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
(어제) (지난 금요일) 사목회의를 하는 중에 이러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도를 받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말씀은 성경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지만 더 알고 싶고, 목말라하기에 이러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제인 저 또한 마찬가지 마음이 듭니다. 신학교에서 7년 동안 수많은 ‘성경과 관련된 과목’을 학적으로 공부하였지만,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그 숨은 뜻을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A=B이다’라고 단정 지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비단 저 뿐만이 아니였는지 교구에 성경학 박사 신부님을 비롯하여 몇몇 선후배 신부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다음 달 복음에 대해서 원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서 서로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학자들은 어떠한 말을 했는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그 때에 나왔던 이야기가 오늘 복음의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원문과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비교 했을 때 이 부분은 상당히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해석 중 하나가 ‘십자가를 지니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이 말은 ‘나를 따르는 사람은 많은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이 ‘마음의 평화를 갖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말처럼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저 단순히 내 육신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신앙이 아닌 명상이나 호흡법 같은 것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들은 순간에 안정을 누릴 수는 있어도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복음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뛰어 넘어야/ 십자가를 지지 않고, 따르려고 하는 액션만 취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여 합니다. 1독서에 나오는 부유한 여자처럼 성심을 다하여 그 분께 해드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마음의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처럼 참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며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2독서의 말씀에 이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오늘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우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십자가를 지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 내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당당히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첫댓글 십자가를 지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 내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당당히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의 이 말씀 그리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절대 하느님나라에 갈 수 없음을 깨닫고 매일매일의 삶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는 지혜를 청합니다. 아멘!! 신부님 강론 말씀 업뎃 너무너무 감사해요~~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