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금나루는 황산도의 남쪽 기점이다.
어원
물금(勿禁)의 지명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그 하나는 통행이나 교류를 ‘금하지 말고 열어둔다’는 뜻에서 비롯됐다는 설이고, 또 다른 설은 이 일대가 낙동강 하류지역으로 홍수피해를 많이 입어 수해가 없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물을 금한다’고 하여 ‘물금=수금(水禁)’으로 불렸다는 이야기이다.
설명
물금나루는 유서가 아주 깊은 나루다. ‘삼국사기’ 탈해 이사금조(서기 77년)에 등장하는 황산진구(黃山津口)가 바로 물금나루로 비정되고 있다. 낙동강의 수많은 나루 중 기록으로 볼 때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며, 낙동강뿐만 아니라, 문헌에 전하는 우리나라 나루 중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 물금나루를 ‘나루의 뿌리’라고도 한다.
물금나루가 번성했을 때에는 노선이 세 개나 되었다. 크게 보면 위 나루, 아랫 나루가 있었는데, 양산시 물금~김해시 상동면 매리를 연결했고 아랫나루는 물금~김해시 대동면 고암마을을 오갔다. 또 물금~김해시 대동면 월당마을 가는 배도 있었으며, 도선업 허가권은 물금~고암은 양산시가, 물금~매리는 김해시가 각각 가지고 있었다. 물금의 나룻배는 이미 20여 년 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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