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이사
“사바는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
‘머물 자리’란 고정 개념 잘못
떠남은 스트레스이지만 ‘신선’
또 짐을 쌌다. 옮겨다니는 것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승려인데도 이사는 준비과정 그 자체가 또다른 번뇌이다. 그동안 머물던 처소가 조계사 시민선원 증축부지에 편입되는 바람에 헐리게 된 까닭이다. 그동안 최소한의 생활도구만 갖추고 산 덕에 옮길 짐은 비교적 단출했다.
〈월간해인〉에 오랫동안 영상을 기고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일섭씨는 자기를 소개할 때 늘 ‘도시 유목민’이라고 했다. 그 말 한 마디에 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남을 알 수 있다. 작품과 이름을 지면으로만 보다가 어느 해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인상적인 것은 헤어스타일이 나처럼 까까머리였다. 참석한 스님네가 몇 명되는지라 인사할 때 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임의대로 출가자 머리 모양을 흉내낸 것에 대한 사과로 들렸다. 사과할 일도 아니지만 그는 출가자들의 숫자와 위세에 밀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뒤 그의 프로필에 ‘인왕산 밑에 집 한 채를 장만하여 만족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 더해진 것을 본 뒤에는 내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언젠부턴가 다시 ‘요즈음 미국에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는 천상 유목민의 피와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머뭄 자체가 그에게는 따분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떠남은 스트레스이지만 동시에 신선함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늘 떠남을 실천하고 있는 ‘재가의 운수납자’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오늘만큼은 나도 그가 말하는 ‘도시 유목민’이 되었다. 이사를 마치고 짐 정리도 제대로 못한 채 어수선한 방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주말 장거리 일정 때문에 일찍 숙소를 나섰다. 점심은 다른 절에서 먹었다. 그야말로 동가식 서가숙이었다. 세간에서도 이집 저집 떠돌아 다니며 숙식을 해결하는 나그네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정반대 뜻도 있다. 두집 살림하는 능력있는 가부장적 살림살이를 말할 때도 있다. 동쪽집에 있는 부인은 음식을 잘 만들었다. 서쪽집에 머무는 첩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밥은 동가(東家)에서 먹고 잠은 서가(西家)에서 잤다. 하긴 그래봐야 맛집 멋집 두 채 밖에 안된다. 부처님은 삼시전(三時殿)에서 사셨다. 여름과 겨울 그리고 봄가을에 사는 집이 달랐다. 하지만 모두 버리고천하를 내 집삼아 평생 떠돌아 다녔다. 그야말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한 나무그늘 밑에 3일 이상 머물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고있는 자리에 대한 애착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동네 강아지도 자기집 대문 앞에서는 크게 짓고, 운동경기 역시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있기 마련이며, 노점상도 자릿세가 있고 어지간한 가게는 모두 권리금이라는 이름으로 텃세를 부리는 것은 이 세상의 자연스런 이치이기도 하다. 모두가 자리를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점거한 사람이 누리는 권리인 셈이다. 하긴 공찰도 몇 번 주지를 재임하고 나면 개인 절처럼 되어버리는 경우 역시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선가(禪家)에서는 ‘사바세계는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운수행각 그자체가 일상사인 것이지 따로 ‘머물 자리’라는 고정된 개념을 세우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썼다. 다만 그저 머무는 기간의 차이만을 인정했을 뿐이다. 결제는 한 철동안의 머무름이고 주지는 한 만기 동안의 머무름일 뿐이며 인생 역시 몇십년 기한의 스쳐감일 뿐이다.
불감혜근(1059~1117)선사가 주지로 나가면서 스승인 영원유청 선사에게 하직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선지식에게 한 말씀 내려주실 것을 청했다.
“주지란 마땅히 지팡이와 걸망 그리고 삿갓을 주지실 벽 위에 걸어 놓고 언제든지 납자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첫댓글 제가 쓴 詩 중에서 '여인숙 연가'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수만 생각이 쉬어가는 마음여인숙'...사바세계여관이나 마음여인숙이나 머무는 동안 정신차리고 살아야 함을 가족을 보내고 나면 더 절실히 와 닿습니다.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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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잘 살은 사람이 되겠네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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