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 "정복할 수 없는" 아다마스 (adamas)
빛, 생명, 태양, 영속성, 불후성, 지조가 굳음, 성실, 순진무구함
다이아몬드는 숫염소의 핏속에 용해될 수 있는 성질과 불에 대한 자석의 작용을 제거하는 성질을 보유하고 있다. 17세기 전후, 또는 문명권에 이르기까지 미신이 기승을 부릴 때 다이아몬드는 정화의 효력과 무적의 덕성, 그리고 생산성(다이아몬드는 스스로 또 다른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낸다.)으로 찬양을 받았다. 또한 다이아몬드는 번민을 없애주고 귀신을 쫓으며 백내장을 회복시켜 주는 치료제로도 여겼다. 아랍의 민간 의술에서는 "완전한 돌"인 다이아몬드가 육체와 마음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저주받은 호프 다이아몬드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타이타닉의 그 목걸이는
호프 다이아몬드가 모델이었던 것이다! 카메론 감독의 상상력, 혹은 패러디?)
1669년 초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사들인 이 보석은 프랑스 궁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귀하고 푸른 다이아몬드"라고 불렸다. 루이 14세는 이 보석을 단 한 번 밖에 몸에 지니지 않았고 루이 16세는 황금 양털 위에 박아 넣을 때까지 마리 앙트와네트가 지니게 했다.
1792년 왕실 가구 보존관 침입 시 도난 당했다가 1830년 더 작아진 모습으로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내 런던의 은행가 호프에게 팔렸다.
호프가문은 모두 빈곤으로 사망하였으며 1887년 헨리 토마스의 처가 죽었을 때 그녀의 외손녀인 유카슬로공에게 유산으로 남겨졌다.
그 후 이 돌은 경제적인 곤경으로 매각되어 1908년 터키 황제 압둘 하미드 2세에게 40만 달러에 넘어갔고(하지만 술탄은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언 넘이 들고 튀었다는.) 1911년 피에르 카르티에(Pierre Carter)가 손에 넣었다가 당시 워싱턴 포스트지의 소유자였던 에드워드 B. 맥클린 부인이 구입했다.
호프 다이아몬드에는 많은 살인사건과 두 곳의 왕가에 재난을 안긴 재앙에 얽힌 보석이었음에도
맥클린 부인은 이 돌이 불길하다고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허나, 1918년 어느 날 양친으로부터 광적인 보호를 받던 9살 된 아들 빈슨이 보디가드의 눈을
피해 길을 뛰어 건너다 자동차에 치어 사망했고 또한 남편 맥클린은 스캔들에 휘말려 부인과 이별,
정신 이상으로 요양소에서 사망, 딸은 수면제 과용으로 사고사하였으며 수 개월 후인 4월 26일 맥클린 부인도 폐렴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1947년, 뉴욕시의 보석상 해리 윈스톤은 이 유명한 보석을 179,000달러에 사서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연구소에 기증했다.
1962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장식품 10세기의 발자취"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다이아몬드는 보통의 빛에서는 청색이나, 자외선 밑에서는 형광과 인광을 내며 밝은 적색으로
보이는 특이한 다이아몬드이다.

상시 (Sancy)
55캐럿트의 페어 모양인 상시는 버건디 지방의 군주인 찰스 더 볼드가 소유 했다가 1477년 전장에서 분실 하였다.
상시라는 이름은 16세기 후반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 상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프랑스 국왕 헨리 3세는 이 다이아몬드를 빌려 자신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한 모자에 장식하기도
했다. 헨리 4세도 상시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빌린 적이 있다.
1664년 영국의 제임스 1세에게 팔린 후, 1688년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제임스 2세가 파리로 망명, 그 뒤 프랑스 혁명 때 자취를 감추었다.

리젠트 (Regent)
다른 위대한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탐욕과 살인사건, 자비에 얽히고 정치적,사회적,개인적 트러블이 최후까지 따라 다녔다.
410캐럿트의 원석으로 1701년 인도의 키스트난 강의 파틸 광산에서 한 노예가 발견 했다고 전한다.
이 노예는 다리에 상처를 내어 원석을 붕대 속에 감춰 도망쳤다. 영국인 선장에게 비밀을 말하고 피신시켜 주면 반을 나눠 주겠다 제의했으나 선장은 노예를 죽인 뒤 원석을 쟘천드라는 보석상에게 5천 달러에 팔았고 죄의식의 정신착란증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1702년, 원석은 마드라스의 통치자 토마스 피트(영국의 윌리암 피트 수상의 할아버지.)에게 넘어 갔다. 그는 이것을 영국에 보내 쿠션쉐이프 브릴리언트로 커트하였고 원석은140.50캐럿트의 돌과 작은 돌들로 나뉘어졌다.
1717년, 이 커트된 보석은 프랑스를 섭정하던 오를레앙공 필립 2세에 65만달러에 팔린 후 리젠트 다이아몬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1772년 루이14세를 위한 대관식의 왕관에 붙여졌고 마리 레신스커 왕비는 왕관에서 이 돌을 다시 빼어 머리의 장식품으로 사용 했으며,
1792년 왕가의 보석들이 도난 되었을 때 없어졌다가 파리의 어느 다락방에서 발견된 뒤
1797년 나폴레옹을 돕기 위해 저당에 잡혀지기도 하였다.
나폴레옹은 이 돌을 칼자루에 넣어 1804년 대관식에 착용했고, 그가 엘바섬에 유배된 뒤 두번째 처 마리 루이자를 통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시스 1세에 넘어 갔으나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1825년 찰스 10세의 대관식에서 착용되고 나폴레옹 3세 시대까지 왕관에 붙어 있다가 국유재산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진열되었다.
1940년 독일군의 파리 침략 때 어느 판자 속에 감추어져 무사하였고, 종전 뒤 되돌아와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아프론 화랑에 진열되 있으며 가끔 "백만불짜리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질 때도 있다.

호텐시아 (Hotensia)
복숭아 빛 다이아몬드인 호텐시아의 무게는 20캐럿이다. "호텐시아"는 나폴레옹의 양녀이자
조세핀의 딸 이었던 네덜란드 여왕 호텐스 보하르네스(Hortense de Beauharnais )의 이름을 따서 붙여 졌다. 루이 14세가 사들인 후 프랑스 왕관에 장식되어 있으며, 현재 리젠트와 함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센터너리 (Centenary)
1986년 7월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리미어 광산에서 원석상태 599.10 캐럿으로 발견되었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연마사인 가비 톨코프스키(Gabi Tolkowski)의 지도하에 소수 정예팀이
총 3년에 걸쳐 이 원석을 최고 품질인 D color, FL 등급의 다이아몬드로 연마 하였다.
총 247면으로 연마된 이 다이아몬드는 윗부분 164면 아랫부분 83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센터너리로 명명된 총 273.85캐럿트의 이 다이아몬드는 530.20 캐럿의 컬리넌 1세(위대한 아프리카의 별), 317.40캐럿트의 컬리넌 2세(아프리카 제2의 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다이아몬드이다. 1991년 5월 처음으로 런던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의 크기이다.

테일러 버튼 (Taylor-Burton)
69.42캐럿 크기의 페어모양으로 된 이 다이아몬드는 1969년 경매에서 매입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
명명하기로 했다. 그 결과 뉴욕의 보석상 카르티에가 구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지만 다음날,
리차드 버튼이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구입함으로써 테일러 버튼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컬리넌 (Cullinan)

지금까지 발견된 보석용 다이아몬드로서 세계 최대 3,105 캐럿트의 컬리넌은 1905년 남아프리카의 프리미어 광산에서 감독으로 일하는 프레드릭 웰즈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이 돌의 모양은 팔면체의 결정이 아니었다. 가장 큰 평면은 벽개(Cleavage)에 의해 일부가 떨어져 나간 면이었고, 이 거대한 원석의 떨어져 나간 나머지 부분을 찾기 위해 수많은 채광자나 시굴자가 의욕을 불태웠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트란스발 정부에 매입되었고 1907년 11월 9일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의 66회 생일에 증정되었다. 영국에 보내 질 때 위험부담으로 125만 달러의 보험에 들었고 에드워드 7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회사인 앗셔(Asscher)에 이 돌의 커팅을 의뢰 했다.
이 거대한 원석은 9개의 커다란 보석과 96개의 조그마한 브릴리언트. 그리고 9.5캐럿의 연마하지 않은 파편으로 나뉘어졌다. 지금 9개의 큰 돌은 영국 왕관(British Crown Jewels)에 있거나 또는 왕족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이 이름 높은 Cullinan의 세공품은 다음과 같다.

컬리넌 1세
1) 컬리넌 1세 : 가공된 다이아몬드로서는 세계 최대이고 "거대한 아프리카의 별"로 불려지고 있다. 74면의 연마면을 가진 페어쉐이프(Pear Shape: 물방울형)로 530.20캐럿이다. 에드워드 7세는 이것을 국왕의 지휘봉(Sovereign"s Royal Scepter)에 장식하여 런던탑에 진열해 놓았다.

컬리넌 2세
2) 컬리넌 2세 :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컷트된 다이아몬드.
317.40캐럿트의 컬리넌 2세는 66면의 연마면을 가진 쿠션쉐이프형으로 영국 황실의 대표적인 왕관Imperial StateCrown에 장식되어 있으며 현재에도 영국의회의 개회식과 대관식 등, 큰 행사에 사용 되고 있다.
3) 컬리넌 3세 : 94.40캐럿트. 페어쉐이프 다이아몬드로 메리여왕 왕관의 Finial에 셋팅.
컬리넌 4세와 함께 펜던트 브로우치로서 몸에 착용 할 수도 있다. 메리여왕의 초상화에는 이 두 개의 보석이 잘 나타나 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마찬가지로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
4) 컬리넌 4세 : 63.60 캐럿트의 스퀘어 브릴리언트로 메리여왕 왕관의 밴드에 셋팅되어 있다.
5) 컬리넌 5세 : 하트 쉐이프의 18.80 캐럿트. 원래는 브로우치였으나 메리여왕 왕관의 서클렛으로 몸에 붙일 수 있는 틀에 셋팅 되어 있다.
6) 컬리넌 6세 : 11.50캐럿트의 마키즈 컷. 원래는 에드워드 7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에게 선물한 것이다.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가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목걸이의 드롭으로서 몸에 부착하고 있다. 컬리넌으로 부터 커트한 돌 중에서 가장 착용 빈도가 많다.
7) 컬리넌 7세 : 8.80캐럿트의 마키즈 컷트. 브로우치의 펜던트로 셋트되어 있고 이 브로우치의 중앙에는 컬리넌 8세로 유명한 6.80 캐럿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가 붙어 있다. 컬리넌 9세는 4.39캐럿이고 메리여왕을 위해 만들어진 반지에 셋팅되어 있다.

코이누르 (Koh-I-Noor)
이 다이아몬드는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그 전설적인 역사 때문에 가장 유명한 다이아몬드로 회자된다. 이 전설은 고대 인도의 카르나 전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에서는 야무나 강가에 버려진 아기의 이마 위에서 코이누르가 발견되었는데 안내인의 딸이 이 아이와 보석을 궁정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 아이는 바로 태양신의 아들인 카르나였다.
그 당시 6백 캐럿의 무게가 나가던 이 보석은 시바 신의 계시의 눈인 제 3의 눈에 갖다 붙여졌다.
말와의 라자 소유였던 이 보석이 처음으로 연대기에 등장한 것은 1304년이었다. 그리고 2세기 뒤인 1526년 무굴 제국의 시조 바부르의 보물들 속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페르시아의 군주인 나디르 샤가 1739년에 델리를 약탈하여 휩쓸 때까지 200년 동안 무굴인들은 이 보석을 간직했던 것이다. 희생자를 큰 잔치에 초대하고 평화의 표시로 적들끼리 터번을 교환하는 관습 덕분에 나디르 샤는 이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시 무갈제국 황제인 모하메트 샤는 이 보석을 터번 속에 감추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정복자 나디르 샤가 터번의 교환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터번에서 이 보석이 굴러 떨어졌을 때 나디르 샤는 "코이누르" (빛의 산이라는 의미) 라고 외쳤고 그 뒤로 코이누르라 불리게 된다.
나디르 샤의 아들 샤 로크가 멸망당한 뒤 아프카니스탄의 왕 디라니에게 넘어가고 다시 펀잡의 사자라는 란지트 싱그의 것이 되었다가 시크교도의 반란 후에 동인도 회사가 이 보석을 소유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창립된 동인도 회사는 250주년을 기념해서 1805년 이 보석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증정했다.
1851년 런던의 Crystal Palace 전시회에서 이 돌이 전시 되었을 때, 인도식 컷으로 인한 광채가 적었기 때문에 실망한 빅토리아 여왕은 재세공를 명했고 이 작업으로 186 캐러트의 올드 인디언 컷이 108.93캐럿트의 오우벌 브릴리언트 컷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의 의도대로 이 큰 다이아몬드를 브로치로 몸에 달았다. 이 컷으로 코이누르-빛의 산은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그 명성은 수그러드는 일이 없었다. 현재 런던탑 왕관 보석의 중요한 보물로 보관 되고 있다.
여왕은 여자에는 해당되지 않으나 코이누르를 소유한 남자에게는 불행이 온다는 미신적이기는 하지만 진지한 인도의 옛 전설을 받아들였다.
(다 멸망했으니 알만하군. 왕이 보석 모으는데만 정신이 팔려있으니 그렇지..-_-)
따라서 여왕은 이 다이아몬드가 남자에게 상속되었을 때에는 오직 그의 부인만이 착용하도록
지정했고 이 요구는 항상 존중되어져 왔다.

현재 영국 왕관에 있는 모습
아이돌스 아이 (Idol"s Eye)
아이돌스 아이는 작은 달걀 크기의 납작한 페어모양이며 무게는 70.20캐럿이다.
도난 당한 것으로 유명한 이 다이아몬드는 신전의 동상에 박혀 있는 두눈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캐시미어 족장이 라시타 공주를 납치해간 터키 황제에게 몸값으로 아이돌스 아이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로프 (Orloff)
오로프 다이아몬드는 전설과 사실이 어우러져 있는 세계적인 커다란 다이아몬드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작은 달걀의 반쪽과 같은 형태로서 위는 로즈커트(Rose cut)로 되어 있고 밑부분은 평평한 높이 22.2mm, 폭 31.8mm, 길이 34.9mm의 크기를 지닌 189.62캐럿(일설에서는 194.75캐럿 )의 다이아몬드이다.
오로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관계되어 있다.
많은 보석의 권위자와 작가들은 이것이 타베르니에가 인도에서 보았으나 그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던 바로 그레이트 무갈(Great Mogul)이라 믿고 있으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돌은 1739년 나디르 샤(Nadir Shah)가 델리를 침범하여 약탈해 간 전리품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타베르니에는 호프 다이아몬드를 루이 14세에게 판 상인이기도 하다.)
이것이 나디르 샤가 암살된 후 도난 당하여 절도와 살인등 극악한 방법에 의해 떠돌다가 결국은 암스테르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는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의 지배권과 그에 따른 부(富)를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Carnatic War)을 하던 18세기 중반 인도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의 한 병사가 마드라스(Madras)의 스리랑감 (Srirangam)으로 행군하던 대열을 이탈하여 탈영하였다. 그 도시에 다이아몬드로 만든 눈을 가진 스리랑가(Sri Ranga)신의 사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이아몬드 눈 중 하나는 특히 뛰어나 청록색의 깨끗한 물과 같은 색상을 지녀 "바다의 태양(Sun of the Sea)"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미치광이 같은 그러나 기가 막힌 계획을 세워 곧 실행에 옮겼다.
사원 예배에 숙달될 만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결과 바라문도로서 승인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 신성한 눈을 빼내어 마드라스로 달아난 것이다. 그는 즉시 그것을 영국의 한 선장에게 2,000파운드에 팔아버렸다.
몇 달 후 선장은 런던에서 이 돌을 1 2,000파운드에 코제(Khojeh)라는 페르시아 이름을 가진 유태인 바이어에게 팔았다.
코제는 런던에서 이 돌을 팔려고 몇 번 시도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여 중요한 다이아몬드의 연마 지역인 암스테르담으로 가지고 갔다.
그는 네덜란드내 각 도시의 부유한 외국인들을 찾아다니며 보석을 팔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만이 이 돌에 흥미를 가졌고 코제는 이들 상류사회와의 교제에 실패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절망감에 싸여 이 돌이 팔릴 모든 희망을 점차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773년 말경, 과거 에카테리나 2세의 총애를 받았던 러시아의 그레고리 오로프 백작과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오로프는 여제의 새로운 애인 포템킨(Potemkin)과 경쟁중이었는데 이 화려한 다이아몬드의 존재를 발견하고 여제의 총애를 다시 한번 받기 위해 구입을 결정한다.
그러나 에카테리나는 다이아몬드를 기꺼이 받기는 했지만 결코 착용치 않았으며 다만 왕홀의 위에 박아 넣었다. 보석에 오로프의 이름을 수여하는 영예만 주었을 뿐 포템킨에게 총애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올로프는 점점 의기소침해졌고 결국은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 오로프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왕홀은 지금도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폴레옹과 관련된 또 다른 오로프의 전설이 있다.
그의 위대한 군대가 1812년 모스크바로 진군해 들어올 때 러시아인들은 어느 사제의 무덤에 보석을 감추었다. 나폴레옹은 그 보석이 숨겨진 위치를 알아내었는데 그 보석에 손을 대기만하면 사제의 유령이 나타나 신성 모독자에게 무서운 저주를 준다고 하여 그 황제는 다이아몬드를 가지지 않고 그냥 도망쳐 버렸다고 전해진다.
때때로 이 다이아몬드는 Orlov 또는 Orlow라는 철자로도 쓰이며 라자레프(Lasarev) 또는 셉터 (Scepter)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