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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ABC트래킹의 성공 이야기(2)
다섯째 날, 고라파니ㅡ>푼힐(3210m)ㅡ> 데우랄리(Deurali 2990m).
2월 16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추위에 대비해 옷을 주워 입는다. 가뜩이나 전기 사정이 안 좋은 곳인데 갑자기 내린 눈으로 중간에 전선이 끊겼다고 산에 들어온 첫 날 저녁만 잠깐 전등불을 보았을 뿐 계속 정전중이다. 이곳 고라파니는 꽤 큰 마을에 속하는 데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다.
아아침 햇빛을 받아 흰색으로 빛나는 히말라야 산군들
새벽 5시부터 서둘러 푼힐로 향한다, 헤드 렌턴을 켜고 아이젠을 끼고 눈 쌓인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숨이 콱콱 막힌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우리 뒤로도 렌턴의 불빛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다. 3천 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라 그런지 더욱 힘이 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올라갔다. 2시간가량 올라가니 전망대가 보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망탑에 올라가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여 히말라야를 감상한다.
다울라기리가 구름 속에 숨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이드는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와 안나푸르나 남봉과 닐기리 연봉을 가리키며 하얀 산에 대해 설명해 준다. 하얀 산맥이 줄지어 달리고 있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 일행 (수철, 포터 다와, 와이프, 가이드 놀부, 김선생님, 포터 갤리)
푼힐 전망대에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전망대에 올라가 대자연을 감상하고 있는데 해가 산 너머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구름이 산맥을 뒤 덮기 시작한다. 기대했던 것 보다는 구름이 많았지만 멋있는 일출이다. 일행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움막으로 가 코코아를 한 잔씩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푼힐 전망대에서의 일출. 산위에서 해가 떠 오르고 있다.
로얄 팀은 눈으로 하루가 지체되어 예정된 코스로 하산하지 못하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며 푼힐 전망대에 오른 것만도 다행이라고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하산은 빨라 숙소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 되었다. 롯지에서는 난로를 피워놓고 식사준비를 해놓았다. 남봉과 히운출리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휴식을 취한 다음 9시에 오늘의 목적지인 타다파니(Tadapani 2590m)로 출발하였다. 타다파니까지는 6시간이상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눈이 없는 평상시 이야기이고 어제부터 눈길을 힘들게 걸었고, 오늘은 새벽부터 3시간 가까이 3200m까지 산행을 한 후에 다시 눈길을 6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화창하니 좋다. 낮에는 산행을 하면 더워서 우리나라에서 가을 산행하는 것처럼 티셔츠만 입어도 되지만, 해가 지면 쌀쌀해져 옷을 껴입어야하고 밤에는 엄청 추워 옷을 입고 침낭속에 들어가 있어도 얼굴이 추워 모자를 쓰고 옷으로 얼굴을 덮고 자야한다.
처음부터 눈 덮인 산길을 올라간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듯 러셀은 되어 있었지만 발자국만 남을 정도로 좁게 나있어 똑바로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두 다리를 스치듯이 걷다보니 마치 트위스트를 추듯 허리는 허리대로 발은 발대로 움직여, 균형을 잘 잡아 걸어야하며 조금만 삐끗하면 넘어지거나, 한 발이 깊은 눈 속으로 빠지는 것이다.
이 산길은 밀림이 깊어 산적이 나타나 트래커를 해치는 일도 있어 여럿이 다녀야 한다는 곳이다. 가이드는 우리가 넘고 있는 이곳이 푼힐보다 높은 3300m 라고 한다. 몇 번이나 넘어지기 도하고, 깊은 눈 속에 발이 빠지기도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 왔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온다. 여학생 2명과 남학생 2명이 가이드와 포터 한명씩과 같이 올라오고 있다. 그들도 무척 지친 듯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다시 힘을 내서 내려간다. 내리막 길은 한결 편하다. 데우랄리(2990m)에 12시경 도착 했다. 3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3시간 정도를 더 걸어 타다파니로 가야하는데 우리 모두가 지쳐있는 것이다. 일행인 김 선생님은 더 이상 못 가겠다며 적당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리만 ABC에 올라갔다 오라고 하며 포기 선언을 한다. 눈 덮인 산비탈을 오르 내리며 깊은 골짜기 옆을 지날 때 경사면으로 미끌어 질까봐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고 한다.
가이드도 이번에 내린 눈으로 ABC의 눈사태 위험구간을 통과하기가 힘들고, 또 그곳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롯지 주인들도 철수하여 숙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도 올 겨울에 7번째 이 코스를 왔는데 눈은 처음이라고 하며 카트만두에서는 62년 만에 눈이 내렸다고 하며 ABC가 힘들다는 데 동조한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할 때가 왔다.
와이프도 그 동안 쉴 때마다 마사지를 하는 등, 신경써 왔던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할 수 없다. ABC를 포기하고 다른 일정을 잡자고 가이드에게 말하니 가이드는 지도를 보며 나머지 일정을 조정한다.
데우랄리 롯지의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
결론은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타다파니에서 하루를 묵고 촘롱 (Chomrong 2170m)까지 가서 ABC로 올라가지 않고 거기서부터 하산을 하기로 했다. 모든 일정이 처음 계획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김 선생님은 ABC의 중압감에서 벗어났는지 토속주를 찾았으나 없어서 네팔 산 에베레스트 맥주 2병을 시켰다. 맥주 한 병에 200루피, 우리 돈으로 2800원 정도이다.
점심은 우리나라 청수 비빔냉면을 먹고 오후 내내 난로 가에 앉아 원주민 아이들과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가져간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유리창 너머로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김선생님은 내일 산행할 걱정이 태산 같다.
22세인 기념품을 파는 원주민 처녀는 예쁘고 서글서글하니 장사 수완이 매우 좋아 야크 털로 짠 장갑을 두 켤레에 500루피에 샀다. 그 장갑은 생각보다 훨씬 따듯하고 눈이 잘 털어져 트래킹 내내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또한 주인아주머니는 저녁에는 감자를 삶아 주기도하고, 아침에는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는 등 트래킹 중 가장 친절하여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선 산행 후 처음으로 오후 5시부터 전기가 들어와 카메라 전지를 충전하고 일찍 자리에 들려는데 일정 조정으로 여유가 생긴 가이드는 이곳에서 20분 거리에 멋있는 전망대가 있다며, 예정에도 없고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곳을 내일 아침 일찍 가보자고 한다. 우리는 좋다고 찬성하였지만 김 선생님은 가지 않고 쉬겠다고 한다.
여섯째 날, 데우랄리(2990m)ㅡ>타다파니( Tadapani 2590m). 2월17일
밤새 눈이 많이 왔나보다. 날씨는 쾌청하다. 김 선생님은 쉬고 우리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집 앞에서 부터 바로 산비탈을 타기 시작한다. 원주민 꼬마 여자 아이는 능숙하게 가이드와 우리 부부를 인도하여 눈길을 헤쳐 나간다. 20분이면 갈 수 있다는 코스는 가까운 거리지만 비탈길이 되어 위험하다며 우회하여 가느라고 40분 이상이 걸렸다
구릉 힐(Gurung Hill Tower, 3180m) 전망대에 도착하니 맑은 날씨에 어제 푼힐에서는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던 다울라기리, 닐기리 연봉, 안나푸르나 사우스, 히운출리, 안나3봉, 마차푸차레, 안나 2봉, 람중히말과 더 멀리 마나슬루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파노라마 사진. 사진 위에서 클릭하여 원본 사진 크기로 보면 좋아요 마차푸차레의 멋있는 모습
마음껏 히말라야의 자연을 감상한 후 눈에 푹푹 빠지기도 하고, 미끄럼도 타면서 재미있게 눈 장난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내려 왔다.
산위에서 본 데우랄리 숙소
가이드는 어제 술을 먹었다며 북어 국에다 쌀밥을 준비했고, 9시가 넘어 여유 있게 타다파니로 떠났다. 길은 급격한 내리막으로 한 편으로는 절벽을 끼고 내려가는 길도 있다. 아주 위험한 곳은 쇠파이프로 가드레일을 만들어 놓았다.
수력발전소
계곡을 거의 내려가니 조그만 집이 눈에 띈다. 문 옆에는 해골도 그려져 있어 사람이 사는 집 같지 않아 물어보니 소규모 수력발전소라고 한다. 어제 우리가 잠잔 데우랄리의 전기불도 이곳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더 큰 마을인 고라파니에서도 정전으로 전기를 사용 못했는데 이곳에서 충전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이다.
가이드가 가던 길을 멈추고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약 50마리 정도의 야크 무리들이 눈 덮인 길을 점령하고 꼼작도 않고 있다. 야크는 물소와 달리 갑자기 난폭해져서 달려들기도 한다며 야크를 피해서 조심스레 눈 쌓인 계곡으로 돌아갔다
야야크떼가 눈길을 점령하고 꼼짝하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일정에 여유가 생긴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맑다. 고도가 낮아지니 눈도 적어진다. 반탄티(Banthanti 2520m)에 도착하여 커피를 한잔하고 쉬어가기로 한다.
이곳 반탄티는 셋째 날 마차푸차레의 황금색 Fish Tail을 본 반탄티와 이름과 글자도 똑 같다. 안나푸르나 코스에서는 이렇게 이름이 같은 곳이 또 있다고 한다. 데우랄리란 이름을 가진 곳이 3곳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어제 잤던 데우랄리와 이름이 똑 같은 곳이 MBC 바로 밑에도 있고 우리가 하산할 코스에도 비촉 데우랄리(Bhichok Deorali 2100m)란 곳이 있다고 한다.
오후 2시경에 타다파니에 도착했다. 이곳은 제법 큰 마을이다. 가이드는 자신이 잘 아는 롯지가 문을 닫았는지 방을 구하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다 히말라야 롯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이제까지 우리가 머무른 곳과는 규모부터가 크게 차이가 난다.
랄리구라스 나무와 꽃 봉우리
일반적으로 롯지를 선택하는 것은 가이드의 권리 이며 우리 가이드는 자신과 같은 종족인 세르빠족이 운영하는 잘 아는 롯지를 골라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하여 우리들에게 한국 음식을 내오는 것이다. 물론 그럴 경우 주방을 빌리는 요금을 따로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롯지는 주방을 빌릴 수 없어서 음식을 사 먹어야 했다.
이 곳 롯지는 모든 게 장사속이어서 이전에 친밀감을 느끼던 곳과는 달리 싸늘한 분위기이다. 식당에는 탁자 밑에 담요를 둘러 쳐놓았고 이 담요 안으로 18리터 페인트 통 같은 곳에 장작불을 넣어 탁자 아래에 놓아둔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릎을 담요 안으로 넣어 추위를 달랜다.
담요 안에 젖은 등산화 , 양말들을 널어 놓아 말리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니 일본 젊은이 혼자 앉아있다. 그는 히말라야만 6번째 오는 것이며 EBC 2번, ABC도 2번을 가보았고 이번이 3번째인데 어제 촘롱에서 ABC로 가는 길이 위험하고 롯지도 닫혔다고 해서 이리 왔다고 한다. 내일 우리가 가야할 촘롱까지 길이 나쁘다며 큰 나무가 쓰러져 있는 사진도 보여준다. 가이드도 그 말을 듣고 난감해 한다. 그가 히말라야를 자주 와 봤다고 하여 한국의 설악산을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일본의 산도 별 관심이 없고 “ only Himalaya! " 라고 말한다. 그 후 중국 아가씨 3명이 들어와 우리 앞에 앉아 음식을 시키고 웃고 떠든다. 아가씨들은 내일이 설날이어서 닭요리를 먹고 싶다며 주인에게 묻는다. 닭 한 마리를 사는데 10$이고 요리까지 해주면 15$이라고 하니, 그중 한 아가씨가 자신이 닭 요리를 할 수 있다며 직접 주방에서 요리를 하겠다고 한다. 옆에서 그들이 하는 말은 알겠는데 말은 잘 안되니 여행을 하려면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층 침실에서 쉬려고 올라가는데 와이프와 나누는 말을 듣고 한 사람이 “한국사람 이네요. 하며 반긴다. 그는 부산 해인 정사에 계신 젊은 스님으로 인도 성지 순례를 2 개월간 하고, ABC를 하기 위해 네팔에 왔다가 카투만두에서 한국 남학생 한명과 50대 남자 분을 만나 3인이 한 팀이 되어 왔다고 하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 방으로 스님을 모시고 가 커피를 같이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스님은 ABC를 마치고 티벳으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가니 모두 모여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식탁 중앙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콜맨 석유 등으로 불을 밝히고 식사를 한다. 50대 한국 남자 분은 밑반찬을 많이 준비해와 밥과 야채수프를 시켜 고추장에 비벼 맛있게 먹는다. 그는 롯지에서 Plain Rice를 시키면 인도산 쌀로 지은 밥을 주는데 거의 한국 밥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는 ABC를 하기 위해 2개월 동안 인터넷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며 전의에 불타고 있었고, 일행인 학생은 발꿈치가 까져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올라가다 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따뜻한 물이 필요하면 쓰라고 한다. 자신들이 빨래를 하려고 뜨거운 물 한 바켓에 40루피를 주고 샀다고 하며 씩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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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트레킹 후에 이렇게 상세하게 스케치하 듯 기록을 하는 것이 엄청 어려울텐데, 아니 귀찮을텐데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알려주고 설명해 주는 이수철 산꾼의 솜씨에 새 찬사를 보낸다. 인생을 정말 멋있게 꾸려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고 삶의 보람이겠지 이왕 수고 하는겸에 계속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