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 [아침시 산책] 침묵·2 / 조광태
가로수 멱살을 잡는
비바람 소리도 침묵이고
천둥 번개 요란함도 침묵이고
폭풍이 몰아치는 것도 침묵이고
산이 땅이 무너지는 것도 침묵이고
비 갠 청명함도 깊은 침묵이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도 침묵이고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도 침묵이고
떼 지어 지평선을 넘는 새들도 침묵이다
이 땅은 철조망 걷어내는 소리 외는 다 침묵이다
- 시집 ‘한탄강’(들꽃시선, 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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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슴 철렁 내려앉았던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겪고 나니 새삼 이 시가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남북 분단의 비극을 이처럼 입 앙다물고 결연히 내 뱉은 시는 요즘 보지 못했습니다. 비바람 소리, 천둥 번개 소리, 별빛 쏟아지는 소리,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소리는 모두 평화롭게 우리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소리도 한 순간 깨어질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우리는 언제나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깊은 침묵’이라 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이 땅의 평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깊게 배어납니다. 남북을 옥죄는 철조망은 언제나 걷어낼 수 있을까요?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쳤던 신동엽 시인의 깊은 침묵이 다시금 귓전을 쨍쨍 울립니다. 우리 알맹이처럼 남아 이 기나긴 침묵을 걷어내길 침묵에 침묵을 더 해 소원합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