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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daum.net/christarwm/8yJz/139
인도차이나 선교 전략에 대하여
강대흥 선교사
1. GMS 인도차이나 선교 역사
GMS 인도차이나 선교1)는 3국(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이 문을 열기 이전에 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C&MA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쏨끼앗 장로님은 자기 친척이 라오스에 살고 있었는데, 자기 친척들과 라오스 복음주의 교회(총회장 비타우 목사)의 요청에 따라 CCT(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태국 기독교 총회)와 KPM(Korea Presbyterian Mission), KGAM(Korea General Assembly Mission) 에 라오스 선교에 한 부분을 감당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당시에는 초창기라 인도차이나 사역은 주로 태국에 있던 선교사들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특히 KGAM이 많은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므로 GMS는 1991년 강대흥 선교사를 인도차이나 선교사로, 인도차이나 조정관으로 임명을 하였다.
KPM은 정OO 선교사를 초청하여 방콕에서 언어훈련을 마치게 하였고, 라오스로 입국한 뒤 라오스 복음주의 총회와 사역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태국인 여자 목사 니따야 를 통해 라오스 복음주의 교회 교인들에게 찬송가 반주를 지도하게 하였다.
KGAM은 라오스 교회 목회자를 훈련 시켜달라고 요청한 복음주의 총회 총무인 캄퐁 쿤타판야 목사의 요청을 받아드려 5명의 목회자2)들을 2년에 걸쳐 훈련시키었고, 라오스가 공산화된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찬송가 5000권을 발간하였다. 한편 총회장 비타우 목사를 본 총회 선교국 초청으로 2주간 한국 교회에서 훈련을 받게 하였고, 메콩 강 옆 도시인 넝카이에서는 라오스로 전도용 복음 방송을 하였으며 5년간 약 3,000권의 신구약 성경을 라오스로 보내기도하였다.
1994년 2월 베트남에는 장OO 씨가 창대교회의 파송을 받아 언어 훈련을 받던 중 현지의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많은 갈등을 갖게 되었고, 후에 필자의 도움으로 소속을 교단 선교부로 바꾸었다. 그 후 정OO 씨가 입국하여 GMS 사역은 더욱 탄력을 얻게 되었다. 그후 남부 복음 교회의 찬송가 발행을 도왔고, 지역 교회 목회자들에게 도서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캄보디아에서는 싱가폴계 미국인 백만장자 단니엘 램3)과 협력 선교 사역을 갖은 KGAM은 1994년 12월에 파송된 김OO 선교사와 고인이 된 오형석 선교사를 픽업하여 캄보디아로 선교지를 정하게 하였고, 초창기 비자 처리와 사역 현장에 현지인들을 소개하였다. KGAM은 한국 치과 의료 선교회(회장: 양유식)의 도움을 받아 치과 크리닉을 설립(1994년1월)하여 캄보디아 의사를 파송하였고, 프놈펜 성경학교(교장: 씨딴 아론)에서 방문 교수 사역을 하면서 군산 개복동 교회(당시 당회장 김종석목사)의 도움을 받아 10명의 장래 캄보디아 장로교회에서 사역할 신학생들을 훈련 하였으며, 이들은 후에 베트남 항공기 사고로 일가족이 순교한 오형석 선교사4)와 프놈펜 장로교회를 세우는데 협력을 하게 된다. 이렇게 초창기 GMS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선교 상황
1820년에 이미 영국 성서공회에 의해 개신교인이 세워진 베트남의 선교 역사는 우리 GMS 와 비교할 때 상당히 일찍 들어왔다 하겠다. C&MA (1954), World Evangelical Crusade5)(1956), 메노나이트(1957), 위크립 성경 번역 선교회(1957), World Vision (1964) 그리고 이들 선교 단체들은 지금까지 사역을 하고 있다. 1975년 공산화 된 이후로 많은 선교단체들이 베트남을 떠났지만 1994년 미국이 엠바고를 푼 이후로 크고 작은 선교단체들이 다시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 정부는 나뜨랑에 신학교 설립(2002년)을 허락했고, 중국인들이 비밀리에 신학교를 설립 (2001년) 하기도 하였다. 작년 남부 복음 교회 총회에는 482명의 목회자들이 참석을 하였고, 이때 9가지 목표를 2004년에 실행하기로 하였다. 이것들은 장거리 교인들을 위하여 교회 설립 계획을 세웠고, 은퇴 목회자와 홀 사모를 위해 지원 정책을 세웠다. 그래도 베트남에는 20만 명의 지하 교회 교인들은 지금도 박해 중 주님을 섬기고 있다.
라오스 교회는 1885년 다니엘 멕길버리6)에 의해 복음이 시작되었다. 1902년 스위스의 형제 교단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으며, 중부 지역에는 장로교회와 OMF 침레 교회가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1975 - 1979년 사이에 대대적인 핍박이 일어나서 교회는 지하로 숨게 되었다. 선교사와 훈련받은 라오스 인들은 다 떠나고, 결국 최근에는 총회장 비 타우 목사까지 미국으로 이민 갔고 현재는 캄폰 목사(1990년 안수)와 캄 푸위앙 목사, 씨앙다우 등이 지도자로 일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처음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923년이고 1970년에는 700여명의 기독교인이 있었다. 1975년 공산화 되면서 시아누크는 모든 선교사들을 쫒아냈으나 결국 1990년 선거이후 정부는 선교사들을 받아드리기 시작하여 지금은 2,000 여 교회와 130,0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1992년 Phnom Penh Bible School 이 Country Net Work7)에 의해 설립을 허락받았고, 1994년 선교 단체로는 OMF 가 처음으로 정부의 설립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불교 연합(Buddhism Nationalism)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2002년 캄보디아 독립 교사 연합회는 교과서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없애기로 하면서 불교가 국교임을 선언하였고, 2003년2월에는 종교성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다.8) 또한 지난 7월13일 주일에는 100여명의 불교도가 꼭프링9)에 있는 교회를 공격하여 강단과 창문을 부수고, 성경책을 내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10)
2. 인도차이나 이해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종교학적으로는 소승 불교 (베트남은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고, 지리학적으로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인도의 영향을 받고 있다. 메콩 강 지류의 국가들 중 버마는 메콩 강과 극히 일부분만 접하고 있고 그 지역도 소수 종족들이 사는 지역이며, 불란서의 침공을 받지 않고 영국의 속국이었다는 역사로 말미암아 메콩강 유역의 인도차이나 국가로 불리어지는 일에 소극적이다. 종교적 상황도 다른 3나라와는 다른데 이미 크고 작은 기독교단이 300여개 존재하고 있고 기독교인도 약 6%에 달하고 있다. 또 태국 역시 동남아의 중심 국가이면서 어느 나라에도 속국이 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인도차이나 국가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한편 불란서의 영향으로 베트남에서 기독교는 천주교를 의미하는데 약 10%가 기독교인이다. 베트남은 이들 3국가에 대해서는 불란서 대신에 종주국으로 행세를 하려고 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싫어한다. 또 태국인들은 캄보디아인보다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 갈등, 태국과 버마의 국경 갈등 등등이 앞으로 메콩 강 유역의 인도차이나 3국의 이해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또 이 지역의 중국의 영향력은 간과 할 수 없는 요소이다. 예를 들면 종교 정책만 하더라도 중국이 외국 선교사에 대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베트남과 라오스도 외국 선교사를 절대로 자유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핍박받는 기독교인들
중국 후진타오 정부는 몽타그날드(Montagnard) 종족 중 주로 처소 교회 지도자들을 붙잡아 베트남으로 넘기고 있고, 캄보디아 정부도 이들을 잡아가지고 베트남에 넘기고 있다. 베트남에서 이들 종족들은 신앙적인 박해를 받고 있다. 또 하노이 북부의 산악 지대의 몽족들도 하노이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다. 하노이 정부는 몽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한 몽족 목회자인 Mua A Sinh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경찰에 잡혔다. 2003년 8월16일 경찰관들이 그의 집을 더 이상 교회로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에 거부하다 몽둥이로 맞아 결국 다엔 비엔 동 경찰서에서 살해당하였다.11) 베트남 정부는 기독교가 미국 종교이니 원래의 몽족 종교 즉 미신 숭배, 정령 숭배 신앙을 갖도록 압력을 가하고 최근에는 조상 숭배와 미신 숭배 제단을 설립할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12)
한편 라오스에는 남부지역 수와나케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기를 노골적으로 요구 당하고 있고, 이를 거역하면 감옥에서 장기간 복역되기도 하였고, 북부 지방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히는 일이 지금도 일어난다. 그중에는 순교당한 분들도 있다. 특히 몽족들은 전쟁 중 서방의 스파이 노릇을 하였기에 대부분의 몽족은 미국 혹은 캐나다로 이주를 하였다.
그러나 아직 라오스에 남아있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은 산속에서 음식에 굶주려있고, 어떤 경우에는 라오스 정부가 비행기로 화학 가루 (Yellow Rain)를 뿌리므로 어느 마을의 몽족은 8,000명이 750명으로 줄어들기 까지 하였다고 보고하였다.13) 물론 미국 시민권자라도 라오스계 사람이 라오스 국내에서 전도하는 일 혹은 라오스 지역 교회 일에 조금이라도 관여 된 것이 드러나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태국의 리더십
그러나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중심지는 태국으로 태국은 이들 지역에 리더십을 갖고 있다. 버마의 민주화 로 나가는 Road Map을 만들어 준 나라가 태국이고, 내륙 국가인 라오스 경제의 80% 이상의 의존도가 태국에 있고, 캄보디아 역시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과거부터 정부가 혼란상태가 계속되어 있을 때에도 북경과 그리고 태국과의 간헐적인 관계는 두절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서방에서는 초창기 이들 인도차이나 지역의 회사, 선교, NGO등등의 본부를 태국에 두었던 것이다.
교회와 신앙
인도차이나 3국에 있는 교회들은 복음주의 신앙을 갖고 있다.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한 교회는 C&MA(Christian and Mission Alliance) 이기에 이들이 세운 교회는 공식적으로 Evangelical Church(Laos Evangelical Church, Vietnam Evangelical Church) 이다. 이들 복음주의 교회들은 초창기 선교사들의 지도에 힘입어 1975년 공산화 이전에 이미 라오스는 베트남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다. 또 태국으로 넘어온 난민들이 미국 혹은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후에 C&MA의 지도로 그 지역의 시민권을 얻고 신학교를 졸업하여 다시 자기 부족의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1991년 베트남을 처음으로 방문 하였을 때에 남부 베트남 복음주의 교회들이 새벽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이들이 바른 신앙을 갖고 있음을 여러 가지 경로 확인을 통해 본인은 확신하였다. 또 라오스 복음주의 교회는 어려움만 만나면 무조건 금식으로 해결 받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베트남 역시 1975년 공산화 된 이후에도 이 지역에 정식 선교사는 파송이 안 되었지만 많은 NGO 와 민간 사업가들이 C&MA 혹은 남 침례교회의 평신도 선교사로 활약을 하였다. 지금도 많은 교단들이 들어가 있지만 라오스와 베트남에서는 정식으로 간판을 걸고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사역한 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선교사들의 고민은 라오스와 베트남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와 얼마나 협력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혹 우리가 설립한 교회들이 있다면 우리를 파송한 한국 교단의 간판을 달 수 있는지……? 인데. 여기에 대한 선교 정책 정립이 필요하다.
3. 인도차이나 선교 초기에 아쉬웠던 점
한인교회에 대해서
선교 자유가 허락되기 전에 인도차이나 국가들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기독교인은 한인 교회 목사뿐이다. 공산 국가라도 외국인들의 신앙생활만큼은 허락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지역의 한인들은 선교 초기에 Resource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캄보디아 (프놈펜), 라오스 (위앙짠) 어디에도 우리 GMS 출신의 한인 목회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교 초기의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의 한인교회는 목회자의 신분을 보장하고 커뮤니티를 돕는 사역들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기에 대 정부 관계를 공고히 하며, 교회가 좋은 기관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고, 담임 목사의 비자 처리와 외부와의 Communication이 용이하고, 현지에서 Self-Supporting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또 한인 교회 목사의 선교사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선교사들에 대한 교포들의 인식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주며, 현지 선교사역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선임 선교사 중심의 리더십 강화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의 팀 선교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본인이 인도차이나 조정관 시절에 캄보디아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의 당회장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제한 지역에서의 (당시 캄보디아는 선교가 제한적인 국가였다) 팀 사역을 열심히 강조하였지만 결국 파송교회 당회장의 현실적인 이해는 “우리 선교사가 죽으러 간다는데 무슨 제한이 그렇게 많으냐?" 는 것이었다.
그 분은 ‘우리 교회의 목적에 따라 열심히 선교하는 것이 최선이다’ 는 생각이 강하시었다. 그러나 처음 선교를 시작하는 국가 일수록 반드시 선임 선교사(리더 기질이 있는 선교사)가 먼저 가야하고, 선임 선교사를 중심으로 팀 선교의 큰 틀을 짜야한다. 혼자서 사역 할 때는 어려움이 없다가, 둘이서 사역을 할 때는, 2팀, 3이서 사역 할 때는 3팀, 4이서 사역 할 때는 4팀이라는 공식은 우리가 반드시 해결되어야할 과제이다.
그러다가 선교지 사역 연도가 10년을 넘어가면서 선교사들은 팀에 속하지 않음으로 생길 수 있는 위기감 때문에 서로가 필요에 의해 그리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팀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선교지와 후원교회에서 명분을 얻기는 하나, 대부분의 팀원들은 사역의 결정과 집행, 선교사 상호간에 재정 협의가 없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팀 사역을 한다고 말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시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면 선하고 아름답다고 교훈하고 있기에 선교지에서 팀 사역은 계속적으로 강조되어져야 한다.
선임 선교사 중심의 현장 선교 조직은 절대적이며, 팀 사역은 반드시 필요하다.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사역하는 현장 선교사들이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리더가 될 사람은 반드시 리더의 기질이 있어야 하고, 이들은 훈련을 통해서만 더 좋은 리더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리더를 세워야만 한다. 리더는 시간이 지나고 내 순서가 되면 맡고 섬기는 그런 직임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리더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리더는 팀의 목표를 세워야하고, 선교사역의 전체 그림을 만들어 모든 팀원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 선배보다는 선교지 이해가 더 많은 사람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 GMS 가 파송한 선교 현장에서 우리의 Resources 들을 가동 할 수 있는 분이 리더가 되어야하며, 모든 사역자들이 같은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실현하고 나가도록 기꺼이 헌신 (Sacrifice) 하게 하도록 도전하고 만드는 이가 리더가 되어야한다.
Supply Team 부재
초창기 인도차이나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들의 연합은 중요하다. 백지장도 둘이 들면 쉬운 법인데, 간혹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혼자 해야 했고, 중복 투자도 있어서 이런 일들이 부정적으로 표현되어 간간히 화두에 오르곤 했다. Supply Team 의 문자적인 의미는 선교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후방의 선교회 혹은 교회에서 공급해 준다는 의미이다. ST 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선교 현장의 Need 가 공식적으로 후방 ST 팀에 알려져야 한다.
선교지 요구에 따라 후방 교회의 ST가 제시간에 맞춰 Response 하는 일에 대해서는 기회가 주어지면 후에 거론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이런 후방의 지원이 개인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ST 가 알아야 하는 것은 현지에서 동료와 연합이 아닌 사역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팀으로 같이 연합 할 것을 요구하고, 주변의 사역자들이 ‘좋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사역을 안 한다고 하면’ 후방의 교회 혹은 후원자들은 어렵고 잘 이해가 안 되어도 사역(일)보다 팀 동역자 (사람 관계)가 먼저라는 인식을 갖고 선교지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바라보아야한다.
4. 인도차이나 전략을 세우기 위한 전제들
이들 지역의 선교 전략은 두 지역(선교 제한 지역과 선교 자유 (관심)14) 지역) 으로 나눠야 한다. 이를 약술 하면 다음과 같다.
선교 제한 지역
베트남, 라오스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 국가들은 종교적 상황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보겠다. 실상 이들 선교 제한 국가들에서 사역하는 분들은 선교사 비자를 취득할 수 없으며, 외국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직접 선교 활동 하는 일들은 크게 제한된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전도 집회를 하는 일들은 크게 제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역의 많은 부분들이 교회와 관련된 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파송교회의 일반적인 선교 컨셉이 ‘교회 설립’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에는 교회 재건 사역을 하는 분들과 교회 건물들을 다시 지어주는 사역들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한 선교학적인 평가는 언젠가 이들 나라들이 선교 자유국가로 바뀌어 질 때 선교지 국민들에 의해 평가되리라 생각한다.
선교 전략을 짜기 위해 재고되어야 할 것들
지역적인 조건
먼저 선교 전략과 틀을 짜기 전에 이들 지역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 보자. 이들 지역은 아직 복음 전파가 자유로운 지역이 아니다. 이들 지역들만이 갖는 공통점들이 있다. 이미 전술한 대로 종교적으로는 소승 불교권(베트남은 대승 불교)의 영향 아래 있고, 문화적으로는 인도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리학적으로는 중국 운남성의 쿤밍에서 시작되는 고속도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태국을 일일 수송권으로 만들 예정이고, 태국과 라오스는 이미 건설된 우정의 다리 외에도 3개의 큰 다리들을 만들 계획이다.
호지민을 통과한 기차가 프놈펜을 거쳐 방콕으로 들어오는 선로들은 이미 정리되는 중이다. 태국과 라오스,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와 캄보디아,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와 베트남은 주민들끼리 월경할 수도 있다. 또한 메콩강을 중심으로 위치한 이들 국가들은 메콩 강 개발 프로젝트에 따라 자국 이익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버마는 중국인이 Nu Jiang 이라고 부르는 살라윈(Salween) 강에 더 관심이 있다. 중국 티벳에서 시작되는 살라윈 강은 전장 2,800KM이고 아시아에서 메콩 강 다음으로 길다.)
소수 종족의 보고이다.
태국의125 종족15), 베트남의 54 종족16), 라오스의 127 종족17), 캄보디아의 38 종족이 있다. 인도차이나의 중심이며 메콩강 하류인 태국의 북부는 오랜 기간동안 이들 제한 지역 국가들이 선교 본부이다. 태국은 선교 자유 국가이기에 많은 사역자들이 태국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이들 종족들은 대부분의 복음화 율이 1% 미만이며, 태국어와 태국어 사투리를 사용하는 종족들은 1억 명이 넘는다.
인도차이나 중심, 태국
북태는 중국과 인도차이나 지역의 전진 기지이다. 실제로 많은 선교단체들이 북태를 선교 본부로 삼고 있다. 실제로 메콩강 지류에 살고 있는 200여 종족 중 태국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는 종족이 10여 종족이 된다. 또 태국은 이들 지역의 주민들이 선호하는 살고 싶은 1등 국가이며, 이들이 이주해 오기를 선호하는 국가이다.
영적인 만족
리더의 비전을 모든 선교사들이 공유할 때에만 가능하다.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왜 우리가 이 지역에서 선교하는지?” 에 대해서 사역적인 만족과 매일 매일의 삶(QT)을 통해 영적인 만족이 있어야한다. 사역 현장에서 영적인 만족이 있다면 다른 일에 부족함이 있어도 선교사들은 감당 할 수 있게 된다.
선교 비전
일반적으로 총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은 교회 개척 혹은 현지인 지도자 양성을 그 중심 사역에 놓고 있다. 일반적 의미에서 교회 개척은 먼저 예배 장소를 구하고, 같이 동역할 현지인 목회자를 구하면 예배드릴 준비가 다 된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리고 현지인 전도사들을 고용하여 전도하게 하고 그러면 간혹 새 교인들을 얻게 된다. 아니면 선교사가 설립한 교회이기에 어떤 경우에는 기존 교인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역자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고국에서 교회 개척을 한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교사로 나오기만 하면 너도 나도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전략 혹은 파송 교회들의 교회 개척 요구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후방 교회도 우리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했다는 자부심도 이제 바꿔야 한다. 더군다나 선교지에 모델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다는 변도 이제 더 이상 남용하지 말자.
선교사가 개척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개척한 순간부터 재정 지원을 필요로 하는 미 자립 교회이다. 많은 경우가 선교사가 철수를 할 때까지 재정 지원을 해야만 하고 만약 재정지원이 중단되면 교회 혹은 교단 간판이 현지인 목회자에 의해서 바꾸는지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재정 지출이 된다 하여도 교회는 전략적으로 설립되어야 하나, 이런 일을 전략적으로 처리해 줄 수 있는 선교 팀이 먼저 선교현장에 있어야 하겠다. 아직 선교 현장에 미숙한 선교사 혼자 결정하고 시행에 옮기는 일은 고만 지양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개척된 교회는 선교 현장에서 모델로 내 세울 만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 건물이 먼저인가 아니면 교인이 먼저인가? 사람에게 관심을 갖아야 하지 않겠는가? 건물이 교회가 아닌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또 선교사가 개척하는 교회(선교사를 의존하는 교회)는 건물부터 얻고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도하면 안 되는가? 먼저 사람들을 전도하고 선교사 가정에서부터라도 예배를 드리면 안 되는가? 많은 평신도 혹은 대학생 사역자들이 제자 양육을 위해 1년 혹은 평생을 바치면서 사역하는 좋은 예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은가? 결국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 키우는 일을 전략적으로 잘 하자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성도의 공동체 아닌가?
선한 사마리아 전도 방법
사역 현장에서 일하는 선교회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주는 전도 전략을 다시 회복해야한다. 누가 우리 이웃인가? 강도 만난 어려운 사람들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그 사람이 아닌가?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전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주일날 교회에 오는 사람 뿐 아니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냥 도와주라! 그냥 사랑을 실천해라! 그러면 그들이 알 것이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세상은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온갖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세상에 많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성육신 선교
라오스 선교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1975년 이전 선교사들이 사역 할 때에는 수도 위앙짠에 라오스 사람들을 위한 지역 교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인 교회만 하나 있었고, 오후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이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1975년 이후 공산화 된 이후 선교사들은 한명도 없었지만, 위앙짠에는 비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후 교회가 2곳 더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전도되는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수도 위앙짠 주변에 살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 선교사들이 전심으로 사역 할 때 기독교인은 200만 명이었으나, 공산화 되고 선교사들이 쫓겨난 후에 지금은 약 8,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무었을 말하는가? 선교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이 나라의 선교를 다 책임진다는 의식은 버리라!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주님의 말씀 따라 이 백성 (무식하고, 나에게 상처만 주는 백성들일수도 있지만) 들을 섬기러 온 것이지 다스리러 온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현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섬기라. 좋은 인간관계를 맺되 물질로 맺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현지인과 다른 특별한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현지인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풍습을 존중하라. 그리고 현지 언어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녀교육이다
하나님이 주신 분복인 자녀들을 강조하는 일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선교를 잘하여도 자녀의 장래가 긍정적으로 풀리지 않으면, 평생토록 최선을 다 한 선교 사역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슨 이유로든지 내 자식은 내가 키우고 내가 책임지겠다.’ 는 수준에 도달하면, 사역 현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선물이지만 하나님이 키워 주신다는 진리가 단순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고, 사역자의 삶에서 먼저 적용되는 은혜가 있어야 한다. 실제적으로 인도차이나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사역을 하려면, 도시에 교회 개척도 해야 하지만, 미전도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고, 많은 간접사역(사회사업)들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족속들의 마음 문을, 집안 문을, 마을 문을 여는데 동원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역자들의 주거지는 지방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도시에 있다고 하여도 자녀들을 데리고 있게 되면 간혹 안전이나 치안이 어려워서 자녀들을 장기적으로 집에 두고 사역을 하기 어렵고, 또한 사역을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MK 기숙사 설립
그러므로 전략적 사역을 하기 위해서 선교 본부는 인근 자유로운 국가의 국제 학교가 있는 지역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를 만들어 최소한 현장 선교사들에게 자녀 교육의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OMF(동남아시아와 메콩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와 NTM(오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Southern Baptist (중국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 WEC과 KGAM(국제 학교가 없는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서) 은 치앙마이에 선교사 자녀 기숙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북태의 치앙마이는 선교사들이 안식년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전략 없이 치앙마이를 사역지로 정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스런 일이고, 자녀 교육을 위해 치앙마이에 머무는 일은 깊이 재고되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선교사 자녀 학교 혹은 국제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방콕에 선교사 자녀 국제 학교18)를 설립하는데 동참하고, 후에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해 본 경험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는 재정적인 투자가 막대하고, 기독교인 원어민 교사들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미 설립된 기독교 국제학교를 이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교 비전
이들 관심 국가에서 사역하는 충분한 이유가 먼저 설명되어져야 한다. 왜 선교사를 파송하는가? 왜 가야 하는가? 누가 선교사를 오라고 하는가? 내가 내 사역을 하기 위해서 가는가, 파송교회 (당회장의 감동)의 필요성에 의해서 가는가? 아니면 현지 교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인가? 선교지에서 내가 하는 사역이 현지 교회에 속한 사역인가? 아니면 장래 내가 세울 교단에 속해야 하는 사역인가? 이냐면 독립적인 사역인가? GMS 선교사들이 세운 모든 교회가 같은 지부 안에 소속되어있는가? 그러면 그 교회들의 장래는 어찌되는가? 내가 혹 떠나면 이 교회들과 벌려 놓은 사역들은 어찌 될 것인가?
성경이 가라고 했기 때문에 간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기도하다가 응답 받았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 지역에 어떤 비전이 있는가? 한국에서 교회 개척을 경험하지 못하였는데 선교 현장에서 남의 나라 말로 교회 개척이 가능해 보이는가? 한국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은 모든 일에 다 능통한 Entertainer인가? 현지 언어가 정확하지 않은데 무슨 언어로 우리가 배운 신학을 우리가 갖고 있는 열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
현지인 훈련 혹 양성사역은 선교지 언어를 잘 구사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사역이지 아직 한 텀도 안 되었고, 또 현지 언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는 분들이 할 만한 사역은 아닌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이 다 가르치는데 은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선교지의 문제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qualify된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선교지 재산을 넘겨주고 떠나도 안심 되는 그리고 신뢰심을 보여주는 현지인 목회자를 만난 사역자는 행복하다.
5. 이상을 다 종합하면서 본인이 제안하는 선교 전략은 다음과 같다.
미전도 종족 안에 교회 설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1. 소수 종족과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
사역을 위해서 먼저 선교 현장의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경제생활을 돕는 일이던지, 지역사회를 개발해 주는 일이던지, 상급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던지, 저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가르쳐 주던지, 학교를 세워 주던지, 아니면 저들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직업 훈련을 시켜 주던지.......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필자가 사역하는 바다 집시 부족에서는 축구가 연결고리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마약에 빠져있기에 정부가 축구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축구를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 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ST (Supply Team)은 선교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제공해 줘야한다. 영어 선생이 필요한지? 아니면 의료 팀이 필요한지? 혹은 컴퓨터 선생이 필요 할 수도 있고, 마을 위생 사역을 지도할 간호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 숙련된 목수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각종 전문가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현지인들의 NEED가 현지 선교회를 통해 전달 될 때 후방의 후원회나 ST 팀은 제시간에 맞는 후원을 통해 이 모든 후원된 것들이 전부 우리의 연결 고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신학 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분은 유학을 계획해도 좋은데 가급적 한국은 피하고 동남아시아 국가( 인도, 필리핀, 태국, 싱가폴 등) 로 유학을 보낸 는 것이 좋다.
2. 소수 종족을 입양하여 전도하는 일에 전략이 있어야한다.
GMS 소속으로 2003년8월 현재 북태와 멕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40가정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말은 우리도 전략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메콩 강의 주변의 소수부족들은 전부 창의적 접근 지역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교 자유 국가에서 하는 방식대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 소수 부족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예를 들면 NGO나 각종 사회사업으로, 또 지역 사회 개발을 무기로 접근해야 한다. 하노이의 사역자는 제한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기념품을 제작하게 하고 이를 팔아서 현지 주민들 생활을 향상 시키고 있다. 호지민의 사역자는 유치원을 통해 지방 정부의 인정을 받기도 하며, 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므로 학업을 마친 후에 이들을 지도자로 훈련 시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 후에 주민들을 위해 사역하게 하는 일을 감당하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제저인 발전으로 인해 많은 제3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그들의 이러한 need를 현지의 대학과 연관하여 한국어 과을 설립할 수도 있고, 결국 이러한 사역들의 결과는 미전도 족속들 마을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 이들을 기독교인 되게 하고, 후에는 이들로 하여금 교회 세우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미전도 종족들이 사는 지역은 험악한 지역이기에 사역자가 거주하면서 전도하기란 쉽지 않기에 거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이들 지역에 전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전도 방법이 필요한데 셀 교회 운동은 그 대안이 될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는 즉시로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 셀 교회 사역은 전통 교회 교인을 훈련시키는 방법과는 다른 것이다. 셀 교회 운동은 새 신자들을 양육하고 성숙시키는 교회 개척 및 성장을 다루는 전도 방식의 혁신적인 것이기에 좋은 대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사역자는 원주민들과 접촉 하면서 이들과 관계를 공고히 하기 이해서는 원주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집중적으로 전도해야 할 타깃 그룹이 있어야 한다.
타깃 그룹을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사들은 언어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언어소통에 제한이 있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교훈들을 전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가 먼저 자유로운 다음에 사역의 내용이나 대상 그리고 선교지를 정해야한다. 사역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역을 Narrow Down 할 필요가 있다. 내 사역 대상이 아니면 아깝더라도 다른 팀에게 양보를 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역의 전문성을 키워야한다.
4. 전도의 툴(tool)을 개발해야한다.
1대1 제자 양육, 기숙사, 각종 학원(음악, 영어, 한국어), 고아원 사역 등이 관계 중심의 전도 매체가 될 수 있다. 한국 교회가 교회 사역 혹은 신학교 사역을 좋아한다고 하여도 모든 사역자가 이 일들 감당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교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기독교가 좋다는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넣어주어 호감을 얻게 하기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방송을 통해서 하노이 북부의 산악지대의 몽족 100,000여명 이상이 복음을 받아 드린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필리핀의 FEBC 그리고 지역 방송 혹은 디지털 방송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성경 듣기 선교회는 전기가 없는 지역에서 성경을 들을 수 있도록 수동 턴 데이블을 가지고 다니고 있으며 원주민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선교사로 헌신한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부족 마을에서 저들과 같이 살도록 도전하고 저들의 삶을 통해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소 부족들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며 위생 상태가 청결하지 못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래도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다.
선교 자유 (관심) 지역
1928년 복음을 받은 캄보디아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캄보디아를 선교 관심 지역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전술한 대로 시골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간혹 박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훈센이 선거에서 승리한 후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고, 지역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캄보디아는 이미 다니엘 램이 뉴욕에서 성경학교 설립을 받은 이후로 성경을 주민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정부가 허락을 하였고, 실제로 지방을 가서 원주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기를 하면서 성경을 공부하기도 한다.
캄보디아에는 은사 집회19)가 열리기도 하였고, 현재는 셀 교회로 OOO 교회가 개척되기도 한 지역이다. 또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NGO 설립이 가능하고, 도시에서는 교회 개척이 자유롭다. YWAM 은 NGO를 설립하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허가를 받았고, 프놈펜 성경 학교도 성경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설립 허가를 받았다. OMF 도 기독교 전도 혹은 성경 가르침을 목적으로 선교사들이 비자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캄보디아에서의 전략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회사업 ( 전도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
2. 장로교 총회 설립 ( 정부에 등록이 가능하다)
3. 교회 개척 ( 대도시에서 하면 좋다. 극장을 빌려서 하던지…….)
4. 신학교 설립 ( 교단을 설립한다는 목표가 있을 때)
5. 반드시 팀으로 일해야 한다. (전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미 앞서 들어온 선교회들은 정부와 deal을 통해서 대지를 받기도 하고, 선교사 비자 등을 받기도 하였다.
선교 중심적 세계관
마지막으로 이 논고를 마치면서 선교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이 갖아야 할 기독교인의 세계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관은 마치 안경과 같다. 그러므로 무슨 색깔의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보는 사물들의 색깔이 달라지듯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사역에 대한 생각과 이해가 달라진다, 주님의 부탁은 가서 제자 삼으라(마28:18)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족속을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 부족을 제자 삼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역하는 국가(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를 제자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속 문화가 교회를 제자 삼을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한류 열풍을 기억하라
코카콜라는 CM 로고송20) 하나만으로 전 세계인이 코카콜라를 노래를 알게 했다. 대중가요도 유명한 노래 하나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심지어는 노인들까지라고 그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성경으로 족속들이 공부하게하고, 찬송가로 족속들이 부르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 전 분야에서 신실한 평신도 전문인들이 탤런트로 배우로 운동선수로 유명해져서 족속들이 그들을 따르도록 해야 하며, 이런 전문인들이 또한 그 족속들을 섬기게 해야 한다.
우간다 나 케냐 국민의 90% 가 기독교인이라 하는데 세계적으로 부패가 심한 나라이고, 한국도 20% 이상이 개신교인도 이고, 다른 20% 이상이 천주교인이라 하지만 부패와 이혼 율, 성 윤리는 아시아에서 하위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자들은 복음을 전하지만 미전도 족속들의 의식과 사고를 바꾼다는 선교 철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역 현장에서 펼쳐지는 모든 사회사업들은 의미가 깊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사역자들 모두는 힘써야 하겠다.
마감하는 말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의 선교는 접촉점이 중요하다. 이 일을 위해서 사역자들과 전략들은 지역 문화 중심적 (Local Cultural Oriented) 이해를 가짐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 교회를 그곳에 심으로 (Planting) 간 사람들이 아니다. 오늘 날 제3세계에서 서양 선교사 주도의 선교가 제국주의 선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성자 리빙스턴21)과 심지어는 한국의 처음 순교자 토마스22) 목사까지라도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격하하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창의적 접근 지역의 선교는 리더가 중요하다. 전체 선교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로 선교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반세기 이후에 우리의 선교를 평가할 현지인 앞에서 겸손하자. 더 이상 현지인들에게 Moratorium23) 같은 비판도 듣지 말자. 인도차이나에서 우리 GMS 사역이 씨너지로 나나날 것을 기대한다.
끝
강대흥 선교사는 1987년 태국에 파송되었고 초창기 GMS의 인도차이나 선교사 및 조정관(1991년)으로 사역하였다. 아내 황정신과 2자녀(모세, 사랑)가 있으며 현재는 태국에서 kgam소속으로 팀 사역을 하고 있다.
참고도서
1. Allen W. Hopkins, The land of million elephants in Laos, Post books, Bangkok, 2. Dang Nghiem Van, Ethnic Minorities in Vietnam, The GIOI Publishers, Hanoi
1993
3. Jacques Bekaert, Kampuches diary: 1983 - 1986, D.O Books in Bangkok, 1987
4. Kajat Pai, in-do jin, sam nak phim phre pitaya, Bangkok, 2536
5. 강대흥, 라오스 연구, 인도차이나 협력기구, 방콕, 태국, 1992
6. ______, 캄보디아 연구, 인도차이나 협력기구, 방콕, 태국, 1993
7._______, 인도차이나와 한국 교회의 책임,, GCOWIE, 서울, 1992
8. Religious Liberty Prayer Bulletin, World Evangelical Alliance, No. 229.
23 July 2003
9. In Side Laos,, 17 August 2003.
10. Prayer Letter, Christian Aids , Vol. 4, Issue 40, 8 October, 2003,
1) 버마를 제외한 것은 지역적인 한계와 이미 30,000교회와 200여 자생 교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선교사의 사역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나 현지인이 초청하는 경우의 설교와 현지인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2) 캄푸위앙, 씨앙다우, 씨라완 등 3) 버마,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에 교단 선교부가 하기 어려운 사역들을 막강한 재력과 현지의 중국인들의 Networking, 고참 선교사들을 고용하면서 감당하였다. 현지인 지도자 훈련과 교회 개척을 강조하였다, 초창기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그의 업적은 엄청나다 하겠으며, 재력을 가지고 정부 관리를 움직이도록 까지 하면서 복음 전파에 힘썼다. 4) 1994년12월4일 파송되어 5) WEC 가 설립한 교회들은 Vietnam Christian Mission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후에 Unite World Mission 소소속으로 변경되었는데 현재 약 60여 교회와 30,000명 이상의 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6) 태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다. 7) 싱가폴 계 미국인이며 백만장자인 다니엘 램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서 교단 선교사들이 가지 못하는 공산 국가에 고참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막강한 물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교하였다. 8) Religious Liberty Prayer Bulletin, World Evangelical Alliance, No 229 23 July 2003 9) 베트남 국경 옆의 도시 10) op. cit 11) Prayer Letter by Christian Aids dated October 8, 2003, Vol. 4, Issue 40 12) In Side Laos, Dated 17 August 2004.
13) Prayer Letter by Christian Aids dated October 8, 2003, Vol. 4, Issue 40
14) 캄보디아를 선교 자유국가에서 관심 (Concerning) 국가로 표기하는 것은 선교의 자유가 있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기독교가 핍박당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15) 67개의 보고 된 미전도 종족과 58개의 보고 되지 않은 종족 그룹이 있다. in 한국 미전도 종족 입양 본부, 세계 미전도 종족의 현황과 도전, AAP, p.385,
17) 보고 된 54 종족과 73개의 보고 되지 않은 종족이 있다. in 세계 미전도 종족의 현황과 도전, p. 226
18) Bangkok International Academy School
19) 1994년11월 Rev. Mike Evans 대 전도 집회가 공설 운동장에서 있었다.
20) “코카콜라 오직 이것뿐 코카콜라” 란 가사의 CM Song 이다.
22) 토마스 목사가 승선한 제너랄 셔먼호는 중무장한 군함이었고, 토마스 목사는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