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요자나로 오시오! 웰컴!”①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연꽃’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1회 이상 읽으셨다는 전제하에 ‘전문적인 설명’을 추가로 드리는 것입니다. ‘연꽃’님의 <박사학위 논문>은 ‘쌍요자나’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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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요자나’가 <왜? 광대역 해탈>이라고 ‘아위자’가 주장하는가? ........... 하면요.
불교에서 언급하는 해탈은 <심해탈과 혜해탈>[☜‘심해탈과 혜해탈’을 언급할 때는 경전에는 반듯이 ‘심해탈’을 먼저 언급합니다. 이유가 있는데요. ‘심해탈’하시는 분들은 많아도 ‘혜해탈’하시는 분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뿐인데요, ‘그 심해탈과 혜해탈’이 모두 ‘쌍요자나’에서 이루어지는 <두 유형의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놀랍지요?
‘아위자’가 위 사실을 발견하여 <주둥아리>를 마구 놀리기 때문에, <괴로우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ㅋㅋ. 만약 ‘아위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해탈과 관련된 ‘논문들’>이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여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일 것 같으면 <떠버리 ‘아위자’>가 신중할 놈이 아닙니다. ............. <禪>이라는 <禪>을 모조리 언급해 보세요. 묵조선? 간화선? 화두선? 여래선? .... ㅋㅋ .... 아무거나 다 꺼내셔도 무방합니다.
그러할 때, <禪>이라는 <禪>을 모조리 열거할 때..........에, 거기에서의 ‘해탈’이 <심해탈과 혜해탈>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ㅋㅋㅋㅋ. “그렇다면?” ㅎㅎㅎ. 해탈이라는 해탈은 모조리 <꼼짝마라!>인 것입니다. ‘그 심해탈과 혜해탈’이 모두 ‘쌍요자나’에서 이루어지는 <두 유형의 해탈>이라는 사실! 놀랍지요? 증명합니다.
자화자찬 좀 더 하고요............... 기절하실 분은 미리 진정제를 좀 드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막간에 송소희 CF 한 번 더 들으시면서 미리 상상을 해 두십시오. “아위자 이놈이 세계최초로 2600여년 만에 <모든 불교의 해탈을 하나로 모은다는 말>을 내가 이해하고 알아듣는다면 <송소희 팬클럽>에 가입해야지!”라고요. 그렇게 결심하신 후에 <꼭! 약속을 지키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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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탈과 혜해탈>이라는 <두 유형의 해탈>에서 차이점은 ‘dhamma’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이 말은 <이해가 오시지 않더라도> 일단 참으시고, 아래의 경문에서 ‘아위자’가 임의로 집어 넣은 ‘dhamma’라는 표현을 먼저 참고하십시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明(vijjā)의 일부이다. 무엇이 둘인가? samatha(止)와 vipassanā(觀)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떠한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心이 계발된다. 心이 계발되면 어떠한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貪(rāga)[이라는 ‘dhamma’가]이 제거된다. 비구들이여, 위빠사나를 닦으면 어떠한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반야(paññā, 慧)가 계발된다. 반야가 계발되면 어떠한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無明(avijjā)[이라는 ‘dhamma’가]이 제거 된다; 貪에 오염된 心은 解脫하지 못하고, 無明에 오염된 般若는 계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貪[이라는 ‘dhamma’]에서 離貪함으로부터(rāgavirāgā)’ 心解脫이 있고 ‘無明[이라는 ‘dhamma’]에서 離貪함으로부터(avijjāvirāgā)’ 慧解脫이 있다.
Dve'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 attham anubhoti? Cittaṃ bhāvīyati. Cittaṃ bhāvitaṃ kaṃ atthaṃ 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 atthaṃ 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 atthaṃ 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na bhāvīyati. Imā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 ti.[AN. vol.1. p.61]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쌍요자나’의 모습은 <心←chada-rāga→dhamma>의 모습인데요 ......... 거기에서 <rāga>라는 ‘dhamma’에서 離貪하면 <심해탈>이고, <dhamma가 ‘무명’이라는 dhamma일 경우>에 ‘그 무명이라는 dhamma’에서 離貪하면 <혜해탈>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수행자가 <혜해탈>을 하고자 하신다면, 心을 계발하여 먼저 ‘평화로운 그 어떤 심해탈’을 먼저 갖추고서 추가로 반야로써 <無明이라는 ‘dhamma’>에서 이탐하여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이러하기 때문에 <심해탈>[☜일시적인 해탈임]보다 <혜해탈>[☜영구적인 해탈임]이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여기에서 비구가 어떤 평화로운 心解脫을 성취하고서 머문다. 그는 ‘①有身의 滅(, ②無明의 파괴)’을 作意한다. 그가 ‘①有身의 滅(, ②無明의 파괴)’을 작의 할 때, 그의 心이 ‘①有身의 滅(, ②無明의 파괴)’에 들어가고, 의지하고, 머물고,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에게는 ‘①有身의 滅(, ②無明의 파괴)’을 기대할 수 있다.[AN. vol.2. pp.165~166]
여기에서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점 하나. “아위자여! <양분해탈>과 <삼명>도 ‘쌍요자나’에서 가능한 것인가?”라는 점. ‘아위자’의 대답은 “예스!”입니다. 저 위쪽에 있는 경문을 유심히 보십시오. <‘無明[이라는 ‘dhamma’]에서 離貪함으로부터(avijjāvirāgā)’ 慧解脫이 있다.>라고 되어 있지, <無明[이라는 ‘dhamma’]에서 無餘離貪함으로부터(avijjā-asesavirāgā)>라고 되어있지 않습니다. <無明[이라는 ‘dhamma’]에서 無餘離貪함으로부터(avijjā-asesavirāgā)>하시게 되시면 <삼명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양분해탈자>는요, ‘쌍요자나’에서 ‘dhamma’가 <四禪 등의 9가지 禪定인 경우>입니다.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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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과 시간이 촉박하므로[☜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밀려 있으므로] ‘dhamma’에 대한 보충설명. 아래의 경문을 보십시오.
‘반야’나 ‘Sati’나 ‘위빠사나’는 <대상>이 반듯이 ‘法(dhamma)’입니다. 특히 ‘쌍요자나’에서는 절대적으로 ‘法(dhamma)’입니다. 따라서 <法(dhamma)에 머무는 자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셔야 하십니다.
<有(=존재)의 결박(bhava-saṁyojana)을 제거하지 못한 자들은 누구나 ‘苦, 고뇌, 실망, 불안을 가진 삿됨을 따르는 자들’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有의 결박(bhava-saṁyojana)이 제거되지 않을 때 有(bhava)가 제거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法(dhamma)을 드러내는 것이다’.
‘Yesaṃ kesañci bhavasaṁyojanaṁ appahīnaṃ, sabbe te sadukkhā sa-upaghātā sa-upāyāsā sapariḷāhā micchāpaṭipannā’ ti na evam āha. ‘Bhavasaṁyojane kho appahīne, bhavo appahīno hotī'ti’ iti vadaṃ dhammam eva deseti.[MN. vol.3, pp.232~233]
위 경문은 <쌍요자나(saṁyojana)와 法(dhamma)의 관계>를 설하는 경문이므로 반듯이 외워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初禪의 상황>을 설하는 아래의 경문을 통하여 <初禪과 法(dhamma)의 관계>를 알아 두셔야만 초선에서의 ‘아비담마(對法)’이 이해되실 것입니다.
비구여, 다시 어떤 비구가 들은바 대로 암기한 대로, 法(dhamma)을 따라가며 心으로 위딱카하고 위짜라하며 意로써 고찰한다(고 하자). 그는 그러한 ‘法(dhamma)에 대한 위딱카로’ 하루 종일 보내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며, ①內로 心의 사마타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비구여, 그러한 비구는 위딱카는 많이 하지만 法(dhamma)에 머무는 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Puna ca paraṃ bhikkhu bhikkhu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cetasā anuvitakketi anuvicāreti manasānupekkhati. So tehi dhammavitakkehi divasaṃ atināmeti, riñcati paṭisallānaṃ, nānuyuñjati ajjhattaṃ cetosamathaṃ. Ayaṃ vuccati bhikkhu bhikkhu vitakkabahulo, no dhammavihārī.)[AN. vol.3. p.87]
비구여, 다시 어떤 비구가 들은바 대로 암기한 대로, 法(dhamma)을 따라가며 心으로 위딱카하고 위짜라하며 意로써 고찰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②般若로써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비구여, 그러한 비구는 위딱카는 많이 하지만 法(dhamma)에 머무는 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Puna ca paraṃ bhikkhu bhikkhu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cetasā anuvitakketi anuvicāreti manasānupekkhati, uttariñ c'assa paññāya atthaṃ na ppajānāti. Ayaṃ vuccati bhikkhu bhikkhu vitakkabahulo, no dhammavihārī.) [AN. vol.3. p.88]
여기까지가 <쌍요자나>를 설명하기 위한 <두 번째 기초지식>입니다. ‘연꽃’님의 <박사학위 논문>이 당연히 <첫 번째 기초지식>이고요. 저는 본격적인 <“쌍요자나로 오시오! 웰컴!”②>를 준비하겠습니다.
첫댓글 http://durl.me/9wsr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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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 쩝~~~~~~~~~~~ 어쩔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 송소희 펜클럽을 외면하시는 분들은 .........
<심해탈과 혜해탈>이라는 <두 유형의 해탈>에서 차이점은 ‘dhamma’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곧 이어 <쌍요자나>의 설명에서 나옵니다만........ <사마타>의 수준이 너무 높으면 <위빠사나>에 실패하시게 되십니다. ㅋ.
근기,성향에 따라 해탈하는 유형이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소 닭 보듯이>.......에서 ..... <소>가 <닭>을 보고는 '이탐'할 수 있지만 <풀>을 보고는 '이탐' 못하지요. ㅋ.
@아위자 식도락가는 <요리>를 보시고는 '이탐'못하고.........
@아위자 불교학자는 <새로운 '논지'>를 듣고는 '이탐' 못하고...........
수행자는 '깨달음'에는 '이탐' 못하고......... ㅋㅋ.
@아위자 그렇지만 모든 존재들은 <고>에는 모두 ............. '이탐'되어 있는 상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쌍요자나>의 논리를 유심히 보면요............. "이탐 같은 소리하고 있네.[=수행 좋아하고 았네]"라는 의미도 다분히 함유하고 있거든요............ <사마타와 위빠사나>? ..............."뭘 <사마타>하고 뭘 <위빠사나>한다고 지랄들이야!"라는 의미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또한 ......... "야! 이 놈들아! 뭐가 <번뇌>고 뭐가 <보리>냐? 엉?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들아!"라는 의미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둘 다' <苦>야!..........ㅎ.
@아위자 <광대역 해탈>.... <쌍요자나>면 다 되는 것이요?
@아위자 송소희 CF ........
@아위자 모든 존재들은 <고>에는 모두 ............. '이탐'되어 있는 상태!
모든 ....... <연-이-생-dhamma>는 有爲. .......... 사성제도 <연-이-생-dhamma>!
<삼명>도 <연-이-생-dhamma>!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모두 <苦>임!
@아위자 모든 존재들은 <고>에는 모두 ............. '이탐'되어 있는 상태!
@아위자 一切皆苦가 <고의 끝(=世間의 끝)>이라는 말씀.
@아위자 그래서 <一切-Dhamma는 '無我'>! ......."아~~ 쪽팔려!"//<똥막데기>부처.
<쌍요자나>=<자등명 법등명> ......."아~~ 쪽팔려!"//<똥막데기>부처.
어떤 禪師라는 가이쌔끼는 ........ 춥다고 <부처>를 뽀개서 불쬐고 있었다니까요!
@아위자 道人행세 하고 싶어서 <미치고 환장하는 놈들>이 들으면............. 애들 보는데에서는 물도 한잔 못하는 것이기에........... 큰일 날 소리이기는 하지만........<쌍요자나>=<자등명 법등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