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카애와 서양음악사를 공부 하느라 클래식 감상할 기회가 부쩍 늘었다. 언젠가 바하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감상하고자 했는데, 그런 소망이 예기치 않게 앞당겨진 셈이다. 다음은 조카 은나래와 나눈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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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하의 음악을 듣고난 느낌이 어때? 싫진 않았어?
은나래/ 좋은대요? 아주 좋아요.
나/ 와아~ 의외인걸. 바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거든.
은나래/ 전 정말 좋은데, 왜 바하를 좋아하지 않는거죠?
나/ 무미건조하거든. 누구나 뭔가 톡 쏘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잖니. 나래야, 넌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음악을 좋아할 것 같니?
은나래 / 당연히 낭만파겠죠. 주관적 표현이 강한 시대이니 감성에 맞는 선율,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주를 이루잖아요. 그러니까 자연 낭만파 음악이 친근하게 들리겠죠.
나/ 그래, 정확한 답이야. 고전파는 비교적 일정한 형식성을 벗어나지 못한반면, 낭만파는 활기에 찬 분위기라 할 수 있겠지? 두 개의 사조를 음식에 비교하면 어떨까?
은나래/ 낭만파는 피자 같고, 고전파는 백반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 백반이라~ 왜 고전파를 백반에 비유하는 거지?
은나래/ 백반은 우리의 옛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거든요. 반찬 가짓수는 많지만 거의 일정한 메뉴고요. 전통 음식은 낭만파처럼 톡 쏘지는 않고, 평범하지만 거의 우리 입에 맞는 오래된 전통을 고수하잖아요. 그게 바로 형식의 하나이겠죠. 일정한 규칙처럼....
나/ 그럼 바로크는 어떨까?
은나래/ 바로크는 참기름이죠. (함께 웃음)
나/ 참기름이라, 근데 하필 참기름이지?
은나래/ 참기름은 고소하고 뒷맛이 오래 남으니까요.
나/ 그럴까? 그래도 참기름은 좀 이상한걸. 바하의 음악에서 보듯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담백하고 무미건조하잖니. 물론 방금 함께 감상한 <커피 칸타타>처럼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곡도 있지만, 역시 바하는 주로 종교음악 중심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경건하고, 담백한 편이지. 반면에 붉은머리 사제라는 별명을 가진 비발디나 세속적 음악을 주로 쓴 헨델의 경우는 비교적 세속적인 경향이 강하고, 활발한 느분이기지만 그래도 바로크 음악의 주류적 특징은 무미건조함이랄 수 있겠어. 자, 우리 본격적으로 바하의 음악에 대해 알아볼까? 먼저 엊그제 공부했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의 특징을 한번 말해볼래?
은나래/ <브란덴브르크 협주곡> 에서처럼 리듬과 선율이 맥박치듯이 단조롭고 일정해요.
나/ 그렇지? 마치 맥박과 같이 규칙적인 리듬, 마치 물결이 흘러가듯 끝없이 이어지지? 이런 특징과 더불어 통주저음을 말해야 할 거야. 나래, 통주저음이 뭔지 아니?
은나래/ 쳄발로나 저음 현악기 등이 지속적으로 베이스 성부를 연주하는 거 아닌가요?
나/ 그래, 바로크 시대는 중세나 르네상스에 비해 악기가 더욱 중요시되었단다. 동시에 성악곡의 성격도 달라지고. 가령 합창곡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는 각 성부가 중요한 역할을 한 반면, 바로크 시대는 맨 위 성부를 강조하게돼. 물론 이 점은 기악곡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자연히 아래쪽 성부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사용된 양식이 바로 통주저음(혹은 지속저음)이지. 그리고 이러한 통주저음은 르네상스나 고전파 시대에선 찾아 볼 수 없는 바로크만의 독특한 양식이란다.
나래야 지난번 공부때 책에서 봤던 바로크 시대의 악보를 함 기억해보렴. 거기보면 베이스 음표 아래에 아라비아 숫자가 있었잖니? 베이스음을 기준으로 아라비아 숫자 윗 음표를 쳄발로나 저음 현악기가 저음 성부를 받쳐주거든. 그러니까 통주, 혹은 지속이란 독주 파트가 쉴 때도 저음을 계속 연주를 했기 때문에 붙인 말이지. 윗 성부 경우, 당시는 지금처럼 화성이 발달이 안 되었기 때문에 연주가들이 숫자를 보면서 즉석에서 화성을 만들며 연주했단다. 물론 이들 연주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이것들을 잘 소화했단다.
은나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에서 베이스 성부의 지속저음은 하프시코드가 연주하는 것 같은데 큰아빠 생각은 어때요?
나/ 글쎄, 건 확실히 모르겠는걸. 첼로 같기도 하고.....자, 또 다른 바로크 음악의 특징을 살펴볼까?
은나래/ 당시는 음의 강약조절, 그러니까 크레센도, 디크리센도나 포르테, 피아니시모 등이 없었어요. 대신 악기 숫자를 증가하거나 감소시키면서 음의 강약을 조절했다고 해요.
나/ 그래, 그 점은 정감이론과 관계가 있단다. 나래도 알다시피 정감이론이란 어떤 곡의 느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처음부터 미리 제시 되기 때문에 연주가들은 그런 기분으로 연주해야 한단다. 가령 슬픈 곡일 경우 주로 하행 선율, 혹은 낮은 음으로 연주한다던가, 기쁜 경우는 상승의 선율을 주로 사용한다던가. 식으로 말야.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한 곡이 특정한 분위기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단다.
은나래/ 큰아빠. 아까 대위법을 말씀하셨는데 대위법을 알려주세요.
나/ 방금 감상했던 칸타타 <내 주는 강한 성> 서두 코랄 부분을 상기해보렴. 먼저 서두는 합창이 시작되다가, 어느정도 진행된 후에는 하나의 성부가 다른 성부를 뒤 따라 모방하면서 노래한단다. 그러다 계속해서 각각의 성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 선율을 모방, 반복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바로 대위법의 한 예란다.
고속도로 상에서 각각의 차선을 주행하는 차들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거야. 단 주의할 것은 실제 고속도로 경우는 다르겠지만, 대위법의 경우, 각각의 차들은 절대 다른 차선을 추월하면 안 된단다. 오직 자신의 차선만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 그런 후 다른 차선을 모방하거나 추월(이때는 자신의 차선에서 속도를 내서 추월) 할 수 있지. 더 자세히 말해볼까? 만약 모든 성부가 아무런 변화없이 각각 자신의 성부만을 연주하거나 노래한다면 무미건조하지 않겠니? 그래서 주 선율을 중심으로, 어느 성부는 하행, 역행, 모방, 축소, 확대를 하면서 진행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는데, 이걸 두고 바로 대위법이라고 하는거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대위법의 대가인 바하는 베를린을 여행하는 도중에 프로이센 국왕의 초청을 받았단다. 국왕을 만난 그는 6개의 성부를 가진 푸가를 연주해보라는 국왕의 즉석 요청을 받게돼. 그러자 바하는 망설이지 않고, 6성부 푸가를 연주했단다. 그후 자신이 살던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바하는 국왕이 제시한 주제를 바탕으로 3성부와 6성부 푸가를 국왕에게 헌정하게되지. <음악의 헌정>이 바로 그 곡인데, 보통 연주자들은 3성부도 힘들텐데 무려 6성부 푸가를 즉석에서 연주했다니 놀랍지 않니? 그것도 단숨에 말야. 바둑으로치면 혼자서 동시에 여러 사람과 대국을 벌인 경우와 흡사할거야. 바둑에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겨뤄야한다면, 대위법에서는 하나의 성부를 중심으로 동시에 여러 개의 성부를 하행, 역행, 모방, 축소, 과장 식의 대위법적으로 재구성하는 거겠지.
은나래/ 근데 자세히 설명해 주셨어도 대위법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나/ 하긴 나 역시 대위법을 정확히 모른단다. 단지 기본적인 개념만 이해할뿐이지. 간단히 이해하는 방법이 있긴 해. 가령 돌림노래를 생각해보렴. 먼저 시작한 선율을 뒤따라 그대로 따라하는게 돌림노래 아니니? 이걸 카논이라고도 하는데, 카논이 바로 대위법 형식의 하나란다.
나/ 자, 이번엔 피아노의 구약성서라 부르는 <평균율 클비어곡집>을 한번 살펴볼까? 어떠니, 선율이 평이하고 아름답지?
은나래/ 저야 비올라를 하니 잘은 모르지만, 피아노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면서요?
나/ 그래, 선율이 단순한데 비해 왼쪽 손가락을 오른쪽과 동등하게 사용해야하니 막상 연주하기가 쉽지 않단다. 음대 재학생도 쉽지 않다고 할 정도니까. 바하는 피아노를 배우는 자신의 딸을 위해 작곡했다고 해. 은별이 언니도 너무 어렵다고 푸념한 적이 있단다. 근데 연주자와 달리 감상하는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평안함을 느끼니 공평치 않은거겠지? 한 옥타브를 24개의 음과 조성으로 나눠 연주하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단순, 소박한 것이 특징이란다. 자, 이번엔 <마태 수난곡>을 감상해볼까?
큰 아빠는 값비싼 메이저 음반을 잘 구입하지 않는 편이야. 그런데도 <마태 수난곡>만큼은 특별히 구입했지. 칼 리허티의 지휘도 지휘지만, 실은 제47곡 때문이었단다.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아리아 선율은 너무도 아름답고 슬픈 분위기를 띄고 있어. 나래도 알겠지만,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는 다혈질인데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단다. 걸핏하면 화를 부르르내고, 사람들과 다투다 상대의 귀를 배어버릴정도로 난폭한 사람이었지. 그런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는데, 오히려 예수는 그런 그를 가장 믿고 아끼는 제자로 여겼으니 좀 아이러니한데가 있지? 그러나 베드로는 비록 단순하고 불같은 성미였지만 워낙 마음이 순수하고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예수는 12제자 중에서 그를 제일 사랑했단다.
어느 날 예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베드로야, 너는 닭이 울기전에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당연히 베드로는 팔짝 뛰었지. 절대 그럴리 없다고. 결국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된 스승 예수를 베드로는 멀찍이 지켜보며 뒤따르다 신분이 발각되게 된단다. 군중 속에 있던 어떤 이가 베드로를 가르키며 “저 사람이 바로 민중을 선동한 예수의 제자다” 라고 외치니까 베드로는 혼비백산해서 나는 절대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거든. 바로 그 순간 어데선가 새벽 닭 울음이 들려왔단다. 어떻게 되었겠니. 베드로의 심정말야. 그는 꼬끼오, 하는 닭소리를 듣는 순간, 대성통곡을 하며 목놓아 울었단다. 나는 죽일놈의 인간이라고, 스승을 팔아먹은 인간이라고. 그런 베드로의 통곡과 슬픔, 비애를 묘사한 곡이 바로 47곡 바이올린 영창이란다.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희생>의 라스트신에서 바로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지. 아마 영화사상 이 장면처럼 배경음악을 감동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드물지 않을까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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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간 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 무반주 첼로 소나타 1번, 바비 맥페린이 노래하는 <G선 상의 아리아>, 조지 엘리엇 가드너가 지휘하는 <크리스마스 오라트리오> 에 대한 대화가 다음 기회에 계속됨.
* 조카 은나래와 함께 <서양음악사>를 공부하는 동안, 공부하고 감상한 결과를 계속해서 대화 형태로 게시할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