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의
중심, 가장 번화가
삼산리는
보은읍의 중심지역이며 행정의 중심지역이고 상가가 잘 발달한 소비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복합 다기능을 하는 중심 지역이다.
화랑시장,
중앙시장, 종합시장, 채소시장이 있으며 과거 싸전이 있던 곳도 미곡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금융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농협 중앙회 군지부가 있으며 보은농협, 보은신협, 보은 새마을금고가
소재, 군내에서 가장 큰 금융거래 및 왕성한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은군의 다기능을 수행하는 곳이지만 점차 쇠퇴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지역
상권을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 상거래가 왕성하지 못하다. 이외에
삼산초등학교와 보은도서관이 있다.
보은군의
작은 군청인 읍사무소가 있고 과거 지방 수령들이 집무하던 보은동헌도 있는데 이를 보면
삼산리는 예나 지금이나 행정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거주 인구는 계속 줄어 현재는 면적 6.12㎢에 인구 1364가구 4422명에 불과하다.
본래
삼산리는 보은읍의 중심으로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이평리, 하장리를 병합하였고 보은군의
옛 이름인 삼산의 이름을 따서 삼산리라 하여 보은읍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을
살펴보면 구시장(싸전거리)이 있는데 삼산3리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5일 장이 서서 구시장이라
하고 쌀의 상거래가 이루어져, 싸전 또는 싸전거리라고도 한다. 전에는 장이 섰으나 현재
상가로 신축되어 쌀가게 및 과일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구장터는
삼산1리 마을로 전에 장이 서서 구장터라고 하고, 채소의 상거래가 많이 행해져 채소전이라고도
하며 까막산 거리라는 지명도 있는데 이는 삼산4리 구경찰서 서쪽 '까막샘'이 있는 마을을
말한다. 까막샘은
동헌(東軒) 서쪽 제방 밑에 있던 우물을 말하는데 이곳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버드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돌림병으로 죽은 애기 시신을 버드나무에 걸어 놓았는데, 까마귀들이 애기시신을 파먹으려고
날아들고 하였으나 느티나무 밑의 샘물은 전보다 물 맛이 좋아져 '까막샘'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산4리 까막샘옆 둥그나무가 있는 제방은 까막샘 둥구나무거리 라고 말한다. 동편이라고
부르는 마을은 왕산미 동쪽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이고 왕산미(王山尾)는 삼산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뒷산 형세가 왕(王)자 형국이라고 해서 일컫는 지명이다. 월미도는
남다리와 동다리 사이를 말하는데 제방 밑에 있는 마을. 해방 직후 이곳에 도살장이 있었으며,
장마가 져서 집들이 물에 잠기면 도살장 건물만 보였기 때문에 월미도라 불렀다고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는 마을이다. 주차장 마을은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인해 신시가지로
형성된 마을이다.
현재
천주교 보은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산을 사산(蛇山)이라고 부르는데 산이 길게 뻗쳐 마치
뱀 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삼산(三山)이란 지명도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옛 보은현의 읍호(邑號)로 관아(官衙)
주위에 있는 세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주산(主山)은 뱀의 형상이라 하여 사산(蛇山),
죽전리 충혼탑이 있는 안산은 개구리 형상이라 하여 와산(蛙山)이라고 하며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산은 멧돼지 형상이라 하여 저산(猪山)이라고 부르는데 장신리 국유림 관리소가
있는 산을 말한다. 이 산은 쥐와 같다 하여 서산(鼠山)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우백호는 있으나 좌청룡(左靑龍)이 없으므로 세 산만 갖춘 고을이라 하여 삼산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것만으로
보면 삼산리는 사실상 풍수로 보면 명당 자리는 아닌 듯하다. 게다가 각 산의 지형인
뱀, 개구리, 돼지는 생태계상 개구리는 뱀에게 먹히고 뱀은 돼지에게 먹히니 화합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직 잡아먹으려고 헐뜯는 생존경쟁만 있는 지역으로 비쳐지고 있어 지명만으로
보면 매우 아쉬운 실정이다. 십마지라는
지명은 보청천과 삼산, 종곡, 누청리에서 나오는 물과 동다리 밑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十자로 만났다 하여 십마지라 부른다. 안장터는
서다리를 경계로 죽전리와 삼산리에서 장이 번갈아 섰는데, 삼산쪽의 장터가 읍내안쪽에
있기 때문에 안장터라고 했다고 한다.
삼산리에
있는 문화유적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15호로 지정된 보은동헌(報恩東軒)이 있다.
삼산리의 옛 보은경찰서 자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로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철종11년인
1860년에 중수한 사실이 있어 창건시기는 훨씬 이전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7칸 옆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계 건물로 목조기와집이다. 동헌은 조선시대
각 지방 수령들이 집무하던 곳이었으나, 융희 1년인 1907년 보은군에서 일어난 의병활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헌병대가 강점한 후 계속하여 경찰관서로 사용하여 왔는데
1983년 완전해체 복원되었다. 동헌
앞에는 관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역대 현감 또는 군수들의 송덕비 또는 선정비 6기를
1988년 옮겨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