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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한 지방(전주)에서 암 환자들을 대해왔다. 이 곳에서 암 증상이 나타났다는 말은 사형선고와 같으며, 암은 버려진 아이나 거지, 죄인, 창녀 그리고 문둥병자와 같이 인간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추락시켜 버린다. 기독병원을 세운 우리의 목표는 인간을 향한 이러한 침묵의 비인간성에 반대하여 항의하고 비난하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암과 싸우며, 밤중에 수술을 하며, 파상풍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운 어린아이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인공호흡으로 산소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제나 기술적 진보, 현대나 고대 철학 그 어디에도 개인의 가치에 대한 근거는 없다. 오직 성경에만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희망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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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환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얼마나 쉽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지만 혼잡한 진료실에서 이 사실을 기억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 여자 그리고 아린이들, 또한 체념한 얼굴, 고통스런 얼굴, 고민하는 얼굴, 이 모든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영혼을 가지고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들을 받아들여 이러한 마음으로 치료하는가?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셨다. 그 분은 환자들을 위한 대리인의 위치에 서셨다. 나는 과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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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현실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들이 부정되면 생명 자체가 환상이 되어 버린다. 성경은 선택학(science of choice)에 대한 교과서이다. 우리는 또한 성경의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에 마주치게 된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수 24:15)”. 프로그램된 인간이란 없다. 여러 가지 선택들을 재평가해서 어떠한 선택이 생명을 구했으며, 어떠한 선택이 실패하였는지 되돌아보고 이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의사만큼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기독 의사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릴 수 있는 모든 결정을 헤아려 본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목적 있는 존재들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일하시고 행동하시며 같은 맥락으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생애는 오늘을 위해 준비해 왔다.
오늘이 환자에게는 가장 소중한 날이다.
(‘수련의를 위한 십계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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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항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사회에 손을 뻗쳐 나가는 기독 병원의 모험은 항상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다. 사실 이것이 복음서의 이야기이다.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대답을 요구하시는 신구약 성경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선택의 신학이다. 그 근본 개념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 각자에게 궁극적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 30:19)
우리의 과제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생아의 울음소리나 기침소리, 산모의 신음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돌보고 함께해 주고 힘을 주고 사랑하고 안심시키고 양양해 주고 가르치는 것,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귀한 존재라고 알리는 것이다. 선택의 기회가 제공될 때까지는 선택의 여지란 없으며, "내가 여기 있음을 누군가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미사여구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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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사역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불완전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에 동참한다는 개념은 의학과 모든 형태의 보건 행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독 의료가 모습을 감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설립된 병원들이 세속화되어 가는 사실을 가슴 아파하며 이를 소리쳐 외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 나는 의료 혜택을 잘 받고 있는 나라에서건 열악한 의료 환경의 나라에서건 의료인으로서 의미 있는 증인이 되도록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독 병원들이 재정적, 과학주의적, 사회․정치적인 압력에 굴복할 때, 복음에 담긴 가치 있고 소중하며 근본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무엇인가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설대위, [상처입은 세상, 상처입은 치료자(IV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