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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셨습니까?"
외국인들이 한국에 처음 와서 가장 당황하는 게
이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
저 사람이 나한테 밥 먹었는지를 왜 물어보는 거지?"
이 낯선 인사말이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만 하면
가장 정겹게 느껴진답니다.
그런데 요즘 밥 한 끼 먹기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어제 한 단골 식당에서
"다음부터는 (오늘은 봐준다는 의미)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비자만 힘든 게 아닙니다.
식당은 식당대로 광우병에 조류인플루엔자 파동이 겹치며
문을 닫은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정겨운 이 인사말이
요즘처럼 팍팍하게 느껴진 적도 없습니다.
때마침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한 끼에 1천원씩 하는 식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김밥도 한 줄에 1천500원으로 올랐는데,
한 끼 식사를 1천원에 해결할 수 있다니
어떤 속사정이 있을까요?
■ 광안리 노천식당 - 시락국밥
부산의 광안리해수욕장 입구(협진태양아파트 뒤쪽)에서
아침마다 노천 식당이 열린다고 해서
새벽같이 가보았습니다.
과연 그곳에서는 양복 입은 신사부터 젊은이,
노인 가릴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목욕탕에서나 쓸 것 같은 간이 의자에 앉아
거리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다 집도 없나, 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며 시락국밥을 시켰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는
모자라면 더 먹으라며 시락국밥과 깍두기를
여기저기가 긁힌 개다리소반 위에 얹어 내어주었습니다.
시락국밥의 맛은 훌륭했습니다.
아침 일찍 관광버스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깍두기의 크기가
흔히 보던 것의 20분의 1이나 될까 말까 한 초미니여서 신기했습니다.
"깍두기를 절약하려고 그렇게 작게 만든 거죠?" 그런데 잘못 짚었습니다.
하긴 제대로 돈 벌려고 작정하고 장사하는 집에서
두 그릇이든 세 그릇이든 달라는 대로 주고 딸랑 1천원만 받겠습니까?
바지에 밥풀이 붙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밥을 담던 사장님은
"이가 불편한 노인들이 먹기 좋으라고 그런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깍두기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옆에서 밥을 먹던 손님이
"이 가게도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자 봉사한다고 시작한 거래요"
라며 거들었습니다.
참, 이름도 없는 이 노천식당을
7년째 하고 있는 사장님은 김도순(52) 여사입니다.
김 여사는 "우리집 손님 중에 부자도 많아요.
하지만 돈이 많고 자식들 교육 많이 시켜 놓으면 뭐해요?
혼자 살며 아침도 못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밥을 못 먹지만,
돈이 있어도
밥을 못 먹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몇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야구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오는 단골입니다.
아침인데 이제야 셔터문을 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밤새 허기져 속이 쓰린 배를 움켜쥐고 시장기를 달래러 오는군요.
손님 중에는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한 택시운전사 분도 있습니다.
메뉴는 처음에 시락국밥 하나로 시작했는데
갈수록 늘어 국수, 팥죽, 율무죽이 있습니다.
모두 1천원입니다.
'특미'라고 해서 시락국에 말아주는 국수도 있습니다. '
노천뷔페'라고 부를 만하죠?
아들한테 이 집 이야기를 듣고
시락국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일부러 왔다는 아주머니는
"저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으려나, 봉사하는 마음이 절반은 되는 것 같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계산해 보니 하루에 100그릇을 팔아도 10만원입니다.
봉사하는 마음이 훨씬 더 많아 보입니다.
알고 보니 김 여사는 서면에서 불고기집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 김 여사는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침밥을 못 드셨거나, 김 여사를 만나고 싶은 분은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광안리해수욕장 입구로 나가 보십시오.
추석, 설 명절 일년에 딱 4일만 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원의 행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음식이 다 맛이 있고 저렴한데,
커피가 300원으로 다소 폭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정겨운 동네 사랑방입니다.
■ 밥만 먹고 사나 - 햄버거 + 콜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이번에는 메뉴를 양식으로 바꿔보겠습니다. '
햄버거+콜라'와 도넛을 파는 이동가게입니다.
부산 연제구 거제동 법원 맞은편 철길을 지나 횡단보도 부근에는
개조한 0.5t 트럭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단돈 1천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곳 또한 워낙 가격이 저렴해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진짜 가격이 천원이냐?"며 두세 번을 물어보고 나서야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먹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햄버거 속 고기는 유명한 대기업사 제품입니다.
1천원에 팔아서 장사가 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큰 부자될 생각은 없습니다.
판매되는 개수가 늘면 10원이라도 더 벌지 않겠습니까"라고
여유있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햄버거에서 남는 것은 별로 없고 도넛이 좀 이문이 남는 모양입니다.
이곳 마민일(47) 사장님은 예전에 채소상을 크게 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햄버거와 도넛 장사를 하게 된 것은
그래도 도회지인 부산에서 자식들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큰애가 대학생, 둘째가 고3인데
둘째가 졸업식 때 큰 상을 받기로 됐다며
처음 보는 손님한테도 자랑입니다.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째.
갈수록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앞으로도 가격을 올릴 생각이 결단코 없답니다.
토요일에는 인적이 끊기는 법원에서 사람이 많은 신라대 근처로 자리를 옮겨서 장사를 합니다.
도넛 3개에 1천원, 사실 도넛 손님이 많습니다.
하루 매상을 챙겨 보니 절반 이상이 1천원짜리입니다.
이 1천원권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마 사장님한테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팔고 남은 도넛은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부산에 온 지 얼마 안 돼
양로원 같은 곳에 기증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답니다.
필요하신 분은 연락주십시오.
■ 구내식당도 있다 - 부산 연제구청
1천원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연제구청 지하 구내식당에서는
아침 8시20분부터 9시30분까지
시락국밥을 1천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연제구청 직원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것이지만
누구라도 식권을 사거나 마이비카드가 있으면 아침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곳은 아침을 먹는 사람이
하루 평균 15∼30명으로 많지 않아 여유롭습니다.
이날 나온 반찬이 김치, 깻잎, 젓갈로 가짓수가 3종류나 됩니다.
영양가는 어떨까요?
이 식당 주현정 영양사는
"대파 양파 멸치 무 등을 넣고 만든 맛국물에 들깻가루를 풀어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청 식당에서도 1천원이라는 가격은
직원들 복지 및 복리증진을 위해 봉사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혹시 식구(食口)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시나요?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천원으로
한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 보았습니다.
세 끼를 먹고 3천원이 들었군요.
사실 두 군데는 이곳을 소개해 준 사람들한테 얻어먹었습니다.
많이 가지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진 걸 나누다 보면
1천원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