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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운당 해월에 대하여
초기 경전인 화엄십지설(華嚴十地說)에 따르면 초발심을 하여 견성성불을 하기까지는 먼저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한 집중 수행을 하고 그로부터 보살도를 증진하는 50단계를 올라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의 다섯 단계를 다시 10위씩 세분하여 총 50단계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묘각(妙覺)과 등각(等覺)의 2단계를 넘어서면 보살이 부처가 된다는 설이 화엄십지설이다.
총 52단계를 거치는데 세 번의 아승지겁(阿僧祇劫)을 필요로 한다. 아승지란 무한의 수를 이르고 겁(kalpa)은 4억3천2백만 년에 해당된다고도 하고, 하늘 사람이 하늘하늘한 하늘 옷을 입고 둘레가 40리나 되는 바위를 매 3년마다 한 번씩 돌면서, 혹은 둘레 400리 되는 바위를 매 100년에 한 번씩 돌아서, 하늘하늘하게 바위를 스쳐 그 바위가 다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이라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기간을 수없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승지겁이다. 이것을 다시 세 번이나 지나야 52 단계의 보살도를 완성할 수 있다니 이런 식의 시간이란 연대기적(chronological) 시간이 아니라 신화적 시간(illo tempore)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처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시간적 길이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전의 숫자는 숫자적 가치(numerical value)가 아니라 수비학(數秘學)적 가치(numerological value)를 나타내는 것이다.
초기 경전의 화엄십지설과는 반대로 대승을 표방한 중국의 선종에서는 이런 깨우침에 이르는 보살의 길이 한 생애 안에, 심지어는 일순간에 완성될 수도 있다고 가르친다. 부처가 되는데 세 아승겁이 필요한지 찰나간에 깨달음을 이룩할 할 수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세 번의 아승겁이 지나도 안 될 수 있고, 일순간에 깨우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다음 수행해야 할 것이다.
세 번의 아승지겁이 필요한 최초로 닦아야 할 십신(十信)단계는 다음과 같다.
1.신심(信心):한 마음으로 결정하여 즐겁게 성취하려는 지위
2.염심(念心):항상 육념(佛, 法, 僧, 戒, 施, 天)을 닦는 지위
3.정진심(精進心):대승경전을 듣고 선업을 부지런히 수습하여 끊어짐이 없는 지위
4.정심(定心):마음을 한 곳에 안주하게 하여, 모든 거짓됨과 경솔함과 분별하는 생각을 멀리 떠나는 지위
5.혜심(慧心):대승경전을 듣고서 사량하고 관찰하여 모든 법이 실체가 없어서 자성이 공적함을 아는 지위
6.계심(戒心):보살의 계율을 받아 지녀서 행위와 말과 뜻이 깨끗해져서 모든 허물을 범하지 않으며, 범하는 경우가 있으면 후회하여 없애는 지위
7.회향심(廻向心):닦은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여 자기에게 두려고 하지 않으며, 중생에게 회향 보시하여 오로지 자기 것으로 삼지 않으며, 실제를 구하는 것에 회향하여 명상에 집착하지 않는 지위
8.호법심(護法心):자기 마음을 잘 지켜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지위
9.사심(捨心):몸과 재물을 아끼지 않고 얻은 것을 남에게 주는 지위
10.원심(願心):수시로 깨끗한 서원을 닦아 익히는 지위
보살의 공부 단계 50위 중 11-20위인 마음을 진실의 공리(空理)에 안주하는 십주(十住)를 살펴본다.
1.발심주(發心住):10신의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의 관법이 완성되어 진무루지(眞無漏智)를 내고, 마음이 진제의 이치에 안주하는 지위
2.치지주(治地住):항상 공관을 닦아 심지를 청정하게 다스리는 지위
3.수행주(修行住):만선(萬善)만행(萬行)을 닦는 지위
4.생귀주(生貴住):정히 부처님의 기분을 받아 여래종에 들어가는 지위
5.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부처님과 같이 자리이타의 방편행을 갖추어 상모(相貌)가 결함이 없는 지위
6.정심주(正心住):용모가 부처님과 같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은 지위
7.불퇴주(不退住):몸과 마음이 한데 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지위
8.동진주(童眞住):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피하지 않는 것이 마치 동자의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십신(身) 영상(靈相)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지위
9.법왕자주(法王子주):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해(智解)가 생겨, 다음 세상에 부처님의 지위를 이을 지위
10.관정주(灌頂住):보살이 이미 불자가 되어 부처님의 사업을 감당 할 만하므로 부처님이 지수(智水)로써 정수리에 붓는 것이, 마치 인도에서 왕자가 자라면 국왕이 손수 바닷물을 정수리에 부어 국왕이 되게 하는 것과 같으므로 관정주라 부르는 지위
21위-30위에 해당하는 십행(十行)은 열 가지 이타 행을 말한다. 십행은 네 가지 목적 때문에 닦는 것이다. 첫째는 유위(有爲)를 싫어하므로 모든 행을 닦는 것이고, 둘째는 보리를 구하고 부처의 덕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셋째는 현재와 미래세 중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넷째는 실제를 구하고 법여(法如)를 증득하기 위하여 제행을 닦는 것이다. 그 10가지 위는 다음과 같다.
1.환희행(歡喜行):보살이 한량없는 여래의 묘한 덕으로 시방에 수순하는 지위
2.요익행(饒益行):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지위
3.무진한행(無瞋恨行):인욕을 닦아 진노를 버리며, 자기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여 자타를 해치지 않고, 원망에 대하여 잘 참는 지위
4.무진행(無盡行):보살이 대정진을 행하고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을 발심하여 대열반에 이르도록 게으름이 없는 지위
5.이치란행(離癡亂行):항상 정념에 주하여 산란하지 아니하여 일체법에 치란함이 없는 지위
6.선현행(善現行):세 가지 업이 적멸하여 속박되거나 집착함이 없으면서도 중생교화를 버리지 않는 행위
7.무착행(無着行):모든 한량없는 세상을 거치면서 부처에 공양하고 불법을 구하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고, 또한 제법을 적멸한 것으로 보므로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이 없는 지위
8.존중행(尊重行):선근, 지혜 등의 법을 존중하고 모두 성취하여 그 때문에 더욱 자리 행과 이타 행을 닦는 지위
9.선법행(善法行):네 가지 막힘없는 다라니문 등의 법을 얻어서, 여러 가지 남을 교화하는 선법을 성취하여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지위
10.진실행(眞實行):제일의제의 말을 성취하여 말과 같이 잘 행하며, 행하는 것과 같이 말하여 말과 행동이 상응하고 색심이 모두 순응하는 지위
31위-40위인 십회향(十廻向)은대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구호함을 말한다.
1.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육바라밀과 사섭법을 행하여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원친을 평등하게 하는 지위
2.불괴회향(不壞廻向):삼보에서 허물어지지 않는 믿음을 얻어 이 선근을 돌이켜서 중생들로 하여금 좋은 이익을 얻게 하는 지위
3.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삼세불이 지은 회향과 똑같이 생사에 집착하지 않고 보리를 떠나지 않은 체 수행하는 지위
4.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회향력으로 말미암아 닦는 선근으로써 일체의 삼보 내지 중생의 처소에 두루 이르기까지 공양의 이익을 짓는 행위
5.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일체의 끝없는 선근을 따라 기뻐하고 이것을 회향함으로써 불사를 지어 끝없는 공덕의 선근을 얻는 지위
6.수순평등선근회향(隨順平等善根廻向):닦은 보시 등의 선근을 회향하여 부처의 수호를 입어 일체의 견고한 선근을 잘 이루는 지위
7.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隨順等觀一切衆生廻向):일체의 선근을 증장하여 회향함으로써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지위
8.여상회향(如相廻向):진여의 상에 따라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선근을 회향하는 지위
9.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일체법에 집착하거나 막히는 바가 없어서 해탈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선법을 회향하여 보현의 행을 행하고 모든 종류의 덕을 갖추는 지위
10.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廻向):일체의 끝없는 선근을 닦아 익혀서 이것을 회향하여 법계의 차별의 끝없는 공덕을 추구하는 지위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에 이어 아제 마지막으로 41위-50위에 해당하는 보살 십지에 대하여 언급하겠다. 십지(十地)는 능히 주지(住地)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하는 것이 마치 대지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익함과 같으므로 지(地)라고 하는 것이다.
1.환희지(歡喜地):처음으로 참다운 중도지(中道地)를 내어 불성의 이치를 보고, 견혹(見惑)을 끊으며 능히 자리이타하여 진실한 희열에 가득 찬 지위. 십대원을 세운다. 기쁨이 넘치게 된다.
2.이구지(離垢地):수혹(修惑)을 끊고 범계(犯戒)의 더러움을 제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는 지위. 십선도(十善道)를 행한다. 더러움을 버리고 청정해진다.
3.발광지(發光地):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 무상·고·무아 등을 관한다. 내적인 지혜의 빛이 해처럼 빛난다.
4.염혜지(焰慧地):지혜가 더욱 치성하는 지위.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닦는다. 빛이 더욱 찬연하게 빛난다.
5.난승지(難勝地):진지(眞智), 속지(俗智)를 조화하는 지위. 사제(四諦)를 닦는다. 무지에 갇힌 사람들이 이기지 못할 경지에 이른다
6.현전지(現前地):최승지(最勝智)를 내어 무위진여(無爲眞如)의 모양이 나타나는 지위. 십이연기를 관한다. 사물의 실상을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보게 된다.
7.원행지(遠行地):대비심을 일으켜 2승의 오(悟)를 초월하여 광대무변한 진리 세계에 이르는 지위십바라밀을 닦는다.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초월하였기에 이제 더 이상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 부처의 세계에서 천상의 보살이 될 정도가 된다.
8.부동지(不動地):이미 전진여(全眞如)를 얻었으므로 다시 동요되지 않는 지위무생법변(無生法邊)을 얻음. 진리에 굳건히 서므로 더 이상 동요가 없고, 이제 뒤로 물러나는 일이 없게 된다.
9.선혜지(善慧地):부처님의 10력(力)을 얻고, 기류(機類)에 대하여 교화의 가부를 알아 공교하게 설법하는 지위. 사무애지(四無碍智)를 얻음. 선한 통찰로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가르친다.
10.법운지(法雲地):끝없는 공덕을 구비하고서 사람에 대하여 이익 되는 일을 행하여 대자운(大慈雲)이 되는 지위. 진리의 구름 속에 머물면서 중생에게 진리의 비를 뿌리는 법운지 단계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기 위하여 화업경의 화엄십지설을 인용한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이 법운지에 머물면, 사실대로 욕심세계의 모임과 형상세계의 모임과 형상 없는 세계의 모임과 세계의 모임과 법계의 모임과 함이 있는 세계의 모임과 함이 없는 세계의 모임과 중생계의 모임과 인식계(識界)의 모임과 허공계의 모임과 열반계의 모임을 알며, 이 보살이 사실대로 모든 소견과 번뇌의 행이 모임을 알며, 세계가 이루고 헐림의 모임을 알며, 성문의 행이 모임과 벽지불의 행이 모임과 보살의 행이 모임과, 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음과 형상 몸(色身)과 법의 몸(法身)이 모임과, 갖가지 지혜와 온갖 지혜의 지혜가 모임과, 보리를 얻어 법륜을 굴림을 보이는 것이 모임과 온갖 법에 들어가 분별하고 결정하는 지혜가 모임을 아나니, 중요함을 들어 말하면 온갖 지혜로써 온갖 모임을 아느니라.
불자여, 이 보살 마하살이 이러한 상상품의 깨달은 지혜로써, 중생의 업으로 변화함과 번뇌로 변화함과 여러 소견으로 변화함과 세계로 변화함과 법계로 변화함과 성문으로 변화함과 벽지불로 변화함과 보살로 변화함과 여래로 변화함과 일체 분별 있고 분별없게 변화함을 사실대로 아나니, 이런 따위를 다 사실대로 아느니라.
또 부처님의 가지(持)와 법의 가지와 승의 가지와 업의 가지와 번뇌의 가지와 시절의 가지와 원력의 가지와 공양의 가지와 행의 가지와 겁의 가지와 지혜의 가지를 사실대로 아나니, 이런 따위를 다 사실대로 아느니라.
또 부처님 여래들의 미세(微細)한 데 들어가는 지혜를 사실대로 아나니, 이른바 수행함이 미세한 지혜와 목숨을 마침이 미세한 지혜와 태어남이 미세한 지혜와 집 떠남이 미세한 지혜와 신통 나툼이 미세한 지혜와 바른 깨달음을 이룸이 미세한 지혜와 법륜 굴림이 미세한 지혜와 목숨을 유지함이 미세한 지혜와 열반에 듦이 미세한 지혜와 교법이 세상에 머뭄이 미세한 지혜니, 이런 따위를 다 사실대로 아느니라.
또 여래의 비밀한 곳에 들어가나니, 이른바 몸의 비밀과 말의 비밀과 마음의 비밀과 때와 때 아님을 생각하는 비밀과 보살에게 수기하는 비밀과 중생을 거두어 주는 비밀과 가지가지 승(乘)의 비밀과 일체 중생의 근성과 행이 차별한 비밀과 업으로 짓는 비밀과 보리를 얻는 행의 비밀이니, 이런 따위를 사실대로 아느니라.
또 부처님들이 겁에 들어가는 지혜를 아나니, 이른바 한 겁이 아승지 겁에 들어가고 아승지 겁이 한 겁에 들어감과, 수 있는 겁이 수없는 겁에 들어가고 수 없는 겁이 수 있는 겁에 들어감과, 한 찰나가 겁에 들어가고 겁이 한 찰나에 들어감과, 겁이 겁 아닌데 들어가고 겁 아닌 것이 겁에 들어감과, 부처님 있는 겁이 부처님 없는 겁에 들어가고 부처님 없는 겁이 부처님 있는 겁에 들어감과, 과거 겁과 미래 겁이 현재 겁에 들어가고 현재 겁이 과거 겁과 미래 겁에 들어감과, 과거 겁이 미래 겁에 들어가고 미래 겁이 과거 겁에 들어감과, 오랜 겁이 짧은 겁에 들어가고 짧은 겁이 오랜 겁에 들어감이라, 이런 따위를 다 사실대로 아느니라.
또 여래께서 들어가는 지혜를 아나니, 이른바 터럭 같은 범부에 들어가는 지혜와 작은 티끌에 들어가는 지혜와 국토의 몸으로 바로 깨닫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중생의 몸으로 바로 깨닫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중생의 마음으로 바로 깨닫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중생의 행으로 바로 깨닫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온갖 곳을 따라서 바로 깨닫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두루 행함을(偏行) 보이는데 들어가는 지혜와 순하는 행을 보이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거슬리는 행을 보이는 데 들어가는 지혜와, 헤아릴 수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세간을 알고 알지 못하는 행을 보이는데 들어가는 지혜와, 성문의 지혜·벽지불의 지혜·보살의 행·여래의 행을 보이는데 들어가는 지혜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의 가진 지혜가 광대하고 한량이 없거늘, 이 지의 보살이 모두 능히 들어가느니라.
묘각과 대각의 두 단계를 남겨두고 있지만 법운지란 50단계의 수행을 거친 보살의 최상승 경지로써 부처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숙세의 인연이 닿아 직지사의 조실이었던 관응(觀應) 큰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스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법제자로 나를 받아 드리신 다음 수행의 50층 계단을 올라간 법운지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신 후, 법운이라는 법명을 내려 주셨다. 나로서는 그런 이름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노스님께서 앞으로 법운지에 올라가라는 뜻으로 법운을 주신 것이지 이미 법운지 단계에 올랐기에 법운이라 정해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받았었다. 지향점을 법운지로 설정하고 법의 구름을 뿌리기 위해 정진하는 가운데 몇 년이 흘러 같다.
이때까지도 나는 불교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출가하여 승려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법운이라는 이름은 크게 용처(用處)를 찾지 못한 채 나만의 마음속에 새겨 두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었다. 그러다가 발심을 하여 출가를 결심하고 은사로 모실 스님을 찾던 중 속리산 법주사 문중의 법제를 이은 법수(法受) 스님을 뵙게 되었고, 부족한 것이 많은 나를 어여삐 여겨 흔쾌하게 상좌로 걷우워 주실 뜻을 밝혀 여간 홍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은사 스님은 제자를 받아 드릴 때 법명과 가사 장삼을 한 벌씩 내려 주시는 것이 산문의 관례다. 법복의 문제는 문제 될 것이 없으나 법명은 은사의 돌림자를 제자가 사용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남으로 법운을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은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법운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겸양해서 사양하시니 관응 스님 같은 큰스님이 내려주신 것을 버리지는 말아야겠기에 그것은 호로 사용하고, 법명은 내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혜월(慧月)이라고 하면 어떨까?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달이 되시게.”
웬만한 이름이면 겹치지 않는 것이 없고 혜월도 여러 스님네가 사용해온 것이라는 면에서는 특이하거나 새로운 이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 그것도 내게는 황송한 이름이다. 부처의 본체는 하나지만 온 우주에 화신하여 중생을 교화하신다. 그와같이 하나의 달로 떠서 시공을 초월하여 천강을 비추라는 의미로 흔히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는 말을 쓰는데, 은사스님께서 주신 혜월이라는 법명 속에는 천강을 비추는 달처럼 백억세계에 나투어 행화 하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관응 큰스님의 법제자가 된 후 스님의 수도처인 직지사의 화장암에 머물면서 화엄경과 남화경인 장자 같은 것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었다. 유학자로써도 학문의 깊이를 측량키 어려울 정도로 해박했던 스님은 주해(註解)를 해주시는데 어느 하나 막힘이 없어 늘 나를 감탄시키고는 했었다. 이런 배움의 시간도 소중했지만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황악산 뒤쪽의 삼도봉을 같이 바라보며 말없는 가운데 서로의 심중으로 진리를 소통시켰던 기억도 심혼의 묘묘함을 나툰 시간이라 여겨 소중하다. 그곳 화장암의 법당에는 관응 큰스님의 제자였던 법안 스님이 쓰신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 있었다.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보신, 화신이 참이 아니고 망연으로 인함이니
법신은 청정하여 가이없구나
천강에 물 맑으니 천 개의 달 비치고
만리에 구름 없으니 만리에 푸른 하늘이네
위 주련 앞을 매일 수차례 오고 가면서 늘 천강을 비추는 달이고자 했더니 혜월이라는 법명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즐겨 먹물로 그렸던 채근담의 명구 하나가 떠오른다.
앞의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이라 쓴 두 연만 새겨보면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가 나지 않고 달빛은 연못을 뚫어도 물에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되리라. 달빛이 흐르는 대로 대나무 그림자가 뜨락을 지나가는 것이 마치 청소를 하는 것 같은데 먼지는 나지 않고 그 달빛이 연못 속에 들어가 있지만 물에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은 자못 의미가 심장하다.
해인삼매을 증득하여 천강을 비추는 혜월이 될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물에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달이고는 싶다는 마음을 정한 뒤 은사 스님이 내려주신 혜월이라는 법명을 받아 드렸다. 그렇게 해서 법운당은 나의 호가되었고, 혜월이 법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큰스님이 되는 데는 물론 발심한 본인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자비심이 답지 되어야 뜻을 이룰 수 있겠다는 것을 머리를 갂고 나서야 알았다. 아직 부처도 되지않은 주제에 불법승 삼보를 동일시 한답시고 나보다 먼저 부처가 될 수도 있는 분들로부터 삼배를 받는 거들먹은 떨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초발심을 유지할수 있는 격려와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정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따듯하게 보살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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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월스님...글 잘 읽었습니다.누구나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신심이 부족한 탓에 그 길이 아련하게 느껴집니다.하지만 이런 글도 접하고 절에도 열심히 다니면 좀 가까와 질까요? 정진할 수 있는 용기와 끈기가 스님에게 샘솟듯 일어나시라고 기도 드리겠습니다.관세음보살...
위에 인용되어진 채근담 글의 전문을 다시 한번 해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뒤의 두 연은 水流任急境常靜 花落雖頻意自閑 로써 수류임급경상정 화락수빈의자한으로 읽으며, 물이 아무리 빨리 흘러도 주위는 늘 고요하고 꽃이 자주 떨어져도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는 뜻입니다. 성불이 마음속의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마음이 조용히 청정의 상태로 머물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설명 감사 드립니다.
저는 대강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법운당이라는 호와 해월이라는 법명에 얽힌 이야기를 스님으로부터 직접 들으니 그것이 그대로 또 하나의 절묘한 법문이군요. 3아승겁에도 못이룰 부처의 경지를 금생에 꼭 이루시는 큰스님이 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법명과 호에 그런 고매한 뜻이 숨어 있었네요~ 잘 새겨 들었습니다. 반드시 천강을 비추는 해월스님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더욱 정진하셔서 스님이 뜻하는 바 꼭 이루어 내시길 빕니다()()
큰 스님 되소서..()()()
十地에서 '地'가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법의 비를 내리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