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료는 "비지팅아트"(Visiting Arts) 제공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The Cambodia Cultural Profile)의 내용 중,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은 "캄보디아 문화예술부"가 협력하고 미국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이 재정을 지원하여 만들어진 정보이다. 이 글의 상편을 먼저 읽으려면 다음을 클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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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전통공예 (하)
4. 바구니 공예

캄보디아에서 바구니공예(tbanh kantrak: 뜨바인 껀뜨러)는 농민들의 활동 중 하나이다. 크메르 바구니들은 대부분 대나무를 잘게 벗겨서 만드는데, 집안에서 사용하거나 판매용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형태는 주로 시엠립(Siem Reap)이나 껌뽕 짜암(Kompong Cham) 등의 북서부 지방에서 만든 것이다. 로따나끼리(Rattanakiri)와 몬돌끼리(Mondulkiri) 지방의 소수민족들이 만든 제품도 유명하다. |
5. 돗자리 공예

캄보디아의 돗자리 공예(tbanh kantuel" 뜨바인 껀뗄)는 보편적인 농한기 부업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강가의 왕골로 만든 것으로, 자연 그대로의 황갈색을 유지한 것 혹은 보석빛으로 물들인 형태이다. 돗자리 장인들은 메콩 강의 범람원에서 나온 왕골을 선호하는데, 특히 껀달(Kandal) 도의 르위어 엠(Lvea Em) 군에서 나온 것을 상품으로 치고 있다. 덩굴 재질의 돗자리는 북서부 지방에서 나오며, 숲에서 채취한 재료를 사용한다. 돗자리는 수입을 하지 않는 몇 안되는 품목 중 하나로, 캄보디아 가정에서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집집마다 비치하고 있다. 촌락에서 가옥을 지을 때나, 방 안 내부 칸막이를 할 때도 돗자리는 중요한 자재가 된다. |
6. 버들 및 등나무 공예

버들 및 등나무 공예(tbanh kanchoeu: 뜨바인 깐쩌) 장인은 드랸드라(dryandra)의 생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벽채나 돗자리, 가구 등 가정용품들을 제작한다. 최근 끄라쩨(Kratie) 도에서는 약 4,000명의 여성들이 등나무 장인으로서 일자리를 얻고 있다. 가구점들은 빠르게 새로운 디자인들을 개발하고 있고, 도매업자들의 체인점을 통해 그 복제품 가구의 카탈로그가 제공되는 일도 일반화되었다. |
7. 면 직

캄보디아의 기나긴 건기는 목화 재배에 적합하다. 20세기 초반 무렵만해도, 캄보디아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목화 생산국이었다. 하지만 이후 50년간 보다 경제성이 나은 담배나 케이폭(kapok)으로 대체되었고, 남아있는 경작지들도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 수입된 목화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됐다. 캄보디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면직(tbanh ambas: 뜨바인 암뻐)이 상당히 대중화된 분야얐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방적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시골지역의 아낙들은 옷감으로 사용하거나 기타 가정용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면직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적어도 1인당 1개 이상의 끄로마(Kramas: 스카프 종류)를 갖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체크 무늬의 끄로마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시골지역에서 끄로마는 손수건, 사롱(sarong), 수건, 목욕타월, 기저귀 등으로 사용된다. 또한 물건을 묶어 나르거나 작은 물고기들을 잡는 데도 사용된다.
끄로마의 경우엔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지만, 가내 제작 이불과 같은 여타 품목들은 공장에서 출시된 값싼 면제품들로 인해 거의 사장되어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최근에 NGO들이 숙련 장인들을 지원해 이 부문을 장려함으로써 다시 시장에 출현하기 시작하고 있다. |
8. 석공예

전통적으로 석공예는 사찰(파고다)과 및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규모나 조각의 세밀함과 형태의 다양성 등이 앙코르 지역 사원군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의 석공예는 최근에는 거의 시공되지 않고 있고, 1970년대와 1980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거의 소멸한 상태가 되었다.
어찌보면 캄보디아의 석공예는 너무나 지나친 성공으로 인해 그 스스로 희생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조성한 앙코르 사원군 건설 이후로, 어떠한 것도 만족할만큼 그것을 능가하지 못했고, 이 사존원 또한 수세기를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성과물을 대체할 필요를 못느꼈던 것이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시멘트 주형틀이 보급되면서 사찰건축에서도 그 효용이 사라져, 석공예 기술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20세기 후반에 앙코르 사원군에 대한 복원작업이 실시되면서, 파손되거나 사라진 부분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석공들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캄보디아 정부는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직업전문 샹띠에 에꼴"(Chantiers-Écoles de Formation Professionelle: CEFP)을 앙코르 지역 인근의 시엠립(Siem Reap) 시에 설립했다. 그리고 그 교육과정에 이러한 수요에 부응한 석공예 과정을 포함시켰다. "아티상 드 앙코르"(Artisans d'Angkor)를 추가로 설립해, 오늘날 이 학교를 수료한 대부분의 석공들은 이곳으로 취업을 하고 있다. "아티상 드 앙코르"는 이러한 석공들에게 불상이나 자야와르만(Jayavarman) 국왕의 흉상, 압사라(apsara, 飛天) 여신들과 작은 조형물 등의 관광기념품을 주문하여 생산토록 하고 있다.
오늘날의 석공예는 대부분 번띠 미언쩌이(Banteay Meanchey) 도에서 채석된 400만년 정도 된 사암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뽀우삿(Pursat) 도와 껌뽕 톰(Kompong Thom) 도에서 산출된 석재도 사용된다. 원래 앙코르 사원군 조성에 사용된 꿀렌 산(Phnom Kulen)의 석재는, 현재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유적 복원 용도로만 사용케 하고 있다.

석공예의 디자인은 주로 전통적인 양식이 주류를 이루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오늘날의 사찰(와트, 파고다)에도 고대적 양식을 사용토록, 국내 차원에서도 적극 장려하여 서서히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2004년 5월에는 15명으로 구성된 "아티상 드 앙코르" 석공예 팀이, 캄보디아 보석상 호으 사랏(Hoeu Sarath)의 주문으로 밧덤벙(Battambang) 도에 있는 왓 삼로웅(Wat Samrong)에 7 m 높이의 불상을 조성하여 점안하기도 했다. |
9. 칠공예

캄보디아 칠공예는 12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예로는 금장 불상이나 코끼리, 호박 등의 모양으로 만든 베텔(betel) 보관함을 들 수 있다. 캄보디아 전통 칠기를 이루는 색상들로는 나무를 태워서 만든 검은색, 수은으로 만든 빨강색, 비소로 만든 노랑색이 있다. 이들 세 가지 색상은 각각 지하세계(검정), 지상세계(빨강), 천상계(황금색)를 상징한다. 앙코르 지역의 일부 석공예에는 15세기-16세기 사이에 조성된 염료사용 흔적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풍부한 칠공예 전통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칠공예 전통은 일시에 사라져버려, 이러한 기술이 거의 맥이 끊긴 상태가 되었고, 극히 소수의 가계만이 보존될 수 있었다. 1998년만 해도 캄보디아의 시장에서 칠기를 사는 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롭게 이식된 전통으로 인해 칠기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 공연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칠기 가면(탈) 제작은 여전히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칠은 장인가문의 비법이기도 하다.
현재는 프랑스 전문가의 지도로 탄생한 100명의 칠공예 장인들이 "아티상 드 앙코르"에서 일하면서, 관광기념품 시장에 칠기로 된 그림판을 출시하고 있다. 이 일은 고무나무 배경판에 수지를 입힌 것으로, 전 공정이 완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칠을 계속 반복해 칠하기 때문에, 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는 평균 45일이 걸린다. 이러한 고도의 기술과 정교함이 요구되는 칠공예는 이제 전통복원 초기에 해당한다. 다른 전통공예들과 마찬가지로, 칠공예 장인들 역시 새로운 형태와 기술들을 실험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보다 현대적이고 정확한 제작을 위해 쌀알이나 계란껍질, 볏짚과 사암조각 등을 사용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10. 사찰회화 (단청)

캄보디아의 사찰(와트)은 종교적 교육 중심지이자 사회적 회당의 역할을 겸한다. 전국적으로 최소 30곳의 복합단지를 포함한 1,600곳의 사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많은 사찰들이 파괴되어, 고대의 벽화가 남아있는 곳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에 미술사학자였던 기 나필리앙(Guy Nafilyan)과 자클린 나필리앙(Jacqueline Nafilyan) 부부가 19세기 이래의 캄보디아 사찰 벽화들을 촬영해놓아, 현존하지 않는 사찰벽화들이 사진으로 남겼다. 여기에는 당시 껌뽕 츠낭(Kompong Chhnang) 도에 있던 사찰인 "왓 껌뽕 뜨랄랏 끄롬"(Wat Kompong Tralach Krom) 및 "왓 짜도떼"(Wat Chadotes)에 그려져있던 "붓다의 10생도"(tus cheadok) 및 "리엄꺼"(Reamker: 라마야나[Ramayana]의 캄보디아판)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후 이 두 작품들도 모두 파괴되었다. 이 사찰들은 지난 10여년간 복원 작업을 하여, 건물들도 신축했고 벽화들도 다시 그려져있다. 하지만 예전의 벽화들이 현대의 것보다 아름다우면서, 크메르 문화유산의 중요한 표현기법들을 간직했고, 심지어는 보다 세련되기까지 했다.
현재 남아있는 벽화로 유명한 것은 프놈펜의 왕궁 내에 있는 "실버파고다"(Silver Pagoda)와 시엠립 도에 있는 "왓 라자보"(Wat Rajabo), 그리고 껌뽕 츠낭 도에 있는 "왓 껌뽕 뜨랄랏 르"(Wat Kompong Tralach Leu)에 있는 벽화들이다. 이들 장소들에 있는 벽화들은 전부 금이 간 상태지만, 자연 안료들을 사용하여 풍부한 색상을 연출하고 있다. 현재 복원작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
11. 가면제작

왕궁의 공연예술인 "라카온 카올"(lakhaon khaol: 남성 가면무용극)의 경우, 이미 13세기부터 <리엄꺼>를 공연할 때 가면을 사용했다. 이들은 왕궁에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공연을 하였다. <리엄꺼> 가면극에서는 3가지 종류의 가면이 사용되는데, 그 배역들은 원숭이들, 거인들, 그리고 인간들이다. 이 가면들은 고도의 정교함과 예술적 가치들을 보여준다. 이는 파피에마셰(papier mache)(참고)를 점토처럼 사용하여 성형한 후 아교계 도료와 복잡한 형태로 색칠하여 표면을 보호토록 하였다.
(참고) 파피에마셰: 성형할 수 있도록 아교나 풀을 섞어 다시 펄프 상태로 만든 종이. 동양에서는 동양적인 모티프로 아름답게 장식하여 매끈하게 옻칠을 한 파피에마셰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유럽보다 몇 세기 전에 출현했다. 성형한 종이 제품들은 18세기초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뒤이어 독일과 영국에서도 만들어졌다. 제조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접착제로 한데 붙인 여러 장의 종이를 압축하여 쟁반이나 가구 판자와 같은 제품으로 만들었다. 파피에마셰는 19세기 이래로 생산이 줄었지만 아직도 장난감·탈·모형무대도구 등에 사용한다. --- (자료출처) 브리태니커 한국어판. |

예전에는 가면제작 장인들이 공연예술가를 겸했다. 오늘날에는 가면제작 장인들이 공연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도 제작의 목적은 공연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공연예술에서 가면은 상당한 존중을 받으며 신성한 것으로 취급된다. 가면을 제작할 때도 향과 꽃을 공양하는데, 특히 마지막으 작업으로 가면의 눈, 즉 구멍을 낼 때 그렇게 한다. 여기에는 공연을 하는 동안 살아움직일 어떤 신령한 힘이 이 눈 안으로 들어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가면제작은 1919년부터 지금의 "왕립 예술대학"(Royal University of Fine Arts: RUFA) 산하의 "조형예술학부"(Faculty of Plastic Arts: 미술학부)에 소속됐는데, 현재도 동일한 체계로 교육되고 있다. |
12. 연 제작

캄보디아인들은 연 제작 및 연날기기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그 연원은 여러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통은 1990년대 초반에 복원됐는데, 여기에는 "문화예술부"(MCFA)의 문화발전과장을 지낸 짠 산(Chan San) 씨의 노력에 크게 힘을 입은 것이었다. 짠 산 씨는 캄보디아 연날리기 대표단을 이끌고 1994년과 1998년에 개최된 제8회 및 제9회 국제연날리기페스티발(International Kite Festivals)에 참가했다.
연날리기는 전통적으로 우기에 북동부 지방에서 행하던 것으로, 캄보디아 전통 연인 "클라잉 아익"(khleng ek)은 세계의 연들 중에서도 특히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지닌 연의 하나이다. "클라잉 아익"은 덩굴로 만든 활모양의 살을 갖고 있고, 대나무 잎사귀나 야자 이파리로 만든 날개가 바람을 가르면서 4-5종의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어, 마치 특별한 음악을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연제작 및 연날리기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대중적인 놀이가 되고 있고, 매년 12월에는 "국가 연날리기축제"(Festival of Kite Flying)가 개최된다. 2004년에는 "국립문화센터"(National Cultural Centre) 단지 내에 "크메르 연 박물관"(Khmer Kite Museum)도 개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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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사진 작업이 문제가 있어서, 사진은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아티산앙꼬르학교출신들의 활약상이 기대됩니다, 돗자리공예 ,석공예의 정보감사합니다,
한국의 돗자리의 원자재인 왕골도 캄보디아에서 수입되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십수년전부터 프놈펜에 정착한 한국인이 있습니다,그는 캄보디아의 질좋은 왕골을 한국에 수출하여 한때 많은 돈을 벌었으나 ,,벌떼처럼 달려온 한국의 도매상들이 캄보디아 껀달지방의 왕골을 입도선매하는 바람이 한국의 상인 모두가 실패하였던 쓰라린 과거가 잇습니다,<누가 돈좀 혼자 조용히 벌어보자꼬 하면 그냥놔두지않는 한국인의 습성,,>
이분은 현재 돗자리가공공장을 운영하며 한때 캄보디아시골의 부녀자 500명을 데리고 돗자리 반제품을 완성하여 한국에 수출하였으며 지금은 프놈펜에 불어닥친 부동산투기붐으로 인하여 껀달지방의 왕골밭이 모두 팔려나가서 원자재구입의 어려움에 처해있는 현실입니다, 메콩강상류의 스퉁뜨랭지방에 질좋은 왕골비슷한것이 있다하여,, 이것을 채취 실험중이라 합니다,
캄보디아는 역시많은 외국인관광객들이 몰려오므로 이렇케 질좋은 값싼 전통공예제품을 많이 개발하여서,, 외화획드과 주민소득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좋을듯합니ㅏㄷ, 세계적인 디자이너 한두분만 투입되면 캄보디아인의 소득이 금방 비약적으로 높아질텐데,,, 태국의 짐톤슨실크가 뭐? 별것인가요?
꼬르님 아무래도 제가 용어선택을 잘못한 것 같은데요, 저 위의 갈대를 왕골로 바꿔야 할까요?
갈대로도 돗자리를 만들 수 있나요?,,,저 위에 사진에 있는 돗자리들은 왕골로 만든 것이 분명한데 갈대로 만든 돗자리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우리나라 돗자리 일명 '초석'이라고도 하는데 그 돗자리는 엄청 촘촘해서 비교하자면, 캄보디아산 돗자리는 삼베 같고 예전에 우리나라 '초석자리'는 모시 같다고나 할까요?,,,왜 그렇게 촘촘하게 못짜는지 모르겠네요.
하여간 원문에 "갈대"(reed)라고 되어 있어서 그렇게 번역은 했습니다만, 참 서울 안가보고 서울 이야기 하려니 깝갑하네여...
왕골이 맞을겁니다,,, 전라도 함평의 왕골로 만든 돗자리가 유명한데,,이곳의 이름으로 팔리는 많은 돗자리가,,, 캄보디아에서 한동안 수입되던 제품입니다,,, 프놈펜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그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 제가 잘알고 있습니다,
예, 왕골로 고쳤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