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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ivina의 국가대표 올림픽 은메달 팀 상대로 38득점 이충희 슛 성공률.gif
LaDivina 추천 1 조회 2,715 25.09.17 19:05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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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9.17 19:16

    첫댓글 아마 이대회 허재 스틸이 어마어마 했던 기억이 있네요

  • 작성자 25.09.17 19:18

    게임당 3.3 개 입니다.

  • 25.09.17 19:47

    신나게 응원하던 선수였는데.. 올려주신 자료 보니 넘 좋네요...

  • 작성자 25.09.17 20:01

    감사합니다.

  • 25.09.17 19:49

    디바치(디박)도 저때 있었네요.

  • 작성자 25.09.17 20:02

    디바치가 사실상 가장 핵심 선수죠.

  • 작성자 25.09.17 20:12

    글을 다시 보니 디바치를 빠뜨렸네요.

  • 25.09.17 21:08

    국제무대 경쟁력은 허재보다 이충희가 더 뛰어난거 같은데...;;;;

  • 작성자 25.09.17 21:14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충희가 결정력은 더 뛰어나다고 봅니다.

  • 25.09.17 22:20

    허재가 있기에 이충희가 살수 있었습니다. 다만 허재는 이충희 없이도 국제대회에서 자기 플레이 다했었,죠,
    물론 허재와 이충희는 둘다 제가 유이하게 인정하는 우리나라 남농 goat입니다

  • 작성자 25.09.17 22:30

    이충희는 허재 등장 이전에 이미 아시안게임 금메달 딸 때 에이스였어요.

    오히려 공격 성향이 강한 허재 - 김현준 - 이충희가 같이 뛸 때 삐걱거리는 문제점도 있었죠.

    당장 저 유고슬라비아 경기도 허재 벤치 타임에서도 이충희는 자기 득점합니다.

  • 25.09.18 15:32

    이충희에게 허재가 필수 조건이 못 되죠 abc대회 이충희 mvp때 결승 허재가 패스 해줬으면 우승과 mvp 다 잡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았죠

  • 25.09.17 23:25

    와 이충희 미쳤네요ㄷㄷㄷ

  • 25.09.18 00:07

    순간동작이 너무 빨라요

  • 25.09.18 14:03

    이충희 선수님은 진짜 달랐어요. 근데 이때 3점이 없지 않았나요?

  • 작성자 25.09.19 04:47

    NBA 나 미국에서 예전부터 있던 3점 제도를 FIBA 가 도입한 것은 1984년이고

    한국은 1985년 처음 도입합니다.

    3점슛이 인정된 최초의 올림픽이 88 서울 올림픽입니다.

  • 25.09.19 06:30

    오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5.09.19 02:06

    이충희가 민첩성도 엄청났고 수비할때 손도 굉장히 빨라서 좋은 대인수비력도 겸비하고 있었죠. 허재와의 비교시에 상대적으로 완력이나 탄력, 체력같은 부분이 떨어졌고 코트비전도 허재만 못했지만 득점하는 능력만큼은 한국국대사상 탑2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시대적인 상황으로 30살만되도 노장취급받던 시기이기도했고 일찍 은퇴할 수 밖에 없었던 자기관리의 부재 혹은 타고난 강인함의 모자람이 아쉽기도 하네요. 전성기 기준으론 이충희에게 꽤나 밀리는 김현준이 성실함과 자기관리를 통해서 농대통산 최초5천점도 넣고 했는데 이충희는 90년대초에 이미 기복도 너무 심했고요.

  • 작성자 25.09.19 04:00

    13년이나 국가대표로 헌신한 선수에게 자기관리 부재는 어울리지 않죠.
    부상이 있어도 국가에서 뛰라면 그냥 뛰던 시절이죠.

    당시는 의학기술 부재로 무릎 부상 당하면 그냥 은퇴에요.

    신선우, 유재학도 그랬죠.

    이충희는 신기하게 부상으로 은퇴하고 대만가서 5년이나 더 선수 생활했죠.

  • 25.09.20 16:07

    제 기억으로 이충희가 무절제하게 관리부실한 편은 아니었지만 선수생활을 오래 가져갈 준비는 따로 안했던걸로 알고 있어요. 슛연습을 앞뒤좌우로 점프해가며 매일 수백개씩하던 사람이라 성실함이 모자랐을리는 당연히 없죠. 다만 당시 시대적 상황에 앞서가는 선진적인 관리를 못받았고 본인도 따로 그런걸 안했다정도가 제생각입니다. 80년대후반부터 이충희팬이어서 그런건지 90년정도 넘어가면서 경기마다 기복도 심해지고 부상도 계속 달고 있었고 여러모로 안타까운 장먼들을 많이보다보니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이건 제뇌피셜인데 삼성쪽은 현대보다 선진문화 도입에 적극적이었던터라 컨디셔닝쪽도 더 관리가 좋았을 것 같고 김현준이 더 오래 꾸준히 뛸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25.09.20 16:11

    사족으로 제가 첫댓글에 이충희가 스스로의 관리부재로 인해 롱런못했다는 늬앙스가 있게 쓰긴했네요. 저도 이충희가 자기관리부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댓글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25.11.30 10:59

    이충희 선수는 저에게 원톱인 선수랍니다. 국제 경쟁력이나 성실한 노력 또한 원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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