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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의 맥과 혈, 그리고 기
박 양 근
開
수필의 몸은 사람의 몸과 같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땅의 형세와 같다. 동서의 모든 신화를 살펴보아도 인간은 조물주가 흙을 재료로 만들고 숨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갖게 하였다고 한다. 땅의 재료인 흙으로 인간이 만들어지고 그 인간이 다시 예술로서 작품을 창작한다면 우리는 과학적 논거를 떠나 시학의 관점에서 대지, 인간, 글이라는 3자 사이의 일치성을 찾을 수 있다. 논자는 그 질료로서 맥(脈)과 혈(穴)과 기(氣)로 언급하고자 한다.
산의 형세는 산줄기가 흐르는 모양으로 살필 수 있다. 지리학에서 그것은 산맥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백두대간이 주맥이 된다. 혈은 땅의 정기가 모인 자리를 칭하는 말로서 경혈이라고도 부르며 맥과 혈이 모여 산의 기운을 이루어낸다. 이것들을 인간 생활에 응용하여 인간의 생사와 산세 간의 관계를 살피는 학문이 풍수학으로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인식 체계’라고 한다.
인체는 머리와 몸통과 사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은 근육과 뼈로 이어지며 그 위에 피부가 덮여 있다. 서양 의학에서는 기능에 따라 신경계, 호흡계, 심혈관계, 비뇨기계, 골·근육계, 그리고 피부계로 구분하지만 동의학에서는 각각의 기능보다는 상호반응의 상태를 보여 주는 맥과 혈, 그리고 기를 중요시한다. 골격이 단단하고 곧을지라도 혈 맥 기가 순탄하지 못하면 직립 기계에 불과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를 곧게 세우는 골격이 온전하더라도 혈과 기가 제구실을 못하면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다. 한의학은 신체 내부의 생리나 병리현상을 살펴 침구나 안마, 지압과 같은 외부의 자극으로 몸 기운을 돋우려는 요법이다. 천 원짜리 침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까닭은 맥과 혈과 그리고 기의 중요성을 요약한 비유일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반듯하게 세우는 것이 맥(脈)이며, 감동과 인식을 일깨우는 것이 혈(穴)이며, 글이 지닌 역동의 에너지가 기(氣)에 해당한다. 그럴 때 살아 있는 글이 된다. 혈을 바르게 다루면 난삽한 글이 되지 않고, 맥이 일관되게 흐르면 엉뚱한 줄거리로 빠지지 않아 기라는 감동과 공감을 확보하게 된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글은 맥이 없음이며, 엉뚱한 줄거리로 흘러 버린 글은 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며, 표현, 착상, 주제에서 무릎을 칠 만한 곳이 없다 함은 혈이 없음이며, 다작을 하여도 태작이 되어 버리는 이유는 기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쪽수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각종 수사법으로 꾸미기에 골몰한 글은 시신을 화장(化粧)한 것으로 생문(生文)이라는 부활의 향기가 스며나지 못한 글이 된다.
글의 혈과 맥을 살펴 제자리에 둘 수 있는 풍수쟁이나 한의침구사와 같은 감식력을 가진다면 수필문을 구축하고 분석하고 평하는 자질을 가진 문장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수필을 대하면서 인체의 오묘한 조화를 떠올리면 “글은 사람이다”는 말이 이해된다. 이 비유는 작가의 인품 외에 문의 구조와 기능을 뜻하는 것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1. 합 : 수필의 맥과 문의 구조
1) 수필의 맥
수필문은 무엇보다 내용과 형식 간의 결속으로 엮어진다. 형식은 문의 구조와 기법으로 나누어지는데 구조는 어휘, 문장, 단락, 복문 등이며 기법은 수사와 서술론과 기교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수필문을 서로 잇는 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수필문은 기본적으로 서두와 전개부와 결미로 구획된다. 서두는 글의 머리 부분으로 배경 설정, 분위기 조성 및 주제를 암시한다. 전개부는 오장육부가 안치된 몸통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제와 소재 간의 결합이 펼쳐지고, 경험에 대한 기술과 느낌과 생각과 현상에 대한 인식 내용 등이 교차하면서 작가의 지적, 정적, 의지적 세계를 보여 준다. 오장육부가 건강하여야 몸이 건실하듯이 좋은 수필의 충실도는 전개부에 좌우된다. 전개부는 대체적으로 3개의 내용군으로 이루어지는데 각각의 내용군은 2∼4개의 내용단락을 거느린다. 수필은 응축의 문학으로서 무제한 펼칠 수 없기 때문에 3부분의 내용군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결미는 전개부에서 펼쳐진 내용을 요약, 재정리하고 비전 제시와 가치 평가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3원칙은 아리스토텔레스가『시학』에서 말한 ‘시작과 중간과 끝’이라는 구성과 조화를 이루는 기본 맥에 해당한다.
① 서두단락(1)
② 서두와 전개부의 연결단락(1)
③ 전개부
ⓐ 제1 내용군 (3)
ⓑ 제2 내용군 (3)
ⓒ 제3 내용군 (3)
④ 전개와 결미의 연결단락(1)
⑤ 결미단락(1)
2) 수필의 5맥
(1) 단락 간의 연결성
본문의 기본 단위는 단락이다. 단락은 사람의 인체에 비기면 요추와 같고 요추는 마디마디로 나누어져 있지만 연골에 의하여 하나로 이어져 있다. 수필의 본문도 사람의 척추와 마찬가지로 유기성을 이루어야 한다. 본문의 단락을 기능별로 구분하면 내용을 전달하는 내용단락과 단락과 단락을 이어 주는 기능단락이 있다. 특히 서두에서 본문으로 넘어갈 때와 본문에서 결미로 넘어갈 때의 기능단락이 제 역할을 하여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본문이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면, 본문은 형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구조에 있어서도 상호간의 유기성이 필요하다.
(2) 주제와의 관련성
무엇보다 글의 내용은 주제와 긴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두에서 암시된 주제가 전개부에서 확장, 확대, 증식되었다가 마지막 단락에서 종합화되고 마지막으로 결미에서 주제는 명료해진다. 전개부는 여러 개의 소주제문으로 나누어지는데 전개부에 담겨지는 소주제가 지나치게 많거나 전개되는 예문이 주제와 어긋나면 글의 맥은 산만해진다. 수필은 읽는 순간에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하면 난해한 산문으로 외면당하기 쉽다. 흔히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주제와 상관이 없는 불필요한 에피소드나 상식화된 정보, 백과사전에서 차용한 전문지식 등은 오히려 주제를 흐리게 한다. 이것은 마치 몸에 붙은 불필요한 혹과 같아 신체라는 글의 균형을 깨뜨리고 척추와 하체에 부담감을 준다. 그러므로 전개부의 모든 뒷받침 내용은 주제와 결속성이 있는가를 살펴 취사선택할 필요가 있고 그렇지 못하면 생략하여야 한다.
(3) 제재와 소재의 상관성
수필가는 흔히 지나치게 말하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어휘, 구문, 수사, 문장을 펼치려는 충동을 갖는다. 수필의 본성은 작은 응축된 분량으로 내용을 함축하는 글이므로 제시되는 소재의 범위는 가능한 좁혀야 한다.
수필이 압축성이라는 의미는 소재의 양적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재를 다각적인 관점으로 파악하여 그것의 외적 특성, 내적 본질, 또는 역사적 의의, 다른 사물과의 상관관계, 체험과의 상관성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수필의 소재는 수평적으로 펼쳐지면서도 수직적으로 심화되어져야 한다. 소재가 지나치게 팽창한 것은 마치 비만증의 체구와 같고, 수직적으로만 파고든 글은 슬림형 신체와 같다. 이렇듯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수필문의 맥이 감당하지 못한다. 수필의 소재는 열거가 아니라 주제의 의미화이므로 이것을 도형화하면 하나의 제재를 중심으로 여러 소재가 동심원으로 모이는 꼴을 이루게 된다.
(4) 형식의 다양성
글은 서두에 이어 전개부가 나타나고 결미로 매듭을 묶는다. 서두는 분위기 조성, 일화 제시, 명제 제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본문은 서두에서 암시된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목적에 따라 서술, 설명, 묘사, 예시, 사유, 논증, 분석, 질문, 비교 등의 다양한 문장 기법이 동원된다. 그리고 결미에서는 요약, 재진술, 주제 제시, 분위기 조성의 기능을 한다. 동시에 내용에 맞게 문장의 형식을 짧거나 길게 하며, 전달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강건체, 우유체, 만연체 등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만일 서정수필이라면 분위기 조성-일화-묘사-분위기 조성의 연쇄구조를 지니고, 설리수필이면 명제 제시-예시-논증-요약이고, 생활수필이면 일화 제시-설명-묘사-사유-주제 순으로 수필의 맥이 짜여진다. 물론 기본적인 구도는 작가나 작품에 따라 달라지며 수필 작가는 서두와 전개부와 결미라는 두골, 목뼈, 등뼈, 골반, 다리라는 골격의 균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5) 서술의 유기성
글을 쓰는 일은 조각가의 작업과 같다. 쓰지 않으면 배겨낼 수 없는 충동만으로 위대한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문장가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나 욕망 외에 입상을 만드는 조각가의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성적인 내용과 감성적인 표현을 가진 글이라는 맥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서술이라는 철심을 속에 박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수필의 맥에서 알아 두어야 할 기본적인 원리에 해당한다.
창작에는 착상→구상→구성→진술로 이어지는 순서가 있다. 착상은 마음의 항아리에 저장된 체험 중 어느 하나를 선정하는 정신활동이며 구상이란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제재를 찾고 적절한 내용을 첨가하는 영상적 과정이다. 또, 구성은 주제에 맞게 단락을 엮어 가는 과정이며 진술은 글 쓴 사람의 인격과 사상과 가치관이 마무리되는 단계이다.
문학의 서술은 실용문의 설명과 달리 서사적, 서정적, 설리적 문맥의 흐름을 지키면서 수사적 기법과 문장의 기교를 적절하게 가미한 것이다. 여기에 수필 문장의 개성미가 드러난다. 서술의 구체적인 기법으로는 설명과 묘사, 비교와 대조, 분석과 종합, 논증과 예시, 서정과 서사, 연역과 귀납, 구심과 원심, 질문과 응답 등으로 수필문의 맥을 바로 세우는 각종 연골에 해당한다.
2. 합 : 수필의 혈로서 결속이론
1) 형상과 인식의 결속
문학적 언어는 일상어와 과학어와 다르다. 형상화라는 인식작용에서 다르다는 뜻이다. 형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보여 주는 것으로 형상화는 비가시적 관념을 가시화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한다. 형상만 중요시한다면 수필은 문자놀이에 불과하다. 인식은 무지의 땅에 덮인 진실을 찾아내는 행위로서 무의미하게 간주하는 대상에서 참된 무엇으로 끌어올리는 성찰의 일종이다. 문학은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논증이 아니라 형상화를 통한 인식의 문장이기 때문에 탈사실적 인식을 요구한다.
망새는 단순과 편리를 추구하는 도시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일부러 조선집이나 오래된 절집, 궁궐까지 발품을 팔아야 겨우 볼 수 있다. 궁궐이나 사원의 용마루, 전통 기와집 지붕마루의 양끝에 우뚝 선 암막새다. ……
문득 초로의 목공이 떠오른다. 직장의 건물이 준공을 앞둔 무렵이었다. 미완의 건물 지붕 끝 모서리에 그가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한곳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 마리 새의 형상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막 비상하려는 불새와도 같아 보였다. 떠오르는 태양 속으로 날아가는 듯한 착시였다.
― 이은희 「망새」일부
작가 이은희는 집을 짓는 목공과 기와집의 마감 기와인 망새를 일치시키고 있다. 그들은 우선 지상에서부터 초연하게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 자신이 지은 집이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목수와 인간의 집이 화마로부터 안전하기를 기대하는 망새와,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작가가 만나는 지점이다. 창작의 영원성을 꿈꾸는 작가에게 망새는 표현 욕망의 상징이고, 목수는 작가와 동일한 예술가로 등장한다. 신이 제1의 창조주이고, 목수가 제2의 창조주이며 작가는 제3의 창조주라는 미학 원리처럼 망새는 단순한 인공물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체가 된다. 이것은 문학은 형상과 인식이라는 두 요소가 혈로서의 작용임을 시사한다.
2) 제재와 주제의 결속
수필 쓰기는 작가와 제재와 주제가 삼각 구도를 이루면서 서로의 존재성을 확인해가는 작업이다. 문학성을 지닌 수필은 대상이 지닌 원형적 속성으로 주제를 구현한다. 주제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재를 투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창작은 목적성 언어 행위이므로 제재와 주제를 접근시키는 전략으로 적절한 소재를 선정하는 분별성, 주제에 맞는 소재를 선별하는 적절성, 그리고 소재와 주제 간의 의미를 조화시키는 일치성이 구사되어야 한다.
제재로서 사물을 성찰할 때, 동화(同化)는 사물과 작가가 영적 교감을 이루어 자아와 타자의 대칭을 벗겨내고 인간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때 독자는 수필가와 정서적, 지적, 심미적 일체를 이루는데 참신한 시각, 남다른 의미 부여, 화자와 사물 간의 특수 관계를 설정하는 일제일재(一題一材)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남창이 한낮이라면 내게 있어 북창은 늘 고요한 한밤중이다. 가고자 하면 언제라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의 넓고 시원한 고향 길이 남창이라면, 북창은 나와 같은 실향민이 조심조심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가는 좁고도 굽은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은, 붙잡기만 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는 어머니의 손때 묻은 치마끈과도 같은 오솔길인 것을…….
― 오창익 「북창」일부
위 단락에서 북창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이다. 월남인으로서 작가의 부모와 고향은 이북에 있으므로 그리움의 시선으로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이 남창이 아니라 북창으로 은유되고 있다. 북창은 남창과 달리 이미지에서는 춥고 어둡고, 쓸쓸하며, 상징에서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를 나타내며, 환유에서는 고향에 대한 사색을 뜻하며, 심리적으로는 고독과 어둠의 시간이다. ‘손때 묻은 치마끈’도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동심을 떠올려 회귀라는 서정미를 풀어낸다. 제재와 주제로서 그리움과 북창이 혈로 맞닿아 있다.
3) 선행 요소와 후행 요소의 결속
작품을 구성하는 선행 요소는 주제와 제재이고 후행 요소는 문체와 비유를 말한다. 수필문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표현과 의미망의 집합이므로 주제에 맞는 어휘, 제재에 적합한 수식이 따라야 의미화된 문이 된다. 이것은 사람의 몸에 흐르는 기가 서로 조응하여야 한다는 혈의 이치와 같다. 좋은 글임은 알지만 왜 그런가를 분석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수식어와 피수식어 사이에는 결속이 있으므로 결속의 응집력이 중요시된다. 녹야의 노루와 설원의 노루와 농장의 노루는 위치 설정이 다르므로 운명도 달라진다. 주제와 제재와 문장과 표현 간에 균형과 결속을 이루려면 선행 요소와 후행 요소가 호응하여야 한다.
지상에 눈이 두터워지면 더 이상 먹이를 찾을 수 없는 노루 한 마리. 드문드문 저녁연기 피워올리는 인가가 있는 들판으로 겁먹은 채 내려오는 노루 한 마리. 허기지고 지쳐, 아니 오직 목숨줄인 먹이를 위해, 살고 싶어, 죽음을 겁내면서 막막하게 설원을 걸어온 노루 한 마리. 그 노루가 나였다.
먹장 같은 죽음의 커다란 아가리가 나를 덥석 삼킬까 봐 염불처럼 외워 댔다. 살·아·야·해·.
― 김용옥「눈 쌓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일부
소재는 설원, 노루 한 마리, 나로서 냉혹한 현실에서의 생존에 대한 애착을 그려내고 있다 선행 요소인 노루가 후행 요소인 설원이라는 공간과 한 마리라는 개체 수와 합쳐 ‘고독, 절박함, 애원’이라는 모티프를 만들고 있다. 이로써 설원의 한 마리 노루는 화자의 절박한 운명을 강조하게 된다. 위 단락을 이루는 핵심 구조는 “허기지고 겁먹은 채 내려오는 노루 한 마리”다. 그 노루 한 마리를 통해 화자는 자신이 처한 절망과 숙명,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죽음을 무릅쓰고 새끼 노루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나설 수밖에 없는 절망 속의 생명성을 대변한다. 이것은 ‘삶이란 외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탄식과 무릎을 치게 되는 혈의 예시를 보여 준다.
4) 구조와 서술 기법의 결속
수필문은 구조와 기법으로 짜여진다. 문장 구조는 음절, 단어, 구, 문장, 단락 등이며 서술 기법은 문장 기술 방식을 말한다. 수필문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단락의 구조에서 문장 간에 비중이 안배되고, 서두와 전개부와 결미라는 필수적인 구획에서 각각 자극, 반응, 의미 해석이라는 삼단 구조가 연역이든 귀납이든 양괄식이든 논리적인 구조로 펼쳐져야 한다. 그럴 때 경험적 사실, 느낌이나 생각, 사회 현상에 대한 관찰과 인식 등 지적, 정적, 의지적 인지 세계가 펼쳐진다. 나아가 설명, 해설, 보완, 인용, 재설명, 열거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호응, 대조, 정립, 평행, 보완, 반증, 순차 등의 기법이 구사되어야 한다. 그 예를 아래 문장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할머니는 고모부에게 두루마기를 벗으라고 하셨다.// 고모부가 두루마기를 벗자 할머니는 두루마기를 둘둘 말아서 어머니께 밀어 놓으며 빨라고 이르셨다. 고모부가 환갑 때 입은 두루마기라며 아직 빨 때가 안 되었다고 손사래를 쳤으나 할머니는 동정이 까만데 무슨 소리냐며 굳이 빨도록 이르셨다. 고모부는 두루마기를 빨아서 새로 꾸미는 며칠간을 머무르셨다.// 짐작컨대 할머니가 고모부의 두루마기를 빨게 하신 것은 고모부를 며칠 간 잡아 두시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 목성균 「고모부」 일부
위 단락은 삼단논법과 서두, 전개, 결미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는 두루마기를 벗은 사실을, 전개부는 할머니가 두루마기를 처리한 과정을, 그리고 결미는 할머니의 행동에 대한 화자의 해석이 이어져, 명제 제시, 부연 설명, 가치 제시라는 3단계 서술구조를 지닌다. 이 작품은 문장 기교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서사로 감동을 주려는 문장의 전범에 속한다. 이처럼 문장 하나하나의 연결에 유념하면서 기능 간의 유기적인 결속을 이루어내면 좋은 수필문을 직조할 수 있다.
5) 직설과 비유의 결속
직설과 비유는 설명과 묘사를 조합하는 대표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해설, 설명, 논증 등이 정보 전달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직유, 은유, 이미지, 반어, 역설, 의성 등의 수사법은 심미적 효과를 높여 준다. 이 때 단락 내에서 구사되는 직설과 비유는 양적 안배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수사가 뒤따르지 못한 문은 설명이나 보고에 그치며 반대로 지나치게 비유법이 남용되면 미문이나 감상적인 문장이 되어 버린다. 수필은 직설과 비유가 적절하게 안배된 미적 구조를 갖추어야 하지만 수사가 남용되어 산문정신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어머니는 참외를 좋아하셨다. 좋아하는 이유 또한 유별나다. 어느 여름 장날, 간 갈치 몇 마리를 사기 위해 어머니는 장터로 나가셨다. 장터에 볼일 보러 나간 아버지는 참외가게에 앉아 참외를 깎아 먹으면서 어머니가 지나가시는데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어머니의 장터 나들이를 먼발치로 보았을 터인데 ‘혹시 들킬세라’ 삿갓을 고쳐 써 가며 끝내 모른 체하더라는 것이다. 화가 난 어머니는 장터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 간 갈치 대신 참외 한 아름을 사 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작아작 씹어 먹는 데모를 벌였다고 한다.
― 구활「아버지의 초상화 그리고 어머니」일부
윗 글은 “어머니는 참외를 (별나게) 좋아하셨다.”는 서사적 정보와 “여름 어느 장날…….”로 시작하는 일화로 이루어져 있다. 참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를 제시하는 매체로 사용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아는 체하지 않는 서사적 행동은 “삿갓을 고쳐 써 가며”로 은유되고, 어머니가 앙갚음하는 서사적 반응은 “참외 한 아름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 데모”로 그려진다. 서사와 서정의 전형적인 배합에서 보면, 서사는 설명으로 서정은 묘사로 이루어진다. 장터에서 아내를 못 본 척하는 남편의 체통과 그 위선에 복수하려는 아내의 먹는 모습은 해학미의 예가 된다. 부부 싸움이 언쟁이 아니라 참외 혼자 먹기로 묘사되듯 노란 참외의 후각 심성, 미각 심성, 시각 심성은 미적 구조를 확보해 준다. 나아가 작가는 부부의 냉전, 남성의 봉건주의, 그것에 대항하는 어머니의 앙갚음이 노란 참외라는 혈에 모아져 있다.
6) 현상과 상상의 결속
상상은 문장을 엮는 과정에서도 중요하다. ‘왜?’와 ‘그래서?’라는 질문과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상상은 글의 위상과 좌표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글 쓰는 동기가 사랑, 미움, 갈등, 용서 등인가, 자아라는 정체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자연물로 인간과 자연과 결속을 도모하고 있는가를 질문하여 우주의 현상과 창작 간에 접점을 찾아내게 된다. 현상은 타인에 대한 앎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파악하여 그 ‘앎, 알아 감’의 구조를 분석 기술하는 것이며 이 때 작가와 앎과 대상은 상호 연관을 맺는 일종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게 된다.
나비는 자유혼, 날아다니는 꿈이다. 정착을 거부하는 보헤미안이다. 집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지 않고 사랑을 해도 소유를 꿈꾸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도 잠시뿐. 미련을 두거나 집착을 하지 않는다. 발그레한 꽃의 귓불을 건드리며 “Shall we dance?”라고 유혹을 해 보다가, 웃으며 도리질 하는 순정한 꽃들과는 가벼운 키스로 작별할 줄을 안다. 나비는 바쁠 것 없는 한량, 우울을 모르는 신사다.
― 최민자 「나비의 꿈」일부
한마디로 놀라운 ‘화조도’가 현상되고 있다. 작가는 나비와 꽃의 관계를 꿀을 따고 화분을 묻히는 생물학적 공생이 아니라 인간의 풍류와 사랑의 행위로 상상한다. 그 모티프는 춤이다. 작가는 나풀거리는 나비의 동작을 육안이 아니라 심미안으로 현상하여 자유의 혼을 만들고 있다. 나비는 정착하지 않는 보헤미안, 꽃을 따는 한량, 그리고 꽃가지를 꺾지 않는 신사로 화신(化身)되어 꽃밭을 떠도는 절대적 자유의 현현체로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유혼이다. 작가는 나비춤을 자유혼이라는 자각의 과정을 날기, 보헤미안, 춤, 키스, 한량으로 단계화하고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절대적 자유에 대한 작가의 염원에서 비롯하며 이것이 현상화로서 혈에 해당한다.
3. 합: 수필의 기(氣) 흘리기
인체는 골격과 오장육부만으로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글은 인체와 달리 미적 구조 외에도 기라는 심미적 소통이 필요하다. 태초의 생명체가 조물주의 숨결로 살아났듯이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수필도 나름의 기운이 필요하다. 기를 부여하는 심미적 소통 작업은 개개의 미적 구조를 고안하고, 설계하고 장치하는 것 이상으로 심미감의 기를 맥을 통해 운행시키고 혈에 집중시켜 글의 역동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약골과 식물인간이 있고, 반대로 장골과 육 척 장수가 있듯이 문장이 지닌 내공은 글마다 다르다. 그 기력을 키우는 방식이 상상 환상 연상 착상과 같은 교감의 힘이다.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부른다면 수필가는 문장의 검객이자 내공의 달인이어야 한다.
1) 수필과 상상
수필적 상상은 ‘새롭게 읽기’라는 의미로서 소재 주제 문장 표현의 상상으로 나누어진다. 상상은 단순한 언어적 기교가 아니라 무엇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는 행위이므로 소재의 변형이나, 현실의 대각이나, 허구의 일종이나, 환상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수필의 상상은 창조적 상상이어야 한다. 물상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재생이 아니라 원사물과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새로운 관념을 구축해 내는 창조적 상상이 필요하다. 만일 어린 시절에 바라본 종달새를 기억하여 재현하면 재생적 상상이지만 종달새에 생명의 약동과 신세기의 희망을 담는다면 창조적 상상이 된다.
아버지는 늘 장독대 옆 수돗가에서 숫돌을 가셨다. 나이 탓으로 허리가 조금 구부정해졌는데 칼을 갈기 위해 무릎을 굽히면 등짝이 활처럼 휘었다. 가위와 부엌칼을 갈았고 낫과 호미 날도 갈았다. 정성스럽게 간 날을 빛을 향해 비춰 볼 때의 아버지는 흡사 명검을 만드는 장인같이 보였다. 날렵해진 무쇠 칼날에 손가락을 대어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우리 집의 칼갈이였지만 무쇠 같지 않는 아버지였다.
숫돌은 징검다리가 될 때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들처럼 종종 부부 싸움을 했다. 헌데 다음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숫돌 앞에서 더욱 오래도록 칼을 갈았다.
― 조영희「숫돌」일부
위의 예문에서 숫돌은 단순히 칼 가는 도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반영하는 객관적 상관물이 되어 있다. 나아가 아버지의 굽은 등이 활에 비유된다. 이로써 작가는 사람을 사물로 비유하면서 삶을 짐 진 아버지를 회상한다. 두 대상은 모두 휘어진 모습에서 일치한다. 작가는 휘어짐이라는 모양으로 주변 환경에 굴복한 아버지의 상황과 부부관계를 회복하려는 자상함, 그리고 장인 정신으로 칼을 가는 자세를 동시에 그려낸다. 부부 싸움을 화해시키는 칼갈이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작업과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살림살이의 구분을 나타내고, 나아가 화해의 방식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보여 준다. 이처럼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형상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사회적 담론에서 일치하여야 효과가 증대된다.
2) 수필과 환상
환상은 직접적인 체험과 무관하며 로맨스가 갖는 팽창과 과장의 미학을 지향하면서 심미성을 강조한다. 환상은 현실의 시공을 확장하지만 진실성에 비켜나지 않으면서 경이감을 확대하고, 신비적이며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어 탐미적이고 유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지닌다.
침구실에 같이 불려 들어갔다. 빨쪽하게 열린 커튼 사이로 뽀얀 맨발이 보인다. 초등학생 계집애마냥 발도 작다. 고슴도치가 된 스님과 내가 의원의 명령에 따라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다. 커튼을 넘어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린다. 커튼 밑으로 법당 향내가 솔솔 넘어오는 것 같다. 통증을 참는 심호흡인가? 아파도 혼자, 서글퍼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절대 고독, 거기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자기연민인가? 이따금씩 호요- 한숨짓는 소리가 들린다. 무소 뿔처럼 홀로 가야 할 구도의 길, 평생 잿빛 버선 속에 감추고 살아가야 할 저 발가락에다 불현듯 주홍빛 꽃물을 들여 주고 싶다. 문득 남산 오막살이 토담 아래 지천으로 피어 있던 봉숭아꽃이 떠오른다.
― 안병태 「여승」일부
「여승」은 인간이 숨긴 원초적 본능을 환상의 구도 안에서 기표한 작품이다. 영육으로 양분된 인간이 지닌 원초적 욕망은 육체의 완벽한 통합이듯이 작가는 침을 맞는 여승의 ‘뽀얀 작은 맨발’에서 성애적 환상으로 빠져든다. 정신적 완결은 종교적 귀의이고, 육체적 완성은 이성과의 결합이므로 성(性)은 성(聖)과 속(俗)을 결속하는 에로티시즘으로 발전한다. 뽀얀 발목의 여승과 주홍빛 봉숭아 꽃물의 이미지가 합쳐 보여 주는 것은 종교적 나르시시즘과 세속적 에로티시즘과 유년기의 노스탤지어라는 세 코드가 환상에서 합쳐졌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가까운 사랑에 대한 동경심이 판타지 기법으로 표현된 예에 속한다.
3) 수필의 연상
문학에서 연상은 사물에 의한 기억이 확장되면서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풀이하는 정신작용이다. 일반화에 의한 연상, 추상화에 의한 연상, 유사성의 원리에 의한 연상, 인접성의 원리에 의한 연상으로 구분되는데 일반화는 단풍으로 가을을 떠올리는 것이며, 추상화는 다이아몬드 모양에서 야구장을 떠올리는 것이며, 유사는 달로써 동전이나 운전대를 생각하고, 인접은 고향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이다. 꽃을 뿌리면 장례식을 연상시키고 꽃을 바치면 구애를 연상시켜 주듯 텍스트 안에서 연상은 반드시 두 사물 간의 상호관계를 풀이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肉)을 감싸는 것이 생의 배내옷이라면 마지막 육에 입히는 수의는 혼(魂)의 배내옷이지 싶다. 그동안 이승에서 혼이 걸치고 있던 무거운 육체를 벗어 두고 가벼운 삼베 배내옷 한 벌 갈아입고 저승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김정화「혼의 배내옷」일부
삶과 옷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작가는 삶의 변화를 옷 입기로 재는데 화자는 출생을 배내옷으로, 결혼식을 혼례복으로, 죽음을 수의로 잰다. 만일 출생이 육신으로 들어오는 이동이라면 죽음은 육신에서 혼이 나가는 것이다. 시점을 피안에서 보면 죽음은 혼의 세계로의 입문이므로 그 또한 탄생이고 배내옷을 입게 된다. 수의가 혼의 배내옷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상은 참으로 놀랍다. ‘혼의 배내옷’에는 옷에 대한 일반적 연상, 혼에 대한 추상적 연상, 첫 옷이라는 유사성의 연상, 그리고 죽음과 수의라는 인접성이 모두 결합된 기의 예라고 하겠다.
4) 수필의 착상
착상은 ‘아! 그것’이라는 순간적인 번뜩임에 해당한다. 바늘로 혈을 찔러 숨을 틔우는 침처럼 착상은 자신의 위치, 입장, 태도와 대상의 위치, 반응, 태도를 관련지우는 호기심에 해당한다. 호기심이 강할수록 좋은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데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쓰고 싶다는 충동을 합쳐 새 소재 거리를 찾으려는 일종의 사고의 수혈이 필요하다. 고정관념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것이 흐르지 않는다. 검정 고무신을 보면서 돛단배를 떠올리고 설원의 전봇대에서 등대를 생각하는 발상이 모두 착상에 해당한다.
나는 그 부러진 성냥개비를 창밖으로 짜증스럽게 내던지며, 아무짝에도 못 쓸 것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결국 나는 귀이개를 찾기로 하고 서랍을 뒤졌다. 마침 찾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상쾌한 한때를 즐기면서 귀이개 공로를 찬양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내 새끼손가락을 생각했다. 가려운 데까지 닿지 않는다고 타박 받은 손가락이다. 그리고 성냥개비를 생각했다. 한참 시원할 때 요절해서, 아무짝에도 못 쓸 것이라고 욕을 먹은 성냥개비다.
나는 좀 반성하기로 하고, 우선 내가 그들을 타박하고 욕한 것은 정당했나 스스로 물어보았다.
― 정진권「귀를 후비며」일부
작가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다 못해 성이 차지 않아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려 한다. 그러다가 성냥개비가 뚝 부러지자 성냥개비가 약하다고 탓하며 던져 버리지만 성냥개비는 귀이개가 아니다. 인간의 편의주의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부러진 성냥개비를 버리는 자신의 우행에서 이기심을 불현 듯 깨닫는 착상이 바탕이 되어 있다. 이 글의 착상은 편리한 대로 생각해 버리는 인간의 오만을 끄집어낸 점에 있다.
5) 수필의 발상
수필의 발상은 발칙할 정도의 형식적 내용적 파괴를 지향한다. 문의 4가지 요소는 사상과 정서와 형식과 문장인 만큼 사상과 형식과의 일체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문학 소통에 사용되는 코드는 하드 코드(hard code)와 소프트 코드(soft code)로서 전자는 형식의 변이에, 후자는 내용의 진화에 적용된다. 이것은 형이상학파 시처럼 형식의 일탈과 소재 해석의 일탈을 결합하여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한다. 발상은 인습적인 영상(These)을 버리고 새로운 상(Antithese)과 새로운 기호(signal)를 만들어내는 이미지화 작업이다. 수필의 4요소를 통합한다는 문학의 실험 정신을 자극하는 기는 IT시대의 감성에 가장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비는 실처럼 가는 모습으로 떨어져 실비라 불리지만 한 줄기씩 따져 보면 유연한 것만은 아니다. 내려오면서 물러나거나 우회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는 직선 코스의 날카롭고 저돌적인 자세다.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비
내리는 비는 글자인 비를 닮았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비다.
― 남홍숙 「비비비」일부
위의 작품은 소재와 주제와 형식을 상호 결합시켜 보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비는 한 줄기이지만 강우는 집단적인 비로서 흐린 기상을 나타낸다. 개체는 한번 내리면 사라지지만 비라는 집합체는 무한히 존재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하여 빗줄기와 일기가 발상의 그물망에서 합쳐진다. 그 일시성과 무한성 개체성과 집단성이 한 편의 글 속에서 결합하게 된다.
작가에게 상상, 환상, 연상, 착상, 발상은 자아와 대상 간의 맥과 혈을 잇는 일종의 고속도로망이나 정보망의 역할을 한다. 기라는 문학적 내공이 작품의 미학성을 확장시켜 나가는데 기(氣)라는 내공은 작품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두께뿐만 아니라, 인식의 수준까지 결정해 간다. 작품의 질적 한계도 문장의 한계가 아니라 기(氣) 세우기로서 인식의 한계이다. 그 점에서 기는 작가의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는 에너지이며 맥을 따라 흐르는 작가의 정신력의 총체이다. 기가 살아야 사람이 활기 있게 움직이듯이 문장의 기가 맥을 따라 부단하게 흐르고 경혈에서 만나야 호소력과 가독력을 높여 간다.
閉
맥을 지니는 글은 인체와 동일한 기능을 지닌다. 서두가 주제를 암시하고 전개부가 소화하고 숨을 내쉬고 배설하는 몸통과 같다면 결미는 작가의 메시지와 주제화가 정리되는 곳이다. 이러한 균형과 통일 외에도 독자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는 혈이 제자리에 놓여야 하고 기가 충만할 필요가 있다.
수필문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맥과 혈과 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글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부분,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지는 부분, 머리가 띵해지는 부분이 혈이다. 그리고 글을 읽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이유는 글의 기에 빨려들기 때문이다. 그런 요소가 없는 글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 흔히 “사람이 글이다.”라고 말하지만 글을 쓰고 난 후에는 “글이 사람이다.” 수필의 맥(脈), 혈(穴), 기(氣)야말로 감동의 진폭과 인식의 파장을 결정하는 요소로서 머리 굴리기(brainstorming)와 마음 굴리기(heart-storming)로 이 3요소를 단련하면 수필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는 누구인가. 인생이라는 돌덩어리를 쪼고 쪼아 작가라는 자신의 석상을 만드는 장인이다. 고로 작가는 부단하게 맥과 혈과 그리고 기에 주목하여 권법과 내공으로써 문학적 에너지를 생산하고 비축하고 태워야 한다. 그 불에서 태어난 한 편의 수필이 산 수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