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이 살았으면 ┃여천무비(如天無比) 풀어씀┃
12. 모두 다 회향하다
復次善男子(부차선남자)야 言普皆廻向者(언보개회향자)는 從初禮拜(종초예배)로
乃至隨順(내지수순)히 所有功德(소유공덕)을
皆悉廻向盡法界虛空界一切衆生(개실회향진법계허공계일체중생)하야
願令衆生(원령중생)으로 常得安樂(상득안락)하야 無諸病苦(무제병고)하며
欲行惡法(욕행악법)은 皆悉不成(개실불성)하고 所修善業(소수선업)은 皆速成就(개속성취)하며
關閉一切諸惡趣門(관폐일체제악취문)하고 開示人天涅槃正路(개시인천열반정로)니라
若諸衆生(약제중생)이 因其積集諸惡業故(인기적집제악업고)로
所感一切極重苦果(소감일체극중고과)를 我皆代受(아개대수)하야
令彼衆生(영피중생)으로 悉得解脫(실득해탈)하고 究竟成就無上菩提(구경성취무상보제)니
菩薩(보살)의 如是所修廻向(여시소수회향)이 虛空界盡(허공계진)하며 衆生界盡(중생계진)하며
衆生業盡(중생업진)하며 衆生煩惱盡(중생번뇌진)하야도
我此廻向(아차회향)은 無有窮盡(무유궁진)이니
念念相續(염념상속)하야 無有間斷(무유간단)하야 身語意業(신어의업)이
無有疲厭(무유피염)이니라
"선남자여, 모두 다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 예배하고 공경함으로부터
중생들의 뜻에 수순함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공덕을
온 법계 허공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게 하고 병고가 없게 하기를 원하며
하고자 하는 나쁜 짓은 모두 이뤄지지 않고 착한 일은 빨리 이루어지게 하느니라.
온갖 나쁜 갈래의 문은 닫아버리고 인간이나 천상이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열어 보이며
중생들이 쌓아온 나쁜 업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모든 무거운 고통의 과보를 내가 대신하여 받으며 그 중생들이 모두 다 해탈을 얻고
마침내는 더없이 훌륭한 보리를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나의 이 회향은 끝나지 않고
염념이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어떤 일을 하던지 회향이 가장 중요하다.
용두사미가 되는 것 보다 사두용미가 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크게 시작하여 작게 끝나는 것보다는 작게 시작하여 크게 끝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좋다.
‘유종의 미’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가르침이 선행을 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그 선행의 결과를 자신이 혼자 누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을 회향이라 한다.
회향하지 않는 선행은 이기적이고 소승적이다.
불도를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른 경우도 그렇다.
산중에서 도를 닦아 자신만 누리고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반드시 회향을 해야 한다.
흔히들 오랫동안 많이 쌓은 뒤에 나누어도 주고 중생제도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하루를 수행했으면 하루 한 것만치만 베풀면 된다.
경전 한 줄을 배웠으면 한 줄 공부 한 것만 베풀면 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베푸는 것과 구하는 것,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다.
예컨대 돈을 버는 일과 흡사하다.
1만원을 벌었으면 1만원을 모두 다 투자를 해야
10만원도 되고 100만원도 되는 길이 빨라진다.
아예 100만원이 된 뒤에 투자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겠다는 사람은
100만원이 되는 길이 매우 늦어질 뿐만 아니라
100만원이 되더라도 투자를 하거나 나누어 주는 일이 용이하지가 않다.
공부가 다 된 뒤에 전법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평생을 전법 한 번 하지 못하고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을 많이 본다.
그러나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 만치만이라도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평생을 곧 잘 전법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부도 전법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하게 된다.
한국의 불교가 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2만여 명이나 되는 불교의 전문가인 승려가 포교를 하거나 전법활동을 하는 사람은
고작 몇 명밖에 안 된다.
공부가 가득 차기를 기다리고 있다.
30년 40년이 되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모른다.
부처님이 꾸짖으신 우유대접의 예와 같다.
매일 매일 우유를 짜던 사람이 그날그날의 우유는 너무 적어서
이웃집에 나누어 줄 수가 없으니 한 달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짜서
온 동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리라고 마음먹고 기다렸다가
한 달 후에 우유를 짜려니 우유는 이미 다 말라버리고 없었다는 이야기다.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온갖 선행을 중생들에게 모두 다 회향하고
그 회향마저 역시 중생들에게 온갖 이익과 행복이 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불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삶의 길이다.
하물며 아름다운 인생의 본보기인 보살은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이다.
이렇게 회향하는 일이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나더라도 끝나지 않아야 하리라.
보살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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