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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수고했다" "그래 생각보다 빨리끝났네" " 그래도 포옹은 한번 해야지 그렇지...."
우리는 억지춘양으로 서로 끌어안았지만 별감동이 없었다.
"야 추운데 빨리 하강하자" " .........." 나는 낙짜.(자일내려가니 밑에계신분들 주의하세요)!!!!.....
소리치며 로프를 아래쪽으로 집어던졌다. 그렇게 우리의 Performance는 별감흥없이 끝났다.
푸른창공에 로프던질때 그아래 행복이있고
그보다 더욱 높이 던질때 행복은 가까우리
오색찬란한 무지개찾아 어제도 오늘도 로프를 메고
하늘끝까지 높이던질때 행복은 미소지리...
지금부터 30 아니 정확히 31년전인 1981년 1월중순의 어느날, 1975년에 초등(초등자 : 김재근-서울어센트
산악회, 하다께야마(白+田山參四郞) - 일본히로시마산악회(廣島山岳會)가 약 9시간걸려 올라갔슴) 하고나서
좀처럼 재등(再登)되지 않고있던 강원도 춘천 강촌소재 얼어붙은 구곡폭포(九曲瀑布 60m중 50m가 직벽)를
3년동안 벼르고 벼른 끝에 나와 동료 이 준(李俊)군이 4시간 20여분의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섰다.
그동안 겨울가뭄이 심하여 상단부에 고드름만 형성된해도 있었고 날씨가 너무포근하여 결빙상태가 안 좋은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열악한 장비로 인하여 또 솔직히 실력부족으로 엄두가 나지않아 미루고 미룬 끝에 이룬결과라
가슴 뿌듯하였으며 당시 산악계에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우리는 그여세를 몰아 장수대 "실폭", 잦은바위골
"50M폭/100M폭포", 설악산 "토왕성폭포" 등을 계속 연이어 등정이 완료되었다.
그동안 얼어붙은 폭포를 등반하는 기술은 10齒아이젠(밑으로만 톱니가 10개)에 피켈(Pickel)로 계단
(Step Cutting)을 만들며 올라가는 방식이어서 경사가 급한 빙벽은 등반이 불가능 하였으나 굳이 오르려고
하면 인공등반(Artificial-Climbing)방식을 택하여 사다리(Ladder)를 이용하여야 하였지만 1970년대 초반
12齒(기존의 10발에 코끼리상아같이 2齒가 앞으로 튀어나온) 아이젠이 개발되면서 프론트 포인팅(Front-
Pointing) 등반방식이 유럽으로부터 보급되어 빙벽등반기술이 한단계 아니 열단계 Up-grade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빙벽의 초등이 속속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등산후진국인 우리나라도 이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당시만해도 우선 먹고사는데 급급한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남의나라 이야기로서 전혀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돈도 없었지만 장비를 구경할수도 또 구할수도 없었다. 또 가물에 콩나듯이 한두개
나타나 우리를 현혹시켜보지만 대 부분이 유럽제품들이어서 그들의 빙설벽(눈과 얼음이 혼합되어 Soft한
상태)에 적합한 제품이어서 우리나라와 같은 청빙(淸氷 - 매우 단단한 얼음상태로서 픽켈 또는 아이젠으로
찍을시 찍히지않고 깨어저서 떨어저 나오는 빙질)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와 빙질이 비슷한 일본에서 장비가 속속 개발되어져 나와 그점에에서는
많은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일례로 본인이 박봉(薄俸)인 관계도 있었지만 피켈
한자루 구입하면 거의 한달을 물만 먹고 살아야할 지경이었다.
우리가 등반할때도 다행히 피켈은 유럽제품이 국내에 있어서 사용하였지만(Simond Mustang) 얼음에 박는
하켄인 와터훅(Wart Hog)은 일본친구 교토등반구락부(京都登攀俱樂部)의 야마자키(山奇豊正)에게서 겨우
2개를 구하여 (Salewa제품) 사용하였으나 아이스함머(Ice-Hammer)와 스네그(Snag)등은 퇴계로끝 광희문
근처에 그때까지 몇개 남아있던 대장간에서 제작하여 사용하였으니 지금와서 회상해보면 마치 달나라를
종이비행기로 다녀온 기분이다.
우리나라에 빙벽등반을 즐길수 있는 폭포는 다해야 열손가락안에 꼽을수밖에 없지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이루어 지는법, 요즈음은 절벽에 고무호스로 물을 끌어올려 인공빙벽을 만드는것도 모자라 한여름에도 실내에
인공으로 빙벽을 만들어 사철등반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등반장비는 어떤가? 너도나도 배낭에서 꺼내는 장비의
다양함에 한번 놀라고 또 그가격을 알고있기에 나는 벌어진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니 개나 소나 몰려들어
좁은 빙벽에 수많은 로프가 걸리며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아귀다툼을 벌리니 지옥이 따로 없다.
빙벽은 암벽등반과 달라 선등자가 등반시 얼음이 깨어져 나올수밖에 없으며, 그 떨어져나온 얼음의 크기가
통조림 정도만 하여도 생명을 위협한다. 또 실수로 장비또는 심지어 사람 까지 떨어져 내리는바 그런데
그것이 다 쇠꼬챙이등 모두가 무시무시한 흉기들이라서 안전사고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어 한가한 시간대인
평일 또는 이른 새벽시간등을 이용하여 등반하려니 가뜩이나 결빙시간이 길지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년에
몇번시도하지 못하고 꽃바람이 불어 버린다.
우리는 사실 30주년기념등반을 멋지게 하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하였었으나 동료 이준군이 전년도에 암벽등반중
추락, 다리부상 때문에 1년을 연기하였는데 올해는 본인이 씨즌초 썰매장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이는 정말
어이 없다. 스키부츠신고 콘도계단내려가다 미끄러져서 낙상을입어 스키는 입문조차 하지못하고 근신중)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이 자랑하는 벽등반의 대가 산후배 최정희('89 유럽알프스
3대북벽- Eiger, Matterhorn & Grand Joulas 한국동계초등외 다수등정 - 체육훈장기린장)를 앞장세워 순식간에
등정에 성공하였지만 글쎄 그렇게 신나거나 별다른 감회가 없는걸보니 우리도 이제 늙었나보다.
"야! 우리 건강관리 잘하고 평소에도 운동 열심히하여 40주년 아니 50주년 기념등반을 멎지게 한번해보자"
등반후 채 익지도 않은 닭갈비를 집어삼키고 소주잔을 벌컥이는 친구에게 나도 지지않고 대답한다. " 야!
60주년 문제없다.걱정은 붙들어 메어 놓아라" 그러나 나또한 몇잔을 마셨는지 기억이없다.
"돼지집" - 강촌구곡폭포계곡이 공원으로 개발되기전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독가촌이 서너채 있었는데 그중
겨울에 우리가 민박이랍시고 연탄몇장값에 안방을 내주던 집에서는 돼지를 방목하여 계곡과 산을 때거리로
누비고 다녀 마치 멧돼지를 연상케하였는데 주인장왈 그들이 식량을 야전에서 자급자족하여 하루에 한끼만
돼지밥을 준다고하여 우리가 그냥 이름지어준집이다. 그런데 철거이후 그집의 코흘리게 아들이 장성하여
강촌역번화가에 닭갈비집을 차렸는데 맛은 별로지만 의리를 목숨같이 여기는(?) 우리가 그쪽으로 갈때엔
안갈수 없지않은가? 이미 바깥양반은 작고한지 오래지만 안주인 할머니가 연신 소주잔을 따라주며 옛이야기를
하고 우리또한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화답하니 겨울밤이 잘도 깊어간다.
"그건 그렇고 우리말이야, 그동안 우리가 개척했던길 날풀리면 암장순례 한번해보자" 그래 맞다 그생각을
왜 못해봤던가? 나는 주먹을 불끈쥐었다. 백운대뒷벽,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또 설악산 울산암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개척하였던길들이 떠오른다. 물론 그중엔 홍보가 잘되어 일반클라이머가 즐겨 찾는곳도
있지만 거의가 홍보부족으로 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횡설수설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데
돼지집 마나님은 만취하여 비틀거리며 안채로 건너가고 말았으며 그동안 웅성대던 손님들도 다가고 우리팀만
남았다. 글쎄 중증의 알콜중독자인 내가 내일아침이면 얼마나 술마신걸 후회할지모르지만 오늘만큼은
흰소리가 드높다. 어쨌던 기분좋은 하루였다.
감사합니다
2012. 1. .
장 세 규 재배
후기 :. 요즈음은 빙벽등반에 많은 시간이 요하지 않으나 우리가 예날에 보통 몇시간씩 벽에 붙어 있었
다고하니 우리의 후배아우님들이 제일 궁금한것이 있었다. 그건 금전적인 문제도 더구나 기술적인 문제도
아닌 우리의 생리현상에 대한것이어서 조금은 쑥스럽지만 매우 일리있는 질문이었다.폭포등은 대개 명승
관광지라서 유람객들이 많이 찾아 그때마다 창경원 원숭이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 아랫배까지 아프면
정말 큰일이다. 그래서 그당시 우리는 그 좋아하는 소주를 등반전날에는 한방울도 안 마셨으며 냉수또한
기피대상이었다.
그러면 고산에서는 어떨까? 먼저 작은것부터 생각해보자. 해발이 높으면 기후가 건조하고 산소가 부족
하여 호흡이 빨라진다.그러니 숨쉴때 하루 전체 소모량중 60%정도의 수분이 소모된다 또 노동을 하니
땀으로도 없어져 방광으로 흘러드는 수분이 미미하다. 그렇지만 일단 소변량이 많다고치자 여자들은 어떤지
몰라도(?) 남자인 우리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뒤쪽은 문제가 심각하다 느껴진다. 일단 입으로
넣으면 밀고나오는데는 장사없다.
추우니 여러겹껴입은 아랫도리를 내리고 앉으면 이건 앉은건지 선건지 알수없는 정말 말그대로 X싸는
폼이다. 거기다 매서운 칼바람이 엉덩이를 스치면 아무리 정조준을하여 낙하시켜도 옷매무세를 올려보면
다량의 오물이 옷속에 남게되 낭패를 격는다. 따라서 공격용 전진캠프(C1, C3등) 가 속속 설치되고
Fix-Rope가 깔려 총공격이 예상되면 지사제(설사멈춤약)을 복용한다. 그러면 약 5일에서 일주일은 뒤에서
기별이 없다. 그후에 뒷감당을 어떡하냐고?... Base-Camp에 하산후 소주를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차디찬
냉수를 안주로 듬뿍 마신후 텐트주변에서 납작한돌(삼겹살 구워먹기 딱좋은 차디찬돌)위에 배깔고 엎드리면
길어도 5분이내에 해결된다. 만성변비환자들께 한번권해봄직한 치료책이다.
고산에서는 오물을 치우지 않으면 영하의 온도에 그대로 존재하며 빙하를 따라 밑으로 이동하게 되므로
BC설치시에 제일 먼저 화장실부터 만든다. 구덩이를 파고 우리의 김칫독처럼 항아리를 묻고 비닐종이를
설치하며, 얼마정도 차면 아래로 내려보내 처리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먼후손들이 산아래에서
조상들의 변맛을 음미하게 될것이다.
졸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른아침이라 비어있는 구곡폭포
Top Leading 하는 후배 최정희군
본인의 등반
자일파트너 이준군과 함께
오후가 되니 붐비기 시작하는 빙장
과거사진(1981년 등반시)
1981년 최초등반시의 모습(31년전)
자일파트너 이준과 삼악산 등선폭포에서
초등반후 1주일후 다시 등반중(구곡폭포)
설악산 토왕성 폭포 (1983년도)
자일파트너 최정희와 토왕골에서
설악산 잦은바위골 100M 폭포
첫댓글 아, 20대의 장세규 친구! 30년이 훌쩍 지나갔구랴. 여러가지 준비를 잘 해서 다니겠지만 행여 사고나지 않도록 주의하시구랴!
세규야! 30여년 세월이 사진속에 다들어있네그려!
멋쟁이 세규씨 옛날 사진이 훨씬 정취있네.
재밌다. 빙벽 등반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런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는 줄은. 내공깊은 산사나이의 빙벽 사랑, 그리고 장비에 대한 얘기. 다 재밌다. 돼지집 과의 사연, 등반시 앞엤것 뒤엤것 처리 방법도 신선하다. 무엇보다 30년전 세규의 앳된 모습, 인물 좋다.
20대의 장회장 역시 젊었구려... 그런데 지금도 이렇게 왕성한 체력으로 구곡빙벽을 등반하다니 역시 장회장이십니다.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지나치지 않도록 하시구려....글을 읽으려니 영어실력, 전문성을 많이 늘려야 할것 같소이다. 너무 유식해요 장회장님!!! 글 솜씨도 뛰어나고....
친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지난 세월의 사진들까지 보니 감회가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