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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스크랩 브랜드 이야기 `렉서스의 시작과 성공`
안작가 추천 0 조회 93 08.03.24 03: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STRADA no.70 2006.05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예를 들 필요조차 없다. 토요타가 1989년 내놓은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 일본에서도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아이치현에서 시작한 일본 토종기업 토요타가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격전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고급차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극적인 드라마로 보여준다. 렉서스는 세계경제 글로벌화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토요타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렉서스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현재 연수익만 10조 원 이상을 내고 있고, 2006년 말 판매대수 집계에서 GM을 누르고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시되는 괴물기업 토요타에게도 17년 전 미국 시장에 별도의 고급차 브랜드를 내놓는다는 것은 회사의 명운을 건 일대 모험이었다.




미국 판매 책임자의 제안으로 출발
렉서스에 관한 첫 논의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토요타 수뇌부는 GM과의 합작생산시설인 NUMMI공장을 미국에 세운 뒤, 토요타 판매량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같은 해 미국 토요타자동차판매 사장으로 취임한 토고 유키야스는 토요타가 미국에 자체 현지공장을 세워야 하며, 당시 미국 고급차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메르세데스-벤츠, BMW, 캐딜락과 같은 고급차 브랜드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본사 경영진에 고급차 브랜드에 관한 아이디어를 건의했지만, 임원진 대부분
 
의 첫 반응은 ‘토요타가 메르데세스-벤츠, BMW와 경쟁하는 차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만든다 해도 팔리지 않는다'였다. 그러나 1983년 8월 임원회의에서 당시 툐요다 에이지 회장이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함으로써 개발 프로젝트가 가까스로 시작될 수 있었다.
당시 ‘마루F’(토요타 신차 개발명은 알파벳 순서와 숫자로 구분되는데, 당시 순번이 F였고 개발번호가 380이었다. 380의 일본말 ‘산하치마루’에 F를 붙인 것)라 불리던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개발 총책임자에는 토요타 마크 2 성공으로 역량을 인정받은 짐보 쇼지가 임명되었다. 그는 토요타 최정예 개발인력 15명을 모아 프로젝트팀을 꾸린다.
1985년 4월 20여 명의 조사단이 미국 전역을 돌며 토요타의 새로운 고급차를 사줄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과 딜러의 의견을 면밀히 연구했다. 이때 팀의 수석 디자이너 우치다 쿠니히로와 그의 디자인팀은 현지에서 미국인이 좋아할만한 고급차 디자인 연구를 계속했다. 당시까지 토요타 디자이너들은 차폭이 1.7m를 넘는 차를 다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인 전용 대형 고급차를 개발한다는 것은 완전히 백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렉서스 개발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86년 2월이다. 짐보가 1985년 9월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차체개발 책임자 스즈키 이치로가 후임으로 거론되었고, 이듬해 1월 토요타는 본격적인 개발 프로젝트 시행을 승인했다. ‘마루F’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올라서게 된 스즈키는 프로젝트명을 ‘F1’(Flagship No.1이라는 뜻)으로 바꾸고, 개발팀 전체를 끔찍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초대 LS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토요타 엔지니어들이 겪은 고통은 말도 못했다. 모든 것들이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다. 기준조차 없어서 메르세데스-벤츠 S와 E-클래스, BMW 7과 5시리즈 같은 독일고급세단을 티어다운(Tear Down, 부품 하나하나까지 뜯어보는 벤치마킹 방법)해보고 상대보다 엄격한 잣대를 만들어갔다.
당시 스즈키와 팀원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빠르고 매끄러운 주행을 하려면 연비가 떨어진다’ ‘조종안정성을 높이려면 승차감이 희생 된다’ ‘정숙성을 높이려면 차가 무거워진다’ ‘우아한 스타일로 만들면 공기저항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스즈키는 모든 토끼(?)를 잡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축적된 기술은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연비 문제가 중요했다. 연비가 좋지 않았던 독일 고급차들은 모두 당시 미국 시장에서 몇 천 달러에 달하는 기름초과 소비세를 내야 했다. 만약 토요타가 독일차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더 높은 성능의 차를 만들려면 연비를 높여 이 세금을 반드시 피해가야 했다.
하지만 독일 브랜드 수준의 동력 성능에 더 조용하고 부드러운 차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차가 무거워지고 연비에 악영향을 미쳤다. 결국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서는 엔진 변속기 등 모든 구동계통의 정밀도를 높여야 하며, 전체적으로 내구성과 강도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부품을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스즈키는 불과 3년 만에 이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지표를 뛰어넘었다. 렉서스의 성공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값에 비해 뛰어난 성능과 품질이다. 이 부분의 성공 뒤에는 스즈키가 있었다.


상표권 소송으로 룩소 브랜드 검토하기도
이후 토요타 고급차 브랜드의 작명은 뉴욕의 컨설팅회사인 리핀코트&마골리스가 맡았다. 이 회사는 렉서스를 비롯해 베로나, 칼리브레, 셰퍼렐 같은 다양한 이름을 제시했다. 렉서스가 첫 번째 선택이었다. 토요타 임원들은 L로 시작하는 이 단어의 발음을 무척 어려워했지만, 발음이나 대문자 L이 주는 이미지가 럭셔리와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다.
렉서스 론칭을 한 달 앞둔 1988년 12월, 렉시스-넥시스라는 테이터 복구회사가 토요타의 렉서스 브랜드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바람에 브랜드명이 ‘룩소
 
'(Luxor)로 바뀔 뻔했다. 그러나 법원이 곧 신청을 기각하는 바람에 렉서스라는 원래 이름 그대로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1989년 1월 북미 모터쇼에 첫 공개된 렉서스 LS 400은 메르세데스-벤츠를 노골적으로 베낀 차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차에 비해 저렴한 값, 높은 품질과 성능, 쉽게 질리지 않는 우아한 디자인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LS 400 이외에도 염가형 렉서스인 ES 250(LS가 완전히 새로 개발된 것과 달리, 캠리 차체를 기본으로 만들었다)이 함께 출시되었고 이후 SUV인 RX, 컨버터블 SC 등 다양한 차종이 등장했다. 2004년 렉서스는 전세계에 35만8715대를 팔았다. 특히 미국에서 28만7927대를 팔아 5년 연속 미국 고급차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당시 닛산이나 혼다도 각각 ‘인피니티'와 ‘어큐라'라는 고급차 브랜드를 미국시장에 내놓으며 렉서스와 경쟁에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성패를 좌우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LS의 개발 과정에 들인 토요타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이 더 컸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토요타의 전략은 17년 뒤 현대차의 행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토요타가 미국 켄터키에 첫 현지공장을 세운 게 1988년, 렉서스 브랜드를 투입한 게 1989년이었다. 현대차는 2004년에 앨라배마에 현지 공장을 세워 미국판매용 쏘나타를 생산 중이다. 2008년 렉서스와 같은 고급차 브랜드 론칭을 추진했으나 현재 여러 가지 사정으로 프로젝트를 중단한 상태다. 회사 내 특정임원이 계획을 밀어붙였고 다수의 반대에 부딪친 과정까지는 무척 비슷하다. 문제는 토요타는 17년 전에 실행해 성공했고, 현대차는 2006년 현재까지도 방향 설정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7년 전 토요타의 길을 지금 현대가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으냐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렉서스의 등장은 당시 미국 고급차 시장을 휩쓸던 메르세데스-벤츠, BMW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렉서스 때문에 두 브랜드는 값을 낮추고 품질을 개선해야 했다. 우아한 날갯짓을 하던 백조들이 일본 사무라이 때문에 원가경쟁의 총력전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유럽 시장 공략 프로젝트 가동
토요타는 2003년 6월 렉서스의 글로벌 도약을 위해 자사 개발인력 1만2천 명 가운데 1천여 명을 엄선해 토요타시에 렉서스 센터를 설립했다. 토요타를 대표하는 중소형 세단인 신형 카롤라 개발 수석엔지니어를 맡았던 요시다 켄 상무가 센터 책임자로 기용되었다. 또 기술담당 총책임자인 사이토 아키히코 부사장과 오카모토 카즈오 전무 직속으로 생산·개발 전담팀을 만들었다. 이는 1985년 초대 LS 개발팀을 만들 때의 비장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2005년 이후 렉서스는 미국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 시장에 투입해 자국 수입차 시장을 잠식해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유럽 시장 확대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2004년 토요타가 유럽에서 판매한 렉서스는 2만5000대. 미국 판매대수의 10분의 1도 안되며, 유럽 내 고급차 시장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BMW의 헬무트 판케 CEO가 “언젠가 렉서스는 유럽에 본격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렉서스의 일본진출은 그 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시했듯이 유럽 공략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2005년부터 새로 선보인 렉서스 패밀리 룩은 기존 모델들과 달리 렉서스의 고유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엠블럼을 보지 않고도 렉서스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중형스포츠세단 GS 430/300과 중소형세단 IS 250/350 등 새 패밀리 룩에 기반한 신 모델들이 이미 좋은 평가를 얻고 있으며, 최근 출시된 신형 ES 350은 염가형 럭셔리세단 시장을 다시 휘저을 분위기다.
그러나 이 모든 신형 렉서스의 집결체는 역시 올가을 출시 예정인 LS 460이다. 올해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LS 460은 최고출력 380마력의 V8 4.6ℓ 380마력 엔진에 세계최초의 8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시켰다. 0→시속 100km 가속 약 5초로 놀라운 가속력을 자랑하면서도 출력 대비 연비는 오히려 좋아졌다고 한다. 디자인 역시 현행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W221)나 BMW 7시리즈(E66)와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 개성 있는 스타일을 지녔다. 렉서스 대형 세단 중 처음으로 롱 휠베이스 모델(LS 460L)을 준비해 뒷좌석 공간과 편의성을 대폭 강화한 쇼퍼드리븐카 시장까지 노린다.
신형 LS는 또 대형 세단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모델(LS 600h L)이 출시된다. V8 5.0ℓ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해 최대출력 430마력 이상을 낸다. V12 엔진의 BMW 760Li나 벤츠 S 600 L 정도의 수퍼카급 가속력을 갖췄다. 연비는 일반 중형휘발유세단(1ℓ당 10km) 수준에 불과하며 값은 동급 독일차보다 저렴하다. 올가을 렉서스 LS 460이 출시되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이 선점하고 있는 플래그십 대형 세단 시장에 상당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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