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손님으로 부터 약초주문이 들어왔는데
보내온 주소가 서대신동 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그런데
이것도 인연인지
나와 동갑이라서...ㅎㅎ 더 반가운기라...
운동장뒤에 포스코에서 새로 짓고있는 아파트에 당첨되어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참~~
인연이란...
서대신동 3가의 인연..
꽃동네..네원정사(돌아가신 앞주지님이 있을때부터 어머님께서 사흘을 멀다하고 돌아가실때까지 절앞(꽃동네)에
방을 따로 얻어서 다니셨으니까...지금도 원무과에 오래된 처사님깨 어머님 이름만 대셔도 다아심)
운동장 바로뒤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집이 있었는데...그곳에 내 친한 친구가 살다가 이제는 서울 가평에 살고 있음.
그리고
운동장에서 꽃동네 올라가는 중간지점에 내친구 둘이 유성호와 송노영이가 살고 있었는데.
노영이는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가서 지금 목사로 재직중이고,
성호는 화명동에 살고있다.
얼마전 성호 어머님께서 돌아가셔서 부산 영락공원에서 오랫만에 대신동 친구들괴 회우를 했다.
이런일이 아니면 서로가 만나기 힘드니까...
참~~사람 살아가는것이...
인생이 무언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드는것...
참~~
대신초등앞 골목에 한 친구가 있었는데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본관 지을때 한번 만나보고는
안본지가 몇십년된것 같다...ㅎㅎ
세월 참 빨리간다(옛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실감남)
지금도 서대2가 대신동에 꼬치친구들이 태어날때 그 장소에 사는놈들이 아직도 많다..
정봉근 옛날 내 어릴적에 부친이 빵집을 해서 빵 많이 얻어 먹었는데
지금도 우리 목욕탕앞집에 그대로 새집 지어서 살고있다.
대신동귀신들...아직도 수두룩하다.
내 국민학교 다닐적엔 머한다고
동신초등학교와 대신초등학교아이들과 상대로 장대 싸움을 하고
서로 만나면 어러렁 거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참~~아득한 이야기다 50년도 더 지나간 이야기니까...
그당시 동대신동에 조흥은행이 제일 컸고...(그때는 은행이 뭐하는덴지도 몰랐어니까)
동대신동 교도소앞에는 매일 할매들이 길거리에서 점쳐준다고 골목길을 장악해서 사람들을 모았으니까...
그당시에는 대신동사거리에서 전차에 받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천천히가는 전차에서도 사고가 나니
그당시 사람들은 동작이 무척이나 느렸던것같다...ㅎㅎ
사고하니 생각나는것은 영신이불점 이다.
그당시 중학교 학생이 사고가 나서 덮어 두었는데(그당시에는 가마떼기)..
영신이불점에서 불쌍하다고 새이불을 덮어주던 기억이 새롭다...
부산여고~~
뒷문 바로앞이 우리집...
다른사람들은 우리집을 자전거방이라고도 했다.(자전거 수리하는 가게를 세주었어니까)
부산여고 소사(일본말이지만 그때는 일본말인지도 모르고... 지금은 경비)
지팡이 집고(상이용사 였던걸로 기억됨) 공이 학교담장으로 넘어가면
우리집에 와서 내가 넘긴것같이 이야기해서 무척 기분이 안좋은 기억이남.
화성탕도(서대1가 산쪽에 있었음) 기억이 새롭고...
,대흥약국,남해약국,서구보건소...
서구청,서부경찰서,서부산세무서...
그런데...경남도청과 검찰청은
전부 우리들의 놀이터였지...ㅋㅋ
세월은 빨리도 간다... .-.-
그당시에는 놀만한데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당시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이 있는곳은 잘 안가니까...
국제시장으로 껌종이(그당시 딱지치기 대신 껌종이 따먹기 할때니까) 주우러 갈때 들러서
재활용품 가져오는거지...
그때는 모두가 생활이 어려웠어니까...
초등학교때 잘사는 집에 살고있던
부민초등학교 바로뒤에 그당시 2층 양옥점에 살았던
박 정천...
얼마전 전화와서 다시 산청에 구경하러 오고 싶다나...
몇달전 산청 구경하고 나서는
재미가 있었는 모양이다.
세월은 빨리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