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재판관 8:1로 위헌결정
올해 법조계뿐 아니라 국내 최대 사건은 단연 헌법재판소의 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기각결정과 수도이전 위헌결정이었다. 2004년은 '헌재의 해'였다고 할 정도로 헌법재판소가 창립 16년만에 국내외적으로 위상을 굳건히 과시한 한해였다.
3월12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절대적 찬성으로 의결된 盧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겨지면서 그동안 국민 관심의 사각지대였던 헌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치재판소’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던 헌재의 본모습과 역사, 설립배경, 역할 등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중계방송되다시피 새삼 뉴스의 초점이 됐다.
헌재의 위력과 위상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은 역시 '수도이전 위헌결정'이었다.
盧 대통령의 핵심공약사항으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제정 및 추진위원회 구성, 이전후보지 결정 등 일사천리로 발빠르게 진행되던 수도이전 사업은 10월21일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백지화되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盧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을 기각했던 때와는 달리 수도이전 위헌결정은 집권층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 헌재의 존립 자체에 위험이 될 정도로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헌재가 위헌 결정의 중요 요소를 판단한 ‘관습헌법’ 이론에 대해 여당을 중심으로한 정치권과 친노 인사들로부터 쏟아진 비난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법조인 출신 盧 대통령의 “처음 듣는 이론”이라는 반응을 시작으로 ‘앞으로 재판관을 임명할 때는 전원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자’, ‘개혁적 인사를 재판관으로 임명하자’는 등의 공격적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데 이어 ‘사법쿠데타’ ‘사법독재’, 심지어 ‘헌재 7적’이라는 맹비난까지 쏟아졌다.
지난11월25일 APEC참석후 돌아온 대통령의 귀국설명회 3부요인 초청만찬에 전례와는 달리 尹永哲 헌재소장이 제외돼 헌재의 위헌결정에 대한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들이 나오기까지 했다.
헌법학계에서도 관습헌법의 인정여부와 그 개정 방법에 대한 헌재의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비판속에서도 헌재가 창립 16년만에 집권층과 직결된 중대 정치문제에 대해 헌법적 해석을 통한 소신있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사법적극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2. 헌재, 盧 대통령 탄핵소추 기각 결정
국회는 3월12일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 현직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헌법재판소에 탄핵심판을 의뢰했다.
이 사건은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으로, 헌재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외의 관심이 온통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집중됐었다.
헌재는 6차례의 공개변론 끝에 심리 64일만인 5월14일 “盧 대통령이 선거법 제9조 및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혐의 등이 인정되지만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률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은 헌재의 심리기간 중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신생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밀어내고 과반의석을 확보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3. 사법개혁위원회, 로스쿨 2008년 도입 등 개혁안 결정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27차례의 회의를 통해 로스쿨제도 도입, 국민의 사법참여, 법조일원화, 고법상고부 설치 등 건국이후 계속돼 온 우리 법조계의 근간을 바꿀만한 굵직한 개혁방안들을 마련, 사법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사개위는 27일 제27차 회의를 끝으로 활동을 마치고 崔鍾泳 대법원장에게 그 동안 마련한 개혁안들을 건의문 형식으로 보고하게 되며, 崔대법원장은 이를 다시 盧武鉉 대통령에게 제출해 시행하게 된다.
사개위에서 건의한 사법개혁을 앞으로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필요한 관련 법령의 제·개정 작업 등을 담당할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신설하는 규정이 지난 15일 대통령령으로 공포됐다.
4.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17대 국회 출범부터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를 놓고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7대 첫 정기국회와 12월 임시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법사위 상정문제에 반대한 한나라당이 법사위 회의실을 점거하고 등원을 거부하다가 여야 4자회담에서 합의처리에 합의함에 따라 국보법 폐지 후 대체입법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으나 연내 처리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8·9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와 이적표현물 소지죄 처벌조항에 대한 합헌 결정과 국가보안법(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총련 대의원들에게 유죄확정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과정에 헌재의 결정취지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해설을 내놓았고, 대법원은 “나라의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안보에는 한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는 국보법 존치 필요성을 밝히기도 했다.
5. 최초의 여성 대법관 탄생
8월 金英蘭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청렴법관으로 유명한 趙武濟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됨으로써 사법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
지난해 全孝淑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첫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데 이어 金 대법관이 임명됨에 따라 최근 법조계에 불고 있는 ‘우먼파워’를 실감케 했다.
또 지난해 여성검사로서는 처음 법무부 ‘검찰5과장’으로 일컬어지는 연구검사(과장급)에 발탁됐던 조희진 검사가 올해는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옮겨 최초의 여성 부장검사가 됐다.
이같은 법조계의 우먼파워 바람은 23일 발표된 제46회 사법시험 합격자 1천9명 중 여성 합격자가 역대 최고인 2백46명을 차지, 또 한번 입증됐다.
6. 民法, 46년만에 전면 개정안 마련
정부는 9월 민법 1백30개 조문을 개정하는 전면적인 개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58년 제정된 이래 단 한차례 부분적으로만 개정됐던 민법이 시대흐름에 맞춰 46년만에 전면 손질되는 것이다.
개정안은 ▲인격권 신설 ▲성인연령 만 19세이상으로 하향 조정 ▲특별실종기간의 단축 ▲법인설립기준의 완화 ▲무권리자의 처분에 대한 규정 신설 ▲가등기의 실체법적 효력규정 신설 ▲경계침범 건축물에 대한 철거청구 제한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 명문화 ▲근저당제도 정비 ▲손해배상의 방법 중 원상회복청구 등 추가 ▲보증제도 개선 ▲미성년자 감독자의 책임범위 조정 등을 담고 있다.
7. 법원 개인채무회생제도 실시
IMF사태 이후 계속된 경기불황 등으로 급증한 개인채무자를 회생시키기 위한 ‘개인채무자회생제’가 9월23일부터 시행됐다.
시행 초기에는 절차적 어려움 등으로 신청자와 개시결정자가 소수였으나 11월부터 채무변제기간을 최장 8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고 아르바이트나 일용직도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도록 문제점을 대폭 개선함에 따라 신청자와 개시결정자가 급격히 증가, 빠른 시간 내에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 성매매특별법 시행
9월23일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시행과 함께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법시행에 대한 찬·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또 이 법의 전면시행과 경찰의 대대적 단속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거나 ‘공창제’ 도입을 주장했던 인사들이 여성계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이 법률의 위헌성을 묻는 헌법소원 사건이 헌재에 접수돼 최근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9. 在京 5개 지원·지청 2월1일부터 지법·지검으로 승격
올 2월 서울지법·지검 관내 동·남·북·서·의정부 등 5개 지원·지청이 각각 지법·지검으로 승격됐다. 이는 그동안 서울지법·지검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행정업무둔화와 공간부족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이로써 승격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까지 와야 하던 불편을 덜게 됐다.
또 의정부지방변호사회가 신설되는가 하면 서울지방법무사회도 서울중앙지방법무사회를 비롯, 6개 지방법무사회로 분리됐다.
10. 17대 국회에 법조인 54명 진출
4월15일 실시된 17대 총선에 법조인 1백31명이 출마, 이 중 54명이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당선된 54명은 전체의원의 18%로, 15·16대의 41명 보다 13명이 더 많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정당별 당선자는 한나라당이 31명으로 가장 많았고 열린우리당이 20명, 자민련 2명, 민주당 1명이었으며, 법무사도 1명이 당선돼 눈길을 끌었다.
당선된 54명의 평균연령은 49세로 종전보다 크게 낮아 졌고, 이 중 31명은 초선으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