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 추억
예천군에서도 오지에 속하고 군청에서 18키로나 떨어져 있는
고향 마을 매창은 뒤쪽으로 정산의 대가봉이 앉아 있고 동과 서,
앞으로 낮은 동산이 마을을 아늑하게 지켜주며 이 동산 고개와
들길을 따라 개울 따라 한 십 여분 걸어 나가 보면 황지에서
안동을 거쳐 내려오는 낙동강 줄기를 만나는 개펄에 다다른다.
이 개에서 삼강이 어우러지는 마산으로 가는 길목에는 오래 전
물방앗간이 있었다는 물방골이 있어 네철 푸른 물이 흐르고 있고
뒷산 배골재를 힘들여 넘어가면 절터가 있다. 이곳은 겨울철
다른 일이 없을 때 나무하러댕기던 곳으로 어릴 때 밤새워 놀곤 했던
우리 집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기 위해 또래들과 같이 썩은 나무 등걸
줍고 고자배기 캐서 지게에 한 짐씩 지고 내려오며 식은땀을 흘렸던
가파른 산등성이였지만 지금은 어른들조차 발길을 하지 않아 초목만
무성한 채 덮여있어 모처럼 성묘 길에 나서는 경우에 길 찾기가 어려워
고생이 많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예천읍에서 다녔던 나는 방학 때만 되면 고향을 찾아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매를 낳아 기르고 있는
요즈음 서울 주변에서 아스팔트길에 찌들며 TV, 컴퓨터, 과외에 시달리는 애들과 그 또래들을 보면서 참으로 한심하게 느끼고 있다.
자연을 즐길 줄 모른 채 어른도 섬길 줄 모르고 저만 최고라고 우기며
도심에서 살아가는 애들이 애처로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철철이 고향마을에서 친우들과 보낸 그 시절 즐겼던 기억을 더듬어
커 가는 애들에게 아버지 시절의 고향마을을 화면으로 떠올려 보게 하고
싶어서 서툰 솜씨지만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한다.
옛 동산에 올라 - 김금환
봄기운이 나면 개울물 얼음이 채 녹기 전 얼음 깨진 사이로
개울물이 졸졸 소리내며 흐를 때 버들가지에 움트고 참꽃 진달래
할미꽃이 산등성이에 나부끼면 꽃을 따 나뭇짐에 꽂고 흥겨운 콧노래
부르며 저녁 연기 피어오르는 초가지붕 바라보며 산길을 내려오곤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나무하러 가는 우리 집 중머슴을 따라 다니면서
산에 핀 꽃 꺾고 계곡 개울에 파릇파릇 움트는 버들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같이 불며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며 참꽃이나
진달래 꽃잎, 버들강아지를 따먹던 재미도 쏠쏠했었다 .
소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또래들은 송구를 꺾어 그 껍질을
벗겨내 속살을 씹어 단물을 빨아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었고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산으로 들로 달래, 냉이, 꽃다지, 씀바귀,쑥 같은
산나물, 들나물 뜯으러 다니는 애들과 봄을 맞았고 시커먼 보리개떡에
누런 밀가루로 찐빵과 나뭇잎에 밀가루를 묻혀 찐 나뭇닢 떡으로도
때를 이우던 그 시절, 육이오 덕분에 우유를 배급받아 쪄먹기도 했지
않았던가? 단오가 되면 고모는 창포에 머리 감고 궁갱이(궁궁이)를
꺾어 머리에 꽂고 동산에 매 논 군디(그네) 타고 봄날을 즐겼는데
그 때 벌써 읍내에서 50리 길인 우리 마실까지 팔러 온 아이스케키를
고모를 졸라 사 먹고는 설사를 만나 놀지도 못하고 배만 움켜쥐고
뒹굴던 기억도 새롭다.
아까시아 피는 늦은 봄을 뒤로하면서 여름을 재촉하는 푸르른
버리를 보며 생기를 찾았고 보리밭에 병든 버리깜부기 훑어가며
입을 어지럽히고 밀서리, 콩서리로 배를 채우다 밭 임자 만나 경을
치기가 일수였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한낮이 되면 갱빈에
소 몰고 나가 풀 뜯게 놔두고 씨름을 하거나 강가에서 고기 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는 산과 논밭을 뛰어 다니는 메뚜기 잡는 데 정신을
팔기도 하고 상석에 앉아 공기놀이며 꼰을 두며 해지기를 기다리기도
했었지만 낙동강변에서 고기 잡는 재미 또한 비길 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