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일의 명산품에 오른 사누키우동, 그 맛이 궁금하다!
2005년도에 최장 대기시간 2시간 기록, 차의 행렬은 2km넘게 이어졌다는
△ 우동을 맛보려는 손님들이 길게 줄서있는 야마고에우동(山越うどん-산넘어우동)店(上). 쯔기미야마우동(下)
우동(うどん)을 먹으러 가는 중이다. 때마침 봄비가 내린다. 약간 싸늘하다. 그렇기에 뜨거운 우동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는 상상만으로도 식욕이 동한다. 그것도 우동의 본고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누키우동(さぬきうどん). 일본의 한 경제신문에서 일본 10대 명산품을 발표했는데, NO.1에 오를 정도로 우동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사누키 지역에만 약 900여 곳의 우동집이 밀집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찾아가는 야마고에우동(山越うどん-산넘어우동)店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는 집이다. 평일에도 언제나 人의행렬이지만, 공휴일에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내내 영업하진 않는다. 오전 9시부터 낮 1시 30분까지, 딱 네 시간 반만 영업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유명店의 낮 1시 30분이라면 손님으로 바글바글 하는 시간 아닌가. 그런데도 여기서는 문을 닫는다. 이 가게만 그러진 않는다. 사누키지역에서는 낮 장사만 하고 문 닫는 업소가 부지기수이다.
1941년에 개업했다
야마고에우동店의 경우, 4시간 30분 동안 약 1,000그릇이 나간다. 그러니까 하루 1,000그릇 분량의 밀가루반죽만 준비해서 판매한다는 얘기가 된다. 영업을 마친 오후부터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밀가루 반죽에 들어간다. 이때 발로 밟아서 하는 게 전통이자 특징이다. 그리고 밤새 숙성. 글루텐 성분이 가장 풍부해진 다음날 오전부터 다시 영업개시. 돈만 보고 한다면 하루 종일 장사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누키우동의 명예를 위해 금전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고 있었다. 이렇게 우동 한 그릇에도 장인의 혼을 담는 데가 사누키이다. 어쩌면 이게 사누키우동의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라멘(ラ―メン)을 즐긴다. 하지만 사누키 사람들은 아침 해장으로 우동을 먹고 점심도 우동을 먹는다. 간식도 우동, 저녁도 우동이다. 사누키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이지만 밀가루 소비량만큼은 전국 톱을 자랑한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우동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한 긴 행렬. 그들 중에는 이 지역 주민도 있을 테고, 사누키우동의 명성을 좇아 일본 전역에서 온 우동순례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 나 같은 떠돌이관광객도 있을 테고. 나는 지금 그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 사누키우동의 명성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 수양매화 뒤쪽으로 우동을 먹고있는 손님들이 보인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우동의 정취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광경은 긴 행렬이 아니었다. 一자로 된 의자에 일렬로 앉아 우동을 먹고 있는 사람들, 핑크빛으로 피어나는 수양매화와 어우러진 그 광경은 마치 일본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서정성이 물씬 묻어나는 그 모습은 우동의 정취랄까. 어느 초로의 노신사가 소주 한 병 앞에 놓고서, 김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들고 있는 우리네 정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한동안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우동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았다. 느낌은 있는데 답은 구하지 못했다.
사누키우동의 특징
△ 손님들이 정원에서 우동을 먹고있다
사누키 지역의 우동店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본의 가게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게 있다. 정원처럼 잘 꾸며진 외관과 공력들인 인테리어, 하지만 사누키에서는 그런 가게보다 허름한 가게가 더 많다. 랭킹에 드는 업소 중에는 비닐하우스도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치장보다 맛이 아닌가 싶다. 야마고에우동(山越うどん)店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홀은 커녕 테이블도 없다. 제면소 복도의 간이의자에서 또는, 정원의 벤치에서 우동그릇을 든 체 먹는 게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제면소 지붕아래에서 먹는 것을 최고의 우동풍미로 친다고 한다.
△ 우동을 받아든 후 개당 100엔하는 텐푸라(テンプラ)를 추가할 수 있다. 물론, 우동만 먹어도 된다
사누키의 우동점들은 몇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일반점은 우동이 완성되어 나온다. 자신의 기호에 맞게 직접 내용물을 첨가하는 셀프점, 그리고 주문형과 셀프형이 섞인 혼합점이 있다. 야마고에우동(山越うどん)店은 주문, 완성된 우동, 옵션으로 텐푸라선택(셀프), 계산, 시식 순으로 이어지는 혼합점 스타일이다.
우동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따끈하고 시원한 국물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먹은 츠기미야마우동만 하더라도 면에 날달걀과 갈은 참마, 얇게 썬 파가 전부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다.
이집에서 개발해 인기 품목으로 자리매김한 카마다마우동은 삶은 면을 바로 대접에 담아 순식간에 날달걀과 비벼서 파만 얹어 내 놓는다. 이것 역시 양반이다. 진짜 우동 본연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들은 면에 간장만 넣어 비벼먹거나, 갈은 무나 썬 파를 살짝 첨가하는 정도이다.
때문에 사누키 우동을 한마디로 뭐다 정의내리긴 힘들다. 업소에 따라 텐뿌라, 어묵, 참마, 달걀 등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니 말이다. 그래도 업소불문, 종류불문하고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면의 탄력성. 탄력성만 있어서도 안된다. 표면은 매끌 하면서 부드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속은 탱탱한 탄력, 이게 사누키우동의 참 매력이다.
난감했다. 비도 오는데 실내도 아닌 정원의 벤치에서 국물 없는 우동이라니. 더군다나 찬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온 싸늘한 면과 찬 달걀, 찬 마, 찬 맛국물의 조화라니. 그래도 면의 탱글탱글한 면의 기운은 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끌한 면은 마와 달걀로 코팅을 해서 더욱 더 매끄러워졌다. 그렇다 쳐도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허무했다. 평양냉면보다 더 무심한 이 맛. 국물 없는 우동과의 조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새록새록 샘솟기 시작한다. 우동에 대한 여운이 시작된 것이다. 시코쿠에 머물면서 즐겼던 다양한 미식들. 우동을 먹던 당시에는 낯설음으로 인해 그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첫손에 꼽는 건 사누키우동이다. 별것도 아닌 이 우동이 이토록 미각을 잡아 끌줄이야. 벌써부터 그 맛이 그립다. 사무치게 그립다.
사누키우동....
출처 - 맛있는 인생 글쓴이 -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