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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20년 동안 당한 北 세뇌' 한 방에 무너뜨린 한국 드라마
지난 7월 3일 시사저널에서는 “'20년 동안 당한 北 세뇌' 한 방에 무너뜨린 한국 드라마”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게시되었습니다. 한국드라마를 보고 북한이 잘 못된 것을 깨닫고 탈북한 정유나씨를 소개했는데요.
그는 2006년 북한 김정숙교원대학 2학년에 재학 중에 남한 드라마를 함께 보자는 동기의 제안에 처음에는 버럭 고함을 치며 거부했답니다. 이유는 조선인민군 고위 간부 출신의 딸로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후 면박을 당했던 친구가 무안해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또래들이 남한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는 현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그녀의 아버지까지 "남조선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정유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까짓것 공부하는 셈치고 한 번만 보자'는 생각에 남조선 드라마를 보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CD플레이어로 TV를 연결하고 버튼을 누르자 곧 남한 드라마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그렇게 몰래 본 남한 드라마가 한 순간에 정유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가을동화》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 《이브의 모든 것》 《황태자의 첫사랑》 등을 연달아 보았습니다. 희환 하게도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남한TV 드라마를 보니까 곧바로 생각이 달라지더랍니다. 그 정도가 중독 수준으로 빠져 들게 하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20년 동안 북한에서 세뇌된 내용이 잘 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남한이 거짓말로 홍보를 한다고 강조하는데, '남한이 드라마 촬영만을 위해 그 많은 차량을 고속도로에 동원한다는 게 말이 될까'라는 의문점과 '공항에 있는 수많은 비행기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라는 상식적인 질문만 던져 봐도 오히려 북한에서 거짓으로 세뇌당하고 있음을 쉽게 깨달은 것입니다. 특히 남한 드라마를 통해 보게 된 건물, 음식, 전자제품 등은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지더랍니다. 무엇보다 남한 드라마 안에는 북한에서 금기한 사항들이 다 들어 있더래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북한 사람들과 달리, 거침없이 남녀가 데이트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자동차를 몰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패션과 머리 스타일도 자유분방하더랍니다.
북한의 독재체제 선전물 구호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장군님을 받들겠다.'는 식의 내용은 하나도 없더랍니다. 대부분이 사랑과 출세와 행복이 일상 소재로 다뤄지는 남한 드라마에 그녀의 의식이 한 순간에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개성과 스타일을 드러내고 싶은 나이에 남한 드라마를 접하게 된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대요.
두 달 넘게 중독된 사람처럼 남한 드라마를 섭렵해 나간 정유나는 급기야 탈북하기로 결심했답니다. 마침 대학에서 만난 화교 친구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녀는 집에서 아버지의 돈 1,200달러를 '탈출 자금'으로 챙겨 2006년 3월 2일에 국경을 넘었습니다.
정유나는 북한 탈출 4개월여 만인 2006년 7월 13일에 자유가 있는 남한의 품에 안겼습니다. 중국과 태국 등을 거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다른 탈북민과 비교하면 초단기간에 큰 위기 없이 남한에 들어왔습니다. 한 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많은 행운과 조력자가 그녀와 함께 하더랍니다. 웃기는 것은 정유나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인솔하던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말하기를 "어디 가면 송승헌(《가을동화》 주인공) 배우를 볼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인터뷰에서 북한의 독재체제가 잘 못된 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탈북을 생각지도 않았답니다. 그러나 북한의 장기 독재집권을 위한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박탈하며 로봇처럼 세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곳에 특권을 버리고 탈출을 결심하고 시도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그녀를 도우고 인도해서 자유가 있는 남한에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정유나 한 사람 때문에 그의 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오빠도 탈북하여 남한에 들어와 살고 있답니다.
본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죄악으로 세뇌 된 세상에서 탈출하여, 자유와 행복이 있는 하나님나라로 귀순한 줄 믿습니다. 마치 정유나씨가 탈북 할 때 사소한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도우는 사람이 함께 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죄악 된 세상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비록 몸은 죄악 된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복음성가에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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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오직 예수뿐이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도 은혜아래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있다고 증거 합니다. 반면에 법아래 두려움과 공포가운데 법을 어기고 죄인으로 살아가다 불행해진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1. 법아래 있는 사람
15절에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여기서 법이란,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세부적으로 사회법과 도덕법과 의식법이 있습니다. 이 율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말합니다. 이것은 좋든 싫든 간에 지켜야 합니다. 이 시대로 예를 들면, 사람은 학교를 가야하고, 남자는 군대를 가야하며,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하고, 근로할 수 있는 직장에 다녀야 합니다. 이것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하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니까 억지로 하는 거지요. 이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죄인이 되고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인간이 죄에 연류 되어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본래 죄의 종이었기에, 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점점 더 타락하게 됩니다. 순수함을 잃게 되고, 죄악의 고리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죄가 어떻게 죽음으로 이어진 줄 아십니까? 죄는 정죄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가져옵니다. 이기심과 정욕, 괴로움, 교만, 물질주의, 근심, 충동, 두려움 등의 노예가 되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죄의 종은 하나님 보다 어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명예를 하나님보다 좋아하게 된다면, 그는 지속적으로 자기 연민과 시기심, 상한 감정, 미흡하다는 감정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출세를 하나님보다 좋아하게 된다면, 그는 충동과 피로, 근심, 두려움, 경쟁의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외에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특별한 보상을 약속해 주지만, 실재로 받게 되는 그 보상은 결코 법을 피하지 못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뒤늦게 알고 보면, 명예나 출세도 진정한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세상의 법에 연루되어 있고 저촉당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져 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것을 가지려다가 영혼과 육체가 망가지고 죽음, 즉 하나님과 단절하게 됩니다.
2. 은혜 아래 있는 사람
예화)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 있습니다.
밀림에서 사자, 늑대, 여우가 사냥을 나갔다가 같이 사냥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 사냥감을 잡은 사자가 “야! 늑대야 네가 이것을 나누어라!”고 명령하자, 늑대가 삼등분해서 똑 같이 나눴습니다. 이에 사자가 생각하기를 “그래도 명색이 내가 밀림에 사자인데 너희들과 똑같이 나눠?”라며, 화가 난 사자가 늑대를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여우와 사자만 남았는데, 사자가 여우에게 이르기를 “여우야, 이번에는 사냥감을 네가 나누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깜짝 놀라 공중으로 한번 뛰어오르는 듯하더니 “사자님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나누다니요? 사자님이 나누셔야지요. 사자님께서 다 잡수시고 남은 것은 제 것 으로 삼겠습니다.”라며 여우가 대답합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야! 여우야 너 머리가 잘 돌아간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 냈느냐?”라고 묻자, 여우가 하는 말이 “아까 사자님이 늑대 잡아먹는 것 보고 깨달았습니다.”라고 이실직고 하였습니다. 이에 여우는 은혜로 살아남게 되고 사냥감 고기도 넉넉하게 분배받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란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목적을 깨닫는 사람만이 거룩한 삶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찾게 됩니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인으로 섬기며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그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깨달아야 살길이 열리고 은혜를 받습니다. 15절에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란, 은혜를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효도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고 선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종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인가를 증거 하기 위해 법아래 있는 사람과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을 16-22절에 이르기까지 대조하며 비교하고 있습니다.
1) 16 절: 죄의 종 혹은 순종의 종
2) 17-18절: 죄의 종 혹은 의의 종
3) 20-22절: 죄의 종 혹은 하나님의 종
여기서 죄의 종은 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순종의 종, 즉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두 종류의 주인의 종밖에 될 수 없다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전에는 모든 사람이 죄의 종이었다는 거예요.17절에서“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증거 합니다. 죄의 종은 그야말로 노예이며, 그 과정은 망가짐이며,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순종하는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은 그 과정이 의와 기쁨과 행복이며, 결론은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죄의 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종으로 신분이 변화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죄를 회심할 때 일어나는 구원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은혜 아래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난 3가지 증거를 말합니다.
첫째, “교훈의 본”, 즉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믿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죄 값을 치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둘째,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마음에 충격을 주기 전에는 형식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마음속에 파고들기 시작할 때 삶의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복음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복음을 마음으로 깨닫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주인을 바꾸어 순종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원래 죄의 노예였던 사람이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공로나 행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엡 2:8). 그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죄의 종에서 회개하고 진짜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이 임하여 새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성령을 통하여 성장하고 성숙하여 하나님나라에 축복의 열매를 맺습니다(23절).
하나님의 종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이 받아 마땅한 죽음을 주지만,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아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나라에 영생을 얻습니다(엡 2:8).
그러나 법아래 있는 사람, 즉 죄의 종도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그것은 더 큰 죄를 짓고 그 값을 치르게 됩니다. 일시불이든 할부든 죄가 지불하는 삯은 ‘망가짐과 죽음’입니다(23절). 그것은 저주와 불행이며, 하나님과 단절됨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심판과 지옥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화) 3년 고개
3년 고개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3년 고개를 넘다가 넘어져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개에서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는 못 산다는 세간에 전해오는 속설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크게 걱정을 하다 뼈까지 마를 정도로 죽을 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 살던 신동이라는 어린 아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좋은 방법이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아저씨! 저에게 아주 좋은 방법이 있는데요. 그 3년 고개에 가서 넘어지면 3년을 산다고 하니, 두 번 넘어지면 6년, 세 번 넘어지면 9년으로 늘어나지 않을까요?!”
어린아이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시 그 3년 고개를 찾아가 계속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그 후부터 기분이 좋아져서 밥도 잘 먹고 건강을 되찾아 행복하게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축복의 열매가 맺고, 더 나아가 천국에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선대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