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일차 : 2003년 9월 17일 [화]. 이완치엔[一碗泉] - 홍산커우[紅山口]
"꿈의 실크로드[Silk road:絲綢之路] 여행"
** 이완치엔으로 넘어가는 중에... **
♣ 고의적인 낙오
어차피 낙오한 두 친구가 와야 같이 출발을 할 것이기에 기상을 08시로 여유를 가지고 늦게 하였다. 기온은 16℃로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 때문에 무척 차갑게 느끼어 졌다. 몸으로 느끼어지는 해발고도가 1천m는 넘지 않을까? 싶은 이완치엔의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제 바람을 핑계 대고 뒤에 떨어졌던 두 낙오자는 우리가 차에 탄 쌍하이 기점 3701 지점으로 10시까지 오기로 하였지만, 1차 낙오 때인 9월 5일 칭수웨이[淸水]진에서 샤허칭[下河靑]농장까지와 같은 순탄한 평지길이 아니라 전번의 경우와는 다르게 비탈길에 거리도 지난번의 30여km를 훨씬 넘기는 40여km일 뿐만 아니라 맞바람까지 불기에, 그 지점에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하기란 처음부터 틀린 일 이었다.
숙소에서 휴식을 하겠다는 늙은 조 영감님과 뚱땡이 서월. 그리고 어제 자전거를 타고 체험을 한답시고 30여km를 달리느라고 사서 고생을 한 취재기자 섭 주임은 내 버려두고, 뒤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투덜대는 마[馬] 기사를 얼러 모시고 3,701지점에 도착을 한 것은 10시가 10여분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더 기다리기를 20여분 빤히 올려다 보이는 저 멀리 둔덕 위에 보이고 있는 것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나무(?) 한 그루뿐이고 그 둘은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다.
나와 윤 여사는 천천히 타고 가자며, 마 기사만을 그 자리에 남겨 놓고 출발을 하였다. 아주 천천히 몇 개의 언덕을 올라서 다시 이완치엔 요금소에 도착을 하였고, 어제 통행료를 낸 것이 분하고 억울하여 처음부터 다시 공작(?)을 시작하였지만, 요지부동인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 짠장[站長]이 자리에 있어서 들어가서 사정을 하였지만, 되돌아 온 대답은 "메이빤파[沒辦法]"였다. 결국 50% 할인이라는 최고 우대로 우리의 "체면"을 살려 주어 이완치엔수페이짠[一碗泉收費站]을 통과하였다.
때려 주고 싶도록 미운 두 친구.
안전모를 반듯이 써야 한다고 하였지만, 머리통이 커서 맞는 것이 없다는 핑계로 끝내 안전모를 쓰지 않은 총의와 자전거 몸체에 커다란 물통을 달아서 가랑이가 벌어져 힘이 분산이 되니 물통을 떼어 내든지 뒤의 짐받이로 옮기라는 내 말을 끝내 듣지 않는 곰 같은 송충루는, 목을 빼고 기다린 우리 앞에 힘든 기색은 하나도 없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느긋하게 나타났다.
** 우리의 체면을 박살 낸 이완치엔 수비참 **
♣ 세 가지가 문제점
하나, 통제를 잘 따라 달라.
둘, 어제 같이 말을 않 듣고 타고 싶으면 타고 쉬고 싶으면 쉬니 날짜가 자꾸 지연된다. 원래의 계획인 18일에 우루무치 도착은 이미 물 건너갔고 이제는 20일에 우루무치[烏魯木齊]도착도 불가하다.
셋, 이에 따르는 문제는 우리가 30일분의 경비만을 준비했는데, 늘어나는 날짜만큼 경비가 부족하여 진다.
이와 같이... 나는 그 간의 경험으로 이미 한 번을 연기한 도착 날자 20일에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8월 26일에 칭다오를 떠나서 28일 오전 10시 씨닝에 도착을 하여, 29일 하루는 유람을 하고 30일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나서, 쟈위꽌을 거치고 열흘 후인 9월 8일에 거의 절반에 이르는 약 1,000km를 달려 뚠황에 이르면 만 하루 이상을 휴식과 정비 및 유람을 한다.
휴식도 정비도 미흡하겠지만, 9일 쯤에 재차 길을 떠나 남은 1,000여km를 달리면 하미와 투루판을 지나 목적지인 우루무치에는 씨닝을 떠난 지 20일 후인 9월 18일에 도착을 한다. 19일에는 우루무치 유람을 하고 19일 저녁에나 20일 아침에 차를 타고 3일 후에 씨닝으로 돌아간다.
이틀에 한 번 뿐인 칭다오 행 기차. 9월 23일에 씨닝에서 기차를 타면, 25일 아침에 칭다오에 도착을 한다. 라는 계획이 이미 깨어졌다. 이렇게 날짜가 지연되면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고, 이에 따르는 준비를 하라고 미리 알려 주었다.
** 휴식 - 이 고개를 넘어가면 홍산커우다 **
♣ 중국제의 슬픔
중국산 꽃게에서 납덩이 발견!
중국산 조기 국산으로 둔갑 비싼 값에 팔려나가...
중국산 고춧가루 구두약 혼합가공!
중국산 수입 도라지 화공약품으로 세척!
중국산 사과 사용금지 농약 다량 검출.
중국산 녹용 사상최대 밀수단 검거.
중국산 참깨 위장 반입범 검거
중국산 비아그라 밀반입자 공항에서 적발.
중국에서 온 밀입국자 검거
중국에서 마약 제조하여 반입.
중국에 있는 아무개 사업자 피살.
중국에서 신분증 위조하여 반입.
중국에서 싸스 발생
중국 광뚱에서 조류 독감발생 등등.....
오래 전 부터 이어오던 중국과의 교류가 일제로 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중국은 공산화가 되어 40여 연간이나 단절되었다가 동서의 냉전체재가 해빙되면서 철의 장막에 가려 있던 중공[中共]과 국교를 맺게 되자, 절친한 친구 중국(대만)을 내던지고, 중국 공산당 투페이[土匪 - 도적]집단이 "중국"으로 불리면서 부터 중국 전국각지에 널려 있는 1차 산업용품들이 엄청 싼 값에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교류가 활발하고 많아지면서 앞에 나열한 문제들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하여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중국은 늘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중국에 사는 우리 같이 현지에 사는 사람들을 착잡하게 한다. 좋은 소식보다는 늘 엉뚱하고 기가 찬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희망의 땅이라며 서로 뒤질세라 매스컴에서 전담취재반이 파견되어 특별 방송을 제작하여 쉴새없이 나발을 불어 대기도 한다. 누구라도 빨리 황해바다를 건너 투자를 하라고 종용을 해댄다. 한 발이라도 먼저 건너가라고.... 인구 13억을 가진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땅이라고.... 이에 뒤질 세라 "딸라"를 싸들고 허겁지겁 황해를 건너 뛰어들어 허둥지둥 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간다.
각설하고....
이번의 기행을 준비하면서 등에 메는 가방을 하나 장만하였다. 물건을 살 때에 늘 그렇듯이 이쪽저쪽의 다른 매장을 서너 번 방문하여 비교하여 보고 고르는 것이 현지에서 나의 물건을 구입하는 원칙이다. 그 법대로 여러 번 찾아가서 비교 검토를 해 보고 산 가방은....
첫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큰 주머니 하나에 뒤쪽으로 작은 주머니가 두 개 더 있고, 아래 쪽으로 가로 열고 닫는 작은 주머니가 한 개 있으며, 양 옆에 한 개씩 두 개. 그리고 큰 주머니 안에는 앞뒤로 작은 주머니가 두 개 더 달려 있어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품목별로 나누어서 넣어 가기에 좋을 듯싶었다.
둘째 색상이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가 거의 붉은 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기에 색을 맞추어서 붉은 색으로 샀는데, 이는 곧 나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즉, 예뻐 보이려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탈 때에 자동차 운전자의 눈에 빨리 띄어서 나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음이 있어서이다.
셋째는 크기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짐을 넣고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는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가 되었다. 크면 짐이 많아져서 어깨도 아프고 엉덩이는 더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라리엔[拉鏈-Zipper]이 튼튼한가를 나름대로 테스트를 해 보았고, 꿰맨 부분은 문제가 없을까하고 당겨도 보았는데, 대체로 문제가 없겠다 싶어서 59위엔 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는데...
그런데...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꼼꼼하게 크로스 체크를 했지만 미흡하였다. 바로 견고성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짐을 꾸릴 때에 조금 세게 잡아 당겼더니 어깨 끈의 재봉부분이 뜯어져 나왔다. 더구나 몇 번이나 시험해 본 지퍼가 이내 망가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출발 후에 뜯어지고 고장이 나면 고치고 꿰매려고 실과 바늘을 챙겨서 넣어 가지고 왔는데, 조 영감님의 가방도 여기저기 터져서 꿰맨 곳이 여러 곳이었고, 그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바늘을 꺼내어 꿰맸었다. 나 역시 무척이나 조심해서 지퍼를 열고 닫았지만, 지금까지 오면서 다섯 번을 고쳤다. 이때에 하기 좋은 말은 "중국제가 별수 없지" 였다.
예전에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이와 비슷하였다. 나이 40이 넘은 사람이라면 바지를 사 입으면 어김없이 지퍼가 떨어져서 옷 핀을 사서 임시로 얽어 입고 다녔던 추억이 기억 날 것이다. 그 때에 쉽게 뱉어 낸 말이 "국산은 어쩔 수가 없지!"하는 탄식이었다. 이제 국내에서 생산된 옷이나 가방은 꿰맨 곳이 터지거나 지퍼가 고장이 나서 못 입게 되는 경우는 없다.
나는 그 새 가방을 도저히 사용을 할 수가 없는 물건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칭다오로 돌아가는 대로 가방을 산 파궈[法國-France]계열의 창고형 매장 쨔러푸[家樂福:Carrefour]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야 겠다 고 결론을 지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중국에 살면서 대부분 싼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시내의 어머어마한 백화점에 가면 고가의 수입품은 물론이고, 내수용도 입이 딱 벌어지게 비싼 것이 많다. 그렇게 비싼 것은 당연히 품질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식구가 모두 와서 몇 년씩 살면서도 우리는 현지인들과는 다르게 내일이라도 상황이 생기면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기에 잠시잠깐 임시변통으로 쓸 싼 물건을 주로 고르게 되고, 그렇게 마련한 물건들은 대부분이 제품이 나빠서 얼마 못 가 망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용되는 철칙이다.
한국으로 물건을 수입해 가면서 수요자의 요구로 더 싼 것을 찾다가 보니 엉뚱하게 머리를 써서 잘 못된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니 한국에서 중국제품은 모두 농약 투성이의 불량품만이 나돌고, 마약도 만들고 호랑이도 때려 잡는 법과 질서가 없는 무법천지라고 알지 않을까? 라고 걱정을 해 본다. 아닌게 아니라 때로 어떤 물건은 생산단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게 먹혔을 물건도 더 비싸게 팔아서 화가 나게 만들기도 한다.
♣ 오늘은...
홍싼커우[紅山口]진은 해발 1,312m의 산촌[山村]으로 넘어가면 산이고 또 넘어가 산이다. 꽤나 가파른 언덕을 몇 개나 넘어서 아직은 해가 높다랗게 매달려 있는 17시 40분에 도착을 하였다. 오늘 달린 거리는 뒤로 가서 온 22km와 이완치엔에서 이 곳까지의 45km를 합하면 67km쯤이다. 싼싼[鄯善]은 128km쯤 남은 것으로 계산이 되었다.
2003년 12월 10일 칭다오에서. 2004/7/9 또 정리.04/08/18 마무리. 06.02.24 고침. 13년 8월 2일 중국 여행 동호회에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