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3] 파주 다율리 당하리 지석묘군
장례문화가 사회적 화두가 된 적이 있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인류란 서서히 진화하는 것이어서 가족 화장합장묘와 수목장 등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최초에 물고기를 찾아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던 인류가 모두 모두 ‘경제(?)’를 찾아 서울로 모이다 보니 서울은 모두 사람으로 주름이 져서 지각에 작용하는 橫壓(횡압)으로 지층에 주름이 지는 褶曲(습곡)현상처럼 모든 집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집터- 그 말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明堂(명당)이다. 幽宅(유택)이라면 어둡고 墓地(묘지)라면 음산한데 다 같은 말이다. 제일 좋은 집터는 어디인가? 볕바른 곳이고 습기가 없는, 水脈(수맥)이 흐르지 않는 고실고실한 땅이다. 한때 ‘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는 제일 좋은 집터를 길이 조상이 살 집터에 모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세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살집의 터가 현안이 되었는데 산을 까고 강을 메워 집을 지을 정도로 인구는 급증했다.
경기도 기념물129호 다율리당하리지석묘군
터잡기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한번은 시골집 강아지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이웃 정승 댁 묘지에 잠들어 있는 것을 찾아왔다. 요 녀석이 졸리면 그곳을 찾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개는 가족들에게 친근하고 충정을 다하며 집안을 돌보고 궂은 음식도 마다 않는다. 때로는 아기의 똥도 핥는다. 그러면서 냄새를 잘 맡고 외출할 때는 꼭 체취를 남겨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개가 午睡(오수)를 즐기는 터를 잡아 편히 쉬는 것을 보면 나는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나는 고인돌 앞에서 한다.
파주의 고인돌을 찾아가는 길은 황당했다. 헤이리에 가는 길에 자유로휴게소에서 파주관광안내도를 얻어 ‘다율리당하리지석묘군’에 동그라미를 하고 네비게이션을 움직였는데 군부대와 새로 뚫린 길과 아파트개발로 자동차는 등산복가게 앞에서 ‘목적지 주변’이라고 한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장갑을 하나 사면서 ‘경기도파주군 교하읍 다율리 산4-1’이라는 지번을 네이버에서 얻어 냈는데 네비는 다시 그 자리에서 내리라고 한다. 마침 순찰차를 만났더니 관광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는 에스코트해준다. 분외의 친절은 매우 고마운데 E-마트를 지나 산길 앞에서 경찰조차 ‘이 부근인데...’ 고인돌을 찾지 못한다. 담벼락에 페인트로 ‘고인돌→’ 이렇게 한 자만 써놓아도 좋을 텐데 어떤 표지판도 없다. 이곳은 파평 윤씨의 집성촌인데 E-마트마을(이렇게 부르는 것이 이곳을 찾기 쉽다.)의 주민들도 잘 모른데 저 뒤로 가보라고 한다. 마주 오는 차를 피할 길이 없는 산길에 손바닥만한 표지 하나! ‘산책길!’ 이것이 유일한 단서다.
세월탓인지 관리 탓인지 책상다리는 파묻혀 납작해졌다
남북방식이 혼재한다는 이곳 지석묘는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발굴했다니 그 보고서가 남아있을 것이고 파주읍지에도 자세히 남아있을것이다.
벤치를 마다하고 지난겨울 낙엽더미에 앉아 솔내음을 즐기는 부인네들은 넉넉한 파주의 삶을 이 숲에서 즐기고 있다. 그 한 분은 부산여고 출신...
‘이 오솔길을 따라 가면 고인돌이 있어요!’ ‘이 산이름은?’ ‘교하산인데 그냥 파평윤씨종중산이라고 하면 다들 알아요..’
산책로는 분단의 아픔 - 참호 고랑을 따라 이어지고 잡힐듯 금릉역[경의선 전철역]이 보이는데 그 참호 옆에 고인돌은 외로이 있다. 좌우에는 모두 파평윤씨의 유택.
이 부근에 약 1만년 전 우리 조상이 100여기의 고인돌이 있다니 이 지세가 명당임을 알린다. 이 긴 시간은 이 땅을 일구어 온 조상들의 연면한 역사를 일깨워 준다. 지금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류의 근원적 삶을 사는 인류학은 꽃피고 있다. 그 서구인들의 노력을 잠시 생각해 본다. 역사라는 것이-인간이 나고 죽고 낙엽이 쌓이고 싹이 돋고 봄가을이 반복되는 그런 시간을 미국의 역사와 잠시 생각해 본다. 그 시간을 생각한다면 문자보다 확실한 이 역사를 이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
이곳을 찾는 유일한 단서는 E마트-윤씨종중묘-그리고 이 산책로 표지판을 찾는 것인데 차를 세울곳은 여기에는 없다. E마트 뒤의 전원주택단지에서 오르는 것이 수월하다.
‘여기 산책로는 여기 저기 얽혀 있어요! 집에서 왕복하는데 2시간 정도...’
신도시에 사는 산책객은 그렇게 거들어 준다. 안내문을 읽어 보는데 주변의 고인돌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100여 기의 고인돌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가 없다. 조금 더 걷다가 헤이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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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막의 등불 원문보기 글쓴이: 양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