롭게 만들었으니 나중에 죄 안받겠나?"
나중에 죄를 받을 지 안받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말로 인해 요즘 햄스터의 이상한 행동이 약간 이해가 되었다. 동물과 대화를 한다는 미국의 어떤 심령학자는 "동물과 대화를 하는 것은 나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동물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자신의 생각이 현재 그 동물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매일같이 밥은 주지 않지만 그동안 햄스터와 묘하게 교감해왔던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어느 정도 정확성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의 손에 잡혀서 이상한 우리 속에 갇힌 그 운명. 평생 수컷 햄스터를 구경도 못한 - 물론 암컷 햄스터도 구경하지 못했다 - 선택하지 않은 독신의 외로움이란.
나도 가끔 혼자 있을 때면 사람이 너무나도 그립다.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남자나 여자나 평생 자신의 반 쪽을 갈구하며 사랑을 찾는 것이 또 사람이다. 똑같은 생명인데 햄스터라고 다를까. 밥을 줘도 싫고, 만사가 귀찮고 멍하니 앉아만 있는 햄스터의 감정이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나마 외롭다고, 여자가 없다고 친구에게 토로나 할 수 있겠지만 햄스터는 그 것도 불가능 하다. 혼자서 외롭다 생각만 할 뿐이지 이야기할 친구조차 없다. 가끔 집 속의 톱밥 속에 구멍을 뚫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이발사처럼 그렇게 "찍-찌익"하고 외치는 수밖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햄스터도 생긴 것이 귀엽다고 언젠가부터 인간의 손에 이끌려 자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만약 햄스터의 털이 뱀가죽 처럼 흉했더라면, 햄스터의 크기가 공룡만큼 컸더라면, 햄스터의 울음 소리가 돼지의 그 것과 같았다면 햄스터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흔히 애완동물이라 하는 것들은 외로워도 토로할 길도 해결할 길도 스스로 찾을 수 없으니 슬픈 일이다.
만약 불교의 진리가 사실이라면, 우리가 몇 백 겁을 윤회하여 언젠가 햄스터로 태어나 톱밥 가득한 우리 안에 갇힌다면 어떨까. 그 때서야 왜 예전에 햄스터를 잘 대해주지 못했을까 하며 "찍-찌익" 울고, 정말 외롭다고 "찍-찌익"울며 멍하니 톱밥 속에서 앉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첫댓글음.. 아덴 동산의 이브네요~ 아담이 아니라.. 후훗.. 잘 읽었어요.. 귀여운 햄스터가 오줌때문에 지저분해진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네요..~ 가슴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그 햄스터는 4명의 하나님 덕분에 그리 외롭진 않았을것 같은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첫댓글 음.. 아덴 동산의 이브네요~ 아담이 아니라.. 후훗.. 잘 읽었어요.. 귀여운 햄스터가 오줌때문에 지저분해진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네요..~ 가슴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그 햄스터는 4명의 하나님 덕분에 그리 외롭진 않았을것 같은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얼마전에 키웠던 햄스터가 생각나네요. 한쌍이 왕돌이,왕순이로 자랐지요. 왕돌이가죽고 왕순이가 새끼를 낳았는데2마리를 모두 해치웠더군요, 왕순이가.......그후로 2달쯤...지난후에 왕순이가 쳇바퀴밑에 끼어서 죽었어요. 일가족이 몰살했지요. 술픈 가족사지요.......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