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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南德裕山)
1. 산행 일정
1) 일 시 : 2009. 02. 22. (일) 10:30 ~ 17:00 (날씨 : 비와 눈)
2) 명 칭 : 남덕유산 동봉(1,507m) 및 서봉 (1,492m)
3) 소재지 : 경남 함양군 및 거창군과 전북 장수군 계북면
4) 동 행 : 백양동문산악회
5) 산 행 : 원각사 - 남덕유산 동봉 - 서봉 - 덕유산교육장 - 원각사
2. 남덕유산의 개요
주봉인 북덕유산(향적봉)에서 약 17km에 이르는 동안 1,000m의 고봉을 여러개 이루다 남서쪽 끝자락에 남덕유산(1,507m)이 위치하는데 전북 장수군 계북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를 이룬다. 북덕유산은 완만한 반면 남덕유산은 기암 바위봉우리로 가파르고 험준하며, 상봉, 중봉, 하봉으로 상봉은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있다. 서봉(장수덕유)은 동봉(경남덕유) 사이에 ‘황새 늦은목이’ 능선으로 백두대간의 육십령과 연결된다. 남덕유산은 3대강이 발원하는 샘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며 덕유산 의병들이 넘나들었던 육십령샘은 금강(錦江)의 발원샘이고, 삿갓봉의 삿갓골 샘은 황강(黃江) 발원샘이고, 정상 남쪽 참샘 (겨울에 온수가 여름에는 찬물이 솟는다는 전설이 있음)은 논개의 충정이 담긴 진주 남강(南江)의 발원샘으로 두 강은 모여서 낙동강(洛東江)이 된다. 관광명소는 함양(서상면) 영각사와 덕유교육원, 거창은 월성계곡(사선대, 분설담), 월성계곡 상류에 위치한 황점마을{옛 삼천동(三川洞)}이 있다.
3. 산행기
1) 출발하기
차창으로 다가오는 빗줄기가 생명의 원천이고, 희망을 전하는 전령사로 자리하는 시간 대지는 가슴을 적시며 봄을 잉태하기 위하여 분주하다. 옛날보다 추위가 한결 약해졌는데도 약간만 추워도 오금을 움추리는 것은 기온의 차로 인하여 체감온도가 작동하고,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인가? 도로의 시간을 지혜로 변환시키고자 책 ‘광장’을 가져갔지만 세상사 이야기꽃이 피어나니 책보다 더 값진 삶의 철학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살면서 남 탓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멋지고 보람차게 빛내는 긍정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우주의 섭리를 받아들이면 언제나 밝은 마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을 악의 유혹에 빠트리지 않고 마음을 정화하여 세상에 기여하는 원동력이 된다. 서상IC에서 영각사에 도착하니 비는 진눈개비가 되어 백의를 입히고 있다.
2) 영각사 - 영각사통제소 - 안부 - 남덕유산 (10:30 ~ 12:30)
영각사는 영화를 잃어버리고 상처난 문화재와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부도를 간직하여 현대물질로 덧칠되고 있으니 과거를 회상하며 문화재를 안기에는 너무 고리타분한가? 흩어진 하나하나에 조상의 얼과 애환이 담긴 숨결을 팽겨치고 편애된 경제 살리기로 다양성이 부족하여 경제회복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재 복원기술도 과학이므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여 경제의 한 위치에 있기를 바라며 백색으로 치장하는 남덕유산자락에 몸을 실는다. 백설이 산수화를 그리는 시점에 몸이 무거워 우보천리(牛步千里)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특별한 사람이 선도하여 이끄는 것보다 전원이 합심하여 한보씩 나아갈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파레토그래프처럼 20%가 80%를 리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80%가 존재하기에 20%가 빛을 발휘한다. 즉, 각자가 현재의 맞은바 소임을 다할 때 100%가 한걸음씩 전진하는 우보천리가 된다. 경제성장에는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모두가 대응을 해도 65억대 4천만일 뿐인데 여기에서 20%를 속아내고 또 3%,5%를 속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스로 몰락하자는 것이므로 국민모두가 뒤짐지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참여하여 행동하고, 결과를 내는 우보천리로 우리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기를 바라니 어느 덧 안부이고, 세상이 확 바뀌어 버렸다. 북과 남이 흰색과 회색의 차이라고 할까? 만발한 눈꽃은 황홀경에 빠져서 감탄사가 절로 솟아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선경을 맛보는 기회를 획득한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질 것을 기다리지 말고 감을 수확하는 개념으로 가치를 변화시키자. 감이 떨어질 때 누가 낙아채가는 도로아미타불을 만들지 말자. 헉! 안개사이로 솟은 날카로운 원뿔형 암봉에 길이 어디 있으며, 한자락 발걸음도 디딜 곳 없는 공간에 몸을 지탱할 수 있을지. 도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사람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뫼만 높다 타령하지 말고, 마음에 있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자연과 벗하면 광명의 빛이 보인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눈꽃 찬란한 신선의 세계에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바위봉우리는 삶의 능력을 키우고, 삶과 죽음의 선에서 만감이 교차할 때는 삶의 가치를 높이는 순간에 남덕유산 정상석이 부처님 웃음으로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3) 남덕유산 - 백두대간갈림길 - 서봉 - 육십령갈림길 - 덕유산교육원 (12:30 ~ 17:00)
남덕유 서봉까지는 “황새 늦은목이”로 초승달의 곡선을 그리다 서봉이 가까워지며 암봉의 잔치가 또 시작되고, 소나무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바위들은 근엄한 의관을 빼어 입고, 나무와 풀잎들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멋진 장면을 연출할 때 백색으로 이러한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내다니 자연이 빗어 놓은 예술품에 경탄할 뿐이다. 희망 전사들은 어떤 변화무쌍함도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의 극치를 선사한다. 서봉... 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백설의 장관에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의 위대함을 보라. 언어 형용할 수 없는 장관에 몸은 움직임이 없이 고요하고 시간이 정지되어 자연과 동화된다. 남덕유산 자락이 감싼 안락한 보금자리 서상지역은 갓 깨어난 병아리처럼 운해의 껍질을 벗으며 다양한 모자이크로 차별화를 선언하는데 우주선에서 지구를 보는 것 같다. 장수지역은 운해에 잠겨서 베일에 쌓였다가 차츰 옷을 벗으며 이국적인 섬이 잉태하는데 우리나라 최남단 이여도처럼 섬은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신령스러움과 막연한 기대감이 담겨 있고, 서봉에서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 능선은 용이 승천하고 있으니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육십령을 넘지 못한 것은 덕유산 의병 공로도 크지만 이곳에 용이 승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산줄기는 무생물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물을 이용하려고 생각하지 존재가치보다 더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여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자. 얼마나 남대문을 복원하기 위하여 소나무를 자를 때 어명으로 자연에 대한 예를 갖추어 목적성을 달성하면서 현재보다 몇 갑절이나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효과를 거두지 않았는가? 우리는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이상향을 찾아서 미로를 찾아 헤매지만 실질적인 이상향은 우리의 앞에 있는데 이상향을 우리는 실천하는 행동으로 전환하지 못하여 전부 놓쳐 버린다.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실현시키는 행동이 더 중요하고, 행동을 하였으면 결과를 획득할 때까지 매진하여 효과는 높게 도출시켜야 한다. 그러면 자연을 활용하면서도 가치 이상으로 개발도 가능하고 보존하는 효과도 이룩하여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다. 큰 이상향을 이룩하려는 단어와 용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신념을 자신이 의심하지 마라. 그 의심이 깊어지면 곧 부정이니 무조건 된다고 믿으며, 달성되었다고 믿으면서 일을 진행할 때 바보 도가 트듯이 뇌를 번쩍치는 아이디어가 나타날 것이고 그리고 아이디어를 실행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눈길의 비탈길에서 넘어져서 깨지고, 진흙탕에 처박혀도 칠전팔기가 아니라 언제나 일어서서 웃으며 걷고 있지 않은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남덕유산이 주는 무궁한 자연의 멋과 파노라마를 가슴에 새기면서 안전 산행하듯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서 너무나 좋은 기쁨이요 행복이다. 소나무 숲의 향기를 맛으며 살아 숨쉬는 행복을 만끽하고, 덕유교육원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KIN산행과 안산에 현대어를 또 하나 배운다.
4) 끝내기
비에 젖은 축축한 옷을 입고 식어가는 체온으로 옷을 말리며 원 출발지까지 가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함양휴게소에서 남자화장실 습격사건을 저지른다. 관중이 있는 목욕탕을 연상시키며 옷을 갈아입고 그나마 쾌적한 상태로 도착하니 날아갈 것 같다. 위기는 기회고 기회를 놓치면 후회만 따른다. 어렵다고 말로 하지말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자. 거나한 하산 주에 역전 만루홈런을 치는 기회도 잡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 영각사(靈覺寺)
신라 헌강왕 3년(877)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한 사찰로 해인사의 말사였다. 세종 31년 원경(圓境)대사가 중창한 후 몇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6.25전쟁시 산신각과 창고를 남기고 전소되었다가 화엄경판 81권, 3,284판과 법망경 2권각판68매가지 소실되었다. 화엄경판은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감수하여 만든 것으로 문화재급 가치가 있는데 소실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주변의 부도 및 기둥석의 분포로 보아서 해인사에 버금가는 큰 수량도장이었다.
* 육십령 (六十嶺 : 734m)
바람도 울고 넘는 육십령은 덕유산을 끼고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이으며 소백산맥의 죽령, 조령, 추풍령, 팔령과 함께 대표적인 고개로 세 가지 설이 있다.
1) 안의와 장수 각 감영에서 육십령까지 육십리라서 2) 육십여개의 고개를 넘어야 육십령을 넘는다고 해서 3) 전설로 전해오는데 옛날에 육십령에 산적들이 많아서 고개를 넘다가 사람들이 재물을 빼앗기고 생명까지 잃었단다. 그래서 산아래 주막{동네이름 : 장군동(壯群洞)}에서 육십명의 장정이 모여서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여 넘던 고개라서 붙였다는 설이다. 산적들을 피해 살았던 피적래(避賊來)마을도 서상면에 있다. 또한 할미성(육십령성)에는 장수 조억령(趙億齡)의 사연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조억령이 가솔인 유솔(劉率)과 병사 및 장정들과 할미성과 봉수대를 지켰다. 조씨 부인이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육십령에서 화적떼에게 붙잡혀서 희롱 및 능욕 당한 뒤 죽음을 당하여 조억령은 화적떼를 도륙하고 부인시신을 거두어 장례 치르고 원귀를 위로하였단다. 임진왜란 때는 왜적이 호남지방을 침범하기 위해서 육십령으로 침입할 때 조억령 장수는 육십령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왜적을 여러차례 격퇴 시켰으며, 왜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부인 묘소 옆에 장례 지냈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조억령 장수의 전적비를 육십령 전적지에 세웠다는데 비석은 없고 장수지에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한다.
첫댓글 한폭의 동양화에 깃들여진 해설 같은 사진과 글 잘 감상했습니다.
진짜 자연의 대단함이네요너무 멋찝니다
좋은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화각과 시각이 모두 좋아서 사진도 일품입니다.느낌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