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이루는 바깥 풍경이나 실내 장식품을 적절하게 배치,
단순한 성 유희를 넘어선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성풍속도로 그려진 것이다.

이를테면 남녀가 바깥에서 은밀하게 정사를 벌이는 위 그림을 보면
그림의 초점이 두 남녀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물기가 흥건한 먹으로 묘사된 계곡 입구는 진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바위와 흙더미(土坡)가 결합하는 장면은 자연에서의 음양(陰陽) 이치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산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의 그것을 닮은
여근곡(女根谷)을 은유적으로 표현, 자연과 인간의 음양 결합을 한 화면에 담아
남녀의 성애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킨 것이다.
담뱃대를 문 여인, 여인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있는 초립동의 살포시 보이는 볼기짝에서 외설은커녕 순수한 사랑의 몸짓을 느낄 수 있다.

신윤복의 ‘ 정사’
신윤복의 '애모정사'를 보자.
방안의 두 남녀는 서로를 애모하는데 정신이 팔려 문밖에서 엿보는 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져있다.
여인의 왼손은 벌거벗은 남정네의 옆구리를 매만지고 있는데
오른손은 무슨 짓을 하는지 보이질 않는다.
호기심 많은 어린 하녀는 제풀에 겨워 두 뺨 가득 홍조를 띤 채
긴 트레머리를 늘어뜨리고 몸을 가누지 못해 방문에 기대 서 있다.
밀애를 나누는 남녀와 엿보는 사람을 대비시킨
이 장면은 조선시대 춘화에 자주 오르는 단골 메뉴이다.
엿보는 사람은 대개 하녀나 소년들이고 때로는 동자승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숨은 목격자의 배치는 은밀한 성적 감정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짜낸 아이디어다.
엿보기의 진수는 다음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김홍도 - 운우도첩(雲雨圖帖)01
김홍도의 '운우도첩1'은
절에 온 여인과 노승의 성희를 엿보는 동자승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애로 비디오에 과부들이 단골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춘화에는 파계승들이 자주 등장한다.
엿보는 이는 동자승으로,
신윤복의 엿보는 그림보다 공간 처리가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다.
스님과 여염집 여인의 정사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아들을 못 낳는 일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깊은 산중으로 부처를 찾아가 백일 치성을 드리고 수태,
대를 잇는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다.
결혼 10년이 넘도록 애를 갖지 못한 여성이 백일 치성으로 아이를 얻는 기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성이 백일 치성을 드리는 동안 이 여성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스님뿐이다.
불공을 드리면서 정담도 나눌 수 있다.
깊은 산속 절간에서의 이들의 만남은 큰 인연이다.
100일은 길다면 긴 시간이다.
머리가 잘 도는 스님이면 이 기간 중에 여성의 배란기쯤은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스님과 여인의 정사는 끝맺음을 이렇게 하고 있다.
배란기를 맞춘 마지막 치성.
탑돌이로 여성의 정신을 뺏는다.
두 손을 모으고 오직 아들 낳기만을 빌면서 수십, 수백 바퀴를 돌고 나면
핑하고 어지럼증이 온다.
기를 쓰고 몇 바퀴를 더 돌지만 탑이 있는 절 마당에 쓰러지기 마련이다.
여인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스님의 손에 의해 인기척이 없는 절 방으로 옮겨진다.
이윽고 애를 얻기 위한 숭고한 작업이 시작된다.
여인은 비몽사몽간에 무언가를 느끼고 있지만 노골적인 몸짓은 할 수 없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 스님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일….
이 긴장감이 출렁이는 순간,
가만히 발을 밀치고 아무도 보아서는 안되는 장면을 동자승이 훔쳐본다.
이것이 '스님의 밀교(密交)'를 그려낸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춘화는 스님과 여인의 표정보다도 동자승의 훔쳐보기가 압권이다.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 경관뿐 아니라,
행위가 벌어지는 주변의 경물도 의미 없이 등장하는 법은 없다.
절구와 절굿공이가 있는가 하면, 참새나 개의 교미 장면을 살짝 곁들임으로써
강하게 암시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된다.
스님의 밀교에서 동자승처럼 하녀나 시동이 남녀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그림 보는 재미를 돋워준다.
남녀가 성교하는 노골적인 표현이 있다 해도
주변 경관이나 화분, 책상, 장독대, 화로, 등잔, 괴석 등 배경 그림들이
직설적인 표현을 누그러뜨리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선시대 춘화가 외설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김홍도-운우도첩(雲雨圖帖)07
이 그림 역시 한폭의 산수화, 또는 산수와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류를 묘사한
풍속도와 같은 춘화이다. (역시 김홍도~~~!)
배경의 바위는 둔부의 모양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여성의 음부이다.

김홍도 - 운우도첩5
이는 주인과 여종과의 성희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종은 모든걸 체념한듯 사뭇 마음대로 하라는 식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휘장이 쳐진 방안을 배경으로 남녀가 정사를 나누고 있다.
마루에 놓여있는 매화나무 분재와 수선화, 그리고 문방구와 책 등으로 보아
이곳은 사대부가의 사랑방으로 조선후기 양반집의 실내정경과 분재를 재배하는
새로운 취미가 유행했다는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이다.
지붕 선과 문틀의 묘사 등 사선을 많이 사용함으로서 화면에
동적인 분위기와 심도를 주고 있다.
춘화는 흔히 포르노그라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물화나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옛사람들의 문화나 질병까지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얼굴에 담긴 반점이나 낯빛으로 춘화의 모델들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를
추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춘화를 단순히 포르노물이라고 단정하는 것보다는 옛 조상들의 성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자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홍도-운우도첩 (雲雨圖帖) 10
18세기 조선왕조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이 운우도첩의 그림들은 매우 사실적이며 속되지 않아
후대 춘화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19세기 말기나 20세기의 춘화들에도 혼교하는 장면이 간혹 있지만 그리 흔하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춘화첩 중에서 단원의 작품으로 전 하는
이 운우도첩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화첩을 그린 화가의 창의력과 필력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월등히 뛰어나다.
조선왕조시대의 여러 가지 성 풍속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며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속되지 않다.
또한 이 그림은 특이하게 두 명의 여자와 한 남자가 혼교(混交)하는 장면을 다룬
파격적인 장면이다.
우리 춘화의 적나라한 장면들은 단순히 도색적인 성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하나로 표현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리고 해학적이면서 낭만이 흐르고 가식 없는 표현들로 감칠맛 나는 것이
사랑스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