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이 계절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오늘,12월 12일 제 2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국립극장에서 열립니다.
저는 초록 물고기로 ,박하사탕으로 여러부문에 걸쳐 청룡 영화상을 수상한바 있습니다.
올해는 출품작도 물론 없습을 밝히면서
이 글을 영화인 여러분과 우리 영화를 아껴주시는 모든분들께 드립니다.
영화판에서 언제나 문제만을 야기하고 좌충우돌 여러분들을 불편하게만 하였던 제가
또다시 이런 글을 올린다는게 현장에서 애쓰시는 동료 영화인 여러분께 부담을 드릴까 두렵습니다만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상 이란것이 그 상의 주최측과 상관없이 영화인의 축제이어야하고,
관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으로 보는것이 마땅할것이라는 견해에도 동의합니다만,
혹시 바쁘셔서 관심을 놓치셔서 무르실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띄웁니다.
올 한해에 극장에 걸렸던 한국영화 대부분이 후보작에 포함된 청룡영화상은 외견상 스포츠조선이 주최하고 있지만
이 회사가 조선일보의 자회사인 이상 사실상 조선일보가 주는 상이라고 봐야겠지요.
청룡영화상은 작가 황석영 씨의 '심사 대상 거부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동인문학상만큼이나
조선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행사입니다.
문학보다도 몇 배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진 영화이기 때문에
'청룡영화상'을 통한 조선의 '영화인 길들이기'를 더더욱 좌시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다시는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겠노라고 늦게나마 결심을 표명하였습니다.
지난해 청룡영화상을 기억하십니까? 분단문제를 다룬 가 많은 부분의 상을 받았었죠.
감독상 수상직후 박찬욱 감독은 [월간조선] 기자와 인터뷰를 했고,
월간조선은 "순진한 휴머니즘으로 분계선을 넘으면 인생이 박살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라는 말을
큼지막한 타이틀로 달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담겨있는
분단에 대한 감독의 고민을 왜곡하고 민족화해의 가능성을 웅변했던 영화의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그런 말을 제가 하긴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다만 농담으로 했다는게 차이라면 차이죠... 현역 근무병들이 이 영화를 보고 '아,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이북 애들이랑 노는 건 좋은 일이구나. 나두 해봐야지'하고 막 넘어가면 어쩌냐는 질문을 받고...
오히려, '아, 넘어가서 놀 땐 신날지 몰라도 결국은 좆 되는구나.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그 얘기를 하면서 제가 막 웃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게 진지하게 한 말로 기사가 나가고 헤드라인으로까지 뽑힌 걸 보면...
인터뷰를 당하다 보면 그런 식으로 맥락이나 뉘앙스가 사상된 채 엉뚱하게 전달될 때가 많은데
그런 일을 꽤 겪어보고도 경솔히 입을 놀린 제가 죽일 놈입니다." -- JSA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린 박찬욱 감독의 말입니다
청룡영화상 수상 당시 박 감독은 "분단의 비극 때문에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지만, 고통을 준 주체에는 조선일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일을 저해하고 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분단지향적이며, '할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픈 말만 왜곡보도하는' 깡패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 12일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조선일보 반대를 위한 영화인선언>이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권력집단의 곡필과 만행을 규탄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왜곡보도로 언론권력을 유지하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지적하고
구독과 기고, 인터뷰 거부 등을 벌여나갈 것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선언>이 있은 직후에도 "이름도 없는 몇몇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생쑈한다"고 비아냥대는 등의 작태를 보였습니다.
더욱이 [월간조선] 최근호에서는 아직 제작 중에 있는 영화를 사상검증의 도마 위에 올려 영화제작에 재를 뿌렸습니다.
지역에서 만들어지던 작은 저예산 영화 <애기섬>에 주목한 것은
영화촬영에 협조한 군 수뇌부를 흔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것 같다고 <애기섬> 장현필감독이 말하더군요.
월간 조선은 여순 사건을 소재로 좌우익 출신 등장인물로 하여금 역사의 화해를 강조한 다큐멘터리 극영화 <애기섬>을
영화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좌익을 옹호하는 영화로 단정지었습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사전검열이며, 창작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인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수 없는 사건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반정부 선동도 서슴치 않은 조선일보는
정작 다른 사람의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가차없이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영화제에 들러리를 선다는 것은 영화인들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저지른 민족과 국민을 상대로 한 횡포는
멀리 일제치하에서의 반민족행위부터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시녀로서 벌였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수구기득권세력의 대변인으로의 반사회적 행동, 탈세 등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런 신문이 '생색'을 내기위해 마련한 영화제에 참석하고 수상을 한다는 것은
영화인의 자존심에 흠집만 남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작비의 절반이 마케팅에 쓰일 정도로 언론홍보의 비중이 커진 영화계가
특정언론을 반대하고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영화인들이 양심과 자부심에 호소합니다.
결단을 내릴 시간입니다.
조선일보가 영화의 표현의 자유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인이라면 분노하고 청룡 영화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앞으로 만날때는 보다 훈훈하고 사람냄새 나는 일로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일에서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
2001년 12월 12일 새벽에
주식회사 이스트필름 대표
씨네씨 대표
영화배우 명계남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