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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 창립 산행기
오늘은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가 결성된 후 처음 거행하는 산행이다. 작년 12월초 막 이전한 우리 서울건축사협회 회관 회의실에서 모임을 구성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나도 참석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분들이 논의 후 방향을 정하고, 참여키로 해 회가 결성되었다.
그동안 친목행사 등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특히 협회의 동호인 모임이 자칫 본연의 순수한 동기와 다르게 세(勢)로 잘못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서초 건축사회 등산동호회의 권유로 산행에 참가하고부터 비교적 자주 산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조병섭 건축사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2박 3일동안 덕유산에서 작점고개까지 백두대간 산행도 했었다. 그야말로 산악인다운 그는 서초건축사 등산 동호회를 시작으로 전국건축사 등산동호회와 이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 창립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전국 건축사 등산동호회의 총무인데 이 회에서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는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가 서울에 사는 건축사들이 모여 산행을 함께하며 심신의 건강을 다지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임이 될 것이고 생각한다. 산에 혼자 가는 것도 좋지만 일행과 동행하면서 정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사실 나 스스로도 몇년전부터 산에 가는 기회를 가급적 자주 갖고자 마음 먹었었다. 지리적 안목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되고 별다른 운동을 안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산행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사 짖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자연과 접하며 살았지만, 도시에 사는 동안 자연과 접촉할 기회가 드물게 되었다. 인간 본연의 정서를 간직하는데 있어서 자연과 멀어진 것이 현대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에 건강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로부터 산에 간다는 것은 수행을 의미했다. 그래서 산은 깨달음의 장소를 상징하기도 했다. 현대인들도 산행을 심신을 수양하는 의미로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본능적인 지구책의 발동일지도 모른다.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수유역에서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철수 건축사님과 서초등산동호회 회장인 이승훈 건축사님을 만나 함께 120번 버스를 탔다. 9시 40분 약속 장소인 그린파크 앞에서 당도하니 먼저 온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산행은 작년 말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가 결성한후로 처음 거행되는 산행인데, 등산회가 출범한 후 개설되어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인사를 나누기도 해서 내심 서로가 기다려온 산행일 듯 했다. 서울에서 지방에 있는 산에 갈 때는 대개 대기한 차 안에서 인사하게 되는데 오늘 만나는 장소의 느낌은 그것과 달랐다. 우리가 오를 산을 대하며 있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서 있자니 추위가 느껴졌다.
모임 장소인 그린파크는 북한산 자락 아래 양지바른 터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옆으로 흘러나오는 개울 위쪽을 바라보면 맨 위로 정상이 보인다. 모인 사람 중에는 그동안 여러차례 함께 산을 다닌 서초건축사회 회원이 가장 많았다. 고문으로 위촉된 오경진 전국 건축사 등산 동호회 회장을 비롯하여 박기현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장과 김의중 서초 건축사회 회장, 이영호 광진 건축사회 회장 등 50여명이 참가하였다. 모인 분들은 평소 산을 좋아하셔서 꾸준히 다니는 분들일 것 같았다.
그린파크 정문에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하고 10시10분 우이동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행을 시작했다. 우이동 계곡은 오래전부터 서울 사람들의 휴식장소로 자리 잡아왔다. 입구로부터 유흥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겨울이라 건물들만 썰렁하게 놓여 있었다. 우리 일행 말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호젓이 느릿하게 경사진 길을 걸어 올라갔다. 조금 위쪽으로는 기도원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출발한지 20분 후쯤 용덕사 옆을 지났다. 그 곳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독경과 목탁소리가 들렸다. 계속해 길을 걸어 얼마쯤 오르자 시선이 멀리 트여 보이기 시작했다. 산행을 하다가 정상에 당도하기 전 그런 때부터 산에 온 뿌듯한 기분이 된다. 우선 평소 평지서 느끼지 못하던 광경을 대하며 새로운 사물의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가 늘 살아가는 장소지만, 시내에서는 분주하고 빠듯하게만 느껴지는 곳이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주변 산세 사이에 어우러져 보인다. 그리고 의외로 우리가 사는 도시가 좋은 입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조금 전까지는 수락산 쪽으로만 시선이 트여 보였는데, 점차 오를수록 도봉산, 오봉산, 백운대 등 이름난 산과 송추, 의정부, 동두천 등지까지 사방으로 멀리 시선이 트여 보였다. 그러면서 내가 서 있는 지점으로부터 연속된 산세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더 멀리 북한 지역도 보일 것 같았다. 서울 시내에서 북한산을 인식할 때는 마치 도시에 큰 산이 하나 면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쉽고 북한산의 그 본래 가치도 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처럼 산에 오르며 산세를 대하면 사람들이 명산이라고 하는 말들을 쉽게 공감하게 된다.
나는 겨울산을 좋아한다. 잎이 진 겨울철의 나무는 알몸을 드러낸 까칠한 모습이지만, 그로부터 추운 겨울을 지나며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 드러난 산세와 알몸의 나무 숲은 잎이 무성할 때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이고 추상적인 조형감과 적막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산을 오르면서 그러한 느낌을 담으려고 사진을 몇장 찍어보았다 .
다시 산봉우리 하나를 지나 식빵 바위를 지나면서 서울시내 쪽으로 툭트인 산 등성이를 가로 질러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그런 곳을 지날 때면 산내음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에 올라온 것이 얼마나 장한 일로 여겨지는지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을 찍으며 앞서가다 뒤쳐지다 하며 11시 30분에 영봉에 도착하니 길을 따라 앞뒤로 흩어가던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산행에서 영봉(靈峰)은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무엇보다도 거기서는 인수봉과 백운대, 노적봉 등, 북한산 정상을 이루는 산세의 웅장함을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는 따로 휴식시간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머물고 싶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일행들도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기도 하고 소주와 안주를 돌리기도 했다. 나도 옆에서 권하는 소주 한잔을 받아 마셨다. 거기서 마시는 소주는 내용물이 화학적으로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한듯이 맛이 좋았다. 영봉 표지석을 받친 판석에는 다음과 같은 정공채 시인 시가 새겨 있었다.
산에 들면 가득찬
영기에 감사할지니
산의 정기 있으매
푸른 기운 솟고
산의 자연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생명 더불어
모든 생명 사노니
산이여 영봉이여
만고불변 하여라.
영봉에서 쉬다 다시 백운대로 향했다. 거기서부터는 다시 계곡을 내려가 인수봉 옆을 돌아 올라가야 한다. 아래로 내려오니 시인 마을이라고 써 붙인 산장 앞에 공터와 벤치가 있었다. 산장안으로 들어가니 오가는 사람들이 들러 쉬며 볼 수 있게 시집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곳을 나와 지나가니 바로 앞에 인수봉이 놓여 있었다. 백운대는 그 인수봉을 비켜 지나가야 한다. 그 길로 올라가 12시 30분에 백운 산장에 당도하였다. 백운 산장은 거친 화강석으로 벽을 쌓고 통나무로 지붕을 만든 건물로서 산행인들의 보금자리이다. 그런 산장은 기후가 사나울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맑고 빛이 좋은 때는 건물 안보다 앞에 닦아놓은 마당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반대쪽에서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거기 머물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도 거기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 좋은 벤치 하나를 차지하고 마주보며 걸터 않아 각자 갖고 온 밥과 반찬을 꺼내 놓았다. 앞에 앉은 강준규 회원이 산장안으로 들어가 우리를 위해 왕뚜껑 라면 세 개를 사 오셨다. 늦게 당도한 이승훈 서초 건축사회 등산동호회장은 거기까지 무겁게 지고 온 막걸리를 꺼내 놓았다. 거기서 음식과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언제나 그렇지만 산에서 먹는 음식은 참 맛이 좋다. 낮 시간이 되니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으며 낙수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양지 바른 마당도 얼었던 흙이 녹아서 봄이 올 때의 시골 길처럼 질척거리기도 했다.
오늘은 산행 거리와 코스의 험난함을 감안해 3개조로 나뉘어 산행 하고 있었다. 뒷풀이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내려가 만날 시간도 의식해야 했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나 백운대로 향했다.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서 모두 함께 가게 될 것 같지 않았다. 거기서 걷는 길은 인수봉을 동남쪽에서 돌아 올라가는 코스인데, 아래쪽보다 눈이 녹지 않은 채 바닥에 다져져 있어서 발 디디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길은 몇 년 전 평창동에서 출발해 백운대를 들러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내려가는 길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르는 길이고 오가는 사람들과 마주쳐 기다리고 하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그렇게 가다 백운대와 노적봉 사이 골짜기에 위치한 위문에 당도해서 오른편에 있는 백운대를 올라갔다.
백운대를 오르면서 가장 좋은 경관은 맞은편 인수봉을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서 보면 거대한 산봉우리를 잘 다듬어 놓은 듯 웅장하면서도 조형감 있는 윤곽의 맵시를 느낄 수 있다.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그 산은 볼수록 기운이 느껴진다. 백운대는 경사가 심하고 곳곳 암벽에 설치한 철 난간을 붙잡으며 이리 저리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그래도 와 본 경험이 있어 전보다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오후 1시10분에 백운대 정상에 당도했다. 정상에는 3․1 운동을 기념해 바위 바닥에 새긴 글자를 보호하려고 난간을 둘러쳐 놓은 곳도 있다. 그리고 높다랗게 설치한 깃대위에 태극기 길발이 휘날리고 있다. 사실 오늘 북한산행은 회의 때 내가 제안했었다.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로서 서울에 있는 상징적인 산을 먼저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새해를 맞아 이런 명산을 오르는 기회를 갖은 것이 스스로 좋게 생각되었다. 이 곳 저곳을 바라보며 사방으로 트인 시선에 닿는 풍광을 음미하면서 산에 온 기분을 잠시 만끽했다. 거기서 전화가 걸려왔으나 잘 통화되지 않았다. 차라리 안 걸리는 것이 좋은 일일 것 같았다.
북한산은 한북정맥이 달려와 한강 앞에 너른 터를 두고서 솟아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북한산은 한북 정맥이 이어오는 도중의 산들보다 단연 빼어난 기세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백두대간으로부터 산의 정기가 내려올 뿐 아니라 이 곳에서 기운이 솟아 뻗쳐나갈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도 북한산을 사랑하고 찾는 사람의 수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와 볼수록 명산임을 실감한다는 예기들을 한다. 오늘날 서울이 대도시가 된 것은 조선 개창 후 풍수지리상의 길지로 여겨 도읍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큰 산세와 큰 강이 만나는 양지 바른 곳이니 풍수적으로 명당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산의 산 이름이 원래 삼각산이라 하여, 요새 산의 공식 이름을 그렇게 고쳐 부르자는 주장들이 있다. 조선 초기 도읍을 정하고자 산세를 논할 때나, 인조 때 김상헌이 읊은 “가노라 삼각산아...” 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에도 삼각산으로 불리고 있다. 대개 북한산성, 남한산성 등의 지명은 한강을 기준으로 그 이남과 이북에 있는 위치 개념으로 붙여진 꼴인데 북한산도 그렇게 붙여졌을 것 같다. 백운대 정상에는 두개의 바위가 놓여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기를 받으려면 그 위에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하며 올라가 촬영을 했다. 혼자 올라갔는데, 박노철 건축사님과 이득우 건축사님이 연이어 올라와 만났다.
정상에 당도해서 가장 좋은 것이 사방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한동안 사방을 둘러보며 호쾌한 시선을 음미했다. 사람들은 각자 알고 있는 곳을 기리키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거기서 보니 구파발에서 의정부로 가는 길과 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이 모두 산 속에 위치해 보였다. 거기서 사기막골과 송추 등지로 가서 몇 번 사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래쪽을 보니 김준식 건축사님이 동행한 친구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까 백운 산장에서 머물지 않고 바로 올라간다고 했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13시 40분 하산했다.
거기서 산을 내려가는 길은 영봉을 거치지 않고 도선사까지 계속해서 가는 내리막 길이다. 내려오다 다시 만난 백운 산장은 아까와 달리 그늘이 드리워져 주위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더 아래 인수 대피소까지 내려왔는데, 그 곳에 근무하는 경찰이 인대가 늘어난 등산객 아주머니를 막 업히고 있었다. 그렇게 안전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기에 사람들의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찾게 될 것 같다.
오전에 영봉에서 내려온 삼거리 지점에서 도선사 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왔다. 거기서 도선사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2시30분에 도선사 입구에 도착했다. 뒤에 오시던 몇 분이 보이지 않아 혼자 도선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도선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하는데, 도선은 풍수지리설을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미래를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선사에 당도해 경내만 바라보고 서둘러 나와 뒤풀이 장소로 행했다. 약속 장소인 산유화 식당 앞에 이르렀을 때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왔다. 3시20분에 식당에 들어서니 모두 모여 있었다. 회원 소개와 동호회 운영을 맡은 분들과 지역 회장들의 인사말을 듣고 화답하느라 박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위하여! 등 여러 가지 건배제창 구호를 따라 몇 차례 술잔을 비웠다. 구호때마다 건강, 친목, 안전 등 세가지 의미를 갖고 세 번씩 제창하라 하여 여러번 외치게 되었다. 오늘 행사 준비로 큰 수고를 하신 총무 안영수 건축사님은 사회를 보며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 역시 평소 산악인다운 풍모가 느껴지던 분이다. 휴일에 산행을 함께한 회원끼리 그렇게 있는 동안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각자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더 자리 잡게 될 것 같았다.
(2007.1.13)
첫댓글 서울건축사 등산동호회 첫 산행지인 북한산의 멋진 산행기를 올려주신 김석환건축사님에게 고마움을 느낌니다. 앞으로도 이 좋은 산행을 같이하는 건축사님들이 더 많아졌음은 좋겠고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행사를 준비 하느라 고생하신 안영수 총무님과 회장님,운영위원장님, 참석하신 모든 건축사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덕분에 산행을 같이하여 매우거웠습니다.
다시 한번 눈길이 펼쳐지는 듯하네요...그날의 감동을 느끼며 님의 글을 대합니다..머지 않은 날에 다시 한번 하고 싶네요...그 코스의 눈길 산행을...좋은 글 감사.
산행후기 감사합니다. 김석환건축사님이 계시기에 우리건축사의 위상과 권의가 당당해질것 같습니다. 우리에 역사가 글로 후배님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첫 산행인지라 길만보고 산행을 마친것 같아 조금 아쉬웠는데 올려주신 산행후기 감사 합니다,
졸고 부끄럽습니다. 서울 지역의 모든 회원과 가족이 다 참여할 수 있는 동호회의 출발을 한 산행이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의 정이 많이 느껴져서 모두에게 건강하고 훈훈한 마당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