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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누구신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1899-1981)는 영국의 남웨일즈에서 출생하였고, 런던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는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의학을 수련한 후 외과의사로서 실무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나 27세에 그는 의학계를 떠나 남웨일즈 에버라본 시의 웰쉬 장로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1938년부터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캠벨 몰간 목사의 후임으로 30년간 목회에 종사하다가 1981년 2월에 82세를 일기로 운명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한 방에서 토론 모임을 열었습니다. 이 토론 모임에서 다룬 주제들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겪는 실제적인 문제들이었으며 이 모임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들은 온갖 종류의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지식을 요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종종 교리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이 금요모임의 장소를 본당으로 옮겨 제기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연속강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성경적인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1952년부터 1955년까지 교리 설교를 했고, 그 후에는 1968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의 대작이라 할 수 있는 로마서 강해설교 시리즈를 계속했습니다. 교리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교리 강좌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큰 힘을 얻게 되었음을 수년동안 간증했습니다.
[서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구원이 우리 안에 실행되도록 각 사람에게 적용하십니다.
교회는 성자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확증하기 위해 전략을 다해 방어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교리는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를 때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교회사에서 성경의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의 교리를 재발견한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교리 역시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재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카톨릭의 체제에서는 사제직, 신부, 마리아, 성인들이 성령의 자리에 놓여 성령이 무시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성령의 위대한 교리를 재발견했고, 그 후 경건한 청교도들에 의해서 철저히 연구되었습니다.
삼위일체를 믿는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교리에 대해 아는 것만큼 성령님에 대한 지식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이름들]
성령님을 묘사하는 많은 호칭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성부 하나님과 관련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주의 성령, 여호와의 영, 아버지의 성령’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6장 3절에서 ‘나의 영’이라고 말씀하시며, 시편기자는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시139:7)” 바울은 로마서 8장 11절에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성부하나님)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성자 하나님과 관련된 호칭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절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는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6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주의 영(행5:9)’이라고 불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직접적이거나 개인적인 호칭들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성령’이라는 이름입니다.
두 번째 직접적 호칭은 ‘성결의 영’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에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칭호는 ‘거룩하신 자’입니다. 요한일서 2:20에서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요한복음 14장 17절에서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으며, 요한복음 14,15,16장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그분을 성령(Holy Spirit)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누군가를 다른 존재로부터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을 거룩한 분이라고 부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적용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함과 질서를 만들어 내시는 성령의 특별한 사역때문입니다. 성령의 목적은 거룩함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며, 그분은 사람에게서만 아니라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도 이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의 궁극적인 사역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룩한 분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령을 다른 영들, 즉 악한 영들과 구분하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하라는 말씀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요일4:1).
[성령의 인격성]
두 번째 생각해 볼 것은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성령을 하나의 힘이나 영향력쯤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신비스럽고 은밀하기 때문에 비인격적인 사역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비둘기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기름같은 성령으로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성령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성령은 은혜와 열매들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은사들과 각종 능력들을 주십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영향력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성령을 남성대명사인 “그(He)”로 묘사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성부, 성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성령이 인격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름들’로 하지 않고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세 위격의 하나됨을 보여줍니다.
또 중요한 것은, 성경이 성령께 인격적 속성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성령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난미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성령은 또한 주권적 의지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의 은사와 그 다양성에 대해 기록한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절)”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어느 누구도 은사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뜻에 따라 이러한 은사들을 나눠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특정한 은사를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주실는지는 성령이 결정하십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분명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또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갈5:22)”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붓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롬5:5-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령이 슬퍼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에베소서 4장30절에서 성령을 “근심하게”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에 대한 교리, 그 중에서도 특히 그분의 인격을 강조하는 측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면에서 성령에 대한 최고의 교리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6,17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바울이 음행에 대한 경고 중에 가르친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린도전서 6장 15-20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 죄를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민희 전 KBS 영상사업단 사장)
하나님이 우리 안에, 성령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영향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안에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실 수 있는 인격이십니다.
성령님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나의 몸은 성령의 전이 되어 성령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에 대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인격이신 분입니다.
말씀을 맺으며 이 한가지만 마음속에 깊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5:16의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을 기억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열매맺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참고 이민희 kbs]
의심한다. 확인해야 한다. 나는 도마와 같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기자라는 내 직업과 어울리는 성향이기는 했지만 신앙을 갖는 데는 장애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따라 나갔던 교회. 중학교 3학년까지는 멋모르고 열심히 다녔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교회에 가면 떡 하나라도 나눠주는 인정의 배부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이후 의심이 생겼다. 하나님은 나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 같았다. 나는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집에서 가끔 성경을 뒤적거리기는 했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 시기는 20대 중반 1966년 조선일보 입사 후까지 이어졌다. 결혼을 계기로 다시 교회에 나갔다. 장모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다. 하루에 8시간씩 성경 보고 찬양하시는 분이었다. 성화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서울 녹번동의 작은 교회였다.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회계, 서기, 유년부 교사, 청년부장 등 각종 직분을 맡았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의심은 여전히 내 마음에 도사리고 있었다.
의심이 믿음으로 바뀐 것은 그로부터 10여년쯤 뒤인 1976년 동양방송(TBC) 정치부 기자로 있을 때다. 어느 날 저녁, 우연히 동네에 있는 응암교회 앞을 지나갔다. 평일인데도 찬양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집회 중이었다. 치유의 은사를 가지신 김삼일 목사님이 강사이셨다. 집회 후반부에 김 목사님이 “이 가운데 병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라고 했다. 당시 나는 12년 전부터 달고 다니는 악성 무좀에 시달렸다.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그 고통은 당해본 사람 아니면 모른다. 앞으로 나갔다. 나를 포함해 100여명이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천지 만물을 지으심을 믿습니까. 맹인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이 능력을 행사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매달려보자는 심정으로 “믿습니다”라고 외쳤다. “다 나았다고 생각하면 들어가십시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떠밀려 자리로 돌아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발에 새살이 돋았다. 무좀이 나은 것이다.
복음을 귀로 듣고 가슴으로 믿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의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주님은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믿음으로 변한 순간부터 내 삶은 바뀌었다. 매 순간을 의지하게 됐고, 묻고 또 물었다. 크리스천으로서 보다 올곧고, 보다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분명한 힘 앞에 순종하십시오.” 사랑의교회 출석하며 접한 고(故)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는 나의 신앙을 더욱 견고케 했다.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TBC에서 당시 모 정부부처 출입기자였을 때 산하기관에 취재 갔다. 직원들이 저녁식사와 술을 대접했다. 마시는 척만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12시쯤 여성 한 명이 숙소로 찾아왔다. 부적절한 접대 중 하나였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자신의 집은 12시가 넘으면 못 들어간다면서 재워달라고 하소연했다. 돌아가라 해도 막무가내였다. 들어오라고 한 뒤 “내가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같이 보자”고 했다. 황당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돌아갔다.
1982년 이후 한국방송공사(KBS) 특파원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의 역할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신문, 잡지, 방송과의 인터뷰나 좌담회, 강연에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일본 천황의 명백한 사과’를 촉구했다. 동시에 “일본이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학살하고도 1957년부터 역사적 사실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부정확하고 왜곡되게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6년 귀국 후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기자로서,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KBS에서 신우회장을 맡으며 회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해외 나가야만 선교사가 아니다. 국내에도 예수님 모르는 사람 많다. 우리 회사 기자,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모두가 예수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난다. KBS를 황금어장으로 보자. 각자 파트에서 선교사의 역할을 하자.” 정기적으로 모여 말씀을 읽고, 삶을 나누는 시간은 고된 직장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휴식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임원이 되고 나서 더욱 돈독해졌다. KBS문화사업단 사장을 맡을 당시 회사의 누적 적자가 수십억이었다. 그냥 두면 도산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회사를 맡은 지 한 달 됐을 때 감사원에서 부실 공기업 정리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문화사업단이 포함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본사에서도 회사를 없애기로 결정한 듯했다. 기도원으로 달려갔다. 회사는 살려야 하고, 구조조정은 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 왜 내게 이런 상황을 주셨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런데 기도 중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응답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튿날 본사 사장을 찾아갔다. “문화사업단의 사장은 나지만 하나님이 회장이시다. 그분 도움으로 구조조정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로 돌아가 노조위원장을 불렀다. “우리 회사는 온몸이 곪아서 손발을 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부서 절반 줄이고 봉급을 줄이자”고 간곡하게 설득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고등학교 동창부터 시작해 온갖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아는 사람의 편의를 봐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해야 했다. 청탁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았다.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회사는 창립 이래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그 덕분에 KBS 계열사 중 가장 큰 영상사업단 사장에 선임됐다.
34년 언론인 생활을 마친 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홍익대 광고홍보학 교수로 재직했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링컨과 같은 크리스천을 소개한 뒤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꿈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내 나이 70세. 얼마 안 있으면 장로 은퇴식을 갖는다. 지난 3월부터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여생을 소외된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나의 나이 많음을 걱정한다. 그러나 40여년 전 회심으로 얻은 믿음의 불씨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의심에서 변한 내 믿음이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 이민희 전 사장
1941년 경북 경주 출생으로 6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66∼68년 조선일보 기자, 68∼80년 동양방송(TBC) 기자, 80∼93년 한국방송공사(KBS) 기자, 93∼2000년 KBS 문화사업단, KBS 영상사업단 사장 역임. 2000∼2006년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9년부터 ㈔사랑의복지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장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