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의 개발단계
퍼디낸드 포르쉐(Ferdinand Porsche)는 1875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의 자동차를 많이 설계했었기 때문에 독일인으로 아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본격적인 자동차디자이너로서의 꿈은 그가 비엔나공과대학의 학생이었을 때 입니다.
그 후 독일로 건너가서 다임러 벤츠사에 취직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천재적인 디자인설계능력을 발휘하여 벤츠의 여러 명차들을 성공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벤츠사의 경영진들과의 불화로 포르쉐박사는 1931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포르스ㅞ 엔지니어링 오피스(Porsche Engineering Office)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자동차디자인 컨설팅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의 포르쉐 회사의 시작이 됩니다.
포르쉐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한 자동차는 1948년 생산한 경량의 로드스터였으며 1131cc의 폴크스바겐의 엔진을 사용하였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전에는 히틀러로부터 국민차인 폴크스바겐을 의뢰 받아서 1938년에 완성합니다. 그때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 딱정벌레 차는 양산을 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가 전후 1945년에 제작 완료하여 판매가 개시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필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하던 때에 “There is a way, there is a Volkswagen” 이란 신문광고가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당시에 광고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광고 문구만큼이나 많이 팔린 자동차입니다. 당시로서는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습니다.
이 자동차가 팔릴 무렵 포르쉐박사는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전범인 독일의 자동차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독일의 전쟁에 협조한 것이 죄로 인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들과 손자, 그리고 외손자에 가업이 이어지면서 엔진도 직접 설계하여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요즈음에도 명차로 손꼽히는 포르쉐911은 1963년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선을 보인 직후 그 이듬해인 1964년부터 양산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카레라도 출시가 되었고 거의 막내인 박스터는 1996년에 탄생합니다. 1980년대 중반에 아트센타를 졸업한 일본계의 젊은 디자이너가 박스터 디자인에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선후배의 만남에서 이 사람을 알게 되었으며 포르쉐에 입사를 한 것 때문에 많은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작품집을 온통 포르쉐의 디자인으로 채워서 후배인 필자와 다른 학생들에게 소개를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Boxster는 Boxer와 Speedster의 합성어이며 시중에 판매되기 3년 전인 1993년에 컨셉트 카로서 이미 모터쇼에 선을 보여서 그 가능성을 타진 하였습니다.
디자인개발은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소개되는 그림에서 박스터의 이미지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SUV 케이언은 디자인의 변화와 소비자들의 요구 등의 요소들에 의하여 서서히 변화하는, 거스를 수 없는 자동 차트렌드의 변화의 물결 때문에 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림은 거의 한가지의 칼라만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같은 색의 마커, 같은색의 파스텔 그리고 같은 색의 색연필을 사용하여 완성시켰습니다.
이런 류의 그림을 monochromatic drawing이라고 하며 짧은 시간에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그림의 방법으로서 비디자이너들에게도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도록 그림의 완성도를 약간 높게 하며 따라서 자동차의 형태는 물론이거니와 재질감과 Parting Line(부속들을 연결하여 조립한 이음새), 그리고 기능 같은 면에 있어서도 표현이 가능합니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것들을 표현하여야 하며 당연히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도 박식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출처 : 캐나다 벤쿠버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