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장에서 종자마늘을 샀다.
올해부터 농사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세월이 몇 십이 흘렀다. 그땐 집안일을 거든다고는 하였지만 부모님들이 지으시는 농사일을 어깨너머로만 보아왔을 정도이다.
올봄엔 과수원의 빈터를 파 일구어서 감자, 고추, 고구마와 옥수수를 심었지만, 파종 후인 5월은 날씨가 너무 가물었고, 6월 중순 이후부터는 비가 자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어 놓은 작물이 자라는 조건이 매우 좋지 않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산에다 밭을 일구었더니 잡초가 무성하고 각종 벌레들이 득실대는 것이었다.
봄 농사의 결실부터 말하자면, 감자와 고추는 잡초에 묻혀 자라는 바람에 아주 적은 량의 수확에 그쳤고, 옥수수는 거의 모두가 전멸하고 말았으며, 고구마도 현재 풀밭인지, 고구마 밭인지를 잘 모를 지경으로 풀이 무성한 채로 뒤엉켜 자라고는 있다. 그래도 작은 알맹이라도 조금은 열리겠지 하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저조한 수확의 배경에는 우선 무소불위로 휘감아 대는 잡초가 제일 커다란 역할을 하였지만, 농약과 비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실험정신(?)에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무공해 약제를 만들어 사용해 볼까하는 마음도 몇 번이나 먹었었지만, 그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하였었다. 그래서 올 후반기부터는 최소량의 농약과 무기질 비료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후반기엔 배추와 무 그리고 마늘을 우선 심어 보기로 하였는데, 종묘상에서 배추 모종과 무 씨앗을 사다 심고 농약을 치지 않았더니 벌레와 곤충(특히 여치 녀석)이 자신들을 위하여 무슨 뷔페나 차려 놓은 양 속까지 다 먹어 치워서 하는 수 없이 종묘상에서 두 번째 다시 사다 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유기농도 좋지만 이건 뭐 작물이 싹이나 제대로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루 농약을 조금씩 치고 말았다(애들 엄마가 알면 기겁을 할 일이겠지만). 처음부터 나 자신도 완벽한 무 농약(대체 살균․충제가 있긴 한지만)은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가 어처구니가 없으니 배추밭을 날고 기는 곤충 녀석들이 미워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은 마늘을 즐겨 먹고 있어 마늘이나 조금 심어볼까 해서 지난 토요일 더운 날씨에 땀을 흘려가며 고추나무를 뽑아내고 잡초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서야 당장 마늘 종자를 구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늘은 의성, 서산, 남해마늘이 좋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사실 구입시기가 조금 늦었고, 우선은 그냥 연습 삼아 짓는 농사일리라 닥치는 대로 해보자는 편한 심산에서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여의치 않아 시골 장에서 종자마늘을 구하보자는 마음이 들어 그곳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나는 평소 시골의 5일장을 즐겨 다니는 편이라 근처 웬만한 시골장날은 아예 수첩에다 기록해 놓고 다닌다. 올핸 마늘이 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시골 장엔 마늘이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애들 엄마와 차를 몰고 산청의 덕산 장에 도착하니 마늘을 파는 할머니가 몇 분 계신다. 시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특별히 살만한 것이 있을까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요즘의 시골 장은 도시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교통의 발달로 파는 물건들도 지역적으로 대중화, 평균화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선 차에서 파는 것은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혹시나 약품처리라도 하였을까 하는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어군데 돌아보다가 큰길가 할머니가 마늘 몇 접을 놓아두고 파시는 곳에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접 당 씨알이 굵은 것은 4만 5천원, 씨알이 작은 것은 3만원이란다. 할머니는 씨알은 작은 것이 맛이 좋다는 이야기였고, 애들 엄마도 그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한 접에 3만원을 주고 샀다.
사실 마늘 농사도 종자대금, 재료비 및 인건비를 제하면 크게 남지는 않을 농사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재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먹을거리니까 한번 시도해 본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마늘 대에서 쪽을 분리하여 보관해 두고 심을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밭에다 이랑을 치고 밑거름과 토양소독제를 뿌리고 비닐 포복을 하였다. 비닐의 구멍을 보니 촘촘한게 우리 먹을 것만 심는다 해도 마늘 종자가 너무 적어 보여 다시 5일장인 단성으로 향했다. 시간이 오후 4시를 넘겨서인지 파장이 되고 말았다. 다시 차를 몰고 00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거기도 파장인 듯 하였다. 다행이 가게 두곳에 마늘을 내어 놓았는데 가격이 만만찮다.
지난 주 같은 씨알 한접에 4만원이면 좋을 것을 5만원을 달란다. 많아 살 것도 아닌데 싶어 반접을 사기로 하고 2만 5천원을 주려니 3만원이 아니면 못 판단다. 아니 한접에 5만원, 반접이면 당연히 2만 5천원이면 맞는 계산인데 3만원이라니??? 무슨 콩나물 장사도 아니고, 농산물을...
그러나 다음주말에 당장 심어야 하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가기가 뭣해서 하는 수 없이 반접을 샀다. 뼈빠지게 농사지은 농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과 이런 가격 결정이 상인의 마음과 농민의 마음이 다르려니 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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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마늘을 심어보니 같은 장소에서도 씨알이 굵은 것은 2주일정도 만에 싹이 거의 다 나는데, 씨알이 적은 것은 20일 정도가 걸립니다. 발아율도 낮고요. 아마도 자신에게 저장된 영양분이 적어서 그런 걸까요. 종자 고를때 참고 하세요.
▶ 한달이 지나 살펴보니 씨알이 긁은 것은 90% 정도의 발아율에 잎사귀가 10-15센티가 넘게 자랐는데, 씨알이 작은 것은 아직도 싹을 조금씩 내밀고 있어 발아율도 늦고, 성장속도도 엄청 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